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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수 왼발 마스터, 불명예스러운 비운의 스타

스포츠/축구

by Gugu_K 2020. 10. 14.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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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가 끝없이 이어졌던 천재 고종수

축구천재로 불리며

어린 나이에도

국대 및 월드컵을 경험했고

 

안정환, 이동국과 함께

K리그를 

이끌어갈 선수로 꼽혔지만

 

각종 사건/사고

구설수에 올랐으며

부상으로 인해

커리어를 제대로 쌓지 못한

안타까운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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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가 짧았지만

임팩트는

역대급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거스 히딩크 감독

그의 재능을

끝없이 칭찬했던 바 있다.

 

 

 

 

 

 

 

 

 

 

찬란했던 수원 삼성 시절

수원의 전설적인 고데로 트리오

고등학교 시절부터

급이 다른 실력을 보였던 그는

김호 감독

러브콜을 받아

곧장 수원으로 이적하게 되었고

 

10대의 선수가

과감하게 주전급으로 뛰며

기량을 높이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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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전에서

득점을 기록했고

이 득점기록은

아직도 수원 구단 역사상

최연소 득점으로

남아있는데

만 18세 3일의 득점.

 

화려한 개인기와

남다른 왼발 킥의 장점을

가지고 있던

고종수는 K리그에서도

월등한 기량을

자랑하며 승승장구했고

 

득점마다

덤블링 세레모니를 펼치며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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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경험했고

그 해에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K리그 베스트11과

리그 MVP를 수상하며

자신의 가치를 드높였고

앞으로가 더욱더

기대되는 선수로 평가.

 

그 다음 해에도

수원은 우승을 차지했고

2연속 베스트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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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2000년대로 넘어가며

수원은 일명

고데로 트리오가 탄생했고

고종수를 필두로

데니스와 산드로의 

활약까지 더해지며 수원은 강해졌고

고종수 역시

물오른 기량을 보였는데

 

K리그 역사상

최연소 20-20 클럽에 가입했지만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하며

월드컵 발탁 실패와 조금씩 폼이

떨어지는 시기를 겪게된다.

 

 

 

 

 

 

 

 

 

몰락의 서막, J리그 -> 수원 -> 전남

수원에 다시 만난 차범근 감독과 고종수

01-02 시즌이 끝난 뒤,

FA가 된

고종수는 10억에 가까운 연봉

받으며 J리그 진출

꿈꿨지만

 

구단의 반대와

여러가지 계약 문제가 얽혀

임대 신분으로

어렵게 J리그에 진출했고

 

그 당시,

그 곳에 감독이었던

베어벡과도

마찰을 겪게 되면서

사실상 거의 1년간 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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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직 선수가 된

고종수를

다시 받아 준 구단은

수원이었고

 

그 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꿈꿨는데

그 당시

수원 감독에는

1998년 월드컵 감독으로

인연을 맺던

차범근 감독.

 

하지만

결과적으로 고종수는

실패했고

각종 논란거리와

문제를 일으키며 

임의탈퇴 신분으로 있다가

 

조병국-김남일

트레이드 때,

1+1 개념으로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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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부진과 부상,

그리고 문제를

일으키며 부활에 실패했고

 

1시즌만에

팀을 떠났고 그 후로

약 1년간

소속팀 없이

무적의 선수로 남게된다.

 

 

 

 

 

 

 

 

 

 

 

 

부활의 신호탄? 대전 이적, 씁쓸한 은퇴

2년만에 K리그에 복귀한 고종수

2년만의 복귀.

고종수는 계약 당시에

팀을 무단으로

이탈하면 안된다는 조항을 넣을만큼

구단에서 노심초사했고

 

그 해에 

팀을 6강으로 올리는 데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주며

이대로 부활하는 듯 했지만

 

다시 한 번

무단이탈과 논란에 휩싸이며

정신을 못차린

모습을 보였고

 

결국 대전 감독으로

부임했던

은사 김호 감독의 만류에도

현역은퇴를

선언함에 따라

씁쓸하게 마무리 짓게 되었다.

 

 

 

 

 

 

 

 

 

 

국가대표로써의 고종수

역대급 재능으로 평가받던 고종수

1997년 

노르웨이와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했으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경험하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는데

 

월드컵 한국의 성적

자체가 폭망수준이었지만

고종수와 이동국의

평가는 굉장히 훌륭한 편.

