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되면서
KBL를 누볐던 포인트가드.
현재에는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완전 귀화한 상태이며
유튜버 등
다양한 방송활동으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중.
.
.
.
아마추어 때,
미국에서 농구를 했으며
NBA 도전에
실패하자 눈을 돌려
전성기가
조금은 지났다고 평가되는 시점에
한국무대를 왔음에도
국내 최정상 가드를 능가하는
기량을 보여주며
농구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그.
그의 미국 이름은
아버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고
어머니가 한국인.
디트로이트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미국인 아버지와
디자인 공부를 위해서
유학을 왔던 한국인 어머니였는데
아버지는 프로까지는
아니더라도 농구선수 출신이었고
그 영향이 어느정도
그가 농구선수로
꿈을 꾸는 이유가 되었을 터.
LA에서
꽤 오랫동안 살다가
Berkmar High School에 진학하여
농구를 계속했으며
기량 발전으로
팀의 에이스로 성장하면서
조지아주
최고의 선수로
꼽히기도 했으며
바로 이 때.
.
.
.
그의 실력을
지켜보았던 수많은 대학들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전태풍은 결국
집에서도 가깝게 다닐 수 있고
장학금을 100% 안겨주는
고등학교에 비해서
미국 대학농구의 수준은 너무나도 높았고
전태풍 역시
어려움을 겪었으나
조금씩 꾸준히 발전했고
스탯은 모두 하락했지만 이 때에
미들슛을 포함하여
슈팅의 정확도를 높이고
포인트가드로써의
역량을 더욱더 키웠다고 한다.
.
.
.
준수한 활약이었으나
신체 사이즈의 한계를 비롯하여
현실적으로
그가 NBA로 가기엔
부족했고
결국 대학 졸업 후,
그는 유럽 무대로 눈을 돌려
프로생활을 시작했고
다양한 리그에서
프로생활을 이어갔으며
그가 기록했던
평균적인 스탯은
전성기를
모두 유럽에서 보냈으며
2009년,
KBL 혼혈 드래프트가 새롭게 열리며
그는 어머니의 나라에서
뛰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되었다.
KBL 최초로 열렸던
혼혈 드래프트에서 전태풍은
지명되며
KCC 유니폼을 입었고
허재 감독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허재의 KCC는
확률상 1순위를 가져갈 가능성이
가장 낮은 구단임에도
그 확률을 깨고
1순위 지명권을 얻었고
이상민이
삼성으로 가게 되면서
포인트가드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KCC는
전태풍을 영입하며
가드진의 숨통을 틀 수 있었다.
.
.
.
이 때에
KCC에 합류했고
개막 후,
차원이 다른 드리블 능력과
준수한 슈팅력.
그리고 공수 조율을 가져오며
KCC의
신바람 농구를 이끌었는데
어느정도 분위기에 따라
컨디션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편이라 편차가 좀 심한 편.
그를 1:1로
막을 수 있는 국내선수들이
존재하기 어려웠고
시원시원한 플레이와 함께
인터뷰에서
어눌하지만
귀여운 한국어 말투로
웃음을 선사하는 등
실명을 굳이 거론하지 않겠지만
말이 혼혈이지
한국어를 배울 생각도
하지않고 영어만 쓰는 타 선수에 비해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애정을 보이는
전태풍에 대한 시선과 평가는
더욱 높아졌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그의 활약상은 늘어가는 한국어처럼
점점 더 좋아졌고
결국 2011년,
챔피언전에서 승리하면서
따내는 등,
영광의 순간을 함께 했는데
이 때에
바로 혼혈 선수들은
3년간 소속팀과 계약할 수 있으며
그 계약이 끝나면
다른 팀으로 무조건 이적해야한다는 것.
.
.
.
은퇴 후,
하승진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하여
이러한 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말도 안되는 제도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 바 있는데
사실, 여러가지
의견들이 나올 수 있지만
더욱더
논란이 되었던 건
캐나다 국적을 가지고 있던
같은 경우에는
일반 선수로 분류가 되어서
모비스와
계약을 모두 채운 후,
FA로 나와
SK와 계약을 맺었고
5억이 넘는
연봉을 수령했던 전적이 있기에
차별로 여겨질 수 있다.
