스웨덴 출신으로
현재 유로파리그로 이름을 바꾼
178cm로
스트라이커로 작은 편이었으나
밸런스가 좋고
기술과 힘도 좋은데
영리함까지
갖추고 있는 유형이라
말 그대로
최고의 활약과 득점력을 통해
.
.
.
비교적 단기로 이적한
바르셀로나와
실제로 단기 임대되어 뛰었던
맨유에서 전설적인
활약을 통해
헨릭 라르손은
만 17세 나이로
스웨덴 자국리그에서 프로데뷔를
이루어 냈으며
꾸준한 경기력과 함께
좋은 득점력으로
.
.
.
이적 후,
라르손은 무려
미친 득점력을 통해
팀의 에이스가 되었고
스웨덴 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가 되었으며
그 당시,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을 자랑했던
네덜란드 리그
페예노르트의 러브콜을 받고
이적을 결심한다.
.
.
.
페예노르트 이적 후,
4시즌간
활약했으며
가치는 점점 더
높아졌으며
스코틀랜드 명문 셀틱 구단이
다시 한 번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며
그의 이미지가
가장 뚜렷한 셀틱선수로써의
첫 행보를 나아간다.
첫 시즌 16골을 넣으며
예열의 시기를
갖는 듯 하더니 이듬해부터 폭발하기 시작.
98-99 시즌
환상의 득점력을
보여주며 최고 스타가 된다.
.
.
.
99-00 시즌
챔피언스리그 경기 도중
정강이 뼈가
부러지는
엄청난 큰 부상을 당하며
좌절하지만
7~8개월간
정말 죽음을 불사르는
재활을 통해
그는 다시 화려하게 복귀했고
4시즌
스코틀랜드리그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
.
.
셀틱에서
7년간 활약하면서
4번의 리그우승과 각종 컵 대회에서
우승하는 데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셀틱 구단의
그는 셀틱의
환호성을 뒤로 한채
30살이 넘은 나이에 늦었지만
의미있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30대가 넘은
헨릭 라르손의 바르셀로나 행은
부정적인 의견이
많은 편이었고
무엇보다
다소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에서
전성기를 보냈던 그가
스페인에서
성공하리란 생각이 거의 없었...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라르손의 클래스는 높았고
오히려
바르셀로나 동료들의
멘토이자 튜터링 역할을 담당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
.
.
두 시즌간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며
리그 2회
우승과 함께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에
주역이 되었으며
특히,
챔스 결승 아스날전에서는
0:1로 지고있던
후반 중반에 교체로 들어와
2개의 어시스트를
배달하며
그야말로 MVP급 활약을 펼치며
우승 트로피를 선물.
에투는
라르손에 대해
" 그는 나에게 수비진 시야에서
사라지는 법을 전수해줬다. "
라고 발언하며
그를 높게 치켜세웠다.
바르셀로나를 떠나
자국 고향팀 헬싱보리로 이적했고
자국리그 특성상
겨울에 비시즌이 되면서
그는 다른 곳에서 뛸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그의 위대함을 알아본
명장 퍼거슨 감독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게 되면서
그는 30대 중반에
.
.
.
3개월의
단기임대계약이었고
짧은 기간동안
정확히 3골을 기록했는데
임팩트가 큰
굉장히 중요한 득점이었고
무엇보다
맨유의 젊은 선수들을
아우르는 리더쉽과
경기장 안에서 감독과도 같은
플레이메이커
역할까지 도맡으면서
.
.
.
임대계약 종료 후,
맨유팬들은 시즌 종료까지
계약을 연장하라
수없이 외쳐댔지만
라르손은 자국리그가 다시 시작되기에
그러한 모습이
2009년 10월,
리그 경기를 마지막으로
현역은퇴 선언.
그의 위대한 여정은
끝을 맺었고
그가 남긴
화려한 스탯은
그의 위대함을 제대로
보여주었는데
20대 초반에
참여했던 1994 미국월드컵에서
스웨덴의
3위 성적의 활약했으며
2002 한일월드컵에서도
2골을 넣으며
밥값은 제대로 한 편.
.
.
.
2006 월드컵에도
잉글랜드 전
득점포를 가동하며
16강에 팀을 올려놓았다.
융베리 은퇴 후,
스웨덴의
성적은 미비했지만
라르손의 클래스는 여전했으며
그가 노장이 되었을 때,
즐라탄이 조금씩 성장함에 따라
환상의 호흡을 보이며
마지막까지
대표팀에서 공헌.
.
.
.
유로2016을 끝으로
국대 은퇴를 선언했으며
여담이지만
즐라탄이 좀 더 나이가 많았거나
라르손이 좀 더
젊어서
두 선수가 같이 뛰는 시기가
더욱 길었다면
스웨덴의 메이저 대회 성적은
훨씬 더
좋았을 것이라
여기는 언론, 팬들이 많다.
그의 왠만한 득점 후
세레모니는 특유의 혀를 내미는 동작.
그것을 한 이유는
바로 마이클조던의 영향이고
마이클조던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팬이였던 그는
그가 플레이 할 때
혀를 내미는 동작을 유심히 보고
자신의 세레모니에
착안한 것.
.
.
.
유로파리그 이전,
UEFA컵이라는 명칭 시절부터
라르손은
수많은 득점을 올렸고
56경기 40골로
역대 1위를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계속 깨지지 않는 중.
.
.
.
전성기를 빅리그가 아닌
스코틀랜드에서 보내며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지 못한 편이라
이러한 별명이 생겼으며
30대가 된 후,
그늘을 벗어나 바르셀로나라는
햇볕 아래에서도
기량을 마음껏 뽐내며
클래스를 발휘하기도 했다.
.
.
.
쿠만 감독이
바르셀로나 사령탑에 오르며
라르손을
코치로 러브콜했고
그가 승낙하며 2020년 기준으로
바르셀로나 코치로
커리어를 보내고 있다.
.
.
.
2002 한일월드컵 후,
라르손을 은퇴를 결심했지만
자신의 아들이
월드컵에서 뛰는 모습을 더 보고 싶다는 말에
은퇴를 번복하고
결국 2006 월드컵도 뛰었으며
이 대회 후,
역시 은퇴를 선언하려했으나
코치진의 만류로
유로2008까지 뛰었다.
.
.
.
2020/11/19 - [스포츠/축구] - 융베리 아스날 & 스웨덴 전설 한 때 가장 섹시했던 축구스타
조콜 잉글랜드의 몇 없는 천재성 축구스타(Feat. FC 호스피탈) (0) | 2020.11.19 |
---|---|
이강인 맨체스터 시티 영입 가능성과 활약 여부 (2) | 2020.11.19 |
융베리 아스날 & 스웨덴 전설 한 때 가장 섹시했던 축구스타 (0) | 2020.11.19 |
나카타 히데토시 일본 최고의 축구선수(Feat. 때이른 너무 빠른 은퇴) (0) | 2020.11.18 |
필리포 인자기 오프사이드 가지고 노는 선수(Feat. 위치선정의 달인) (0) | 2020.11.18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