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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영원한 리베로 & 캡틴 월드스타의 위엄

스포츠/축구

by Gugu_K 2020. 10. 2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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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다 A매치 출전 보유자

14년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황선홍과 함께

H-H라인으로 불리며

팀의 대들보 역할을 톡톡히 했던

리더형 선수.

 

.

.

.

 

대한민국 

A매치 최다 136경기

뛰었고

 

월드컵에서도

득점을 터트리는 등,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

 

.

.

.

 

은퇴 후,

감독으로써의 행보 및 여러가지

상황들에 놓여지며

각종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선수 시절만 본다면

그는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한 획을 그은

최고의 스타 중 한명이었다.

 

 

 

 

 

 

 

 

 

 

K리그 데뷔, 포항 아톰즈

그에게 적응은 필요 없었던 K리그 시절

고등학교 시절,

신장이 급격히 커버린 케이스로

대학을 졸업한 후

황선홍과 함께

K리그 드래프트를 거절한 후

곧장 입대했다.

(4대 독자라, 6개월 복무)

 

.

.

.

 

전역 후,

포항은 여러가지 문제가

존재했던

홍명보를 포기한 채

일명 FA로 풀어주었고

그를 영입한 것은 그 당시 유공.

 

하지만,

포항은 곧장 유공과의

1:3 트레이드를 통해

홍명보를 다시 데려오게 되면서

1:8 트레이드로

데려왔던 황선홍과 비슷한 케이스

 

.

.

.

 

1992년 K리그에 데뷔했고

그 해에

베스트11은 물론

리그 MVP까지 수상하며

그야말로 슈퍼스타의 행보 시작이었고

 

1994년 미국월드컵을

거치게 되면서

홍명보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고

꾸준한 활약으로

리그 베스트11에 계속 올랐으며

 

월드컵의 활약으로

유럽 클럽들이 엄청난 관심

가져주었지만

소속팀에서 그를 놓아주지않아

결국 유럽에 못가고,

뒤늦게 이적하게 된 곳은

J리그였다.

 

 

 

 

 

 

 

 

 

 

 

맞지 않았던 옷, 벨마레 히라스까 시절

포지션이 애매했던 벨마레 시절

1997년 

J리그 벨마레로 이적했고

그 당시,

이적료가 11억이였으니

물가로 따지면 파격적인 수준.

 

.

.

.

 

데뷔전에서

보복성 태클로 인해

퇴장을 당하는

불명예를 경험하기도 했으며

 

가장 큰 문제는

팀에 일본 국가대표

로페즈, 나카타가 있다는 이유로

리베로 역할이 아닌

수비적인 역할을 맡겼고

 

맞지않은 옷을 입은

홍명보의

활약도는 좋을 수 없었고

더불어 팀 자체가

재정난을 겪으며

높은 연봉자들이 정리되는 

수순에 따라

다시 한 번,

FA시장에 나오게 되었다.

 

 

 

 

 

 

 

 

 

 

가시와 레이솔 이적, 주장 홍명보

황선홍, 유상철과 함께 뛰었던 시절

J리그 하위권에서

놀던 가시와 레이솔은

홍명보 영입과 함께

3위까지 성적을 끌어올렸고

 

그에게

주장직을 맡기며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한다.

 

.

.

.

 

그 당시,

J리그는 외국인 용병을

3명 두는 것으로 제한을 두었고

황선홍, 홍명보, 유상철

각각 데려오며

 

모든 용병을

대한민국 국대 3인방으로

채우기도 했으며

 

좋은 활약을 통해

지속적으로

가시와 레이솔을 상위권으로

이끌며 팬들의

환호를 얻은 시기.

 

.

.

.

 

90년대 일본

A매치에서 한국에게

기를 펴지 못했는데

 

홍명보, 황선홍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고

어떻게 보면

원수와도 같은 선수

리그에서는 일본 J리그가

보유하고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만들어지기도 했다.

 

 

 

 

 

 

 

 

 

 

 

K리그 컴백, 포항 스틸러스

2002 한일월드컵 시기와 맞물린다

2001년 국내로 돌아와

2년의 계약을 

맺으며 포항에서 뛰었고

 

2002 한일워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홍명보의 가치는

말 그대로 환상적으로 올라가는 데

월드컵 이후,

홍명보를 보기위해

포항의 홈구장은 

매진 사례...ㄷㄷㄷ

 

.

.

.

 

가시와 레이솔에서는

계약 연장 및 지도자 보장까지

들이밀며

그를 잡아두려 했지만

 

자신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며

국내로 돌아왔던

그는 자연스럽게

포항에서 은퇴할 것으로 보였지만

뜻밖에 다시 한 번

이적을 선택한다.

 

 

 

 

 

 

 

 

 

 

마지막 소속팀 LA갤럭시

찝찝한 계약과정, 그의 미국행은 결과는 긍정적

포항

일본에서 그를 데려오기위해

많은 돈을 투자했고

 

홍명보 역시

포항과 다시 만나며

은퇴도 이 곳에서 하고

미래도 논의하는 등,

서로가 어느정도

장기적인 플랜을 계획하던 찰나

 

돌연

미국행을 선언했고

포항으로써는

그에게 투자했던 돈과 함께

여러가지로

난감해진 상황이 되었던 것.

 

.

.

.

