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국적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을 가진 선수로
특유의 헤어스타일과 함께
경기 때 마다
빌드업이 되고
무한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팀 전체적으로
이끌 수 있으며 여러가지
도움이 많이되는 선수이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감독, 구단 수뇌부들과의
관계나 끝이
항상 좋지 않은 편.
네덜란드 국적이지만
남미 수리남 출신으로 1985년
아약스 유스팀으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 케이스.
1991년
1군에 승격하여
첫 프로무대 데뷔전을 치뤘으며
94-95 시즌에는
클루이베르트 등과 함께
팀을 이끌며
활약하며 승승장구.
이듬해에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또 오르는
저력을 발휘했으나
아쉽게 유벤투스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고
그럼에 다비즈는 꾸준히 아약스에서 성장하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5시즌간 활약하며
빅클럽의 러브콜을 서서히 받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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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7 시즌을 기점으로
AC밀란으로 이적하게 되면서 세리에A 데뷔했으나
첫 해에 19경기 출전으로
예열을 다지며
더욱더 활약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이듬해
리그 개막전에서
골키퍼와 충돌하는 부상으로
꽤나 크게 다쳤고
결장이 길어지는 등
이 때 부터
구단 수뇌부들과 마찰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팀을
알아보게 되었다.
후에 더 밝혀진 사실에서는
다비즈가 수뇌부와의 마찰 뿐만 아니라
소속팀 선수들과도
사이가 좋지않고 싸우는 등
팀의 그야말로
방출이 불가피했다는 분석.
97-98 시즌
이적하자마자 팀의 우승을 이끄는
주역으로 활약하며
자신의 클래스를 보여준 다비즈.
하지만 그는 어딜가나
문제아이자 구설수를 만드는 말썽쟁이였고
구단과의 관계가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하더니
2001년에는
4개월 선수생활 금지령....
물론 다비즈가
자신이 경기를 하며 고글을 껴야하는 이유,
즉 눈의 녹내장 관련된
약물을 금지약물인지 모르고
먹었다고는 했으나
어찌되었든 팀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었고
당시 리피 감독은
그가 복귀해서도
경쟁 선수에게 주전 기회를 주는 등
다비즈의 심기를 건드렸고
최악의 상황까지
관계가 멀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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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즈는
AS로마로 이적을 결심했으나
유벤투스 구단주와
AS로마 구단주간의 사이가 앙숙이라는 이유로
이적이 허락되지 않았고
후에 첼시에서
다비즈에게 오퍼를 보냈으나
이미 빈정상한
다비즈가 유벤투스에게
이적료가 한 푼이라도 돌아가는 것이 싫어
말도 안되는 연봉을 불러
첼시와의 계약은 파기되는 수순...
결국 유벤투스에 남았고
구단에서도
다비즈를 경기에 출전 시키지 않으며
보복성(?) 행동을 이어갔고
이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네덜란드 국대 아드보카드 감독이
연줄이 닿아있는
바르셀로나 측에 부탁하여
다비즈 영입을
검토해달라 했으며
입으며 폼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고, 이 계약은
임대계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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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월,
바르셀로나로 날아가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된 다비즈는
클래스를 보여주기 시작하며
바르셀로나 중심이 되었고
당시 부진한 시즌을 거듭하고 있던 팀을
2위까지 이끌어내는
그 중심에 선 활약을 보였는데
이 시기는 말 그대로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에게 계속 패하고
리그 순위도
중위권에 머무는 등
바르셀로나의 암흑기 시절이었다는 걸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거의 멱살잡듯 팀을 2위까지
결국 바르셀로나는
다비즈 완전영입에 관심을 가졌으나
유벤투스 측에서
이적료 협상에서 높은 금액을
부르게 되면서
결국 없던 일이 되었다.
인터밀란으로
이적하게 되면서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듯 했으나
이미 팀에는 캄비아소, 베론이라는 동 포지션에
활약도가 높은 선수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곧장 EPL의
토트넘으로 이적하게 되면서
당시 팀에 있었던
이영표와 한 팀에서 뛰게 되었다.
첫 해에는
30경기가 넘는 출전을 가져가며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이듬해 경쟁자들에게 조금씩 밀리기 시작하며
주전 경쟁을 해야했고
결국 경기에
뛰기위해
2007년 1월,
돌파구를 찾게 된다.
11년만에
친정 아약스에 복귀했고
겨울이적시장에 이적하며 그 시즌을 무사히
치루며 활약도에 기대를 높였으나
다시 한 번 개막전에서
왼발 골절상과 함께
꽤나 오랫동안 결장하게 되었고
이 해에 총 11경기 출전에
그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시즌 후에
아약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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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약 2년간
공백기를 가지며 자연스럽게
은퇴했다고 여기는
팬들이 많았으나
놀랍게도 그는 크리스탈 팰리스와
계약을 맺으며
복귀했고
당시 팀은 챔피언쉽 리그였으나
그 속에서도
6경기 출전에 그치며
다시 한 번
계약 종료를 알리더니
다시 한 번
약 2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후에
현역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주장을 맡는 등
주전으로써 꾸준히 뛰었으나
별다른 임팩트없이
1994년
A매치 처음 데뷔했으며
유로 1996 대회 도중
라디오에 출연하여
당시 국대 감독이었던 히딩크를 겨냥하며
라는 발언으로
결국 대회 도중 팀을 떠나야했다.
1998 프랑스월드컵
엔트리에 오르며 국대에 복귀했고
16강전에서
득점까지 올리는 등
역시 재능은 탁월한 선수였고
유로2000에서도
대회 표지모델 중 한명으로 꼽히며
관심도가 높은 선수로
평가 받았고
4강전에서 팀은 탈락했으나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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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월드컵은
모두가 알다시피 네덜란드 국대 자체가
본선진출에 실패했고
유로 2004 멤버로도
주축으로 활약하며
4강을 이끌더니
그 후 부터 활약도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국대에서도
멀어진 케이스.
남미 수리남 출신으로
네덜란드 국대 출신으로 다비즈와 같은
수리남 출신의 선수로
하셸바잉크와 세도르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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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왼쪽 눈에 녹내장 질병을 앓으며
실명위기까지 왔으나
수술을 통해
극복한 케이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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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수술 이후,
다비즈는 FIFA에 공식허가를 받아
경기마다 눈을 보호하는
고글을 꼈으며
나중에 이것은 그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기도 했다.
비슷한 예로
심한 두개골 부상으로
체흐 역시
머리 보호대를 공식허가를 받아
착용한 후,
경기를 치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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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나이키와 전속모델 계약을 맺으며
뛰었던 선수로
1999년 다비즈가 나왔던
나이키 CF는
역대 광고 중에서도
명작으로 꼽히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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