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계속해서
K리그에서 활약한 유일한 선수이며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
.
.
2020년,
은퇴를 선언했으며
본인은
육체적으로는 아직 건강하지만
부상 당한 후,
정신적으로 흔들리는
자신의 멘탈을 보고
은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예능에 나와
그야말로 대박을 쳐
축구에 관심이 없는
특히 10~20대에겐 그져
대박이 아빠로만 알려지기도 했다..ㅎ
1998년,
K리그 포항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 데뷔했고
안정환, 고종수와 함께
오빠부대를 만들고
최고의 인기스타로 성장.
.
.
.
10대였음에도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2골을 넣는 등,
이미 성인선수들보다
월등한 기량을 통해
황선홍의 뒤를 이을 공격수로
가능성을 인정 받으며
.
.
.
이미
그 시절,
2000년,
이동국의 기량이
절정에 오르자
세계에서 주목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국민 최악의 클럽으로
꼽히는
세리에A 페루자에서
적극적으로 영입의사를 펼쳤지만
이동국의 무릎상태를
체크하며,
바로 영입이 아닌
테스트를 요청하며 포항 구단의
심기를 건드리는 사이
그 여파로
새로운 인물을 찾던
페루자는
안정환을 대신 영입.
2000년,
K리그 시즌 종료 후
이동국은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으로 임대가 확정되었고
가장 기대되는
대한민국 공격수였기에
관심이 모아졌지만
결과적으로
실패의 이유는
명확하고 생각보다 단순.
.
.
.
우선적으로
이동국의 몸 상태가
온전치 않았는데
고질적으로 무릎부상을 안고 있었고
그 상황에서
100% 회복이 안된 상태에서
경기를 뛰었던 것.
더불어
브레멘에는
확실한 투톱이 자리하고 있었고
이동국은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던 것.
.
.
.
결과적으로
선발출전은 1경기도 없이
임대 후,
완전 영입 조건이였으나
브레멘 구단은
병역이 해결되지 않은 이동국에게
완전 영입이 아닌
더 낮은 연봉과 함께 1년 추가 임대를
제의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동국으로써는
수긍하기엔 너무 좋지 않은 조건,
더불어 2002 월드컵
엔트리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기에
결국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결국
2002 한일월드컵에서
히딩크호에
탑승하지 못하게 되었고
이어진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게 됨에 따라
이동국은
상무 입대를 선택했고
그 곳에서
분위기 전환의 시간.
2007년,
EPL 미들즈브러로 이적하며
독일에 이어
다시 한 번 유럽 도전에 나선 이동국.
결과적으로
데뷔전에서 골대를 맞추는 등,
기대감을 높였지만
리그에서 단 1골도 넣지 못하는 등
또 한번 제대로
여러 번
득점 기회에서
정말 단 1골이라도 들어갔다면
이동국 역시
조금 더 도전을 하거나
길이 열리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존재한다.
.
.
.
현재
잉글랜드 국대 감독을
역임하고있는
그 당시
미들즈브러 감독으로써
나름 이동국에 대한 신뢰를 보내며
기회를 많이 준 편,
하지만
그 당시 사우스게이트 감독도
거의 초짜 감독이었고
팀 자체도
전술적으로 뻥축구에 가까울 뿐
미들진에서
공격수에 전해지는 패스가
원활하기 못했기에
이동국은
어느정도 할 말은 있는 편.
하지만,
주전 공격수
야쿠부 등
10골 이상을 넣었으니
이동국은
주어진 기회를
못살렸다고 봐도 무방하기도 하다.
완벽한 주전도 아니였고
주어진 기회에서
골대를 여러 번 맞추는 등,
이동국에게는
운도 좋지 않았고 제한적인
기회를 살리지도
못했으니
실패의 이유는 결국
본인에게 있다고 밖에...
.
.
.
게다가
아시안컵을 앞두고
본인은 소속팀 적응에 전념하고 싶어
국대 차출을 제외해달라
협회에 요청했지만
공격수 부재가 문제였던
국대에서는
당시, 수석코치였던
홍명보가 직접
이동국을 설득하고 나서게 되면서
대회에 참가했고
결과적으로
미들즈브러 늦게 합류 및
부상까지 겹치며
본인의 실력을 다 보여주기엔
여러가지
상황이 좋지 못했다.
