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받는 선수이며
특히 댈러스 소속으로 오롯히 은퇴까지
한 팀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라 가치가 더 높다.
독일 출신의 노비츠키는
파워포워드 포지션으로써 뭐 사람마다
의견차이가 어느정도 있겠지만
공신력있는 언론에 의하면
NBA 역사에
그의 능력과 커리어는
미국에서도 높게 평가하는 수준.
.
.
.
빅맨이지만 믿을 수 없는
슛터치와 정확도를
자랑하는 노비츠키는 국내 팬들에게도
사기츠키라 불릴만큼
바탕으로 인기와 인정을
받은 선수로
오늘은 독일병정
덕 노비츠키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
독일무대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덕 노비츠키는 큰 신장에도
남다른 슛터치를 자랑하며
그 기량을 인정 받았고
2부리그에 있던
소속팀을 1옵션으로 활약하며
그 해에 독일리그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한다.
그의 활약을 지켜본
스페인 명문 바르셀로나에서는
그에게 오퍼를 넣기도 하는데
그는 거절하고
독일리그에 남아서 꾸준하게
활약을 이어갔으며
그가 NBA로 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된
계기가 있었는데
나이키에서 주최했던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고
그 당시, 이벤트 격으로
출전했던 찰스 바클리와 스카티 피펜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이며
NBA 스카우터들에게
적극 어필이 되었고
결국 미국무대 진출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노비츠키의 무대가 되었다.
.
.
.
이미 NBA를 주름잡는
최고의 스타였던
찰스 바클리도 이 대회를 통해
보여준 노비츠키의
실력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니
확실히 노비츠키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선수였다 :)
밑에서 추가로 얘기하겠지만
독일 무대에서 뛰고
노비츠키는 더욱더
큰 무대가 필요했고
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 참여하여
걸어가는 그 와중에
그 현장에서
댈러스가 지명했던
로버트와 바로 트레이드가 이루어지며
극적으로 댈러스 유니폼을
입게되었다.
.
.
.
98-99 시즌은
NBA 파업이 일어난 시기였으며
리그 개막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기다릴 수 없었던
노비츠키는 그 기간동안
독일로 돌아가 선수생활을 이어갔고
결국 극적으로 재개된
NBA에 데뷔하며
팬들에게 모습을 보이는 데
첫 시즌에는
다소 평범한(?) 활약으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다.
무엇보다 준수했던 공격력에 비해서
수비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
2년차 시즌부터
노비츠키는 루키 시즌에 비해서
월등하게 좋아진 모습을
보이며 팀을 이끌기 시작했고
구단 역시 새로운 재벌
마크 큐반이 구단주에 이름을 올리며
전폭적인 지원이 시작됬는데
기존의 마이클 핀리,
나중에 따로 얘기할 수 밖에 없는
스티브 내시, 그리고
팀을 가꾸어 나갔다.
.
.
.
팀 성적은 나날히 좋아졌지만
항상 플레이오프에서
말 그대로 죽을 쓰는 댈러스는
팀의 빅3였던
스티브 내시가 피닉스로 떠나고
마이클 핀리의 폼이
저하되면서 더더욱 노비츠키의
어깨는 무거워졌고
그는 팀의 진정한
1옵션으로써
시즌을 거듭해나간다.
빅3로 불렸던
나머지 두 선수가 우승을 위해
팀을 떠나고
혼자 남아 진정한 1옵션이 된 노비츠키는
그 당시 최강의 전력 중,
한 팀이었던
샌안토니오를 누르고 극적으로
파이널에 진출하게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나게 된 상대는
드웨인 웨이드가
에이스로 활약중인 마이애미.
.
.
.
시리즈 첫 2경기를 모두 따내며
댈러스의 우승 확률은
높아졌지만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결국 심판 콜은
시리즈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고
댈러스는 아쉽게
마이애미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무르는 데
댈러스 팬 뿐만 아니라
이 시리즈를 지켜본 제 3자의 팬들도
고개를 갸우뚱 할 만큼
마이애미, 특히 웨이드를 향한
유리한 심판 콜은
계속적인 논란거리가 될 전망.
