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 안정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은
지금은 각종 예능에서
활약하고 있는 방송인이 되었지만
선수 시절에는
잘생긴 외모와
남다른 기량과 센스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남을 활약을 펼쳤던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안정환의 어린시절은 너무나도 불우했는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외가쪽 사업과 어머니의 사업이
모두 망하게 되면서
할머니와 함께 판자촌에서 어렵게 성장했으며
자신이 축구를 시작한 계기 역시
축구부에서 주는
빵과 우유를 먹기 위해서.
.
.
.
할머니는 안정환이
축구하는 것을 반대했었는데
그 이유가
운동을 하면 배가 빨리 꺼져서
금방 배고프기 때문이였다는 것만 보아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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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속한 고등학교는
축구를 그리 잘하는 곳은 아니였는데
대회에서의 좋은 활약을 토대로
팀 내 유일하게
스카웃을 받아 아주대학교를 가게 되었으며
돈을 빨리 벌어야겠다는
일념 아래에
아주대와 연관이 되어있는
대우로 입단하며
프로생활을 처음 시작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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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시대에 등장하는데,
바로 안정환을 비롯하여
고종수와 이동국.
위의 말처럼
그들은 수려한 외모와 함께
실력도 너무 좋아서
그 당시, 여성 팬들에게 엄청 인기가 많았고
K리그도 덕분에
흥행을 제대로 했을 정도.
긴 머리를 휘날리며
안정환은 독보적인
개인기와 골 결정력을 바탕으로
K리그 무대를 주름 잡았고
데뷔 시즌,
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고
1999년 2년차에는
24경기 14골을 기록하며
우승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리그 MVP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
.
.
그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도
대우 구단과도
두 자릿 수 이상 득점을 하면
해외진출을 추진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며 이를 수행했지만
이 시기에 대우가 망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대우는
부산 아이파크(현대)로 넘어갔고
그의 유럽행은
꼬이게 되는데,
구단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흥행수표인 안정환을 놔주고 싶지 않았던 것.
.
.
.
결국 안정환은
이탈리아 세리에A 페루자로
이적에 성공하게 되지만
구단의 깔끔하지 못한 행정처리로
그것은 안정환의 프로생활을
전체적으로
꼬이게 만들어 버리는 계기가 된다.
우선적으로
페루자 시절에 안정환은
완전이적 형태가 아닌 임대형태였고
페루자의 구단주는
돈독이 제대로 오른 악명높은
사람이었으며
안정환의 출전시간이
늘어나면 완전이적을 발동하거나
보너스 개념의
돈을 더 줘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
.
.
결과적으로
페루자 시절의 안정환의 스탯은
굉장히 떨어지는 데,
출전시간이 매우 적었고
기회도 거의
주지않는 상황이었기에
그의 스탯보다 경기력이나 평점을
오히려 고려해야하며
세리에A에서
내리는 그의 대한 평가는
매우 훌륭한 수준이었으므로 확실히
.
.
.
그 시기에
안정환은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PK를 실축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연장전에서
부폰을 넘어
팀을 8강으로 이끌었는데
여기서 문제는
축구를 자존심으로 생각하는
이탈리아의 콧대를 제대로 꺾어버린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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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회가 끝난 후,
페루자의 구단주는
안정환에게 악담을 제대로 퍼부으며
그를 방출시킬 것이고
불쌍한 선수 받아줬더니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는다는
말 같지도 않은 똥언으로
안정환을 비난했고
이탈리아 축구 팬들 역시
그를 협박하고
그의 차를 부셔버리는 등,
안정환을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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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은 월드컵의 활약으로
부산아이파크와 페루자,
그리고 안정환의 에이전트 모두
돈에 눈이 멀어
그를 제대로 케어하지 않았고
계약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던
안정환은
새로운 팀은 커녕,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최악의 시기를 보낸다.
그가 일본을 선택한 이유는
그는 억울한 빚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계약적인 관계때문에
그의 실력은
원하지만 복잡한 관계까지
떠안아 해결해 줄 구단이 쉽게 나오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서
100% 정확하지는 않지만
시미즈에서는
안정환의 빚을 어느정도 감수해주는
조건과 더불어 소유권까지
더해서 계약을
가져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안정환의 실력은 물론
스타성까지 탐냈던 시미즈의
노력이었다는 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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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즈와 요코하마에서
뛰면서
요코하마 시절에는
J리그 정상에도 함께하며
나름대로의 성과를 낸다.
하지만 한일월드컵 이후,
폼이 절정으로
올라가고 있는 시점에서
자신의 꿈인 유럽이 아닌 일본에서
뛰었다는 사실은
요코하마는
안정환에게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재계약을 논했지만
그에게는 유럽진출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고
프랑스로 진출을 하게 되는 데
프랑스로 선택한 이유는
2006년 월드컵이 프랑스에서 열리기에
미리 적응하겠다는??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뒤이어 도전한 독일 무대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는
내지 못했으며 전체적으로
독일과 프랑스에서 뛰었던 팀들은
조직력을 논하기
민망할 정도로 하위권 팀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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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은
후에 여러 인터뷰를 통해
꼭 영국무대에서 뛰어보고 싶었다는
소망이 있었다 밝혔는데
독일 무대를 정리한 뒤,
꽤나 여러 팀에서 오퍼가 왔지만(EPL 구단)
자신의 폼이 떨어졌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고
가족을 생각한 그의 결정은
결국 국내무대 복귀였다.
