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호나우두 브라질 전설, 임팩트로 신계를 찍은 선수

스포츠/축구

by Gugu_K 2020. 9. 2. 13:59

본문

반응형

브라질 축구의 전설, 호나우두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거론하면 나오는 이름들을 보면

마라도나, 펠레를 시작으로

현역 선수 중에서는

신계로 평가받는 메시와 호날두까지.

 

하지만, 개인적으로

임팩트만 생각했을 때에

충분히 신계를 노크할 수 있는 선수가

호나우두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호나우두는

일반 공격수와는 차원이 다른

실력과 클래스

가진 선수였고 지금 그가 플레이했던

영상들을 보면 감탄이

흘러나올 뿐...

 

부상으로 인해

더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성기동안 충분히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브라질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호나우두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

 

 

 

 

남달랐던 득점력, PSV로 이적하며 유럽 첫 걸음

유망주부터 남달랐던 득점력과 기술

브라질 빈민가에서 태어난

호나우두는

어린시절부터 남달리 축구를

너무나도 잘했고

 

그의 활약을 지켜본

브라질의 국가대표 출신 자이르지뉴가

그의 후원인 역할을 하며

유소년 클럽에서 뛰기 시작하였는데

 

경이적인 득점 페이스

보여주며 브라질 명문구단들의 

러브콜이 이어졌고

크루제이루FC로 이적하게된다.

 

.

.

.

 

그 곳에서도 활약은 이어졌고

브라질 청소년 대표에도

발탁되면서

그는 점점 더 자신의 가치를 높였으며

17세의 어린나이에

A매치 데뷔까지 이뤄내며

말 그대로 승승장구.

 

결국 네덜란드 명문구단인

PSV 아인트호벤에서

그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펼쳤고

브라질을 떠나

그 곳으로 이적을 선택하며

호나우두는

첫 유럽진출을 이뤄낸다.

 

크루제이루FC 소속으로

그가 기록한 득점은

60경기 출전 58골.

 

.

.

.

 

이미 PSV는 브라질 출신의

호마리우를 영입하며

재미를 보았던 기억이 있었으며

 

호나우두가 그를 대신해서

제 2의 호마리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첫 시즌부터

32경기에 출전하여 30골을 득점하며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 다음 해에

무릎부상을 당하며

꽤나 오랜시간 재활에 머물렀고

어찌 본다면

호나우두의 지긋지긋한 부상의 악몽이

이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9경기에서 출전하여

12골을 넣으며

환상적인 스탯을 기록했고

PSV에서 총 2시즌만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역대급 임팩트

지금까지도 그의 활약이

회자되고있는 수준.

 

참고로, 이 시절에

PSV는 지금과는 평판이 다른

꽤나 인정받는

유럽 내에 강팀이었다.

 

 

 

 

바르셀로나 이적, 한 시즌임에도 엄청난 임팩트

한 시즌만에 일약 대스타로 떠오른 호나우두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의

임팩트를 토대로

호나우두는 세계적인 명문구단

바르셀로나로 이적.

 

96-97시즌으로 기억되며

단 한 시즌동안

바르셀로나에서 뛰었지만

그 임팩트가 너무 뛰어나서 아직까지도

그의 플레이 영상은

심심치않게 등장하고 있으며

 

그 해에 라리가 득점왕

UEFA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하게되며

일약 대스타로 성장하게된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가 20살에

모두 기록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는 말그대로

축구천재이자 일반 선수들과는

클래스가 다른 선수.

 

.

.

.

 

이 시즌에

라리가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득점왕을 차지했고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치른 경기에서

49경기 출전 47골이라는

역대급 득점 레이스를 펼쳤다.

 

.

.

.

 

youtu.be/SvtqFuU05ps

호나우두 바르셀로나 시절, 6명 돌파 득점장면

그가 리그 경기에서

무려 6명을 따돌리고 올린

득점은 지금에도

놀랍지만 당시에도 엄청난 이슈를 모으며

스페인 언론은 축구의 신이

나타났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그를 칭찬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만큼 그의 활약은 뛰어났고

네덜란드 리그에 이어

스페인 무대에서도

데뷔시즌 득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

.

.

