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국적
축구황제 펠레와 함께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로 평가받는
디에고 마라도나.
월드컵에서
일명 신의 손 주인공이 되며
역대급 장면을
만들어 내기도 했으며
현재 메시 이전에
공식이 존재했다.
나폴리에서
클럽 최고 전성기를 보냈으며
1986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며
축구선수로써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뤄낸
최고의 슈퍼스타.
축구의 신
조심스레 기리며 돌아보자.
그의 프로 첫 무대는
자국리그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되지도 않은 나이에
1군 무대에
데뷔했고
6년간 팀에서 활약하며
그야말로
환상적인 경기력으로
자국은 물론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는데
6년간
기록하며
리그 득점왕 타이틀도 기록했으며
1979년과 1980년,
당시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받는
브라질 지쿠를 누르고
.
.
.
18살의 나이로
팀의 주장을 맡았으며
리그에서도
최우수선수로 선정되는 등
반열에 이름을 올리는 클라쓰.
그렇게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지금도 명문이지만
그 때에는
더욱더 명문으로 꼽히는
보카주니어스로
최대 이적료를 발생시키며
이적했다.
1981년
자신의 꿈과도 같았던
보카주니어스로
이적했으며
당시 최대 이적료를 발생시키며
자신의 프로데뷔를
이끌어 준
아르헨티노스에게
크나큰 선물을 안겼는데
여담으로
마라도나의 집안은
굉장히
가난한 편이었으며
판자촌에서 살아야하는 수준.
이 때,
공터에서 유달리
축구를 잘하는 어린 마라도나를
아르헨티노스 스카우터가
지켜보게 되었고
그를 스카우트 하면서
프로 데뷔 때,
구단에서 그에게 집까지 선물했다는 일화.
.
.
.
이적 후,
곧장 팀의 에이스가 되어
우승을 시켰고
엄청난 활약으로
이미 세계적인 스타로
나아가던 그는
보카주니어스에서는
20대 초반의
어리지만
최고의 슈퍼스타.
세계적인 언론들은
그 당시
이미 슈퍼스타 반열에 있는
루메니게, 지쿠, 펠레 등과
비교하며
그를 높게 치켜세웠고
자국리그에서
이룰 것을 모두 이뤄낸
마라도나는
300만 파운드라는
당시에는 굉장히 파격적인 이적료를
발생시키며
1982 스페인월드컵이 끝난 후,
이미 그를
여러 번 지켜보았던
바르셀로나가
마라도나를 영입.
두 시즌동안
활약했고
총 58경기를 뛰었으니
꽤나 많은 경기를
결장한 셈인데
간염이 걸려서
오랫동안 결장한 시기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빌바오의 수비수
고이코에체아의
악질적인 태클로 인해
6개월 이상
재활까지 해야했다.
여담으로
고이코에체아는
한 매체에서 선정한
역대 최악의 수비수로 선정되는 등
거칠기도 소문났던 선수.
.
.
.
엘 클라시코
데뷔전에서는 2어시를 기록하며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고
역대 6번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
왜 그가 최고인 지 입증.
마라도나는
경기에 출전할 때마다
급이 다른
경기력과 퍼포먼스로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지만
부상이 잦았고
이 때에 재활로 자국으로 돌아가
코카인을 흡입하고
여자 스캔들이 터지는 등
각종 구설수에
이름을 오르며
.
.
.
결과적으로
마라도나는 두 시즌 뛴 후,
팀을 떠났고
가장 화려한 유럽생활을 했던
나폴리로
전설적인 이적.
마라도나 이름값에 비해
바르셀로나 시절의 활약과 우승 횟수는
아쉬운 수준이지만
지금도 바르셀로나 역대 베스트11에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걸로 보아
역시 전설적인 실력과 활약을
보여준 그.
세리에A에서 중하위권에
머무는 수준이었고
말 그대로
그랬던 팀을 마라도나가
팀에 합류하며
리그 우승팀으로 만든 것.
당시
엄청난 이적료를 쓰면서
재정도
넉넉치 않았던
나폴리 구단은 과감하게
마라도나를 영입했고
그가 나폴리에 오자마자
그 해 시즌권이
이적료를 곧장 회수했다는 후문..ㄷㄷㄷ
.
.
.
나폴리 이적 후,
올려 놓았으며
88-98 시즌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는 데
말 그대로
조금 말을 심하게 해서
당시 최고의 리그로 평가받던
세리에A에서
듣보잡으로 평가받던
나폴리 구단을
본인이 중심이 되어
우승 시켰다는 건
마라도나의 업적을 높게 살 수 밖에 없는
실로 대단한 부분.
