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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차범근 아들의 삶, 차미네이터의 고속행진

스포츠/축구

by Gugu_K 2020. 10. 1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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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미네이터란 별명답게 클래스가 달랐던 피지컬

차미네이터의 별명답게

지치지 않는 체력

탈아시아급 피지컬을 바탕으로

스피드가 뛰어났던 선수.

 

전성기 시절에

독일과 스코틀랜드에서 활약했으며

2번의 월드컵

경험하며

국대로도 활약했으며

 

말년기에는

공격수 -> 오른쪽 풀백

포지션 변경하며

또 그만의 커리어를 쌓았던 그.

 

.

.

.

 

역대급

대한민국 선수로

평가받는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타이틀로 

부담스러운 시선을

선수생활 내내 받았으며

아버지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꽤나 좋은

선수 커리어를 남겼다.

 

 

 

 

 

 

 

 

 

 

차범근의 아들, 고려대 진학과 월드컵

고려대 소속으로 월드컵, 그것 기반으로 독일 진출

대한민국 축구계의

한 획을

제대로 그었던

차범근 아들이라는 타이틀

 

어린시절부터

주목도가 높았던

차두리는

고려대 시절,

 

히딩크호에 합류하여

2002 한일 월드컵을 경험했고

아버지가 전성기 때

뛰었던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

오퍼를 받고 입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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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입김(?)이

아예 작용하지 않았다고 할 순

없는 상황이었지만

 

20대 초반에

젊었던 차두리는

월드컵에서도 파이팅 넘치고

탈아시아급 피지컬

스피드를 보여주며

충분히 가능성 있는 선수였다.

 

 

 

 

 

 

 

 

 

 

제 2의 차붐, 독일 분데스리가 시절

임대생활 및 저니맨의 행보를 걸었던 독일 시절

독일 명문

레버쿠젠 유니폼을 입었지만

그 때 부터

차두리는 임대생활

시작했고

 

사실상 레버쿠젠에서의

커리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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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미니아 빌레펠트

임대를 시작으로

팀이 2부리그로 떨어지면서

 

프랑크프루트로

임대이적했고

 

그 곳에서 조금씩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며

꽤나 괜찮은

득점력도 발휘하는 데

팀은 다시 한 번

2부리그로 강등당하게 되는데

 

하지만 이 때에

레버쿠젠에서 이 곳으로

완적이적을 했고

 

한 시즌

8골을 넣은 등,

팀이 다시 1부리그로 

진입하는 데

핵심역할을 수행했다.

 

 

 

 

 

 

 

 

 

 

클롭 감독과의 만남, 포지션 변경

한국선수들과 인연이 꽤 많은 클롭감독

더 많은

출전시간과

1부리그 진입을 위해

승격된 마인츠로 이적했고

 

이 때에

포지션을 오른쪽 풀백으로

변경했는데

감독이 

지금의 리버풀 감독인 클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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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풀백이

부상을 당하게 되면서

한 시즌,

붙박이 주전으로

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팀은 강등권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팀 성과는 바닥 수준,

 

그 해에 다시 한 번

마인츠는 2부리그로 강등되면서

차두리는 독일에서

수 차례 강등을 경험한다.

 

 

 

 

 

 

 

 

 

 

새로운 기회의 땅, 스코틀랜드 셀틱(With 기성용)

기성용과 함께 뛰었던 셀틱 시절

2010 남아공 월드컵의

쏠쏠한 활약으로

차두리는 셀틱으로 이적했고

 

이미 셀틱에서

뛰고있던 기성용과 함께

할 수 있었으며

첫 유럽진출로 여러가지로 적응에

애를 먹던

기성용을 여러가지로

안정감있게 해준 멘토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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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프로생활에서

처음으로

독일을 벗어난 시기가 되었으며

 

항상 강등권에

놓여 휘둘렸던 상황과 다르게

 

전통의 강호였던

셀틱에서

우승을 맛보게 되는데

 

한 시즌 평균적으로

15경기정도를 뛰었으니

붙박이 주전

수준은 아니였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커리어에서

우승 타이틀

추가했다는 것 만으로도

의미있는 시간.

 

 

 

 

 

 

 

 

 

 

뒤늦은 K리그 데뷔, 클래스 있는 활약

노장이 되었지만 국내선수들을 압도하는 피지컬은 여전

셀틱과 계약 종료 후,

독일로 돌아가

계약을 맺기도 했지만

 

가족적인 이유라는

이야기가 들려오며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고

 

갑작스럽게

그는 FC서울행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떴는데

긴가민가 하는 사이,

정말로 차두리가 FC서울에 입단하며

30대 늦은 나이에

K리그 무대에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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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간 K리그에서

활약하며

첫 시즌이 적응단계였다면

 

두 번째 시즌부터

클래스있는 모습을 보이며

K리그 최고의

오른쪽 풀백 활약을 보였고

 

14~15시즌에는

당당히 리그 베스트11

이름을 올리며

여전한 경기력

선보이기도 했다.

