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에는
포르투칼 축구하면
떠오르는 선수는
호날두이지만,
그 이전에
포르투칼 축구의 중심이자
아이콘이였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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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윙어로써
드리블을 비롯해 개인기가 좋았고
크로스와 슈팅력까지
훌륭했던 그는
무엇보다 영리한
플레이를 통해
하나로 평가.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 모두 뛰었던 선수로
불리는 데,
사실 피구 이외에도
이런 스타들이 꽤 있었음에도
피구가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유스생활을 하면서 축구를 배웠고
그 곳은 자신의 고향.
결국 데뷔도
스포르팅에서 했으며
호날두 역시
이 곳에서 데뷔 후,
맨유로 이적하였으니 엄밀히 말해
.
.
.
처음
유스팀으로
스포르팅과 계약할 때에
벤피카 유스와
이중계약을 했다는 것이 발각되어
45일간 뛰지 못했던
이력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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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청소년 대회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말 그대로 세계에 알렸고
빅클럽들은
이 선수를 모셔가기위해
전쟁을 시작하는 데,
피구를 잡은 건
피구는
스포르팅에서
총 4시즌을 뛰었다.
사실,
바르셀로나 이적을 하기 전에
세리에A로
갈 생각을 먼저 했었고
유벤투스, 파나마와 각각
이적협상을
벌이던 중,
이중계약에 휘말리게 되면서
세리에A 협회 측으로부터
2년간 출전금지 명령을 받게 되었다.
.
.
.
하여튼
결과적으로
피구는
클래스있는 모습과 함께
바르셀로나
전성기를 이끌며
히바우도, 호나우도, 클루이베르트 등
좋은 종료들을 이끌며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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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대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보이며
주가가 높아진
피구는 그 시기에
문제는 역시
처음 이적 당시,
피구는 거의 헐값에 가까운
금액으로
다년계약을 맺었고
연봉에
불만을 가졌던 것.
하지만,
바르셀로나 구단은
그를 말 그대로
싸게 굴려먹을 생각만 하고
제대로 조치를
취하거나 연봉을 늘려주지 않았고
실행하게 되는데....
루이스 피구는
결과적으로
그의 커리어에서
이적비화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에
짚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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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피구도 실제로
바르셀로나를 떠날 생각은
없었던 것 같고
구단에게 압박을
주려고 했던 시기였는데
이 때에
그 당시,
페레즈 회장은
재선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결국 하나
제대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추친한 것이 바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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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상이
가능했던 것은
간단히 말해
바이아웃 조항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바르셀로나 구단은 피구를
싸게 굴려먹을
생각만 할 뿐,
재계약이나 다른 부분은
생각하지도 않았고
생각보다 낮게
설정되어 있었던 피구의
바이아웃 금액을
레알의 페레즈 회장이 질러버리며
이적이 진행된 것.
바르셀로나의 서포터 중
하나의 이름이
피구는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선수이자, 팬들이
정말로 사랑하는 선수였기에
그의 이적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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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적 후,
위에 그가 코너킥을 찰 때에
돼지머리를
던지기도 하고
그를 비난하는 판을 만들어
내보이기도 하는 등,
피구는
정말 사람을 죽인 것 같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고
피구는
일단 다른 걸 떠나
실력이 너무나도 뛰었나고
어느 위치에서든
자기 역할을 해낸다는 점에서
레알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자원이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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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는
갈락티코 1기 정책을 내세웠고
수 많은 슈퍼스타들이
팀에 합류,
그 중에서도 피구는
본인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보이며
00-01 시즌,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2000년에는
유로2000 활약까지 묶어
수상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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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에
지단이 새롭게 합류하면서
에이스 자리를
어느정도 내주기는 했지만
좋은 활약을
계속해서 이어갔고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며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는데
03-04 시즌 후,
30대로 접어들면서
체력저하와 함께 폼 역시
떨어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소속팀에서도 주전경쟁에서
밀렸고
재계약을 거부한 후,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된다.
2년 정지 먹었던
세리에A 무대를 말년에
가게 되었으며
인터밀란에서도
클래스 있는 모습을 통해
체력은 떨어졌어도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까지 수행하며
나름대로 좋은 활약.
이 시기에는
참여하게 되면서
자신의 선수생활 마지막
월드컵 출전,
호나우두, 베컴 등
노후대비를 생각하는 듯
미국 등
변방리그로 진출하는 것과 맞물려
피구 역시
사우디 중동리그로
진출을 모색했지만
계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결국 인터밀란에 남았고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청소년 대회에서
좋은 활약으로 이른 나이에
A대표로 데뷔했지만
그 당시,
포르투칼 국대는
암울 그 자체와 맞물려
팀 자체적으로
두각을 내지 못한 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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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포르투칼은 청소년 대표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A대표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되었고
루이코스타, 파울레타 등
좋은 자원들이
중심이 되면서
포르투칼의 성적은 올라갔고
그 황금세대에서도
최고의 중심은 단연 피구.
유로2000,
죽음의 조라는 평가에도
고스란히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고
지단의 프랑스에게 4강에서 졌지만
포르투칼은 4강과 함께
그 해에
전성기급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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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월드컵,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지만
모두 아시다시피
예선탈락...ㅎㅎ
가장 아쉬웠던
유로2004에서는 결승에
올랐지만
그리스에게 패하면서
준우승을 차지.
마지막 메이저 대회였던
2006 프랑스월드컵,
다시 한 번
4강에서 지단이 이끄는
프랑스를 만났고
또 다시 패배하게 되면서
피구의 국대
커리어도 막을 내렸다.
록, 팝 음악을
가장 좋아하는 걸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에도 영화로
신드롬이 있었던
" 퀸 " 의 음악을 사랑한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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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게임능력치가
굉장히 세분화되고 수치화도 달라졌지만
이 당시에, 최고 수치가
능력치 7이었고
피구는 모든 부분에서
7을 받아
최고의 능력치를 가진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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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구 본인의 이름으로
자선 재단을
만들어
매 년,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자선 축구대회를
열며 기부행사를 진행하는 중.
지단과 친구들 vs 피구와 친구들
자선 축구대회를
연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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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을 평소에도 즐겨먹으며
2002 한일월드컵 당시,
포르투칼이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예선을 치룬 걸
아쉬워 했을 정도로 좋아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에게
제대로 당하며
다른 의미로도 아쉬움이 남았을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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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VS 포르투칼
월드컵 경기가 끝난 후, 유상철은
지인의 부탁대로
피구와 유니폼 교환을 제의했지만
피구는 들은 척도
하지않고
경기장을 빠져나갔다고...
져서... 삐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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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포르투칼이
비길경우,
동반 16강 진출이 가능했고
경기 도중
포르투칼은 1명 퇴장까지 당하게 되자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비기자고, 말 그대로 살살하자고
우리를 꼬셨고
우리는 들은 체도 안하고
박지성의
인생골로 1:0 승리하며
참교육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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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를
모두 수상한 선수이니,
그는 말 그대로
세계가 모두 인정하는
최고 레벨의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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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구가
바르셀로나에서 레알로 이적하며
가장 큰 이슈는
바이아웃 조항에 의한 이적.
구단들은 그 후,
이와 같은 전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바이아웃을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설정하여 선수들과 계약했고
사실상, 바이아웃은
거~의 의미가 없어졌다.
다만......
약 2900억의 바이아웃이
설정되어있던
네이마르를 PSG가 사버렸....
(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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