마라도나는
축구의 신으로 불렸으며
나폴리팬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축구 팬들에게도 엄청난 인기를
가졌던 선수.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으니
바로 이탈리아에서 개최되었던
1990 월드컵.
4강에서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가 만났고
운명스럽게도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은
나폴리의 홈구장.
경기 전,
마라도나는
" 나폴리 팬들은 이탈리아가 아닌
나와 아르헨티나를 응원해라 "
망언을 했고
이탈리아 국민들은 비난.
.
.
.
결국 경기에선
마라도나의 활약을 바탕으로
아르헨티나가 승리했고
이것에 격분한
비슷한 예로
2002 한일월드컵에서
페루자 소속이었던
안정환이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결승골을 넣자
이탈리아 국민들과 페루자 구단이
그를 외면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보면 될 듯?
그렇게
월드컵 그 결과 이후,
최고의 슈퍼스타이자 축구의 신으로
불렸던 마라도나는
이탈리아 시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유명인이 되었고
더불어,
예전부터 문제 삼지 않았던
마라도나의 코카인 흡입,
그리고 여자문제 등
축구를 잘하기에 그냥 넘어갔던
문제들을 끄집어내며
.
.
.
결국 이탈리아 정부는
그에게 코카인 복용과 매춘 등
문제 삼으며
20년형을 선고했고
마라도나는
벌금을 내며 풀려났고
그렇게 구단과 팬들의 외면을 받은 채
나폴리 생활을
쫒기듯 마무리 해야했다.
자신의 은사가
감독으로 있던 세비야로 이적했으며
코카인 중독과 함께
체중관리에 실패했던 마라도나는
전성기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큰 활약은 없는 편.
그 후,
마지막 소속팀으로
보카주니어스를 선택하며
자국으로 돌아갔고
1997년 현역 은퇴를 선언하며
축구의 신
마라도나의 클럽여정은
끝이 났다.
1977년
A대표로 데뷔했으며
1978년 월드컵을 앞두고 국민들은
10대의 어리지만
기량이 출중했던 그가
월드컵에 출전하길 원했으나
당시 국대 감독은
시기상조라며
그를 뽑지 않았고
결국 마라도나 없이도
아르헨티나는 월드컵에서 우승했고
마라도나 역시
그 다음 해
서로에게 윈윈이 된 선택이었다.
.
.
.
그 후로
마라도나는 국대에 승선했고
에이스가 되었으며
각종 메이저 대회에서
맹활약하기 시작.
1982 월드컵에도 참여했고
고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1986 월드컵에서
환상적인 활약을 보이며
다시 한 번 거듭나는데
조별예선에서
대한민국과 상대하기도 했다.
이 대회에서
마라도나는 역대에 남을
명장면들을
여러차례 만들어내는데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득점했고
지금과 같이
VAR 제도가 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상황을
만들며 지금까지도
회자가 되고있다.
월드컵 역사 상
최고의 골로 당연히 꼽을 수 있는
후에 리오넬 메시가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으며
리그에서 비슷한
득점을 올리며
불리기도 했다.
.
.
.
확실한 건
아르헨티나 동료들의 실력도
분명 좋았으나
1986 월드컵 우승의
그는 중요한 순간,
득점과 좋은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조국에게
월드컵 우승을 안겼고
본인에게도
커리어 사상 첫 월드컵 우승.
1990 월드컵에도
참여했고
팀을 결승까지 올렸지만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하게 되면서
2연속 월드컵 우승
도전은 실패했다.
.
.
.
그의 마지막 월드컵은
1994 미국월드컵이었고
34살의 노장인
그였기에 출전 자체가 확실하지 않았지만
어떻게 보면
등 떠밀려서 나왔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폼이 좋지 않은 시기.
그리고
역시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과 함께
조별 예선에서
환상적인 경기력으로
팀의 대승을 이끌었고
이대로 다시 우승모드로 가나 싶었는데
그는 미국을
떠나야했고
결국 아르헨티나는 본선 나머지
경기를 마라도나 없이
치뤄야 했으며
16강에서 허무하게 탈락했다.
.
.
.
마라도나는
이 대회를 끝으로
국대에서 은퇴를 선언했으며
축구의 신 답게
월드컵과 같은 큰 무대에서
더욱더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마라도나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데
그는 드리블러였으며
각종 기술과 스피드를 가진 선수였고
더불어 플레이메이킹이
누구보다 뛰어났다는 점에서
정말 막을 수 없는 괴물과도 같았고
정~말 그를
놔두면 지기 때문에
상대방을 90분내내 그를 압박해야했다.