미들즈브러는
어느정도 높은 연봉을 받언
이동국을
빠르게 처분하고 싶었고
하지만,
타 리그에서는
이동국에게 관심을 갖는
구단이 없자
결국 돌아올 곳은
.
.
.
친정팀 포항이
적극적으로 이동국에게
관심을 표했지만
이동국은
포항이 가기 싫었던걸까?
결국 여차여차하여
성남일화로
이적을 선택하게 되었고
지나간 얘기지만
결국 포항이 아닌 성남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연봉.
.
.
.
다시 한 번
부활을 노리며 K리그에
복귀했지만
이동국의 폼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못했고
김학범 -> 신태용
감독이 바뀜에 따라
전력 외로
판단되어 김상식과 함께
묶어져 전북으로
다시 한 번 트레이드 되었고
이 트레이드는
2009년,
전북 현대로 이적하게 되면서
최강희 감독과
이동국은 팬들에게 욕을 먹었는데
이미 나이가 들어
전성기가 지난 선수를
왜 영입하냐는 것.
하지만, 이러한 비난은
그 해에
최고의 활약을 바탕으로
.
.
.
루이스, 에닝요 그리고
최태욱으로 이어지는 2선라인은
이동국의 득점을
말 그대로 제대로 도왔고
리그에서만
득점왕 차지.
따내며
말 그대로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
.
.
생애 처음
어시스트왕에도 올랐는데
그 해에
돌파했으니
그야말로 이동국은
K리그의 역사를 바꾸는 선수로
점점 나아가는 중.
최강희 감독은
이동국을 절대적 신뢰하며
맡겼고
그의 활약은
더욱더 꾸준하고 좋았으며
30대 중반이
넘은 나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득점 페이스와 경기력.
.
.
.
2009, 2011년에 이은
2014, 2015년에도
말 그대로
K리그 최고의 스타이자
전설로 점점 더 자신을 높였으며
그가 넣은 골이
K리그 역대 최다골 역사가
되는 순간들이
이어지며
놀라운 행진을 이어갔다.
.
.
.
2017 시즌,
통산 200골과 함께 70어시스를
돌파하게 됨에 따라
그는
지속적으로 재계약하며
40이 넘은
나이에도 전북현대 현역 선수로
계속해서 함께 했고
비록 전성기의
모습은 아니지만 두자리수 득점과 함께
주장으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며
계속해서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리그 1경기를 앞두고
이동국이 돌연 은퇴를 선언.
1시즌 정도는
더 뛸 것으로 내다보았던
많은 팬들에겐
가히 놀라운 소식이었고
이동국은 본인 스스로
육체적으로는 충분히 건강하지만
정신적으로 부상 때,
본인이 약해지는 것을 보면서
은퇴를 결심했다 밝혔다.
.
.
.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선발출전하여
득점과 어시스트는 없었지만
풀타임과 함께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고
유종의 미를 제대로 거두었으며
자신의 등번호
20번은 영구결번과 함께
전주 명예시민,
완주군 명예군민으로
선정되었다.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출전시간은
굉장히 적은 편이었지만
10대의 선수가
네덜란드 선수들을 상대로
골에 가까운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알렸다.
.
.
.
같은 해,
이어지는 아시아 청소년 대회에서
김은중과 투톱을 이루며
이동국은 황선홍을 이을 공격수로
엄청난 관심과 포커스 폭발.
하지만 이것을 기점으로
이동국은
모두 불려다니며 말 그대로
제대로 혹사 당했고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국대와 클럽에서
아쉬운 커리어를 이어갔던 시기엔
그에게 항상 따라다니던 게
.
.
.
2002 한일월드컵에선
히딩크호에
부름을 받지 못하며
역사적인 자국 월드컵을
집에서 TV로 지켜봐야했으며
히딩크 감독은
다른 공격수들에 비해
수비가담과 움직임이 제한적이라는
이유로 그를 배제,
그토록 염원했던 월드컵을
참가하지 못한 건
그에게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
.