 

하지만,

호나우두는 이적을 스스로

감행했고 어린시절부터

그에게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펼쳐왔던 세리에A

인터밀란으로

팀을 다시 한번 옮긴다.

 

 

 

 

 

인터밀란 황제의 클래스, 부상의 시련..

최고의 무대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다

97-98시즌,

우루과이 전설로 불리는

레코바와 함께

이적 후 데뷔경기를 치르게 된 호나우두는

이 시즌에 25골을 기록하며

득점왕 페이스에서 2위를 기록하는 등

클래스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세리에A에 연착륙한다.

 

지금의 세리에A와는 너무나도

다른 그 시절의 포스는

세계 최고의 무대라고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말디니, 네스타, 칸나바로

지금도 전설로 불리는

세계적인 수비수들이 중심을

이루는 무대였기에

 

공격수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리그이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나우두는 오히려 본인 스스로가

수비수들의 무덤역할

하며 환성적인

폼을 보여주었다.

 

.

.

.

 

1997년 FIFA 올해의 선수상,

추가적으로 발롱도르까지

수상을 하게되며

축구계는 호나우두의 세상이 되었고

 

그 해에 받은 발롱도르는

역대 최연소 수상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해졌는데

 

현지 언론에서도

축구를 하기위해 내려온 신,

마라도나를 뛰어넘는 슈퍼스타의 탄생 등

각종 수식어를 붙이며

그의 활약과 수상을 축하했다.

 

.

.

.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환상적인 활약에도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던 호나우두에게는

 

더욱더 큰 시련이 들이닥쳤는데

바로 부상악몽..

 

네덜란드리그 시절에도

다친 적 있었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켰고

꽤나 오랜시간

재활을 거쳐, 복귀하지만

 

복귀경기 7분만에

다시 한 번

믿을 수 없는 부상을 당하며

그는 그렇게 쓰러진다..

 

.

.

.

 

인터밀란에서의 활약도

훌륭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절반이상을

부상으로 인해

날려버렸으니, 인터밀란 구단이나 팬으로써는

호나우두에게 아쉬운 부분.

 

더불어, 재활을 모두

인터밀란에서 군말없이 책임졌지만

호나우두는 다시 한 번

이적을 하고 싶다는 발언을 했고

 

그로인해 인터밀란 팬들은

호나우두에게

각종 비난과 폭설을 날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나우두는 이적을 감행한다.

 

 

 

 

 

레알마드리드 이적, 화려했던 갈락티코 1기 

너무나도 화려했던 그 당시 레알마드리드 스쿼드

레알마드리드는

그 시절, 갈락티고 정책을 통해

슈퍼스타들을 모조리

영입하며 게임에서나 가능할 법한 스쿼드

꾸렸고 그 중심에

호나우두 역시 함께였는데

 

멤버를 나열하면

라울, 지단, 베컴, 피구, 오웬

믿을 수 없는 라인업

꾸렸으며 호나우두 역시 부상으로

시즌 초에는 합류하지 못했지만

 

복귀 후에 클래스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첫 시즌 23골을 기록하며

라리가 우승에 기여.

 

더불어 그 해에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

다시 한 번 동시에

수상하며 기쁨을 더했는데

2002년도 였으니,

월드컵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부분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

.

.

 

youtu.be/ojCJjUHKqEM

3샷3킬을 보여준 맨유전의 호나우두

레알마드리드 시절,

호나우두가 가장 떠오르는 장면은

맨유와의 챔스경기.

 

경기장은 맨유의 홈이였고

이 날 선발출전한

호나우두는 총 3번의 슈팅을 기록하며

모두 득점으로 연결하며

해트트릭을 만들어냈고

 

상대팀 맨유의 팬들에게도

기립박수를 받는 이례적인 상황을 만들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

.

.

 

레알마드리드에서 뛰면서도

그는 부상을 피하지 못했고

결장의 수도 늘어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03-04시즌,

라리가 득점왕을 차지하며

예전 바르셀로나 시절에 이어

이번에는 레알마드리드

소속으로 득점왕을 차지하게 되었다.

 

갈락티코 정책으로 인해

팀에 득점을

책임질 수 있는 선수들이 즐비한 상황에서도

그는 매 시즌 두 자리수 득점은

물론 득점왕을 기록한

시즌도 있었으니

정말 골감각은 최상이라는 평가.