.
.
.
마라도나의 최대 라이벌은
축구 황제 펠레를 꼽는 팬들이 많은데
사실 두 선수는
시대가 겹치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 비교는 어렵고
오히려 마라도나와 포지션도 흡사하며
동시에 뛰었던 선수로
본인 스스로
라이벌로 꼽았던 선수는
독일 전설 마테우스.
마테우스의
전성기가 마라도나의 말미와
가깝다는 의견도 있지만
같은 세리에A에서 뛰기도 했으며
여러가지 정황 상,
가장 많이 부딪힌 라이벌 인 듯?
.
.
.
축구 역사의
역대 최고의 선수를 꼽을 때
펠레와 마라도나가
1, 2순위를 다투고 있으며
현역에서는
메시가 존재하고있다.
실제로
펠레는 그렇다치고
메시와 마라도나를 서로 비교하며
누가 더 최고냐고
갑론을박을
펼치는 축구 팬들이 많은데
많은 전문가들은
서로 포지션이나 스타일이 다르거니와
시대별 축구 흐름이 달라
직접 비교는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그것과는 별개로
마라도나는 메시를 매우 아끼며
그를 끝없이 칭찬했고
월드컵에서
감독과 제자로 만났을 때에도
그가 부진해도
감쌌으며
월드컵 우승 커리어가 없는
메시를 비난하자,
" 메시는 이미 월등하기에 월드컵 우승으로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는 선수다. "
라고 두둔한 바 있다.
더불어,
자신을 능가하는 선수가
나온다면
그게 자국의 선수가 되길 바라며
메시는 아직 현재진행형의 선수이기 때문에
나와 펠레를 능가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
.
.
실력으로만 본다면
너무나도 위대한 선수였지만
그는 전성기 시절에도
꾸준하게 마약을 복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으며
1991년
코카인 복용 사실이 발견되며
15개월 선수 금지명령이
내려졌음에도
후에 계속 마약을 했으며
은퇴 시절에도
마약은 꾸준히 했다는 후문.
은퇴 후에도
마약으로 인해 심장발작이
오기도 했으며
사망의 원인 역시
마약과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보여지고있다.
.
.
.
나폴리 시절,
탈세를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은퇴한 후
최근까지 체납을
해야하기 때문에 이탈리아 여행도
가지 못하는 신세.
그렇기 때문에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
감독 시절에도
국대 선수들을 꾸리기 위해
선수들의 컨디션을
체크하기위해
경기를 보러가야하지만
세리에A에서
뛰는 선수들은 직접 체크 못하는
웃프닝 발생.
그가 이탈리아 정부에
뱉어야하는
금액은 알려진 것만
500억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
.
.
아르헨티나가 극적인 골을 넣자
흥분한 나머지
카메라에 대고 손가락 욕설을 하며
눈살을 찌뿌리게
만들었으며
한국 팬들에게 인종차별적인
행위를 펼치며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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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 마라도나교 " 이며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에서 존재하고 있으며
말 그대로 하나님과 마라도나를
동일하게 여기면서
그를 신격화한 종교이다.
.
.
.
그의 위대한 득점장면들이
워낙 많아서
주 포지션을 스트라이커로 생각하는 팬들이 많지만
실제로 그가 뛰었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
그래서 A매치 역대기록을 보면
91경기 34골로
펠레나 내놓아하는 공격수보다
득점빈도 낮은 편.
하지만 다시 말해서
그는 스트라이커가 아님에도
저런 스탯을 남겨으니
그야말로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
.
.
마라도나가 뛰던 시절에는
발롱도르 시상식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고
그는 받을 기회가 없었는데
주최 측에서
축구의 신에게 어떻게든 상을
주고 싶었나보다.
발롱도르 명예상을 만들어
기여코 그에게
상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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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라도나의 친한 친구의 딸이
병에 걸려
수술을 해야하는데
돈이 부족했고
그 사실을 알았던 마라도나는
선뜻 수술비 제공.
그런데 알고보니
마라도나 친구의 아들이 포를란이었고
본래 테니스 선수였던 그는
마라도나의
그러한 모습에 감동받아
축구선수로 전향했고
우루과이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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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그럼에도 마라도나는
꾸준하게 유니폼 판매순위에서
10위권 안에
들고 있다는 후문.
.
.
.
맨시티 소속의
아구에로가 마라도나 딸과 결혼하며
사위가 되었으며
현재에는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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