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페르난도 토레스가
공식적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하며
선수생활을 정리했는데
개인적으로 그를 좋아하는 팬으로써
전체적인 선수로써의 말년
.
.
.
프로 데뷔한
아틀레틱코 마드리드에서
좋은 모습을 통해
그 곳에서 전성기를 보낸
토레스는 그 후에
전체적으로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은퇴까지 임팩트를
남기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커리어를 보냈으며
여러가지 중요한 경기에서 득점포를 올리며
결국 스트라이커는 부진해도
득점으로 말해준다는 걸
몸소 보여준 선수가 되기도 했다.
.
.
.
컨텐츠를 통해
다양한 커리어를 보낸
가져보려고 한다 :)
유소년 시절부터
아틀레틱코 마드리드에서 뛰던
페르난도 토레스는
연령별로 이루어진 리그에서
좋은 경기력을 통해
조금씩 성장했고 아틀레틱코 마드리드가
라리가로 승격하게 되면서
어린 나이에 큰 무대를 경험하게 된다.
지속적으로 경험을 쌓은
토레스는 리그에서의
득점력도 조금씩 상승했고
03-04 시즌에는
라리가를 대표하는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으며
리더쉽도 갖춘 선수였음을
보여주는 기록.
.
.
.
잘생긴 외모와 더불어
어린 나이임에도 꾸준한 활약을 보이자
여러 클럽들이 그에게
수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대표적으로 첼시와 뉴캐슬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며
그와 구단에게 접근하기도 했지만
이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토레스와 아틀레틱코 구단 모두
머지않아 떠날 시점이
올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
.
.
2006년 월드컵을 경험하기도 했던
토레스는 소속팀이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하게되자
다시 한 번 이적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아스날, 첼시, 리버풀, 맨유 등이
그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며
이적설이 난무하던 가운데
07-08 시즌을 앞두고
페르난데스 토레스는 유소년 시절부터
뛰었던 마드리드를 떠나
새로운 곳, 리버풀로 도전을 나서게 되었고
스스로의 최전성기로 나아가는
기점이 되었다.
아틀레틱코 마드리드 소속으로
그 당시, 리버풀 구단의 최고
이적료를 갱신하면서 토레스는 입단했고
그만큼 구단에서 그에게
거는 기대는 매우 컸다고 보는데
그 기대는 헛된 것이 아니였음을
.
.
.
제라드와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준
페르난도 토레스는
첫 시즌,
리그에서만 33경기 24골.
그야말로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의 득점 페이스는
EPL 데뷔 시즌
외국인 선수 기준 최다 골을 경신한 기록이며
리버풀의 전설로 불리는
로비 파울러 이후,
한 시즌 리그에서 20득점 이상
기록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
.
.
외모의 버프까지 받아
그의 인기는 더더욱 올라갔고
07-08 시즌
리그에서의 좋은 활약과
유로 2008 우승과 활약까지 이어지며
올리는 등 전성기의
모습을 계속해서 이어갔는데
다만, 우승을 위해
리버풀 행을 택했던 토레스로써는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하며 그에 대한 불만(?)이 스스로
쌓이지 않았을까 싶은?!
확실히 말하지만
리버풀 시절의 토레스는
누구에게 비난이나 놀림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 절대 아니였고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주었으며
팀의 에이스인
제라드와의 호흡도 좋아서
리버풀이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선수에
항상 이름을 올렸다.
.
.
.
토레스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리버풀에서는 꾸준한 활약을 보였고
위에서도 바로 언급했지만
우승 트로피를 올리고 싶은 도전의식은
그를 다시 한 번
새로운 팀으로 이적하는 데
큰 기폭제가 된다.
토레스는 리버풀 소속으로
리그로만 구분하면
경기 당, 0.5골이 넘는
수준급의 골 결정력의 기록을 남겼다.
2011년 1월, 겨울 이적시장에서
토레스는 결국
그 때를 회상 하자면
토레스를 강력하게 원한 구단은
첼시와 함께 바르셀로나가 거론되었는데
이적이 마지막까지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서
리버풀 구단은 토레스가 이적하는 걸
부인하기도 했으며
하지만 결국 그의 선택은 첼시였다.
.
.
.
이적 과정에서
팬들은 토레스에게 깊은 상처와
배신감을 느꼈고
그의 첼시 이적이 확정되자
9번의 등번호가 박힌
.