 

하지만, 부상이후

체중도 급격히 불어나며

경기력이 많이 떨어졌고

새로 부임한 카펠로 감독과의 사이가

그다지 좋다는 의견들이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새롭게 영입된 공격수 

반니스텔루이와의 주전경쟁에서도 밀리며

여러가지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그는 또 다시 이적한다.

 

 

 

 

AC밀란 이적, 다시 한번 부상 크리...

다시 찾은 세리에A, 인터밀란 팬들의 격렬한 환호(?)

체중이 많이 불어있던 호나우두는

AC밀란 의료진의

철저한 관리로 인해

예전만큼 건강한(?) 모습이 되었고

 

복귀 후,

14경기에서 7골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날리지만

 

다시 한 번

부상이 오게 되면서

그라운드에 쓰러지게 되는데

이번에도 문제가 된 곳은

수없이 다치면서 긴 재활을 거쳤던

무릎부상이었다.

 

.

.

.

 

그 당시,

AC밀란에는 카카와 파투가 소속되며

호나우두까지 3명의 브라질

출신의 스타들이

호흡을 맞출 것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브라질의 과거였던 호나우두.

브라질의 현재 카카.

브라질의 미래 파투

 

각각 불리며 함께 오래 뛰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호나우두의

부상과 긴 재활시간으로 인해

그리 오래 보지 못했으며

그 시기에 호나우두는

개인적으로 마약 스캔들이 터지기도 하며

결국 AC밀란과의 이별을 해야했다.

 

 

 

 

 

브라질 복귀, 결국 은퇴

2011년 2월, 은퇴를 선언한 호나우두

AC밀란을 떠나

브라질 고국으로 복귀하며

선수생활을 이어갔지만

 

너무나 불어버린 체중,

현격히 떨어진 폼에 더불어

부상으로 인해

몸 자체가 온전하지 못하며

 

호나우두는 더 이상

예전 전성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고

결국 2011년 2월.

그는 공식 인터뷰를 통해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마지막 인터뷰를 통해

 

" 머리로는 수비수를 제칠 수 있는데

몸이 따르지 않는다 "

 

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브라질 국가대표로써의 호나우두

화려했던 그의 국가대표로써의 경력

1994년 미국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며

처음으로 월드컵 우승

경험하지만 그는 나이도 어렸을 뿐더러

이미 스쿼드에는 기라성같은

선배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린 것만으로도

그의 능력과 유망함은 인정을 

받았고 자신의 커리어에

첫 월드컵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우기도 했던 시기.

 

.

.

.

 

그의 이름을 제대로 알린 건

98프랑스 월드컵.

 

우승은 지단이 이끄는

프랑스가 차지했지만

호나우두가 브라질 대표팀에서

보여준 득점력과 경기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가 될 정도

뛰어나고 특출났다 :)

 

아쉬운 준우승을 뒤엎고

부상으로 신음했던

시기를 잘 견디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니

대단한 커리어.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일명 " 깻잎머리 "

헤어스타일을 보여주며 

자기 아들도 못 알아봤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며 8강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득점하며

말 그대로 에이스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

.

.

 

2006년 독일 월드컵에도

출전했으며

월드컵 통산 15골을 기록하며

지금은 기록이 깨졌지만

역시 큰 대회에서 강한 선수임을

입증하기도 했는데

 

호나우두는 클럽에서도 꾸준히 잘했지만

개인적으로 국가대표에서

보여준 임팩트

너무 강했고 결과로도 보여줬다는

생각이 든다.

 

2011년 국가대표도 은퇴했으며

98경기 62골

성적은 남겼다.

 

 

 

 

 

호나우두에 대한 TMI

역대급 선수로 평가받을 수 있는 호나우두

01. 에이스 등번호 10번 대신 9번의 인기를 만들어낸 선수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축구의 등번호 10번은

절대적인 에이스 번호였는데

 

호나우두가 9번의 등번호를 달고 뛰며

그 인식이 바뀌었고

9번을 달고 싶어하는 팬들이나 선수들이

점점 더 늘어났다는 후문.

 

.

.

.