 

미국 진출 후,

한국과 미국의 여러가지

문화적인 교류

활발해지는 교두보와 같은 역할

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이러한 점에서

그가 LA갤럭시로 이적한 건

포항을 제외한(?)

포괄적인 관점에서는 긍정적.

 

그렇게 그는

LA갤럭시에서 은퇴하며

현역생활을 

마감했다.

 

 

 

 

 

 

 

 

 

 

 

 

국가대표로써의 홍명보

4강진출 확정 후, 유명한 세레모니

1989년

국가대표에 처음 발탁되어

2002년까지

14년간 A대표로 활약하며

무수한 성과와

대한민국의 역사를 쓴 선수이다.

 

.

.

.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어린 나이였지만

눈에 띄는 활약을 통해

외신들에게도

총명받는 선수로 평가 받았고

 

1994년 미국 월드컵,

동료 황선홍이 죽일(?)놈이 되었다면

홍명보는 2골을 기록하는 등,

월등한 경기력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활약이자

세계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

.

.

 

1998년 월드컵

대한민국 축구팬들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되었고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홍명보조차

네덜란드의 아성을

잠재울 수 있는 여력이 없었는데,

 

하지만

4년 후, 자국에서 열린

2002 한일 월드컵에서

4강신화

주역으로 활약하며

커리어 최고의 정점을 맞는다.

 

4강을 확정짓는

마지막 PK 득점을 성공하며

환호하는 

홍명보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장면.

 

.

.

.

 

아시아 최초 브론즈볼 수상자

2002 한일월드컵의

활약을 제대로 인정받아

아시아 최초로

브론즈볼 수상자가 되었고

 

골든볼이 올리버 칸,

실버볼이 브라질 호나우두였으니

3위의 기록인 홍명보.

 

.

.

.

 

월드컵 이후,

아시안게임 와일드카드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그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준다며

가볍게 거절했고

 

브라질과의

평가전에서 동료이자 

오랜 친구인

황선홍과 함께 동반은퇴하며

국대 커리어를

마무리 지었다.

 

A매치: 136경기 10골

 

 

 

 

 

 

 

 

 

 

홍명보에 대한 TMI

 

 

 

01. 히딩크 감독과 기싸움이 훨훨 타올랐다

 

월드컵을 앞두고

대한민국 감독을 맡게된 히딩크는

선수단의 정리가 필요했고

 

가장 리더가 되는

홍명보가 타깃이 되어

그와 일종의 기싸움을 벌이며

선수단 기합을 잡았고

실제로 대한민국의 포백이

필요하다며

쓰리백에 특화되어있는

홍명보를 국대에서 제외하거나

벤치에 두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히딩크는 홍명보를 인정했고

중용받은 홍명보는

4강신화의 주역이 되어

그것에 보답.

 

.

.

.

 

02. 주병진 토크쇼에서 거짓말(?) 한 적이 있다

 

1994년 미국월드컵 후,

그 당시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주병진 토크쇼에

출연하여

 

한국의 자존심을 지키기위해

절대 J리그에

진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발언했고

 

1997년,

그 발언이 무색하게

J리그 벨마레로 이적했다..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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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 선수/감독으로 병역혜택을 이끈 유일한 축구인

 

2002 한일월드컵

4강진출로 인해 모든 선수들은

병역혜택을 받았고,

 

후에 런던올림픽에서

홍명보 사단이 이끄는 대표팀도

동메달을 따내며

병역혜택을 받았고

선수/감독으로써 병역혜택을

누릴 수 있는

성적을 낸 유일한 축구인.

 

여담으로

홍명보 본인은

20대 초반,

군복무를 이미 수행했고

4대독자라

기간이 6개월이였다는..

 

.

.

.

 

04. 그의 롤모델은 베켄바워였다

 

독일 출신의

최고의 축구스타 중 하나인

베켄바워.

 

홍명보는 자서전에서

그에 대한 존경심을 여러차례 표현했으며

아시아 베켄바워라는

본인의 별명은 가장 선호했다.

 

실제로

축구스타일이

아~주 흡사하진 않았는데

리더쉽이나

리베로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은

얼추 비슷한 느낌??

 

실제로 베켄바워는

은퇴 후,

감독과 행정가로써도 성공했고

그러한 점이

홍명보의 롤모델로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

.

.

 

05. 바르셀로나에 입단 제의를 2번이나 받았다

 

반 할 감독이

바르셀로나를 맡고 있을 시절,

홍명보는 입단 제의를

받은 적 있으며

 

당시, 나름

홍명보와 플레이스타일이 겹치던

과르디올라가

장기적인 부상을 당하며

그를 대신할 선수로

반 할 감독이

홍명보를 원했던 것.

 

하지만,

결국 시대적인 상황상

그 당시

국내선수의 유럽진출은 어려웠고

지금까지도 홍명보가

그 때에 바르셀로나 또는 다른

유럽 팀으로 갔을 경우

성공했을 지에 대한

찬반이 나뉘고 있기도 하다.

 

.

.

.

 

06. 홍명보의 일본 만화가 존재한다

 

" 홍명보 이야기 " 제목의

일본 만화가 있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며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얼마나 일본이

홍명보를 축구선수로써

존경하고 인정하는 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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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 홍명보장학재단이 있으며 자선경기도 매년 치뤘다

 

홍명보장학재단을 본인 스스로 만들었고

2003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자선축구대회를 열어

 

기부를 했고

다 모인 금액은 22억이

넘었다는..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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