.
.
.
어찌되었든
KCC에서 3년을 보낸 후
다시 혼혈 드래프트 시장에 나온 그는
기존의 혼혈 선수를
영입한 이력이 없던
구단들과 계약을 할 수 있었고
그 중,
가드진에 곪머리를 앓고 있던
그에게 최대 입찰을 하면서
이적하게 되었다.
김승현의 공백으로
가드진의 아쉬움을 가지고 있던
오리온스에게
전태풍의 합류는
큰 힘이 될 전망이었고
실제로 그는
오리온스 유니폼을 입은 뒤
개막전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순탄한 오리온스 생활을 예고했다.
.
.
.
결국 이 해에
평균 6.1개의 어시스트로
자신의 첫 어시스트왕 타이틀을 따냈고
기록적으로 좋았지만
전체적인 평가는
오고있는 것 같다는 평가.
더불어
동료 선수들과의
호흡도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면서
부진에 빠졌고
오히려 그가
벤치에 있는 시간들이
늘어나면서
겉도는 느낌을 주었는데
결국 그는
트레이드를 통해
KT로 이적하게 되었으며
전태풍은
트레이드 결정 후,
인터뷰를 통해
라는 말을 할 정도로
오리온스와
맞지 않았으며
추일승 감독과 불화가 있었음을
말하기도 했다.
시작은 좋았으나
전태풍의 폼은 점점 더 떨어졌고
전태풍-조성민
조합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KT 중심은 조성민이었고
전태풍은
전창진 감독이 이끄는 여러가지 전술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스스로
자신감도 떨어진 모습.
이 때에
성장세를 보이는
김우람에게 주전에서 밀리기도 했으며
후에 인터뷰를 통해
폼과는 별개로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위축이 되는 시기였다고 말했으며
시즌을 거듭할수록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
.
클래스가 있기에
간혹 20점을 넘는 득점을 비롯하여
수비를 농락하는
드리블을 보여주는 등
반짝하는 경기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KCC시절 보여주었던
꾸준한 모습이 나오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KT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마지막 시즌엔
팀이 플레이오프 진출 탈락하며
전태풍 KBL 커리어 사상
첫 플레이오프
탈락을 함께 했으며
다시 한 번
3년 계약이 끝나게 되면서
혼혈 드래프트
시장에 나오게 되었고
그를 영입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서로 경쟁하게 되었으며
이 때에
다시 한 번 이러한 규정에 대해
전태풍은
목소리를 높여
비난했다.
계약기간 2년,
친정팀 KCC로 복귀했으며
이 때 일화로
하승진이 자신의 연봉을 낮추며
반드시 전태풍을
잡아달라고
구단에 부탁했다고 한다.
이렇게
KCC에서 만났고
전태풍은 포인트가드 롤을
부여받고 싶었으나
팀에는 김태술이란 존재가 있었고
용병 에밋은
전형적인 온 더 볼 플레이어로
역시 공 잡는 시간이
많아야 하는
전태풍과 롤이 겹칠 전망.
.
.
.
첫 시즌,
KT 시절 보다는
훨씬 더 나아진 모습을 보이며
플레이오프에서도
활약하는 등
폼을 조금씩 찾는 모습.
한 때
MVP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폼을 찾았고
결국 양동근에게 밀려
MVP가
되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반등할 수 있었던 시즌.
16-17 시즌은
크게 부상을 당하며
흔히 야구선수들이 많이하는
받으며 시즌아웃 되었고
이듬해
복귀해서 어느정도
준주전급으로 활약했고
팀에는 여전히 영향력이 강하고
볼을 오래 만져야 하는
에밋이 있었기에
전태풍에겐 제한적인 롤이 주어졌고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며
시즌 마감 뒤,
KCC와 1년 재계약에 서명했다.
KCC와의
1년 재계약 후,
사실상 주전에서는 멀어졌고
구단에서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자
역할을 부여받아 뛰었다.
그렇게
시즌을 마감하고
다시 한 번
재계약 얘기가 오고가야하는 시점.
