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가넷, 팀 던컨과 함께
최고의 파워포워드 중 한명으로 꼽히는 그는
우승 커리어가 없다는 점에서
조금 과소평가된다는 느낌을 주는데
확실히 주목도가 두 선수에 비해
다소 낮은 편,
하지만 크리스 웨버의 개인기량은
이미 검증이 된 선수이고
가지고 있어 다재다능 유형의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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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지금 NBA 트렌드에
더 어울렸을 그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는 느낌을 주는 선수.
기량과 스타성을 모두 지녔던
크리스 웨버에
커리어를 돌아보도록 하자 :)
1993 신인 드래프트에 참여한
크리스 웨버는
당당히 1순위 지명을 받으며
올랜도 유니폼을 입는데
2학년 선수가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았으니
확실히 그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기량이 남달랐고
평가받는 선수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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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올랜도에 데뷔하여
샤킬오닐과의
환상적인 호흡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골든스테이트로 트레이드되어
그 곳에서 데뷔하게 되고
웨버와 트레이드된 선수는
역시 기량이 출중한 앤퍼니 하더웨이.
(당시, 그는 3순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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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웨버의
기량은 이미 검증이 되었고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능숙하고 여유있는 플레이를 즐기며
NBA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각인 시키는 데
여기서 문제는,
골든스테이트의 구단과 감독은
크리스 웨버의 실력에는 의심이 없지만
결국 마찰을 겪고야 만다.
요즘에서야
센터도 3점을 팡팡 던지고
가드와 같은 롤을 수행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빅맨이 3점을 던지는 게
기이한 일처럼 여겨졌고
결국 3점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크리스 웨버는 적극적으로 그 능력을
활용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국
1시즌만 골든스테이트에서 뛰다가
워싱턴으로 트레이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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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탈도 많았던
골든스테이트에서의 1년동안
빅맨역할을 하라고
일종의 구박(?)을 당하며 플레이 했지만
그 해에 신인왕을
따내며 역시 남다른 기량임을 인정 받았고
그의 플레이를
알아봐준 워싱턴으로 건너가
자신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는데
부상이 겹치며
풀타임 시즌을
소화하기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정말 골고루
좋은 활약을 펼치며
다소 약팀으로 평가받았던
워싱턴은 플레이오프 무대에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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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시절에는
FA를 통해 고연봉자가 되기도 했으며
계속해서 큰 무대 문을
두드렸지만 마이클 조던 등 워낙 전력이 좋은
팀들을 만나 한계를 느꼈고
그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았던
세크라멘토행 트레이드에 속하게 되며
다시 한 번 유니폼을 갈아입는다.
애초에 본인은 너무나도
싫어했던 트레이드였지만
다소 스몰마켓 구단에 속하는
세크라멘토로 이적한
크리스 웨버의 입은 나와 있었지만
그 입은 쉽게 들어갔는데
바로 그와 함께 했던 선수들의
활약도가 높아지면서
세크라멘토의 경쟁력이 좋아진 것.
팔꿈치 패스로
유명한 제이슨 윌리암스와
개인적으로 참 좋아했던 3점슈터
스토야코비치, 그리고
든든한 빅맨 디박 등 좋은 멤버와 함께
크리스 웨버 역시
신바람 농구를 지속하며
일약 꿀잼 농구를 이어갔고 특히
센스가 좋았던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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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99시즌에는
NBA 전체 리바운드 1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으며
01-02시즌에는
플레이오프 무대에 진출했지만
LA레이커스에게
패하며 우승 도전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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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도 웨버의 활약도는
꾸준히 좋았지만
번번히 큰 무대에서 좌절했으며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기도 하는 등,
더 높게 올라갈 수 있는 상황에서
비교적 운이 좋지 못하다고
여길 수 있는 상황.
팀 성적의 한계와 함께
크리스 웨버는
팀과 동료들에게 불만을 노출했고
그런 것들이 작용 되었을까?
곧장 1:3 트레이드의 주인공이 되어
아이버슨이 있는
(이적의 아이콘인가...)
새로운 도전을 꿈꿨지만
결과적으로 웨버의 필라델피아 행은
실패로 돌아갔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이미 여러 번의 부상으로
폼이 하락했고
기동력이 떨어지며 공격은 논외하고
수비에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아가, 항상 1옵션 역할을 하던
웨버가 이 곳에서
절대적인 1옵션 아이버슨을 도와주는
역할만 하기에는
본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팀에서 겉도는
느낌을 주면서 방출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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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디트로이트 유니폼을
입고 은퇴 전에
자신이 처음으로 데뷔했던
골든스테이트 유니폼을 다시 입으며
화려한 복귀를 꿈꿨지만
역시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 몸은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그는 조금은
아쉬운 결말을 보이며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세크라멘토에서 전성기를 보낸
크리스 웨버는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선수였고
208cm의 큰 신장으로
크리스오버 드리블을 즐겨하고
비하인드 백 패스를
매 경기마다 선보이는 센스와 기동력을
갖춘 선수였으니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요즘 시대에 선수생활을 했다면
그의 가치가 더없이
올라갈 수 있는 선수였다는 개인적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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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에 비해
커리어가 비교적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NBA를 대표할 수 있는 선수였으며
그러한 공로로
세크라멘토에서는
그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대학시절, 환상적인 활약을 바탕으로
팀의 1옵션 역할을 하던
그는 가장 중요한 경기, 마지막 공격을 앞두고
" 타임아웃 " 을 외쳤지만
팀의 타임아웃은 한 개도 남아있지않았고
그는 평생의 놀림거리를
하나 남기게 되었고 본인도 인터뷰를 통해
농구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고 기억하기 싫은 순간으로
기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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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엉클드류의 출연하여
베스트5 중, 목사 역을 맡아 연기했으며
경기 도중, 타임아웃에 관한
대사를 본인 스스로 하며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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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웨버가 주로 달던 등번호는
4번이었고, 필라델피아로
이적하던 당시 팀에 4번을 달고 있던 선수가
바로 이궈달라였는데
이궈달라는 선배 격인 웨버에게
순순히 자신의 등번호를
양보했고 그 고마움에 크리스 웨버는
이궈달라에게 고급시계를
선물했다는 훈훈한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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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던컨이 사실상 최고의 파워포워드 자리를
가져가며, 그 뒤를 잇는
선수들로 그 시절에 가넷과 웨버가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는데
노비츠키가 커리어로 우승을 가져가고
점점 더 발전해가면서
사실, 웨버가 좀 뒤로 밀린 격이 있다.
실력은 뛰어났지만
결국 우승 커리어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고
크리스 웨버 역시 씁씁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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