.
.
AT마드리드에서 리버풀로
이적할 당시,
그는 리버풀 구단에 대한 각종 애정어린
발언과 여러가지 표현을
하며 구단을 떠날 일이 없을 것이라
말해왔지만, 정작
우승을 위해 본인이 먼저 이적을 요청했고
이적 후에도 리버풀 구단과
여러가지 이슈들에 대해
부정적인 인터뷰를 여러 번 하며
배신감을 느꼈을 것.
.
.
.
어찌되었든 첼시로 이적한
페르난도 토레스는
자신의 축구 커리어에 있어서
보내게 되는데
이적한 첫 해, 시즌을 치르며
22경기를 치뤘지만
1골 2도움이라는 너무나도 처량한
성적을 남기며 시즌을 마감한다.
11-12시즌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데 헤아 골키퍼까지
여유롭게 제치며 비어있는 골문에
밀어넣으면 되는 순간에
많은 팬들의
질타를 받게되고
현재까지도 토레스를 놀리는 영상으로
여러군데 남아있는데
일부 시각에서는
이렇게까지 말도 안되게
부진한 토레스를
안쓰러워하는 여론이
점점 늘어나게 되는 계기.
.
.
.
이미 토레스는
팬들과 언론, 구단에 신뢰를 잃었고
하지만 그를 애정(?)했던
구단주는 계속해서 그의 출전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알려졌는데
그의 굳은 의지가 통한걸까?
교체로 투입된
토레스는 극적인 상황에서
기회를 맞았고
발데스 골키퍼를 엉금엉금 기어다니게
만들며 득점포를 쏘아올렸다.
.
.
.
국내 팬들은
이 득점포를 약간 놀리는 맛으로
(토레스의 첼시 이적당시 이적료)
으로 불리며
그의 간만에 중요한 시점에서의
활약을 환호(?)했다.
1595분동안 득점이 없기도 했던
토레스는 말 그대로
리버풀에서의 토레스가 아니였고
팬들도 이제 더이상
그의 득점을 기대하지 않았으며
안쓰러운 마음이
너무 커서 상대팀들도
경기에선 팀을 응원하지만
라고 응원할 정도..
.
.
.
토레스는 역대 축구 사상
올릴 정도로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커리어를
첼시에서 보냈다.
.
.
.
어떠한 변명도 필요없이
토레스 본인에게도
자신의 커리어에서 꿈에서도 보기 싫을
순간들이 이어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우승 트로피를
첼시에서 거머쥐었으니,
절반의 성공이라 여길 수 있을까...?
토레스는 첼시 소속으로
리그로 한정을 두어
한 시즌에 두 자릿 수 득점을
올린 시즌이 없으니
정말 참단한 수준이다...
그는 첼시를 떠나
세리에A AC밀란에서 부활을 꿈꿨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고
데뷔골을 57분만에 기록하며
오~ 부활?!
했지만 꾸준한 활약이 이어지지 못하며
팬들도 다시 한번 실망..
토레스를 두고
다음 행선지가 어디일 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던 시점에
생각을 하며
새로운 계약을 맺는다.
.
.
.
AT마드리드의 시메오네 감독은
최전방 스트라이커를
제대로 키워내고 살려내는 데
일가견을 가진
감독이었고, 그러한 점에서
일부 팬들은 토레스도 살리나?
또 한번 기대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토레스는 이제 더 이상 부활하기엔
나이도 어느정도 들었고
여러가지 잔 부상에 시달리며
예전만큼의 포스를 보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
.
.
그럼에도 불구하고
AT마드리드 팬들은 토레스를 열광적으로
응원했고 그 역시
전성기의 폼은 아니지만
경기장에서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팀에 보탬이 되었고
팀이 우승하게 되면서
자신의 경력에 유로파리그 우승 트로피를
추가하게 되었으며
자신이 처음으로 프로생활을 시작했던
AT마드리드에서 처음으로
누리는 우승의 영광이기도 했다.
.
.
.
AT마드리드 소속으로
페르난도 토레스는
팀 소속 마지막 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제대로 거두기도 했다.
