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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피구 포르투칼 전설, 형은 바르셀로나와 레알 모두 뛰어봤어

스포츠/축구

by Gugu_K 2020. 10. 3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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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칼의 전설, 루이스 피구

현재에는

포르투칼 축구하면

떠오르는 선수는

호날두이지만,

 

그 이전에

포르투칼 축구의 중심이자

아이콘이였던

선수는 루이스 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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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윙어로써

드리블을 비롯해 개인기가 좋았고

크로스와 슈팅력까지

훌륭했던 그는

 

무엇보다 영리한

플레이를 통해

세계 최고의 선수

하나로 평가.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 모두 뛰었던 선수

배신의 아이콘으로도

불리는 데,

사실 피구 이외에도

이런 스타들이 꽤 있었음에도

피구가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전설의 데뷔, 스포르팅 CP

사진만 보면 50년대인 것 같다...ㄷㄷㄷ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유스생활을 하면서 축구를 배웠고

그 곳은 자신의 고향.

 

결국 데뷔도

스포르팅에서 했으며

호날두 역시

이 곳에서 데뷔 후,

맨유로 이적하였으니 엄밀히 말해

호날두의 선배가 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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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유스팀으로

스포르팅과 계약할 때에

벤피카 유스와

이중계약을 했다는 것이 발각되어

45일간 뛰지 못했던

이력도 있다.

(뒷통수 시전을 이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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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청소년 대회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말 그대로 세계에 알렸고

 

빅클럽들은

이 선수를 모셔가기위해

전쟁을 시작하는 데,

피구를 잡은 건

라리가 바르셀로나.

 

피구는

스포르팅에서 

총 4시즌을 뛰었다.

 

 

 

 

 

 

 

 

 

바르셀로나 이적, 최고의 활약 -> 구단과의 불화

바르셀로나의 전성기를 이끈 루이스 피구

사실,

바르셀로나 이적을 하기 전에

세리에A로

갈 생각을 먼저 했었고

 

유벤투스, 파나마와 각각

이적협상을

벌이던 중,

 

이번에도 통수였을까?

이중계약에 휘말리게 되면서

세리에A 협회 측으로부터

2년간 출전금지 명령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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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결과적으로

바르셀로나로 이적했고

 

피구는

클래스있는 모습과 함께

바르셀로나

전성기를 이끌며

 

두 시즌 연속

리그 우승과 함께

히바우도, 호나우도, 클루이베르트

좋은 종료들을 이끌며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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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대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보이며

주가가 높아진

피구는 그 시기에

구단과 마찰을 겪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역시

이였다.

 

처음 이적 당시,

피구는 거의 헐값에 가까운

금액으로 

다년계약을 맺었고

연봉에 

불만을 가졌던 것.

 

하지만,

바르셀로나 구단

그를 말 그대로

싸게 굴려먹을 생각만 하고

제대로 조치를

취하거나 연봉을 늘려주지 않았고

결국 루이스 피구는

새로운 생각의 전환

실행하게 되는데....

 

 

 

 

 

 

 

 

 

 

피구 바르셀로나 -> 레알 이적비화, 바이아웃 조항

엘 클라시코 레알 소속의 피구, 돼지머리까지 날라왔다

루이스 피구는

결과적으로

바르셀로나 -> 레알마드리드

이적했는데

 

그의 커리어에서

이적비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에

짚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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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피구도 실제로

바르셀로나를 떠날 생각은

없었던 것 같고

 

구단에게 압박을

주려고 했던 시기였는데

이 때에 

등장한 구단이

라이벌 레알마드리드.

 

그 당시,

페레즈 회장은

재선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결국 하나

제대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추친한 것이 바로

라이벌팀의 에이스와도 같은

피구를 빼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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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상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바이아웃 조항.

 

간단히 말해

바이아웃 조항은

A팀에 있는 선수를 B팀이 데려오기위해

A팀이 선정해놓은

그 선수에 대한 최대 금액을

B구단이 지불하면

이적할 수 있는 조항.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바르셀로나 구단은 피구를

싸게 굴려먹을

생각만 할 뿐,

재계약이나 다른 부분은

생각하지도 않았고

 

생각보다 낮게

설정되어 있었던 피구의

바이아웃 금액

레알의 페레즈 회장이 질러버리며

이적이 진행된 것.

 

 

 

 

 

 

 

 

 

피구 이적, 분노하는 바르셀로나 팬들

정말 거침없이 제대로 까이는 피구

바르셀로나의 서포터

하나의 이름이

" 피구 " 였을 정도로

 

피구는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선수이자, 팬들이

정말로 사랑하는 선수였기에

그의 이적은

더욱더 충격 오브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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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적 후,

위에 그가 코너킥을 찰 때에

돼지머리

던지기도 하고

그를 비난하는 판을 만들어

내보이기도 하는 등,

 

피구는 

정말 사람을 죽인 것 같은

대역죄인이 

된 것 같은 취급을 당했다.

 

 

 

 

 

 

 

 

 

레알마드리드 이적, 갈락티코 1기의 중심

등번호 10번이 그의 위상을 말해준다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고

등 번호는 10번.

