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적
성남 일화에서 전성기를 누비며
국대에서도
긴 시간은 아니지만
꽤나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준
레전드 선수.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그라운드에서
그가 보여주는 적토마와 같은
거침없는 플레이와
러닝 크로스 등
뛰어난 피지컬로 한 세대를 주름 잡았는데
전성기가 그리 길지 못하고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해
건국대를 졸업한 후,
1989년 K리그 일화 유니폼을 입으며
데뷔를 하게 되었고
첫 해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며
4골 8어시스트의 준수한 스탯과 함께
일화에서
총 9시즌간 뛰었는데
입단 초부터
적토마를 연상시키는 거침없는 플레이로
그 별명을 얻었고
시즌을 거듭할수록
그의 능력치와 실력은 좋아졌으며
일화 역시
전성기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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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개인 커리어
최다득점을 기록했으며
시즌 베스트11 선정.
더불어
1994년에는
4골 1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2연패를 이끄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시기.
1994년 미국 월드컵에도
조별 경기에
모두나와 풀타임으로 뛰며
국대에서도
완벽한 주전이었다.
일본 J리그는
한일전에서 활약하는 국내 선수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고정운 역시
J리그 세레소 오사카의
러브콜을 받아
일본에 진출했으며
총 2시즌을 뛰며 활약했고
29경기 3골로
활약도가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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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다시 국내로 돌아왔고
그가 계약한 팀은
첫 시즌
적은 출전시간에도
5골 6어시스트로 좋은 활약을 보였고
9월에는
가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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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에도
21경기 9골 5어시스트로
활약하며
여전한 기량을 선보였으나
그 후 2년간
주전에서 밀리며
출전시간도 극히 적은 편이었고
스탯도 떨어지면서
결국 2001년을 끝으로
현역은퇴했다.
1989년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전을 통해
국대에서 첫 데뷔를 가진 고정운은
결과적으로
이 월드컵 엔트리에
들지는 못했으나
1994 미국 월드컵 엔트리에 들었고
본선 3경기에
모두 풀타임 출전하며
톡톡히 해냈는데
득점/어시스트는 기록 못했으나
스페인과 독일 등
강팀들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대회 이후,
평가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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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아시안게임/아시안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고
그 당시
K리그 일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시기가
고정운의 폼이
가장 좋았던 시기.
하지만,
1998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급격히 폼이 떨어졌고
한일전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결정적인
실수로 선제골 빌미를 제공하는 등
결국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가 되면서
그 후로
자연스럽게 국대에서 은퇴했다.
K리그에서 J리그로
이적했던 첫 번째 선구자가 되었고
이전 노정윤은
K리그 입단 거부 후,
J리그로 진출한 사례이니 최초 진출은
노정윤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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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이론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거창한 표현일 수 있기는 하지만
러닝크로스를
국대에서 역대급으로
잘하던 선수로 두 선수가 꼽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또 하나는
월드컵 본선/예선에서
역대급 역주행 드리블을 기록하며
한 명은 실점, 한 명은
8강진출을 날릴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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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최고 활약은
누가 보아도 1994 미국월드컵이다.
득점만 없을 뿐
상대를 가장 괴롭히고
위력적으로 보였던 선수는
고정운이었고
그 당시 2골을 기록하는 등
가장 돋보였던
홍명보와 함께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 선수가
고정운이었다.
다만,
국대에서 전성기가 너무 짧았고
그 후에 임팩트가
뚜렷하게 없었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저평가되는 선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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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뭉쳐야 찬다"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축구 예능이었던
"최수종의 골든볼"에
고정으로 출연하여
일반 시민들과
풋살을 즐긴 적이 있으며
이 때에
정말 재밌게 보았고
이성균, 서동균 등
여러 스타들도 함께 축구를 즐기며
인기가 꽤 많았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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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후,
2014년 SPOTV에서 해설위원으로
데뷔를 한 바 있으며
특유의 구수한 말투와 함께
선수, 혹은 감독까지
해설로 모조리 까내리기 시작하면서
화제가 된 바 있으며
이러한 해설을 두고
기본이 안되어있다는 비난여론 반,
신선하다 의견 반으로 나뉘며
전체적으로 평가는
좋지 못했고
계속 까다가
한 번 잘하는 플레이가 나오면
또 그렇게 아이처럼 좋아하며
칭찬을...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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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미국월드컵 이후,
고정운은 실제 레버쿠젠에게 오퍼를 받았고
개인 에이전트가 없었던 시절이라
차범근을 통해서
오퍼를 했다는....ㄷㄷㄷㄷ
그 당시
이적료 5억, 연봉 2억 5천만원으로
합의점까지 이뤄냈으며
결국 그 당시
수많은 국내선수들이 그러했듯이
국내 구단들의
안일한 태도 등으로
실제로 이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그 당시
K리그 최고 연봉을 받던
김주성이
8천 4백만원이었으니
레버쿠젠의 제시 금액은
상당한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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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 역사상
가장 극적인 승부로 평가되는
1998 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 일본 원정경기.
서정원의 동점골과
이민성의 역전 중거리슛이 화제가 되었으나
처음 선제골을 내줄 때
역주행 드리블로
빌미를 제공했던 고정운에겐
마냥 좋은 기억은
아닐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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