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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포를란 우루과이 최고의 공격수 형은 간지 골만 넣는다

스포츠/축구

by Gugu_K 2021. 2. 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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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폭풍 골로 잘 알려진 디에고 포를란

우루과이 국적

트라이커 포지션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루이스 수아레즈 이전에

우루과이 최고의 공격수로 불렸던 선수.

잘생긴 외모와 함께

간지나는 득점을 여러 번 올리며

많은 팬을 보유했고

맨유 소속으로 잠시 실패를 맛보기도 했으나

라리가로 무대를 옮겨

2번의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좋은 활약과 함께

국대에서도 꾸준했던 선수.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노장으로 우루과이를 이끌며 맹활약했고

대한민국과 16강전에서

상대팀으로 만나기도 했다.

 

 

 

 

 

 

맞지 않았던 옷, 맨유 시절

실력은 검증됬으나 맨유와 맞지 않았다

자국리그에서

프로 데뷔 후 꾸준하게 성장하던 포를란은

2002년이 되던 해에

퍼거슨 감독

자신이 생각하는 필요한 장점들을

모두 가진 공격수라며

포를란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8만 파운드라는

비교적 저렴한 이적료로 영입에 성공.

 

간지나는 득점포

쏠쏠하게 넣어주는 등 임팩트는 있었으나

생각했던 것보다

꾸준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EPL은

유럽리그 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몸싸움이 진행되는 곳이었고

더불어 그 당시

맨유에는 베컴, 긱스, 스콜스

크로스와 패스를

뿌려줄 수 있는 자원들

가득하다는 점에서

포스트 플레이 유형의

스트라이커가 맞는 상황 속에서

포를란은 맞지않은 옷

입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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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니스텔루이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게 되면서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 늘었고

무엇보다 04-05 시즌

개막전에서 

비가 내렸고 퍼거슨 감독은 포를란에게

비에 대비해

긴 스쿼드의 축구화를

신으라고 조언했고

포를란이 그걸 무시하고 짧은 걸 신고 뛰자

폭발한 퍼거슨 감독이

라커룸에서

그에게 헤어드라이기를 발동했고

그 경기가 포를란이

맨유 유니폼을 입고 뛰는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반등의 시간, 라리가 비야레알 시절

라리가 첫 득점왕에 오르던 비야레알 시절

라리가 비야레알로 이적 후,

첫 시즌부터 그는

날아다니기 시작했고 당시 최고의 공격수였던

에투, 호나우도 등 

함께 득점왕 레이스를 펼치며

결국 첫 시즌에

38경기 25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오른다.

 

그 후로도

2시즌을 비야레알에서 더 뛰면서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했고

그가 라리가에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개인기량은 물론이고

EPL에 비해

몸싸움이나 압박강도가 덜 하다는 점에서

기술과 다양한 장점을 가진

포를란의 능력이

더욱더 발휘되기 좋았다는 것.

 

더불어 당시

비야레알에는 리켈메라는 플레이메이커

자리하고 있었고

감독이 그에게 맞는 전술을 짜며

리켈메가 공을 오래

소유하며 패스를 뿌리면

포를란이 귀신같이 패스를 받아

마무리하는 패턴

여러 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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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리가 수비수들이

포를란의 장점과 스타일에 적응하면서

견제를 많이받고

득점력이 좀 줄어들긴 했지만

비야레알 마지막 시즌에도

리그에서만 19골을 기록하는 클래스를 보였고

구단은 가치가 상승한

그를 ATM으로 이적시키게 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또 한 번의 득점왕, 그리고 찰떡궁합 아게로

아게로와 좋은 호흡을 보였던 ATM 시절

07-08 시즌을 앞두고

ATM은 팀의 간판 스트라이커 토레스

리버풀로 이적하게 되면서

그의 공백을 메워야했고

그 선택이 바로 디에고 포를란.

 

그리고 구단의

이러한 선택은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는데

유망주 아게로와 함께

투톱을 이루며

환상적인 공격력을 꾸렸고

첫 해

23골 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연착륙하더니

08-09 시즌에는

리그에서만

33경기 32골 10어시스트라는

신계에 가까운

득점을 비롯한 스탯을 보이며

라리가 두 번째이자

ATM 소속의 첫 번째 득점왕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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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활약은 계속 이어지며

09-10 시즌

28골 10어시스트라는 환상적인 스탯을 쌓았고

컵 대회에서 아쉽게 결승에서

패하기는 했으나

유로파 리그에서 승승장구 하며

결국 ATM은 우승했고

포를란은 9경기 6골의 활약을 바탕으로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시즌이 끝난 후,

시작된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포를란은 우루과이 대표로

환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그의 주가는 더욱 높아졌고

바르셀로나에서 그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

 

하지만, 부상과 함께

조금씩 폼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기복있는 모습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빅클럽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사라졌고

그 해에 10골을 기록하며

나름 훌륭했으나

임팩트가 부족한 편이었고

결국 시즌이 끝난 후

인터밀란으로 이적을 하게 되면서

라리가를 떠나게 되었다.

