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에서
자신의 폼을 최고로 끌어올렸고
그 후,
바르셀로나에 합류하여
공격 삼각편대를 이루면서
무수한 우승을
만들어 낸 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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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기와 맞물려
함께 하며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고
지금까지 자리하고 있는 선수이다.
다비드 비야의
유망주 시절은 그닥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편이었는데
신장을 비롯해서
피지컬이 뛰어난 편이 아니였고
그가 속한
지역 라리가 팀은
그러한 평가를 토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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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르팅 히혼에
입단하며
프로 데뷔에 성공한 그는
00-01 시즌을
기점으로 1군에 안착했으며
나름 준수한 득점력을 바탕으로
스포르팅의
주전 공격수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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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르팅 히혼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팀의 스타들을
팔아야 하는 이슈가 생겼고
마지막 시즌,
모든 공식경기를 통틀어
득점력을 보여준
다비드 비야를
영입하는 데 성공한 구단은
그는
사라고사 첫 시즌,
17골을 기록하며
연착륙에 성공했고 꾸준하게
득점력을 발휘하며
자신의 가치를 높여가기 시작했는데
스포르팅에서도
그랬듯이
구단은 점점 더 몸값이 높아지고
가치가 커지는
선수들을 팔아 구단 재정을
유지해야하는
비슷한 형태로
다비드 비야는 발렌시아로
이적하게 되면서
구단 재정에 도움을 준다.
다비드 비야의
가장 큰 장점은 다른 것 필요없이
수비라인을
귀신같이 무너뜨리고
단독 드리블에 의한
그의 득점은
전매특허가 되었고
무엇보다
레알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
강팀을 상대로
연이어 득점을 터트리면서
큰 경기에
더욱더 강한 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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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를 대표하고
스페인 라리가를 대표할 수 있는
공격수로 성장한
비야의
골 퍼레이드는
더더욱 강도를 높여갔고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다비드 실바, 후안 마타 등과도
호흡을 맞추는 등
이어간 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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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첫 해트트릭을
라리가 역사상
최단시간 해트트릭 기록으로 만들었고
06-07 시즌,
레알에서 이적한
모리엔테스와 투톱을 이루며
그 해에
챔피언스리그에도
데뷔한 시즌이기도 하며
가장 빛나는 시기 중 한 순간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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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을 거듭할수록
비야를 원하는 빅클럽을 많아졌고
본인 스스로
최대한 팀에 남는다는
의견을 밝히기는 했지만
다시 한번,
소속팀에게 거액의 이적료를
선물하면서
이적을 선택했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점점 더 무르익어 세계를 누비는
2009년,
다비드 비야는
발렌시아와 스페인 국대를 통합해
메시, 호날두
바로 뒤를 충분히 이을 수 있는
임팩트를 보여주기도 했다.
메시, 페드로와 함께
공격을 이끌었고
메시가 펄스나인(가짜 9번)
롤을 맡으며
비야 본인은
왼쪽 윙 포워드로 나오며
득점을 마무리 짓는 역할을 담당.
이상하게
바르셀로나에서 비야는
어느정도 득점을 올렸지만
팬들이나
전체적인 언론의 평가는 박했는데
일단 꾸준한 편은
아니였고
세계 최고 메시가
너무 잘하다보니 왠만해선
묻혔다는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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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첫 시즌,
분명 준수한 성적.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도
맨유를 상대로
쐐기골을 터트리는 등,
밥값은 충분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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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나머지 두 시즌은
첫 시즌보다 훨씬 빈약했는데
산체스가
새로운 경쟁자로 영입 되었고
비야는 부상까지
당하게 되면서
유로2012 출전 좌절과 함께
임팩트가 적었고
세 번째 시즌이자
바르셀로나 마지막 시즌,
확실히
발렌시아 시절
보여주었던 폼보다 훨씬 더
떨어진 모습을
보이면서
점점 더 주전에서 밀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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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보여준 클래스가 있기에
토트넘, 아스널 등
EPL 구단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었는데
그를 영입한 팀은
예상외로
100억도 되지않는
생각보다는 저렴한 이적료를 남기며
이적에 성공한다.
ATM 데뷔전이
애석하게도 바르셀로나 전이였고
시작은 좋았지만
전체적인 시즌 평균으로는
무난한 편.
