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X3 농구가 전세계적으로
이슈화가 되면서
은퇴한 프로선수는 물론
현역선수들까지도
각종 대회에 참가하는 추세이다.
국내에서도
꽤나 많은 선수출신의
선수들이 3X3농구를 접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선수 시절,
짧기는 했지만 역대급 임팩트를
보여주었던 선수가
합류되었다.
그는 최근 한울건설팀에
들어가 팀을
꾸리며 각종 대회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자신의 경기나 여러가지 농구하면서
필요한 스킬이나 팁을
공유하며
농구 컨텐츠로 활발하게
활약하고 있다.
NBA 도전까지 했었던
과거의 경력을
가진 그.
돌이켜보면
그가 조금 더 선수생활을
오래하고 좋은 흐름을 토대로
커리어를 이어갔다면
현재와는 또 다른 선수생활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선수이기도 하다.
방성윤은 이미 아마추어 시절부터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이슈를 끌어모았다.
휘문고 시절,
아시아선수권 대회 대표로
나가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며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무릎 부상을 당하며
잠시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그의 재능과 유망함을 지켜보던
연세대 관계자들은
그를 영입한다.
연세대에 진학하며
다시 한번 그는 맹활약하며
자신의 가치를 높였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는
유일한 대학생으로
대표팀에 선발되어 좋은 활약을
펼치며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야오밍이 주가를 조금씩
올리던 중국을 상대로
연장전 끝에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금메달을 따냈던 그 대회.
그는 KBL 신인 드래프트
1순위가 당연시
될 만큼 독보적이였지만
그는 국내 무대가 아닌 NBA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NBA에 진출하기위해
하부리그인 D리그로 진출하게 된다.
1시즌 활약하며
12.5점의 평균 득점과
38개의 3점을 기록하며 리그에서
가장 많이 3점을 넣은
선수로 기록된다.
하지만,
그는 결국 국내로
돌아와야했고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KTF의 1순위로
지명된다.
다만, KTF와 SK가
곧장 3:3 트레이드를 맺었고
방성윤은 SK나이츠의
선수가 된다.
방성윤을 SK로 데려오기위해
그 당시 SK가
트레이드로 보내준 3명의 선수는
조상현, 이한권, 황진원.
스타플레이어 조상현을 비롯해
주전급 선수 3명을
모두 보내주었을 정도로
SK는 방성윤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리고 보란듯이 방성윤은
국내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며
첫 시즌,
17.2점의 평균 득점과
4.2리바운드, 1.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당당히 신인상을 수상한다.
방성윤은 확실히
독보적이었다.
195cm의 큰 키임에도 불구하고
가드의 스피드와 움직임,
그리고 그의
주무기인 3점을 바탕으로
KBL 무대를 주름 잡았다.
다만,
그의 발목을 잡은 건
주기적인 부상이었다.
딱히 유리몸이라고
말하기엔 건강한 신체를 지녔지만
지속적인 부상이 존재했고
더욱더 드높일 수
있던 커리어는 한계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09-10 시즌을 마친 뒤,
FA 자격을 얻었지만 구단과의
연봉 갭이 너무 커서
계약이 틀어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울산 모비스에서 주가가 오른
김효범이 거액의
연봉에 SK 유니폼을 입었다.
그로인해 미아가 될 뻔 했던
방성윤,
하지만 극적으로 다시
SK와 계약한다.
(연봉 5억대를 예상했던 그의 연봉은
1억대가 되었다.)
방성윤은 다시 한번
날아오르기위해 노력했지만
주기적인 부상은
계속되었고, 결국 만 30세의 나이로
굉장히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우승반지를
따내지 못했고 신인상을
수상했지만
많은 팬들이나 언론들이 기대했던
커리어를 남기지 못했다.
사실,
주기적인 부상도 컸지만
지속적으로 도전의지를 나타냈던
NBA로 인한 미국행이
오히려 그에게는 독이 되었다.
물론 NBA에 도전하는
자세는 훌륭하고 멋진 부분이지만
국내에서 더 빛을 볼 수 있었던
그의 능력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라는 것.
은퇴 이후,
방성윤은 여러가지
구설수에 휘말리고 신문 사회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범죄를 저지르며 몰락한다.
사업을 하게되며
직원을 폭행하고 사기 혐의도
받으며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나중에 무혐의로
풀리기는 했지만 방성윤이라는
이름의 오점과 함께
팬들을 비롯해 사람들에게 좋지않은
인식은 점점 쌓여갔다.
그후,
방성윤은 여러차례
선수로써 복귀를 소망하며
자신의 의견을
내비쳤지만 결국 폭행 및 여러가지
구설수로 인해
그의 의지대로 될 수 없었다.
그런 그가 서두에도 언급했듯이
3X3 농구 선수로
돌아와 다시 활약하기 시작했다.
방성윤 이외에도
이승준&이동준 형제, 전태풍 등
KBL를 주름 잡았던 선수들이
현역에서 은퇴해서
이 농구계로 활약하기 시작하며
국내에서도 관심도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고의 유망주에서
최고의 무대인 NBA의 도전,
그리고 KBL에서의 짧지만 그가 활약했던
임팩트, 하지만 몰락까지...
너무나도 파란만장한 인생을
겪었던 그가
이제 다시 한번 농구로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있다.
그의 구설수가
절대 되돌릴 수 없는 부분이지만
농구로써 다시 한번
좋은 모습을 꾸준하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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