06-07 시즌 노비츠키는
팀을 서부지구 1위로 이끌며
맹활약을 이어갔고
그의 가치는 높아지는 데
애석하게도 플레이오프에서
이른 때에 패배하며
팀으로나 개인적으로 아쉬운 시즌이
되어버렸다.
.
.
.
하지만 노비츠키는 꾸준했고
조금은 시간이 지났지만
다시 한번 파이널 무대에 진출하게 되고
드라마틱하게도
.
.
.
그 당시, 이제 막 성장 중이던
웨이드와 샤킬 오닐이
중심이었던 마이애미였다면
(굳이 비꼬자면 콜이 충만했던 심판까지)
이번 시리즈에서는
웨이드와 NBA 최고스타 르브론 제임스,
더불어 크리스 보쉬까지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 역시
90%이상이
마이매미 히트의 우위를 점했을 정도로
객관적인 전력은 차이가 났는데
그럼에도 댈러스에게는
팀의 든든한 기둥,
덕 노비츠키가 존재.
.
.
.
그리고 노비츠키는
복수의 칼날을 매섭게 갈며
시리즈 내내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였고
무엇보다 클러치 상황에서
왜 그가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 될 수 있는 지
모든 것을 보여주며
두 말 할 것 없이
주인공은 노비츠키였다.
이 시리즈에서
덕 노비츠키는
97.8%의 자유투 성공률을
보이며 슛의 최강자임을 다시 한 번
스탯으로 입증하기도 했다.
파이널 우승 이후,
계속해서 플레이오프에 오르며
추가적인 우승을
노렸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 노비츠키는 팀을 이끌며
꾸준한 경기력을 보였는데
NBA 살아있는 전설임을
본인 스스로 보였으며
17-18 시즌을 앞두고
댈러스와 추가적으로 2년 재계약을
맺으며 코비에 이어
진정한 프랜차이즈 스타
반열에 올랐다.
.
.
.
그는 통산득점을 비롯하여
통산 출전경기,
통산 출전승수 등
다양한 부분에서 기록을 추가하며
점점 더 NBA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조금씩 더 높여갔다.
2019년 4월,
노비츠키는 마지막 홈 경기를 끝으로
화려하게 은퇴했다.
마지막 경기에서도
21득점 11리바운드라는
더블더블의 기록을 남기며
그는 끝까지 싸웠고
스타로 막을 내렸는데
1,522경기를 소화하며
되었으며 1번째 선수는
전설 카림 압둘자바.
.
.
.
공교롭게도 노비츠키가
은퇴를 선언한 시즌에는
새로운 유럽 선수가 댈러스 유니폼을
입게되는 데
지금 시즌 2년차로
NBA를 평정하며 많은 형들을
괴롭히고(?)있는 선수.
두 선수는 한 시즌만 함께 했으며
노비츠키가 조금 더
팔팔(?)했을 때
같이 뛰었다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냈을까 궁금할 정도로
루카 돈치치의 활약이 대단한데
21년간 댈러스를
이끌었던 유럽 출신의 노비츠키에
이어 새로운 유럽 출신의
돈치치가 팀을 이끌 것으로 보여져
노비츠키가 은퇴하며
댈러스 구단과 팬들에게 안겨준
선물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 :)
.
.
.
댈러스의 루카 돈치치는
기대에 부응하듯
첫 시즌 NBA 신인왕 타이틀을 따냈으며
댈러스 구단 역시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
.
.
21년간 한 팀에서 뛰었고
유럽출신으로
미국 무대에서 스스로 기량을 인정받아
리그 MVP를 수상하고
덕 노비츠키는
덕 노비츠키의 커리어를 보면
오히려 조금 늦은 감이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라는 인식이 강한 국가라고 한다면
농구선수로써는
이례적으로 뽑힌 최초 케이스이니
그만큼 노비츠키의
활약과 업적은 대단하다.
.
.
.