한 시즌
나쁘지 않은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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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챔스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했지만
개인으로써는
세 번째 정상을 차지했고
결과적으로
ATM에서 디에고 코스타에 이은
득점 2위를 기록하며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
만수르가
미국 프로축구팀을 만들었고
그것이 뉴욕시티.
다비드 비야는
두 번째 선수가
첼시의 레전드
프랭크 램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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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티는
개막 일정에 맞춰
선수 엔트리를 맞추지 못하면서
한 시즌 후,
시즌을 치르게 되었고
비야는 그동안
뛰기도 했으며
우여곡절 끝에
뉴욕 시티 유니폼을 입고
미국 무대를 누비며
나이가 들었지만
클래스 있는 모습을 바탕으로
득점력을 뽑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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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거의 리그 모든경기에
출전했으며
좋은 활약을 토대로
나이가 무색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다음 해,
경이로운 골 페이스를 보이며
클래스와 함께
기염을 토했다.
이렇게
유종의 미를 거두며
뉴욕에서
깔끔하게 은퇴를 선언하는가 싶었는데
오잉? 왠일인가
비야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섰고
나름의
깜짝이적이였고
30대 후반으로 가고 있지만
빅클럽에서만
뛰었던 비야에게는
새로운 도전.
고베에는
이미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에서
함께 활약했던
더불어
왕년에 독일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던
포돌스키도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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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많은 스타들이
말년기에
J리그에서 뛴 바 있는데
그나마
13골을 넣으며
J리그 전체 득점랭킹 5위를
기록했고
마지막 커리어에
우승 트로피를 하나 더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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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을 달며
유니폼 판매도 많이하고
굿즈도 판매량이
훌륭한 편이라,
높은 연봉을 줬음에도
전~혀 구단측에서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였다는 평가.
그렇게
다비드 비야는
J리그에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우선
그것만으로도
다비드 비야의 A대표 활약은
클래스가 다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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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처음으로 A매치 데뷔했으며
2006 독일월드컵 이후,
라울이 국대에서 멀어지게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국대 주전자리를 차지.
그리고
유로2008과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환상적인 퍼포먼스로
팀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가장 꾸준하고
중요한 순간에 득점을 올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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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골절상으로
회복시간이 모자란 탓에
유로2012에
참가하지 못했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에도 승선했지만
아쉬운 성적.
월드컵 이후에
꽤나 오랫동안 A대표와
멀어졌던 그는
미국 무대에서의 좋은 활약을 통해
약 1,000일만에
국대에 재승선했으며
2018 러시아월드컵 예선은
함께 했지만
다시 부상이 터지면서
정작 월드컵에는 승선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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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공식적으로
국대에서 은퇴를 선언했으며
큰 무대에서 강했고
스페인 전성시대에 주전 공격수로
더할나위 없는
활약을 보이며
국대 생활을 마무리 했다.
축구실력과 함께
잘생긴 외모로 인기가 많았으며
바르셀로나 시절에도
잘생긴 선수로 항상 먼저 꼽히기도 했으며
스페인 국대에서도
외모순위에서 밀리지 않는 클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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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스 부부와
사이가 굉장히 좋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래서 였을까?
비야의 둘째 딸 이름을
토레스 부인의 이름, 올라야를 따서
그대로 지었다.
(인터뷰를 통해 직접 밝힌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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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 시절,
축구 팬이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가져와
사인을 요청했고
자신은 발렌시아 유니폼에만
사인 한다며 거절했는데
오잉?
그랬던 그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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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다수 팬들은
동계 올림픽과 축구선수인 비야가
무슨 연관성이 있는 지
의문을 가졌지만
한 켠에는
세계적인 스타가
홍보대사가 되는 것 만큼
좋은 홍보 수단이
없다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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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라인을
너무나도 잘 깨는 유형이었고
특유의 감아차기
능력을 가진 선수였기에
스트라이커였지만
윙어로도 많이 활약했으며
그러한 패턴으로
무수히 많은 득점을 올렸다.
비야는 대표적으로
양발을 균형적으로 잘 쓰는 선수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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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이름 순서에 따라
1~5위 순위 작용.
메시
호날두
수아레즈
비야
네이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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