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에서
커리어 대부분을 보냈던
공격수로
엄청난 득점력과 함께
제대로 수행하며
분류되는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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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감독을 역임하고 있으며
중요한 경기에서
더욱더 높은 골 결정력을 바탕으로
많은 우승을 안겼던
공격수로 평가 받는다.
ATM 서포터였던
아버지의 영향에 따라
가입하여 뛰었지만
재정적인 여파로
잠시 ATM 유스 정책이 멈춘 사이,
또 다른 마드리드
후에 회자되길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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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95 시즌,
만 17세 나이로 1군에 데뷔했고
그 해에
그는 슈퍼스타가 될
자질과
준비성을 가진 선수였고
윙어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주로 뛰었던
그를 스트라이커로
적립 시켰던 인물은
그 당시,
98-99 시즌 25골,
00-01 시즌 24골을 기록하며
특히,
큰 무대인
챔피언스리그에서의
라울 활약은
더욱더 돋보였는데
이 시기와 맞물며
그는 이에로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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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 시즌은
리그와 챔스 득점왕과 함께
챔스 우승까지 거머쥐며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발롱도르 수상도
유력했으나
아쉽게도 마이클 오웬에게
자리를 내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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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은
레알 마드리드 팬들이
사랑하는
스타가 되었고
그는 갈락티고 정책에 따라
2선에 위치하여
다른 롤을
부여받기도 했지만
불평 하나없이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호나우두, 피구, 지단, 베컴 등
레알 마드리드는
슈퍼스타들을
모조리 영입하며
라인업을 꾸렸고
마이클 오웬이
후보명단에 있었을 정도니,
그야말로 레알은
스타들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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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갈락티코 정책에 따라
슈퍼스타들을
중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레알은 기존의
주전 공격수였던
스트라이커가 아닌
조금 더 쳐진 자리에서 뛰기를
원했고
라울은 군말없이
맡은 역할을 수행.
이것이
모든 이유가 될 순 없지만
라울은 스탯 자체가
예전보다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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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 역시
라울의 그러한 희생을
헤아리지 못하며
그가 부진하다 비난하는 여론들이
꽤 발생하기도 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울은 여전히 좋은 활약과
특히 챔스에서의
도드라지는 득점력을 통해
팀에게 여러 번
귀중한 승리를 안겼다.
갈락티고 1기는
엄청난 돈을 투자해
슈퍼스타들을 끝없이 영입했지만
생각만큼 우승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렇게 1기가
쓸쓸하게 막을 내리는 데,
이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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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감독이
꿈의 조합으로 영입을 계획했다고
밝힌 적이 있는
조합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이루어졌고
서로가 다르지만
영리하고 좋은 움직임을
보이는 두 선수는
환상적인 호흡과 함께
활약했고
라울은 20골에 근접하는
득점력을 스탯으로
다시 찾으며
그야말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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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대 라이벌 팀인
바르셀로나가 그보다 더 월등한
경기력으로
세계를 지배 함에 따라
페레즈 회장은
분노의 영입을 시작하며
만들었고
호날두, 카카를
비롯하여
다시 최고의 선수들을 모으며
라인업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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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도
라울은 꾸준했고
어느 선수와 함께 뛰어도
말 그대로
클래스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과인, 벤제마가
조금씩 레알에 적응하기 시작하고
호날두가
좀 더 공격수 롤을
부여 받았으며
조제 무리뉴 감독이
레알 감독으로 임명됨에 따라
라울이 벤치에 있는
시간이 늘었고
결국 경기출전을 원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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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에서
당연스레
은퇴할 줄 알았던 라울의 이적은
소히 충격적이었다.
이적 후,
초반 10경기에서
무득점을 기록하면서
그는 끝났다,
레알에서만 잘하는 선수다,
말을 들었지만
이내
득점력을 끌어올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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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샬케04를
이끌었으며
말 그대로
클래스를 제대로 실현.
다음 해에
바뀐 감독에 따라
공격형 미드필더로 내려 앉으며
제한적인 역할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스탯으로
여전한 모습을 보였고
샬케04 팬들은
라울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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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이 만료되며
라울은 팀을 떠났고
팀에게
우승을 안긴
라울에게
일시적인 영구결번을
진행하기도 했다.
카타르 리그로
건너간 라울 곤잘레스는
국내 팬들에게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K리그 팀과
경기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기대감을
가져올 수 있는 부분이였지만
그 해에
팀이 4위에 그치며
이루어지지 않았고
꽤 오랫동안
알 사드 소속으로 뛰었지만
아무래도
변방리그이다보니
그의 관련된 소식도
많이 발생하지는 않은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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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레알 복귀설도 있었지만
그는 2014년
조금씩 성장세를 갖추고 있는
발길을 돌렸고
그를 영입한 팀은
뉴욕 코스모스.
그 곳에서
꾸준하게 득점을 올리는 등
준수한 활약으로
미국에서도
우승을 경험하는
라울 곤잘레스의 말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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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팀 동료였던
마르코스 세냐와 함께
2014년 11월,
현역 은퇴를 선언한다.
결론적으로
물론,
스탯상으로 득점력은
준수했으나
대부분 약팀을 상대로
몰아서 넣은
득점이 대부분이고
오히려 큰 메이저 대회에서는
부진하거나 부상으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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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그가
국대에서 배제된 후,
사비, 이니에스타를 중심으로
스페인이 전성기를
맞으며 더욱더 비교가 된 것도 있지만
확실히 라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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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은 모리엔테스와
국대에서의
좋은 투톱 형태를 가져가며
불리기도 했으며
마치 예전
잉글랜드가 보여주었던
오웬과 헤스키
조합이랄까?
2002 한일 월드컵에서
3골을 넣으며
좋은 폼을 유지했으나
대한민국과의 8강을 앞두고
소소한 부상으로
그 당시,
당연히 대한민국은 이기겠지
라는 생각으로
라울을 아껴두었다가
제대로 일격을 당하기도 했다 :)
레알의 선배이자
레전드로 불리는 디 스테파노를 넘어
구단 역대 최고득점자
기록을 깼던 라울은
호날두의 등장으로
역대 2위의 기록으로 밀린 바 있다.
호날두의 위용...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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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반테FC는
라리가 최종전을 앞두고
구단과의 입금체불에 대한 문제로 인해
파업 직전에 있었고
그 문제를 알고있던
라울은 레반테 주축 선수들에게 연락 해
레알 VS 레반테
자선경기를 추진하여
모금 형태로 체불을 해결해준다 식으로
훈훈함을 선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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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이었다라는
과거형이 붙은 이유는
메시와 호날두의 존재가 있기 때문.
두 선수에 의해
라울의 누적기록은 어느정도
빛이 바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챔스에서
여러 업적들을 남겼다.
142경기 출전
챔스: 71골(역대 3위)
유럽대항전: 77골(역대 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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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즉 반지에 키스를 하는
세레모니는
2002 한일 월드컵 안정환 선수로
국내 팬들은
많이 기억할 수 있지만
세계적으로
라울은 꽤 오래 전부터
이 세레모니를 즐겨 했었고
원조 격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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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감독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공식적으로 라울에 대한 언급과 칭찬을
꽤 여러 번 했으며
실제로
그가 레알에 있고
샬케04, 심지어 카타르에서 뛸 때에도
그에 대한 영입을
계속해서 시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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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닷컴은
시대별 공격수 베스트5를 선정했고
라울은 2000년대
5위로 선정.
이름 순서에 따라
순위가 동일하다.
앙리
클로제
에투
델 피에로
라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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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4골을 넣으며
역대 2위에 이름을 올렸으며
역대 1위는
다비드 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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