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를
대표할 수 있는 슈퍼스타이며
달성했던
다재다능의 아이콘.
현역 시절,
성남을 이끌며 리그 3연패를
두 번이나 기록하는데
주역으로
활약한 경험이 있으며
별명답게
상대방에겐 얄미울 정도로
지능적이고 기술적으로도
훌륭한 모습을
보였던 선수.
.
.
.
자신만의 축구철학과 전술로
팬들에게
사랑을 받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떠안은 월드컵 감독 자리에서
아쉬운 성적으로
경질 형태로 떠나기도 했으며
오히려
그 후, 시간이 지나
안타까운 시기였다고
회자되기도 했고
현재에는
인도네시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감독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영남대를 졸업한 후,
1992년 성남에 입단하게 되면서
K리그에 데뷔했고
그 해에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이듬해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성남은
이 때에
등번호 7번을 달았던
신태용은
우승의 최대 주역으로 활약했으며
성남의 멤버도 화려.
신태용과
주전으로 활약했고
감독은
과격하고 빠따도 서슴치 않았던
박종환이었다.
.
.
.
3연패를 이룬
1995 시즌에 K리그에서
달성하면서
자신의 다재다능함을 입증했고
결국 그 해에
연말에 열린
아시아 챔피언쉽에서도
팀을 정상으로 올려놓는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명실상부
K리그 최고 스타가 되었다.
박종환 감독이 떠나고
계속해서 감독의 변화를 주면서
새로운 도약을
꿈꿨으나
성적은 계속 하락했고
그럼에도
팀의 에이스 신태용은
굳건하게
좋은 경기력으로
팀을 이끌었고
미드필더 포지션으로
득점왕과 함께
다시 한 번
꾸준하게 좋은 활약.
.
.
.
1998년
통산 30-30클럽
가입과 함께
독일 프로팀에게 러브콜을 받아
유럽 진출의
가능성이 높았으나
결국 계약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아쉽게 실패.
천안으로
연고지를 잠시 이전했던
일화는
다시 성남으로 연고지를 가져왔고
그래서였을까?
K리그 명실상부
명문팀의 모습을 다시 보였고
그 중심에는
역시 변함없는 이름 신태용.
.
.
.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좋은 활약을 펼쳤던 공격수 샤샤를
비롯하여
김대의, 김상식, 김영철, 김도훈, 이성남 등
화려한 멤버들과 함께
이뤄낸 3연패 였으며
K리그를 오랫동안 좋아했던 팬들에겐
역대급으로
좋았던 멤버로
이 때에 성남 스쿼드를
언급하는
팬들도 많은 편.
2003년
K리그 최초 기록.
K리그 2020시즌 현재까지
이동국, 에닝요
그리고 신태용 이렇게
세 사람만
가진 기록이니,
정말 위대한 스탯이라 평가.
2004년
시즌이 끝난 후,
FA가 되었으나 성남과의 재계약이
끝내 성사되지 못하면서
K리그를
떠나게 되었으며
프랜차이즈 레전드 선수에게
은퇴식도
제대로 치뤄주지않은
구단의 행보가
팬들에겐 너무 안타까운 부분.
그는 후에 인터뷰에서도
자신은 플레잉 코치 개념으로
연봉이 적어도
뛰고 싶다는 의견을 냈으나
구단에서 거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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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호주로 떠나
선수로써 새로운 출발을 알렸으나
1경기를 뛴 후,
발목 부상으로 결국
그 해
시즌을 마감했으며
커리어를 이어갔으며
이 때에
같이 뛴 경험이 있는
샤샤를
나중에 성남 감독으로 내정되었을 때
데려온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연령별 대표를 모두 걸어온
엘리트 출신이지만
A대표에서는
빛을 바래지 못했던 전형적인 유형으로
경력도 짧고
임팩트도 아쉬운 편.
여러가지
이유들이 존재했으나
국대에는
이미 존재했고
그 역할이나 롤이
신태용과 겹치는 경향이 많아
홍명보에게 밀리며
국대에서의
족적이 짧았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최초 60-60 클럽을 달성한 선수이며
K리그 400경기 출전의 기록도 최초에 기록했던 선수.
K리그에서 2번의 MVP를 받은
몇 안되는 선수이며
통산 99골을 기록한 바 있는데
100호골은 필드골로
넣고 싶다는 고집을 부려 끝내 99골에서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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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은 이란에게 2:6으로 대패했으며
말 그대로 이란 쇼크의 경기.
이 경기에서
신태용은 득점을 기록하는 등
나름대로 선방했으나
팀이 대패를 막지 못했고
운명이었을까? 그 후로 국대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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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MVP는 J리그에 가지 않는다.
(실상은 연봉문제로 안갔다..ㅎ)
- 한국은 월드컵만 되면 3천만명이 감독이 된다.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 라돈치치요? 싸가지 없는 새끼죠.
- 트릭이라고 보면 되겠죠.
(이 놈의 트릭 발언으로 월드컵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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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대행을 맡으며 내건 공약으로
첫승을 거둘 시,
심권호와 함께 레슬링 퍼레이드를 펼치겠다 말했고
결국 팀이 승리하자
약속을 제대로 이행했다..ㅎㅎ
선수 시절은 물론
감독 때에도
그의 팬서비스는 쿨하고 유쾌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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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과 맥락이 이어지는 부분으로
양발을 자유롭게 찼던 신태용은 관중석에서
" 형~ 왼발로 차줘!! "
요청하자
오른발로 차던 프리킥을
왼발로 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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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인 대구공고가
전두환이 졸업한 고등학교이기도 했고
결국 학연으로
그놈이 신태용을 많이 아꼈으며
결혼한다고 알리자
그를 직접 초대해서 음식까지
멕였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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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이하 청소년대표로
뽑히며 화제가 된 적이 있으며
이 때에 멤버로는
최대 유망주였던 이승와 같은 시기였다.
결국 신재원은
FC서울에 입단하게 되면서
K리거가 되었고
현재에는 안산소속으로 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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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호리호리하고 왜소해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는 누구보다 싸움닭 기질을 가진
거칠고 터프한 성격 소유자.
샤샤가 신태용에게
대들자 그에게 싸대기를 시전하며
순한 양을 만들기도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엄연히 폭...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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