 

02. 팬에 위한 사인을 마다한 적이 거의없다

 

그는 훈련장을 가는 길,

혹은 경기 끝난 후 팬과 만나는 자리에서

사인을 요구하는 팬들에게

일일히 사인을 하고 정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자신이 어린시절,

응원하는 선수에게 사인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반대로 자신은

선수가 되고나서 사인에 유독

신경을 썼다고 한다.

 

.

.

.

 

03. 호나우두를 위해 사모라노는 1+8 등번호를 달고 뛴 적이 있다

인터밀란 시절의 호나우두와 사모라노

호나우두가 인터밀란 유니폼을 입으며

자신이 평생 달고 뛰었던

등번호 9번을 원했는데

이미 인터밀란에는 이반 사모라노가 9번을

달고 뛰고 있었고

 

그는 호나우두에게 등번호 9번을

양보하면서 자신은

1+8 등번호를 달고 뛰었다.

 

어떠한 언론에서는

호나우두가 거의 일방적으로

사모라노의 등번호를

뺐었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는데

실제로 두 선수 사이는

너무나도 좋은 편이며

호나우두를 인정한 사모라노가

그에게 등번호를 넘기며

센스있게 1+8 아이디어를 내었다는 후문.

 

.

.

.

 

04. 호나우두의 비만은 게으름만은 아니다?!

관리못한 선수로 항상 꼽히는 호나우두

호나우두의 전성기가 짧았던 이유는

부상이 가장 컸지만

관리부족으로 인해 너무나도 불어버린

체중이 이유가 되기도 했는데

 

사실 그는 갑상선 질환을

앓고 있었고

그 증상으로 인해

먹는 것과는 별개로 살이 많이 쪘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팬들은 그를 격려하고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

.

.

 

05. 호나우딩요와 호나우두는 이름이 같다?!

 

호나우딩요의 본명은

호나우두였고

당시 대표팀에 자신의 선배 호나우두가

존재하자, 호나우딩요로

이름을 바꾸었고 은퇴하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호나우딩요로 불린다.

 

호나우딩요의 뜻은

" 작은 호나우두 "

 

.

.

.

 

06. 호나우두를 향한 전설들의 말말말

 

호나우두는 역대 최고다.

부상만 없었다면 나라는 존재도

잊혀졌을 것이다.

 

나와 펠레를 비교하지말라.

나랑 비교될 수 있는 선수는 오로지 호나우두다.

 

- 디에고 마라도나

 

 

 

70%의 능력만 돌아온다고 해도

축구사에 비교될 수 없는 실력은 지닌 선수이다.

 

- 마시모 모라티

 

 

 

호나우도가 곧 전술이다.

 

공을 가진 상태에서 가장 빠른 선수이다.

부상만 없었다면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 바비 롭슨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라질 축구선수는 호나우두다.

 

메시는 최고의 재능을 가졌지만

그 정도의 강도가 아니다.

인터밀란 시절, 직접 경험한 호나우두는

마치 인간을 상대하는 외계인 같았다.

 

- 잔루이지 부폰

 

 

 

호나우두는 나의 어릴 적 영웅이었다.

내가 본 공격수 중 최고였으며

그보다 더 정확하고

빠르게 슈팅을 할 수 있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

 

- 리오넬 메시

 

 

2020/11/03 - [스포츠/축구] - 카카 치달의 달인 모든 걸 다 가진 남자(Feat. AC밀란 소년가장 출신)

 

카카 치달의 달인 모든 걸 다 가진 남자(Feat. AC밀란 소년가장 출신)

치달의 달인으로 불릴 수 있는 엄청난 스피드를 가지고 있는 브라질 출신의 선수이며 잘생긴 외모와 함께 축구 실력은 물론 구설수 없는 사생활까지 곁들여져 정말 깔 게 없는 엄친아 전형의 카

gugu-k.tistory.com

2020/09/11 - [스포츠/축구] - 호나우지뉴 축구하러 지구로 내려온 외계인

 

호나우지뉴 축구하러 지구로 내려온 외계인

전성기가 너무 짧았지만 그 임팩트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최고의 재능을 가진 축구선수를 논할 때, 가장 먼저 꼽히는 선수. 외모가 특이하고 그 기량은 더욱더 특이하고 좋아서 외계

gugu-k.tistory.com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