사실, 통산 2만득점을
돌파한 유럽선수 역시 노비츠키가
유일하다고 하니,
정말 독보적인 커리어를
가져온 선수라고 할 수 있는데
NBA 통산 득점
역사에 10위권안에 들고 있으니
(물론 어느순간, 깨질 수 있겠지만..)
뭐~ 유럽선수로 단정 지으면
노비츠키가 가지고 있는
기록은 무수하게 많을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현재 쌓아올린
덕 노비츠키의 통산득점을 비롯한
기록들을 먼 훗날,
.
.
.
2014년, 본인 농구인생을 담은
영화가 제작되었고
덕 노비츠키를 좋아하거나
그의 농구 플레이를 즐겨보던 팬들이라면
볼만한 내용이라고 한다 :)
.
.
.
노비츠키는 그 당시,
독일의 병영복무정책에 따라
군복무를 해야했고
병역을 이행했다.
.
.
.
덕 노비츠키의 농구 절친은
스티브 내쉬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무래도 유럽 출신의
노비츠키는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고
그 때마다 내쉬가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는 후문.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스티브 내쉬 역시
왠지 모르게 유럽출신일 것 같은 느낌?!
실제로 스티브 내쉬는
캐나다 국적이다.
.
.
.
댈러스와 마이애미 히트의 파이널 시리즈.
노비츠키는 시리즈 도중,
심한 독감에 걸려
서 있는 것 조차 힘든 상황 속에서
어렵게 경기를 치뤘고
그것을 두고
벤치에서
지금까지도 수많은
비난의 화살을 받고있다.
(인성이 문제....)
뭐~ 결국 보란듯이
노비츠키가 조롱하는 두 명을
물리치고 우승을 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
.
.
.
노비츠키는 마이애미 히트를
물리치고 파이널 우승의
감격을 누리는 데,
이 시리즈에서
노비츠키가 얻어낸 자유투의 성공률은
97.8%였고
거의 50개를 던지며 한 개만 놓친 것.
그 마져도 독감으로 고생했던 4차전이니,
그의 집중력과 슛터치는
가히 사기다...
.
.
.
노비츠키가 처음 미국으로
올 수 있었던
대회에서 처음 바클리와 만나게 되었으며
바클리는 노비츠키의
실력을 엄청나게 높게 평가하며
그를 자신의 대학으로
데려오려고 실제로 노력했다는 후문.
NBA로 그가 온 뒤에도
계속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조언도 해주면서
가깝게 지냈고 결국 은퇴식에도
자리를 함께하며
굉장히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찰스 바클리는
2011년 파이널 시리즈에서
적극적으로 노비츠키의 승리를 예상하고
응원했고, 결국 노비츠키는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
.
.
마크 큐반은 아들처럼
노비츠키를 이뻐했는데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다 무너져가던
댈러스를 혼자 이끌고
결국 파이널 우승까지 시켜주었으며
21년동안 계약과 재계약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한 번도 불만을 표출한 적이
없는 노비츠키였다.
(물론 큐반도 대우를 잘해 주었다 .)
서로의 신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15-16 시즌이 끝난 뒤,
노비츠키가 댈러스와 2년 재계약을
하는 시점에서
노비츠키는 얼마의 돈을
주어도 댈러스와
계약할 것이라며 협상 테이블도
나서지않고 휴가를 떠났고
그에 맞서(?)
마크 큐반 구단주는
노비츠키 스카우트가 제안한 금액에 대해
금액을 계속 올렸고
결국 나머지 선수들의 연봉처리 후,
결국 그가 받은 연봉은
.
.
.
코비 브라이언트, 마이클조던을 넘보던 그의 커리어 (0) | 2020.09.01 |
---|---|
루카 돈치치 생애 첫 PO, 위대했던 여정 마무리 (0) | 2020.08.31 |
앨런 아이버슨 간지 농구의 표본, The Answer (0) | 2020.08.26 |
샤킬 오닐 NBA 역대급 공룡 센터, 막을 수 없던 존재 (0) | 2020.08.26 |
드웨인 웨이드, 마이애미 레전드 와데형의 간지 (0) | 2020.08.26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