K리그로 복귀하면서
안정환을 보러 경기장에 가겠다는
팬들이 늘어났고
수원 삼성 역시
그 시절에는 영입을 비롯해
과감한 투자와 지원을 계속해가며
적극적이었고
안정환은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부활의 조짐을
보이며 활약하기도 했지만
확실히 폼이 떨어졌고 체력적인 저하가 오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보여주기엔 아쉬운 시즌을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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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시절에는
연습 경기에서
상대 팀 서포터즈가 가족을 욕하며
막무가내 발언을 해대자
경기 도중에 관중석으로 올라가
대치되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일부 시각에서는
아무리 팬이 비난을 해도
선수가 경기 도중에
관중석으로 가는 것이 아니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것은 정말 일부였고
대부분이
선수의 가족까지 건들여가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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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은 수원과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새로운 팀을
찾는 도중, 결국 자신이 처음으로
프로생활을 했었던
부산 유니폼을 입게된다.
부산에 잠시 뛰었지만
안정환의 기량은 회복되지 않았고
그럼에도 부산은
재계약의 의사를 내비쳤지만
연봉조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안정환은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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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례은 안정환 영입에
적극적이었고
연봉은 물론이고 생활편의까지
엄청 챙겨주었다고 하는데
안정환은
다롄 유니폼을 입고
팀의 순위를 끌어올렸다.
안정환은 중국에서
꽤나 오랜시간 선수생활을 했으며
마지막 1년 연장계약을
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던 눈치인데
우선 구단주가
안정환빠에 가까웠으므로
그와 그의 가족들을
극진히 모셨고
안정환도 말년에 축구선수 생활을
굉장히 편하게 했다고
여러 인터뷰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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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롄과의 계약이 끝난 후,
국내로 돌아가
1년정도 더 뛸 것으로 예상된 보도들이
많았지만 결국 안정환은
은퇴를 선언했고
화려했지만
본인의 실력에 비해서
조금은 아쉬웠던 축구선수 생활읆
마감했다.
1997년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했으며
아쉽게 1998년 월드컵 23인에는
뽑히지 못했고
1999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골을
터트리며 조금씩 대한민국 국대로써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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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안정환에게
바로 2002 한일월드컵.
거스 히딩크 감독은
스타성있는 안정환을 길들이기위해
선발명단에 제외하는 등,
월드컵을 앞두고 일명 밀당을 했는데
안정환은 은퇴 후
여러 예능을 통해 진담반 장난반으로
히딩크 감독 싫었다,
왜냐면 날 특히 싫어했다 등의
말을 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 때에 길들이기(?)를 통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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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월드컵은
사실상
과언이 아니었는데
오노 세레모니로 유명한
미국전 헤딩골과
가장 짜릿했던 이탈리아전 골든볼을
터트리며 대한민국의
세계는 이러한
안정환의 활약을 주목했고
잘생긴 외모는 그걸 더욱 부각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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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으로
외국인 감독에 재미를 느낀
대한민국 축구협회는
코엘류, 본프레레 등 외국인 감독을
지속적으로 영입했고
그 속에서 안정환은
부동의 주전이라고 하기는 힘들어도
꾸준한 활약상을 보이며
국대에서 헌신했는데
사실, 폼이 조금씩
떨어지는 부분도 있었고
월드컵 이후
안정감있는 소속팀이 없었다는 사실이
여러가지 아쉬운 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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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가장 중요한
첫 경기 토고전에 교체로 들어간
안정환은 그림같은
중거리 슛으로 득점을 기록하며
월드컵 사상
확실히 안정환은
큰 경기에 강한 선수였고
피지컬이
아쉽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토고 전의 득점으로
월드컵 통산 득점을 3골로 늘렸고
이 기록은
박지성, 손흥민과 함께
대한민국 월드컵 최다골 기록
(손흥민이 깰 가능성이 매우 높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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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며
월드컵에 참여했는데
1분도 뛰지 못했고
사실, 허정무 감독이 멘토 개념으로
안정환을 데리고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후문.