 

피구는

일단 다른 걸 떠나

실력이 너무나도 뛰었나고

 

어느 위치에서든

자기 역할을 해낸다는 점에서

레알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자원이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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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는

갈락티코 1기 정책을 내세웠고

수 많은 슈퍼스타들이

팀에 합류,

그 중에서도 피구는

본인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보이며

00-01 시즌,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2000년에는

유로2000 활약까지 묶어

발롱도르

수상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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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에

지단이 새롭게 합류하면서

에이스 자리를

어느정도 내주기는 했지만

좋은 활약을

계속해서 이어갔고

 

2001년에는

FIFA가 선정한 올해의 선수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며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는데

 

03-04 시즌 후,

30대로 접어들면서

체력저하와 함께 폼 역시

떨어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소속팀에서도 주전경쟁에서

밀렸고

재계약을 거부한 후,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된다.

 

 

 

 

 

 

 

 

 

결국 세리에A 진출, 인터밀란 소속

마지막까지, 최고의 활약

2년 정지 먹었던

세리에A 무대를 말년

가게 되었으며

 

인터밀란에서도

클래스 있는 모습을 통해

체력은 떨어졌어도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까지 수행하며

나름대로 좋은 활약.

 

이 시기에는

2006 독일 월드컵에도

참여하게 되면서

자신의 선수생활 마지막

월드컵 출전,

 

호나우두, 베컴 등

노후대비를 생각하는 듯

미국 등

변방리그로 진출하는 것과 맞물려

피구 역시

사우디 중동리그

진출을 모색했지만

계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결국 인터밀란에 남았고

 

08-09 시즌 후,

현역은퇴를 선언하면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국가대표로써의 루이스 피구

포르투칼 전성기의 최대 핵심자원

청소년 대회에서

좋은 활약으로 이른 나이에

A대표로 데뷔했지만

 

그 당시,

포르투칼 국대는

암울 그 자체와 맞물려

팀 자체적으로

두각을 내지 못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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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포르투칼은 청소년 대표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A대표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되었고

황금세대라 불리는

 

루이코스타, 파울레타

좋은 자원들이

중심이 되면서 

포르투칼의 성적은 올라갔고

황금세대에서도

최고의 중심은 단연 피구.

 

유로2000,

죽음의 조라는 평가에도

고스란히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고

지단의 프랑스에게 4강에서 졌지만

포르투칼은 4강과 함께

그 해에

피구가 발롱도를 수상하는 등,

전성기급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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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월드컵,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지만

모두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을 제대로 잘못만나면서

예선탈락...ㅎㅎ

 

가장 아쉬웠던

유로2004에서는 결승에

올랐지만

그리스에게 패하면서

준우승을 차지.

 

마지막 메이저 대회였던

2006 프랑스월드컵,

다시 한 번

4강에서 지단이 이끄는

프랑스를 만났고

또 다시 패배하게 되면서

피구의 국대

커리어도 막을 내렸다.

 

A매치: 127경기 32골

 

 

 

 

 

 

 

 

 

 

 

루이스 피구에 대한 TMI

 

 

 

01. 음악을 사랑하는 남자이다

 

록, 팝 음악을

가장 좋아하는 걸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에도 영화로

신드롬이 있었던

" 퀸 " 의 음악을 사랑한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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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피파2002 능력치 최고수준이었다

 

지금은 게임능력치가

굉장히 세분화되고 수치화도 달라졌지만

이 당시에, 최고 수치가

능력치 7이었고

 

피구는 모든 부분에서

7을 받아

최고의 능력치를 가진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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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피구재단 자선대회를 매 년 개최한다

피구 본인의 이름으로

자선 재단을

만들어

매 년,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자선 축구대회를

열며 기부행사를 진행하는 중.

 

지단과 친구들 vs 피구와 친구들

자선 축구대회를

연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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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알아주는 일식 매니아이다

 

일식을 평소에도 즐겨먹으며

2002 한일월드컵 당시,

포르투칼이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예선을 치룬 걸

아쉬워 했을 정도로 좋아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에게

제대로 당하며

다른 의미로도 아쉬움이 남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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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유상철이 유니폼교환 제의 했지만 거절했다

대한민국 VS 포르투칼

월드컵 경기가 끝난 후, 유상철은

지인의 부탁대로

피구와 유니폼 교환을 제의했지만

 

피구는 들은 척도

하지않고

경기장을 빠져나갔다고...

져서... 삐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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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포르투칼 선수들은 우리에게 비기자고 꼬셨다

 

대한민국과 포르투칼이

비길경우,

동반 16강 진출이 가능했고

경기 도중

포르투칼은 1명 퇴장까지 당하게 되자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비기자고, 말 그대로 살살하자고

우리를 꼬셨고

 

우리는 들은 체도 안하고

박지성의

인생골로 1:0 승리하며

참교육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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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세계 최고 레벨의 선수였다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를

모두 수상한 선수이니,

그는 말 그대로

세계가 모두 인정하는

최고 레벨의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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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바이아웃을 의미없게 만든 선수이다

 

피구가 

바르셀로나에서 레알로 이적하며

가장 큰 이슈는

바이아웃 조항에 의한 이적.

 

구단들은 그 후,

이와 같은 전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바이아웃을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설정하여 선수들과 계약했고

사실상, 바이아웃은

거~의 의미가 없어졌다.

 

다만......

약 2900억의 바이아웃이

설정되어있던

네이마르를 PSG가 사버렸....

(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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