 

 

 

 

 

 

 

 

 

 

차두리, 슈퍼매치에서 은퇴식

아버지의 축하 속에 은퇴식을 치루는 차두리

2015년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 차두리는

FA컵 우승

끝으로 마무리 할 수 있어

기쁘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는데

 

구단 관계자들과

많은 팬들은

30대 중반이 다되었지만

아직도 충분히

경기력을 가지고 있는

차두리가 더 뛰어주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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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차두리는 미련없이 은퇴했고

공교롭게도

은퇴식은 서울의 최대 라이벌인

수원과의 경기.

 

정말 신경전이

엄청난 양 팀이지만

이 날 만큼은

국가대표로도 꾸준하게 활약했던

레전드 차두리를

양 팀이 은퇴를 서로 축하하며

훈훈한 분위기 연출.

 

수원 사령탑에도

이름을 올렸던

아버지 차범근 감독도

자리에 함께하여

자신의 아들 은퇴를 축하했다.

 

 

 

 

 

 

 

 

 

 

 

국가대표로써의 차두리

꽤나 화려했던 국가대표 커리어

2002 한일 월드컵 멤버

주전은 아니지만

꽤나 많은 시간을 출전하며

가능성을 봤던 그는

돌이켜보면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월드컵 4강, 원정 16강 더불어

아시안컵 준우승

함께한 3명의 선수 중 한명으로

커리어를 세웠는데

 

나머지 두 명이

바로 박지성과 이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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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독일 월드컵엔

뽑히지 못했지만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오른쪽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한 것이

본인 스스로에게

신의 한수가 되었다는 평가.

 

그래서 일부 의견으로는

그가 포지션 변경을

좀 더 일찍 이루어냈다면

 

독일 월드컵

출전했고

센츄리클럽(A매치 100경기출전)

가입도 가능했을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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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브라질 월드컵에도

최종명단에

들지 못했는데

이 때에 감독이 홍명보였고

 

부상이 껴있었으나

그 당시 대표팀 스쿼드를 본다면

회복 중이던

차두리가 들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는데

여러가지로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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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홍명보감독이 사퇴하고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하면서

2015 아시안컵 멤버로 합류했고

 

이 대회에서

월등하고 환상적인 폼으로

대회 준우승

주역으로 활약하며

그 대회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youtu.be/ZTAe81oyK8Q

 

A매치: 76경기 4골

 

 

 

 

 

 

 

 

 

 

 

차두리에 대한 TMI

 

 

 

01. 풀백 전환, 히딩크가 먼저 권유했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차두리의

여러가지 능력과 피지컬을 보고

오른쪽 풀백으로 전향하길

권유했었고 그 당시,

더 어렸고 공격이 좋았던

차두리는 사양했지만

후에, 독일에서

클롭 감독을 만나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했고

오히려 이 때부터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히딩크의 안목 클라쓰...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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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독일어는 원어민 수준으로 말하고 쓴다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자연스럽게 독일로를 배우고 말했고

오히려 한글보다

독일어로 메모하는 게 편하고

말은 원어민 수준.

 

2014 월드컵 때,

독일 선수 라인업을

독일어로 소개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youtu.be/qSs330CYEtk

 

히딩크 감독도

개인적으로 독일어를 잘해서

한일 월드컵 당시,

두 사람은 통역없이 대화를 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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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개그맨 노우진과 축구부 동기이다

 

김병만의 달인 수제자로

개그콘서트에서 이름을 알린 바 있는

노우진과 고등학교 시절,

축구부 동기였으며

 

정말 여담인데

차두리의 어머니는 노우진을

굉장히 싫어했는데

그 이유는

자꾸 노우진이 차두리보고

같이 개그맨이

되자고 꼬셨다는 후문...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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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가수 선미 이상형의 주인공이다

가수 선미는

여러 차례 자신의 이상형으로

차두리를 언급했고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유행하던 시기에

다음 지목자로

차두리를 선택하기도 했는데

그와 함께

차두리의 동생과

차범근 감독까지 함게 지목하는

센스를 발휘...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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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월드컵에서 역대급 골을 터트릴 뻔 했다

youtu.be/k3maX_ihH4Q

대한민국과 이탈리아의

한일 월드컵 16강전.

 

후반 종료 직전,

교체로 들어온 차두리가

오버헤드킥을

작렬했고 부폰에게 막히기는 했지만

세계를 놀래킨 슈팅.

 

당시, 해설위원

차범근 감독도 

매우 좋~은 슈팅이라 칭찬했지만

후에 인터뷰를 통해

차라리 안들어가길 잘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그 이유가

 

" 그 골로 인해 어깨가 잔뜩 올라가

훈련을 제대로 안할까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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