 

프랑스 언론에서는

대한민국의

14번은 마치 브라질 선수처럼

플레이 한다 보도했는데

14번이 고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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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시드니 올림픽

멤버로 뛰었으며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새롭게 부임한

거스 히딩크 감독의

황태자

불릴만큼 중용되었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K리그에서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큰 부상을 당하며

 

월드컵 진출에도 실패하고

그 후로 국대로도

뽑히지 못하게 되었다.

 

A매치: 38경기 6골

 

 

 

 

 

 

 

 

 

 

 

 

고종수에 대한 TMI

 

 

 

 

01. 경기력이 떨어진 건 리니지 중독 때문이다?!

 

고종수의 사건/논란은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은데

그 중 유명한 것은

고종수의 폼이 떨어진 이유가

리니지 게임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실제로는

몇 번 한적이 없는데

기사가 잘못나간 케이스이며

기자들에게

미움을 많이 받아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기사가

많이 뜬 선수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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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가수 조성모와 폭력사건에 휘말렸다

 

가수 조성모와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었고

일방적으로 고종수가 시비를 걸었다는 식으로

기사가 났던 적이 있는데

 

후에, 인터뷰를 통해

오히려 시비를 건 쪽은 조성모였고

문제가 터질까봐

자리를 피했던 것은 고종수였는데

사람의 선입견이 무서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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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국가대표 선수 무단이탈 사건의 주역이다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밤마다 선수들이

이태원 등을 돌아다니며

밤문화(?)를 즐긴다고 소문이 났으며

 

실제 고종수는

국가대표 합숙 훈련 시절,

무단이탈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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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대전 시티즌에 원수와도 같은 존재이다

 

K리그 선수생활

마지막을 대전 시티즌에 보낸

고종수는 은퇴 때에

조금은 찝찝하게 끝을 맺었는데

 

구단과의 마찰이 컸으며

돌이켜 결과적으로 본다면

무자비했던 건

구단과 고종수 모두에게 성립.

 

그럼에도

결국 무단이탈을 포함해

일방적으로

팀을 떠나버린 

고종수에 대해서 대전 팬들은

 

" 도망치듯 떠나 영웅인 척 하지마 "

 

피켓을 드는 등

그를 지속적으로 

비난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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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세계를 놀라게 한 프리킥의 주인공이다

youtu.be/q3Ymu7GP0iw

세계 올스타전에서

그 당시,

최고의 골키퍼로 불리던

칠라베르트를 상대로

너무나도 완벽하고 아름다운

프리킥 골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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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 출연한 적이 있다

 

축구실력은 물론

다양한 끼와 재능을 가지고 있던

고종수는 현역시절,

최고의 시트콤으로 핫했던

남자셋 여자셋에

실제 고종수 역할로 출연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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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가수 홍경민 노래 뮤직비디오 주인공이었다

신인가수였던

홍경민의 노래 뮤직비디오

주인공으로 출연했으며

 

당시,

여자 주인공은

현재 원빈의 그녀가 된

무려 이나영.

 

그 시절,

고종수는 축구선수는 물론

예능감까지 갖춘

그야말로 슈퍼스타 재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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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피파2001 공식 모델이었다

그가 얼마나

유능하고 능력을 인정받는

선수였는 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척도.

 

피파2001 출시 때

공식 메인 모델로 떠올랐으며

수원 유니폼을

입은 채, 모습을 드러낸

그가 굉장히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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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바지감독이라는 소문이 돈 적이 있다

 

대전 시티즌 감독으로

부임하며 팀을 이끌었던 고종수는

 

단장으로 있던

김호와 이기범 코치가

그보다 더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전술을 짜는 모습이

여러 번 화면에 잡히면서

 

바지사장이

아니냐는 의혹이 여러 번 돌았고

그 역시 인터뷰로

김호 단장님께 많이 배우겠다는 식으로

발언을 하며

감독은 누구에게 배우는

자리가 아니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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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엄청난 인기, 하루에 팬레터가 2만장 이상이었다

 

고종수의 전성기 시절,

인기는 상상이상이었고

그 당시 최고의 아이돌이였던

HOT와 비교되어

기사가 날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를 가졌던

축구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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