 

 

 

 

 

 

 

인터밀란 이적, 돌아오지않는 폼...

노쇠화와 떨어진 폼이 한 번에 찾아왔다

인터밀란의 주포였던 

에투가 러시아 안지로 이적하게 되면서

그의 대체자

인터밀란의 선택은 포를란.

ATM에선

토레스의 대체자였던 포를란은

이탈리아에서는 에투 대신...

 

하지만, 그의 떨어진 폼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못하고 멀어졌고

거기에 기복도 심한데

당시 인터밀란

팀 자체가 주축선수들이 이적하는 등

흔들리는 시기에 맞물려

대부분 다 부진한 편.

 

결국 1시즌동안

2골 3어시스트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며

부진을 거듭했고

먹튀라는 평가까지 받으며

조금은 씁쓸하게

인터밀란을 떠나게 되었다.

 

 

 

 

 

 

 

J리그 진출 -> 자국리그까지

자국리그에서 뛰었던 시절

인터밀란과의 계약이 끝난 후,

돌연 브라질리그

진출하면서

두 시즌간 주전으로 활약하며

34경기 10골로

조금은 평범해진 활약을 남겼고

그 뒤로 진출한 곳은

서서히 왕년의 슈퍼스타들이 

진출 빈도를 높이고 있는 J리그.

 

세레소 오사카에 입단했으며

초반에 나름대로

이름값을 하며 분전했지만 결과적으로

팀은 강등 당했고

60억에 가까운 연봉을 받는

포를란에게도

비난의 화살은 

찾아올 수 밖에 없었고

결국 팀에서 방출되면서

J리그와의 인연도

조금은 씁쓸하게

끝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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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행보를 보면

잠시 자국리그로 돌아가서 활약하다가

인도리그까지 진출.

별다른 성과나

특별한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후에 킷치 SC

입단하게 되었고 이 곳은 홍콩리그.

결과적으로 그 곳이

포를란의 마지막 현역 소속팀이 되었고

2019년 8월

자신의 개인 SNS를 통해

은퇴 소식을 알리며

그렇게 현역에서 은퇴했다.

 

 

 

 

 

 

 

국가대표로써의 디에고 포를란

국대에서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2002 한일월드컵에도

엔트리에 뽑히여 참여했고 득점도 했다.

다만, 레코바, 실바 등

선배들의 포스가 강했기 때문에

관심도는 거의 없는 편.

 

그 후에도

꾸준하게 국대에 선발되며

득점력을 발휘했고

코파 아메리카 무대에서 결승전 파라과이를

상대로 2골을 넣으며

조국의 우승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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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를란의 국대 최고 활약

바로 2010 남아공월드컵 무대였는데

팀을 4위로 이끌었고

5골을 넣으며

대회 득점왕에 올랐고

4위 팀이 대회 득점왕에 오른 역사는

역대 최초...ㄷㄷㄷㄷ

 

2014 브라질월드컵 무대를 끝으로

국대에서 은퇴했고

루이스 수아레즈 이전의

우루과이 상징과도 같은 축구선수

단연 포를란이었다.

 

A매치 112경기 36골

 

 

 

 

 

 

디에고 포를란에 대한 TMI

 

 

 

01. ATM 득점왕 시절이 재조명되고있다

 

33경기 32골로 ATM 시절

득점왕에 올랐던 포를란이 재조명되는 이유는

메시, 호날두 시대가 오기 전에는

1경기당 1골이라는

득점페이스가 게임에서나 존재했기때문.

포를란은 신계와도 같은

득점 페이스를 보였고 훗날 다시 회자되며

재조명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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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테니스 선수를 꿈꿨던 과거가 있다

어린시절

축구와 테니스를 모두 병행하며

진로를 고민했고

결과적으로 축구를 선택하게 되었으나 지금까지도

테니스를 즐겨 치고 있으며

동료나 친구들에게도

적극적으로 테니스를 권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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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마라도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포를란의 아버지와

마라도나는 절친사이였고 포를란이

어린시절 테니스와 축구를 두고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마라도나의 조언이 큰 힘이 되었고

무엇보다 포를란의 누나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당장 수술을 해야하는데

돈이 없는 상황 속에 놓이자

마라도나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기금을 마련하는 등

크게 도움을 주었고

이에 감동한

포를란은 축구선수를 결심하게되는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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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유니폼을 벗는 세레모니를 자주한다

득점 후, 유니폼 상의를 벗는

세레모니를 자주했던 선수로 몸매가 예술이다.

세레모니 관련해서

재밌는 일화는

맨유 시절 득점 후 유니폼을 벗었는데

옷을 다시 입기도 전에

경기가 다시 시작되어

유니폼을 손에 쥔채 경기를 어느정도

소화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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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동성애자라는 오해를 받은 적이 있다

 

약혼녀의 질투로 인해

기사가 오보로 났던 것으로 판명이 났으며

약혼녀와 헤어진 후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잘 살고있는 것으로 보아

잘못된 오해가 맞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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