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적
왼쪽 풀백을 주 포지션으로 가졌으며
센터백, 미드필더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며
불리기도 했던 선수.
이영표와 함께
왼쪽 풀백의 든든한 자원이었으며
그가 떠난 후,
현재까지도
국대에선 믿을만한
왼쪽 풀백 자원이 나오지 않아
공백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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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월드컵
국대 아드보가트 감독에게
눈도장을 받아
러시아 리그에 진출했으며
우승까지 경험.
2010년
쓰러지는 등
그후로 선수로써의 폼이 많이 떨어졌으나
꽤나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유지하며
홍콩에서
마지막 펩 감독의
축하를 받으며 은퇴했다.
2000년 안양LG 유니폼을 입으며
K리그에 데뷔했고
FC서울로 연고지가 바뀌면서도
팀에서 확고하게
자신의 위치에서 활약.
본래 포지션은
왼쪽 수비수를 기준으로 두었으나
때에 따라서
센터백, 혹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는 등
다양한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꾸준했으며
좋은 돌파와 준수한 크로스
무엇보다
체력적으로 강하고
체격적으로도 훌륭한 편이라
이영표와
견줄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성장세는 무서웠다.
그에게
바로 월드컵.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감독 눈에 띄었고
그 때 감독이
아드보카트 감독으로
월드컵이 끝난 후,
그에게 러브콜을 받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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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월드컵에선
사실 왼쪽 풀백 자리에서
이영표를 받치는
후보선수였던 김동진.
하지만, 기존의 우측 풀백들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오른쪽도 소화가 가능한 이영표를
그쪽으로 돌리고
김동진이 왼쪽 주전을 차지한 것.
물론 월드컵에서
김동진의 경기력이 훌륭한 편은
아니였으나
아드보카트 감독은
그에게 여러가지 장점을 보았는 지
당시 역시 대표팀
중원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던
이호와 함께
그를 러시아로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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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부터
확실하게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결국 그 해에
차지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내며
리그 최고 왼쪽풀백으로 이름을 올리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UEFA컵에서도
득점과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주전으로 활약했고
부상으로
결승에는 주전으로 뛰지 못했으나
감독의 배려로
종료 1분여를 남기고
그라운드에
교체되어 들어가며
이호가
제니트를 떠난 후에도
김동진은 팀에 남아서 계속 뛰었으며
초기에 비해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출전빈도는
점점 더 낮아지는 편.
무엇보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군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이슈가 있었고
더불어 2010년 1월,
갑작스럽게
뇌혈류 관련 장애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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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제니트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하며
방출되었고
2010년 2월
국내무대 복귀.
우선적으로
그는 뇌혈류 증상으로 인해
폼이 많이 떨어졌고
울산에는 이미 주전 수비수들이
견고한 상황에서
그가 뛸 수 있는 자리와 시간들이
녹록치 않았고
결국 그는
울산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친정팀 서울로
다시 한 번
이적을 선택한다.
FC서울로 이적했으나
그 곳에도
아디, 현영민 등
이미 동 포지션에 좋은 선수들이 있었고
출전 자체가
점점 더 어려워지면서
그는
중국으로 떠났다.
그 후
중국을 거쳐 태국에서 뛰다가
다시 국내 리턴 후,
서울 이랜드와 1년 계약을 맺으며
새출발 했으며
노련한 플레이로
팀을 이끌며
말년에 가장 준수했던 시기가
바로 이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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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계약이 끝난 후,
재계약이 아닌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킷치SC로
이적을 선택했고
2019년 현역은퇴를 선언했으며
그의 은퇴식은
맨체스터시티와의 친선전에서
이루어지면서
과르디올라 감독을 비롯하여
맨시티 주전 선수들의
환호와 축하를 받으며 은퇴했다.
유망주 시절에는
윙어 포지션으로 뛰기도 했으나
2001년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한 후,
왼쪽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했고
2003년 국대 데뷔.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8강진출을
이끌어내는 데
1골 2어시스트의 좋은 활약을 펼쳤고
2004년 독일과의 A매치
평가전에서
주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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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독일월드컵에서
왼쪽 풀백 주전으로 뛰었으며
위에서도 언급했으나
오른쪽 풀백의
부진으로 이영표가 그쪽으로 건너가
기회를 얻었으며
경기력이 그닥 좋지 못해서
국내 팬들에게
욕을 먹기도 했는데
여러모로 안타까운 시기.
2008 베이징올림픽
와일드 카드로 출전하기도 했으며
2010 남아공월드컵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으나
주전은 아니여서
거~의 출전시간은 적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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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자연스럽게 국대에서 멀어졌으며
이영표와 더불어
그가 국대에서 물러난 후
지금까지도
국대에는
믿을만한 왼쪽 풀백 자원이
나오지 않음으로
그의 위치나 경쟁력, 그리고 활약도가
재평가되고있다.
대표팀에서
안정환의 샴푸를 몰래 쓰고도
자신은 죽어도 쓴 적이 없다고 우겨대서
저러한 별명이 생겼다고 한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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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국과 마찬가지로
안양 -> 서울
연고지가 이전되는 과정 속에서
적극 지지했던
김동진을 안양 팬들은
극도로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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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은퇴식이자 은퇴경기는
마지막 소속팀이었던
킷치SC와 맨시티의
친선경기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날,
맨시티의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에게 다가가
직접 악수를 건내며 은퇴를 축하해줬고
맨시티의 세계적인 스타들도
함께 악수...ㄷㄷㄷㄷ
더불어 맨시티 측에서 마련한
김동진의 등번호와 이름이 제대로 마킹된
맨시티 유니폼도
펩을 통해 전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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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루빈카잔의 오퍼를 받고
갈지 말지에 대해
고민을 가지고 있었던
황인범은 김동진에게 개인적으로 문자를 보내
자문을 구했고
김동진은 본인이 러시아 리그에서
뛰었던 경험 등
여러가지 도움을 주었다는 후문.
무엇보다
두 선수가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데
황인범의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친절하고 상세하게 김동진이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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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대표팀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선수 중
김동진도 빼놓을 수 없는 선수로
일전에 올림픽대표팀이
함께 부른
찬양 앨범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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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민이 제니트로 이적하게 되면서
두 선수는 한 팀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으며
이 때에는 김동진이 붙박이 주전이라
현영민이 그의 후보.
허나, 후에
김동진은 국내로 복귀하며
울산을 거쳐
FC서울로 이적하게 되었고
그 곳에는
현영민이 주전으로 뛰고있었으며
이 때에는
김동진이 후보로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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