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 출신으로
현재에는 KBS 해설위원으로 활약 중인
레전드 이영표.
양발을 모두 잘쓰고
그렇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
좌측과 우측을 오가며 양쪽 풀백의 소화가
가능했던 만능의 선수.
자기관리가 뛰어났고
모범의 아이콘으로 경기 외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것이 없는
성실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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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있고 센스있는 플레이와 함께
전매특허 헛다리로
공수 밸런스까지 완벽했던
이영표의 커리어를 정리해보자 :)
건국대를 졸업한 이영표는
입으며 K리그에 데뷔했고
역시 그 당시에도
성실의 아이콘답게 안정적이고
꾸준한 활약을 바탕으로
K리그와 올림픽 대표 등,
좋은 플레이를 이어갔다.
이영표와 K리그하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장면으로
대선배였던
이임생과의 마찰인데
이임생은 이영표와
경기도중, 접촉이 있었고
오히려 당한 쪽은 이영표였던 것 같은데
이임생은 흔히 말해
꼰대 짓을 하며 그를 나무랐고
물론, 나중에
방송을 통해 좋게 풀었다고
이영표가 밝혔지만
때린 놈이 좋게 풀어줘야지...(황당 그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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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의 K리그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 편이었는데
그 이유는 다름아닌
2002 한일월드컵의 환상적인 활약으로
네덜란드로 새출발을 하게된다.
히딩크 감독은
2002 한일월드컵을 끝으로
자국의 PSV 감독직으로 돌아가는데
두 명의 한국선수를
데려갔고
초반에 부진에 허덕였던
박지성과 달리
이영표는 적응기간조차 필요없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완벽히 팀의 주전이 되어
꾸준하게 출전하며
PSV의 승리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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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완전이적 후,
그 해에
이름을 올렸고
2006년 BBC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수비수
8위에 이름을 올리며
그는 명실상부 유럽리그에서 대표적인
수비수로 성장했고
그 시기에 맞물려
이영표의 주가도 급상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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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 역시
박지성이 맨유로 이적한 해에
이적을 도모하는데
같은 EPL리그의 토트넘으로
현재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공격수
손흥민의 소속팀.
이영표는 리그와 챔스에서
꾸준한 활약을
바탕으로 빅클럽들의 러브콜을 받았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에는 더욱더 핫했던
EPL을 선택했다.
아인트호벤 소속
기록을 남겼다.
이영표는 토트넘에서
왼쪽 풀백으로 뛰면서 데뷔전부터
헛다리 기술을 시전하며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경기력도 괜찮았지만
아무래도 네덜란드 리그에 비해
에코토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면서
조금씩 경기출전 횟수가
줄어드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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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초반에는 이영표가
주전으로 나서며
막 사우스햄튼에서 이적해 온
가레스 베일이
이영표의 백업이기도 했으며
훗날, 그가 포지션을
변경하기는 했지만 그 당시에
상황만 놓고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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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를 데려 온
마틴 욜 감독이 있던 시절에는
그래도 출전시간을
나름 보장 받으며 준주전으로 활약했지만
새로운 감독,
라모스가 부임하게 되면서
이영표는 거의 전력 외로 분류되었고
공격/수비에서
이렇다 할 임팩트가 없다고
여겼던 구단 역시
그를 주전으로 평가하지 않았기에
그는 새로운 도전을
나서기로 마음먹고 이적을 선택한다.
토트넘 핫스퍼 소속
도르트문트는
주전으로 뛰던 왼쪽 수비수가
부상을 당하며
즉시 전력감으로 쓸 수 있는
자원이 필요했고
뛰는 것이 절실했던
이영표와 생각이 맞으며
영입이 이루어졌으며
후에 이영표는 인터뷰를 통해서
와줄 것으로
요청했고 그것에 대해
바로 수긍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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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문트에서의 활약은
꾸준히 성실했지만
역시나 공격적인 면에서 아쉬움을
드러내며
부상에서 돌아온 데데에게
주전에서 밀리게 된다.
확실히 현대축구는
풀백에게도 공격력을 중시하는 흐름으로
바뀜에 따라
조금 더 안정적이고
수비 밸런스를 갖추는 데
장점이 있던
이영표에게 조금 아쉬운 부분.
그가 도르트문트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나선 곳은 사우디였다.
조금은 의외의 선택이었는데
아무래도 연봉도
중요한 부분이 되었을 것이고
이슈가 있었던 것.
알 힐랄에서
이영표는 구단주를 비롯하여
감독과 동료들에게
축구도사와 같은 느낌으로
선수단을 이끌며
멘토 혹은 스승의 역할까지 보여지는
여러가지 활약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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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힐랄과의
계약이 끝난 후,
그는 미국리그로 건너가
밴쿠터와 계약을 맺었고
이번에 그가 미국을 선택한 이유는
미래 지도자를 위한
과정을 위한 것,
더불어 자녀들의 교육문제.
그는 밴쿠버 소속으로
7년만에 리그 득점을 기록했으며
강철체력 및 철저한 자기관리를 보이며
많은 선수들의 귀감이 되었다.
2013년 10월,
마지막으로 공식 은퇴경기를 치뤘다.
이 날, 이영표는
팀의 주장직을 맡으며
거의 풀타임을 소화한 뒤,
추가시간에 교체되며
기립박수를 받았고
경기가 끝난 후에도
동료들에게 엄청난 축하와 헹가레 등
그가 얼마나
선수로써 인정받았는 지
보여주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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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로써는
같은 해, 11월 스위스와의
평가전에서
은퇴식을 가지며
역시 환호 속에 현역 은퇴했다.
이영표 역시
꾸준한 활약을 바탕으로
그 당시,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고있던 허정무의 눈에
띄면서 대표팀 발탁이 이루어진 케이스.
그 당시,
장면으로 박지성 역시
그의 눈에 띄어 대표가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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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 역시
포르투갈 전 박지성 득점,
이탈리아 전 안정환의 득점을
모두 어시스트하는 등
이 대회에서
이영표는 날카로운 크로스는 물론
좌영표, 우종국으로
불리며 수많은 세계적인 스타들을
봉쇄했고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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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도
꾸준히 월드컵에 출전하여
활약했고
2011년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박지성과 함께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지금까지도
이영표의 후계자가 나오지 않은
왼쪽 풀백을 보면,
한숨과 함께
얼마나 이영표가 꾸준하고
대단한 활약을
했었는 지 보여주는 모습.
한 때, 이영표가
AS로마로 이적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거의 성사단계였지만
취소가 되었는데
일부 기사에서는 그가 종교적인 이유때문에
이탈리아를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전해졌고
팬들은 조금은 어이없는 반응?!
하지만, 후에
이영표가 알 힐랄 유니폼을
입은 것으로 보아
종교적인 이유라는 사실은
오보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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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벌어진 일로
이영표는 칼럼을 통해 이승우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관심은
오히려 선수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늬앙스의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이승우가 입장표명을
직접적으로 해주셨으면 더 좋았을텐데,
와닿지 않는다는 식으로
반응함에 따라
이영표와 이승우 사이도 어색해지고
일부 언론에서는
그 부분에 포인트를 잡아
서로를 비꼬는
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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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위원으로 활약하며
받은 돈 전부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받은 독 액수를 확인하면
마음이 흔들릴까봐
금액도 확인하지않고 바로 기부에
들어갔다는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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