.
상무 시절,
독일과의 평가전에서
올리버 칸을 상대로
터닝슛을 골로
연결하며 부활.
그 후로,
감독에 따라서
A대표 승선이 이루어졌으며
K리그로
복귀함에 따라
K리그를 토대로
국대선발을 이루는 감독들의
성향에 역시
국대에 오르기도 했다.
다만, 좋은 폼을
가지고 있던 2006년
독일월드컵을 몇 달 남겨놓은 시점,
월드컵 다시 좌절..
.
.
.
2010년 남아공월드컵,
허정무 감독은
이동국을 23인 엔트리에 추가하며
개인적으로는
무려 12년만에 월드컵 무대를
누비게 되었으며
하지만....
지금도 큰 아쉬움과 함께
회자되고있는
이 슛을 끝으로
대한민국은 16강전에서
탈락했고
이동국의 월드컵 커리어도
조금은 허무하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
.
.
벤투호 승선을
마지막으로 이동국은 A대표로
승선되지 못했으며
2020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 바 있기에
조만간 국내에서 A매치가
열리면 그 때에
이동국의 A대표 은퇴식도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서 이동국의 별명은
라이언킹이었고
미들스브러 팬들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을텐데
이동국이 시즌내내
계속 부진을 거듭하자
무슨 사자냐며
품바 아니냐고 놀렸다는 후문.
이동국은
할 말이 없는데
EPL에서 너무 부진했다..
.
.
.
1998 프랑스 월드컵 후,
10대 스타 이동국은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가 생겼고
역시 그 당시
최고의 여가수로 꼽히는
김현정과
열애설이 터진 바 있다.
(실제 열애했는 지는 모르겠다..)
.
.
.
전북은 이동국이
영입되고 최강희 감독을 필두로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K리그 최고의
강팀으로 거듭났다.
팬들도 이러한
활약과 리더쉽을 가지고 있는
이동국을 사랑했으며
오히려 그가 소속팀에선 잘하는 데
대표팀만 가면
부진하니깐.. 그냥 거기 가지말고
우리랑 있는 게 낫지 않냐는 등
애정어린 표현을
거침없이 하기도 했다.
.
.
.
포항 시절,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가
20번을 달고 있었고
그 후, 그는 기회가 되면
무조건 20번을 달고 뛰었으며
전북에서 은퇴 할 때에도
변함없이 20번을 달며 영구결번.
그가 존경하는 선배는
다름 아닌
홍명보였고
이동국이 출간했던
자서전을 통해서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한 바 있다.
.
.
.
" 슈퍼맨이 돌아왔다 "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4명의 딸과 1명의 아들,
육아를 하는 모습을 공개하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결국 연말
KBS 연예대상 시상식에 참여하여
상까지 받으며
안정환과 함께 축구스타로
연예대상 상을 수상한 선수가 되었다.
.
.
.
총 37골을 기록하며
역대 1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물론, 언젠가는
깨질 수 있는 기록이기는 하지만
이동국의 가치를
보여주는 하나의 수치라고
볼 수 있다.
.
.
.
인도네시아에서 열렸던
2007 아시안컵 대회 도중,
이동국을 비롯해
이운재, 김상식, 우성용은
밤에 몰래 외출하여 룸싸롱에 출입했고
이것이 발각되어
기사화되며 국민 나쁜놈이
된 적이 있으며
이동국의 축구 커리어에서
가장 큰
흑역사로도 남는다.
.
.
.
1998년,
이동국의 부친은
아들의 커리어가 아까운 탓일까?
병역비리를 일으켰고
결국 발각 되어서
벌금 2,000만원을 받았으며
이동국 본인은
아닐지라도 또 하나의
흑역사로 남는다.
더불어
2002 한일월드컵
출전하지 못하며
병역혜택을 받지 못했고
그 후, 부산 아시안게임에
이동국이 대표로 선발되자
비리가 있는 선수에게
왜~ 병역혜택 기회를 주냐며
거세게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우승 실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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