이 때,
KCC 단장이 전태풍에게
은퇴를 권유하며
화가 난 전태풍은
자신의 개인 SNS을 통해
이와 같은 사실을
공개해버려 파문이 일어났는데
바로 하승진의
퇴장 시기와 맞물려
파문이 일어난 지 얼마되지않아
바로 벌어진 일이라
KCC 구단과 단장은 엄청난 욕과 비난을
받아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
.
.
간단하게 말해
전태풍은 돈을 요구한 적도 없으며
선수로써 뛰는 모습을
보이며 은퇴를
하고 싶었던 의견이 컸는데
몰아간 것.
.
.
.
결과적으로
전태풍은 구단과 이별했고
자신이
KBL 무대를
처음 누비며 활약했고
다시 복귀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했던
서울SK와
1년간 계약하며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고
그가 FA가 되면서 영입의사를 보였던
구단이 한 곳도 없었지만
이대로 은퇴하기엔
너무 아쉬운 마음에 SK와 삼성에게
각각 먼저 연락해
말 그대로 본인을 어필했고
관심을 보였던
문경은 감독이 그와 만남을 주선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것.
.
.
.
전태풍은
주전으로 뛸 수는 없었지만
적절하게
교체로 나와서
쏠쏠하게 활약을 하는 등
주전 선수들의
체력안배와 중요한 순간에
코트를 누비며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이미 자신의
은퇴 시즌임을 공표했기에
그 해 올스타전에도
초청을 받아
오토바이로 멋스럽게 등장하고
객원 해설을 하는 등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
.
.
코로나 바이러스로
리그가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가
그대로 끝을 맺었고
혼혈 선수로써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주며
환호 받았던
본인의 농구에 대한 자존심과 스타일이
확고한 선수라
정면승부를 즐겼으며
도통 헐리우드 액션 및 심판 눈을 속이는
플레이를 피했던 선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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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를 기본적으로 너무 잘하고
어눌해도 한국말을 계속 쓰고 배우려는 자세를
지속적으로 보여주었으며
팬 서비스도 굉장히 좋은 편이라
소속팀은 물론
타 팀에게도 인기가 많아
안티가 거~의 없는 선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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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다큐 " 사람이 좋다 " 에
출연한 적이 있으며
자신의 인생, 농구 커리어,
아내와의 러브스토리 등
자신의 이야기를 이것저것
다 풀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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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youtube.com/channel/UCCN8qgy5DmUGSPeWgCz_Q8g
현역 은퇴 후,
방송인으로 활동할 것이라
말했으며
실제로 개인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활동 중.
처음 개설 후,
1,000명 구독자 이벤트를 걸어
삭발하겠다 공표했으며
정말로 1,000명을 돌파하자
삭발하는 등
유쾌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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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선수생활을 하면서 주기적으로
인종차별을 당했으며
방송에서도
역시 혼혈인 아내와 함께
인종차별에 대한
아픈 기억을 말하기도 했는데
전태풍은
인종차별에 대해
말하길
" 흑인, 백인 모두에게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가장 뼈 아프게 느꼈던 순간은
이미 성장을 다한 후,
한국사람들에게 당했던 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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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C에서 동료로 만나
은퇴한
지금까지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으며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전태풍이 KCC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하승진 스스로 페이컷을
감행하며
전태풍을 데리고 온 바 있다.
은퇴 후,
먼저 방송인으로써
영역을 넓혀가고있는 하승진이
전태풍의 새로운 시작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으며
함께 여러 방송에도 출연하며
훈훈한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고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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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먼저 3:3 농구 세계에 뛰어든
이승준&이동준 형제
권유로
전태풍 역시
3:3 농구선수로 데뷔했으며
처음에는
적응을 못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역시나 클래스를
보여주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MVP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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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instagram.com/p/66nJKNIntx/
178cm의 신장으로
농구선수로써는 굉장히 단신인데
본인이 전성기 땐
덩크를 가볍게 했다고
여러차례 말하기도 했으나
리그, 올스타전에서는
덩크 시도 후, 실패하는 모습을 보였다.
허나, 후에
자신의 개인 SNS 계정에
덩크에 성공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올리기도 했으며
SK 시절,
경기 전 몸을 풀며
덩크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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