AT마드리드와 이별하며
새로운 팀을 찾는 토레스의 유력한 행선지는
미국 혹은 중동이였는데
역시 많은 슈퍼스타들이
현역 말년에 그렇듯이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고
토레스 역시 그럴 것이라는
의견들이 존재했지만
사간 도스와 계약을
하게된 토레스는 일본 J리그 내에서도
구단 재정이 뛰어난 편이
아닌 구단으로 갔다는 점에서
정~말 뛰고싶은 도전의식 때문에
갔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추후에 들려오는 이야기는
사간도스에서
토레스가 원하는 수준의 연봉을
어렵사리 맞춰줬다는 후문.
.
.
.
토레스의 J리그행은
이니에스타의 일본진출만큼이나
많은 이슈를 몰았지만
결국 경기력이 좋지 못했고
먹튀라고 불리기에는
어느정도 득점력을 보여주었지만
팀이 강등권에 있었으니
높은 연봉을 주고 데려온 만큼의
활약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
.
.
결국 토레스는
끝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의 커리어를 본다면 각종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하며 결과적으로는
훌륭한 선수생활을 보냈다.
사비와 이니에스타가 중원을
이끄는 스페인은
말 그대로 그 누구도 두렵지 않은
무적함대의 팀이었고
그 시절, 스페인의 주전 공격수는
페르난도 토레스였는데
사실 토레스가 첼시에서의 활약이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그렇지
국가대표에서도 중요한 순간마다
득점을 기록하는 등,
.
.
.
38득점을 기록했으며
결승전에서 각각 득점을
올리며 자신의 기량을 입증하기도 했는데
사실, 이제와서 하는 얘기지만
토레스가 첼시에서
가장 크게 부진했던 원인 중 하나가
대표팀에서 당한
부상으로 인해 폼이 하락했다는 것.
물론, 변명이 될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토레스 역시
클럽에서 거의 모든 경기를 소화했고
국가대표에서도 부상임에도
경기에서 뛰고(본인의 의사가 강했지만)
몸이 성할 리 없었을 것.
.
.
.
어찌되었든
스페인 국대에서 토레스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국대 생활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다른 형제들과 함께 축구를 시작했는데
처음에 그가 원한 포지션은
골키퍼였지만 다른 형제가 그 포지션을
선택하면서 다른 포지션을
선택한 케이스라고 한다.
.
.
.
페르난도 토레스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정~말
우승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만큼 트로피를
많이 끌어올렸는데
예상밖에 하나 없는 트로피가 있다.
<토레스가 들어올린 우승 트로피>
.
.
.
사실 리버풀 시절의
보여준 그의 공격적인 클래스와 함께
잘생긴 외모 덕분에
국내 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토레스였지만 그가
국내팬들의 표적의 대상이 된 사건(?) 있었는데
09-10시즌 맨유 전에서
그는 박지성에 거친 태클을 한 뒤,
오히려 그에게 다가가
다이빙 하지 말라며 적반하장의
반응을 보였으며
14-15 시즌에는
손흥민과의 경기도중 접촉 후에
거칠게 손흥민을
밀어버리는 행동을 하며
.
.
.
스페인 국대에서 영광을 누렸던
토레스는 항상 비교는
선수가 있었는데
바로 함께 공격진을 이루던
토레스와 비야는
각각 스탯상으로 높은 득점력을
보여주며 활약했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조금 더 실질적으로
팀에게 도움이 되었던 선수는
다비드 비야라는 의견들이 많은 편이며
그러한 점에서
인식이 어느정도 강한 느낌.
본인도 스트레스 받을 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보아도 팀에 더욱더 도움을 주었던
해결사는 비야였다.
.
.
.
10월에 출시 예정으로 알려진
빨간 토레스 시절,
금발을 휘날리던 토레스의
모습을 기억하던
팬들에게는 더할나위없이
반가운 소식일 듯.
멧 도허티 토트넘 입단, 고질적 풀백문제 해결쓰? (0) | 2020.08.31 |
---|---|
벤 칠웰 첼시 입단, FM과 같은 폭풍영입 진행중 (0) | 2020.08.27 |
리오넬 메시 이적요청 팩스, 다음 유력 행선지는? (0) | 2020.08.26 |
티아고 실바 첼시 1+1 계약, 젊은 첼시의 최상의 선택 (0) | 2020.08.25 |
챔피언스리그 단판 승부로 바꾼다?! 가능성 적은 이유 (0) | 2020.08.24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