그럼에도 안정환은
16강 우루과이전에서 스스로
컨디션이 너무 좋아
출전을 기대했었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허정무 감독의 선택은
이동국이었고
지금도 까이는 물회오리슛을 날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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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선경기가 아닌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은퇴식을 거행한
대한민국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여러 번 언급했지만
안정환이 가진 실력과 스타성에 비해
특히, 클럽 커리어가
굉장히 아까운
선수라고 말할 수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
더욱더 큰 무대에서
충분히 뛸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지만
이탈리아 페루자 구단주의
어이없는 행태로
결국 그 기회도 날려버리며
가장 폼이 좋았던 전성기 시절을
일본에서 보낸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으로 회자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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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대한민국의 성적을 이끌었고
국내에서 보기 힘든
테크니션을 보여주며 지금까지도
안정환과 같은 유형의 선수가 나오지 않았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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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그는
축구선수 때에는 상상도 못했던
입담과 재치를 자랑하며
여기저기
TV를 틀면 안 나오는 것이 없을 정도로
예능인으로 활약중이다 :)
불우했던 환경에서 자란
안정환은 축구선수 생활을 하면서
어렵게 성장했으며
그 때에는 선배들의
구타가 당연 시(?) 여기던
시절이라 도망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때에 도망가서
돈을 벌기위해 안해본 일이 없으며
여기저기 싸움도 많아
실제 그의 싸움실력을 보고
폭력 조직배가 스카웃 제의를 했을정도?!
막노동 일도 했었던 경험을 토대로
목동역이 건설되는
현장에 본인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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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자 2년차 시절,
구단에서는 6개월 기간의 주급을
안정환에게 지급하지 않았고
안정환은 그러던 와중에도
전~혀 내색없이
선수생활을 감행했으며
나중에서야 밝혀지며 그의 멘탈을
높게사는 하나의 일화가 되었다.
그 밖에도 굉장히 많은데
에이전트에
사기를 당해 자신이 빚을 지는 상황이
되었지만 언론이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전혀 언급하지않고 최대한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
선수 시절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남몰래 기부를 하며
선행을 베푸는
선수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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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은 평생 꿈이
잉글랜드 무대에서
선수생활 하는 것이라고
여러 번 밝히기도 했으며
블랙번에서는 안정환에게
엄청난 구애를 펼치며
넉넉한 연봉은 물론
안정환과 가족들이
생활할 집은 물론
근처의 지리와 여러 랜드마크 등을
친절하게 설명된 책자를
마련하면서
그를 모셔오기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계약사기로 인해
안정환의 잉글랜드행은 무산되었다.
그럼에도 안정환 본인은
그러한 억울한
부분을 일체히 호소하지않고
묵묵히 뒷수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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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멘트를 남기지는 않겠지만
안정환 친모는
카페가 망하는 등, 여러 곳에
빚을 지고 있었고
안정환은 마음 고생이 지금까지도... 심하다는..
그는 미투사건들이
터지며 자신에게도 관련해서
소식이 들려오자
" 저를 낳아주신 분이지만
얼굴을 제대로 본 적도 없는 분이라는
씁쓸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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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 선수시절,
화려했던 테크닉과 그를 넘어서는
수려한 외모로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며
실제로 현빈, 김재원 등의 배우들과의
CF에 같이 얼굴을
들이밀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는..
넘사벽 외모...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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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가대표를 지냈던
오쿠보는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선수로
안정환을 꼽은 바 있으며
은퇴 후, 너무나도 변화된
살찐 안정환의 모습을 보여주는 형태의
예능에 출연하여 벙찐 모습을
보이며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다 :)
선수 시절에 비해서
살이 너무 찌기는 했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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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의 주 포지션은
득점을 마무리 짓는 스트라이커로
생각하는 분들이 꽤 있는데
사실 그는
2선에서 공격을 이끄는
쉐도우 스트라이커,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가
주 포지션이며
직접 득점을 하는 것보다
전체적으로 공격을 이끄는 유형에
가까운 선수이다.
아무래도 월드컵에서
중요한 순간에 득점을 올렸던 기억들이
너무 강하게 팬들 머릿 속에 남아
스트라이커로 생각하는 듯?!
하지만, 안정환은
실제로 득점력도 갖춘 선수로
맘만 먹으면
많은 득점을 올릴 수 있는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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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선수시절,
가장 좋아했던 선수로
로베르트 바조를 꼽은 적이 있으며
그가 세리에A에 진출했을 때에
실제 그의 플레이를
보면서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는..
심지어, 그는
이미 폼이 떨어질 때로 떨어진
노장의 선수였는데
그의 플레이가 너무 인상적이라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안정환은
바조와 축구스타일이 비슷했으며
여러가지 기술로
수비를 유인하고 전체적인 공격을 이끄는
플레이메이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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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많은 기술을 보유하고있고
경기 중에도 다양하게
스킬을 구사하는 선수였다.
특히, 안느턴으로 불리는
드리블 중 급격하게 방향을 바꾸어
수비수를 제치는 동작으로
무릎에 무리를 많이주는 동작이라
현재에는 양쪽에 모두
무릎연골이 없어 계단을 오르거나
쪼그려 앉는 게 불가능하다는..
안정환의 안느턴은
월드컵에서도 여러 번 나왔으며
축구황제 펠레도
이 기술을 극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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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는 안정환의 생일을 기억하며
40번째, 44번째 생일을
축하한 바 있으며
각종 예능에서 해외를 갈 경우,
해외 팬들이
그의 모습을 알아보고
환호하고 사인을 요구하는 등
그는 확실히
세계 축구 팬들에게
각인이 제대로 된 슈퍼스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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