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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국 K리그 빛냈던 스트라이커 최성국 파트너(Feat. 김성은 남편)

스포츠/축구

by Gugu_K 2020. 12. 1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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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 정조국

대한민국 국적

FC서울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고

스트라이커로써

K리그에서 100호골이상

기록하는 등

18년간 활약하며

 최근에 은퇴한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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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월드컵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히딩크 감독에게

발굴되어 연습생 신분으로

같이 참여 했으며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프랑스 무대를

누빈 경험도 가지고 있는 그.

 

청소년 대표부터

지금은 이름 거론이 조심스러운

최성국과 함께

공격을 이끌며 특급 유망주

평가 받았으며

배우 김성은과 결혼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한일전 결승골 주인공 -> K리그 샛별

K리그 신인왕 출신의 정조국

연령별 대표를 

모두 거치면서 엘리트 코스

밟아왔던 그는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2002 한일월드컵을 벤치에서 지켜보며

꿈을 키워나갔고

 

같은 해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 대회에서

결승전

일본을 상대로

극적인 결승골을 터트리며

우승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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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지금의 FC서울이 된

안양 치타스에 입단하게 되면서

첫 해에

12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신인왕 수상.

 

이듬해에도

리그에서 8골을 기록했고

FA컵에서

공동 득점왕에 오르는 등

지속적으로

쑥쑥 성장세를 보이며 활약.

 

박주영이

팀에 새롭게 가세하면서

중요도가

조금 낮아진 느낌을 주기는 했으나

그가 프랑스로 떠나면서

정조국은

다시 주전으로 활약.

 

 

 

 

데얀과의 찰떡호흡 + 결혼

2009년 배우 김성은과 결혼

그에게

터닝포인트가 되어준 선수는

다름아닌 데얀.

 

찰떡 호흡을 자랑했고

확실히 정조국은 원톱에 섰을 때 보다

자신과 호흡이 맞는

공격수와

투톱을 이루었을 때

그의 장점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스타일이었고

리그에서 14경기 무패행진

주역이 되는 등

폼이 점점 더 올라갔는데

 

국대 승선도

확실했으며 특이 이 시기가

2010 남아공월드컵을

앞두는 시점이라

스스로 기대감도 컸는데

경기 도중

팔꿈치에 제대로 맞아

광대뼈가 함몰되는 부상을 당하게 되면서

꽤나 오랫동안

그라운드를 이탈했고

국대 승선도

확실하진 않은 상황이었으나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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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월드컵 진출의 실패

맛보게 되었으나

2009년

배우 김성은과 결혼하게 되면서

인생의 또 하나의

시작

알리기도 했으며

 

결혼 후,

확실히 더 안정감을 가지고

경기력도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아쉬웠던 프랑스 무대

오세르와 낭시에서 뛰었던 정조국

FC서울에서의

꾸준했던 활약을 바탕으로

2010년,

프랑스 리그 진출 성공.

 

오세르에 입단했으며

등번호는 24번.

 

무난하게 데뷔전을 치른 그는

조금은 늦은

5월에 데뷔골과 함께

유럽진출 이후,

처음으로 득점포를 가동했고

이 해에

2골 1어시스트

시즌을 마감했으며

스탯은 너무나도 아쉬웠지만

전체적인 경기력은

좋았다는 평가가 지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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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시즌은

낭시로 임대를 가게 되었는데

자신을 영입했던

페르난데스 감독이

그 곳 감독으로 부임하게 됨에 따라

같이 간 케이스

감독이 

확실히 정조국의 경기력을

마음에 들어 했나보다.

 

결국 이 해에

낭시에서 활약하면서

2골을 기록.

만족할만한 성적은 아니였고

임대기간이 끝나

기존 소속팀이었던

오세르로 복귀 후,

병역의무를 수행해야함에 따라

소속팀과

계약을 해지한 후

다시 국내로 돌아왔다.

 

 

 

 

 

다시 FC 서울 -> 경찰청 입대

경찰청 시절의 정조국

친청팀으로 돌아와

슈퍼매치에서 복귀골을 터트리며

화려하게 인사했고

그 전까지

슈퍼매치에서 7연패를 달리던

FC서울에게

연패를 끊어주는

귀중한 득점이었다는 점에서

더욱더 값진 득점.

 

나름대로

꾸준하게 활약을 했으며

그 해에

결국 FC서울이

우승을 차지하게 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면서

경찰청에 입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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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입단과 함께

K리그 챌린지 무대에서 뛰게 되었으며

2시즌간 활약하며

38경기 16골 3어시스트

준수한 활약.

 

그 후,

다시 FC서울로 돌아왔으나

생각보다

폼이 좋지 못했고

추가로 영입된 선수들의 활약이

좋아짐에 따라

주전경쟁에서 밀렸으며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

필요해보였다.

 

 

 

 

새로운 도전 광주FC -> 득점왕 + MVP 수상

MVP와 득점왕 동시에 수상한 시즌

광주로 이적하며

꾸준하게 활약하기 시작했고

득점포도

조금씩 쌓아가면서

 

7월, 소속팀

티아고가 이적하면서

본인이 공격역할이 강해졌으며

14호골을 기록하며

개인 스스로

한 시즌 최다득점 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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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는

득점포를 추가하면서

K리그 통산 100호골을 달성했고

포항 스틸러스와의

리그 경기에서

추가시간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리며

광주의 K리그 클래식

잔류를 이끌며

구세주 역할까지 톡톡.

 

리그 막판

20호골까지 터트리며

결국 이 해에

자신 생애 첫 득점왕을 차지했고

시즌 후,

MVP까지 거머쥐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또 다시 새로운 도전 -> 강원FC

6억의 이적료를 통해 강원으로 이적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전력을 꾸리던

강원이 정조국을 영입했고

첫 시즌에도

출전대비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을 이끌었으나

 

햄스트링 부상

생각보다 이탈하는 시간들이

길어지면서

18경기 7골의 성적과는 별개로

스스로에겐

조금 아쉬운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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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두 시즌간 주전으로 뛰었으나

확실히

전성기에 비해

득점력은 많이 떨어졌고

그럼에도

중요한 순간에

좋은 활약들을 많이 가져갔고

보이스 리더

팀에게는 여러가지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

 

2019 시즌이 끝난 후,

정조국은

강원과 이별을 선택하게 되었고

마지막 구단으로

제주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

 

 

 

 

 

제주 이적, 그리고 현역 은퇴

은퇴식을 갖는 제주 정조국

제주에서

1시즌간 활약하면서

12경기 1골

시즌을 마감했고

결국 현역은퇴를 선언하게 되면서

정들었던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었으며

 

은퇴식에서

선수로써 밟아보지 못했던

월드컵 무대를

지도자로써 꼭 밟겠다

아쉬운 마음과 함께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국가대표로써의 정조국

생각보다 국대와 인연이 없었던 정조국

2006년 

처음으로 국대에 데뷔했고

그 해

아시안컵 예선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가능성을 보였으나

다른 공격수에 비해 주목도 낮고

기회도 덜 받은 편.

 

2010 남아공 월드컵 앞두고

여러 번

국대명단에 소집 되었으나

부상 등

여러가지 악재가 끼게 되면서

결국 최종명단에서

탈락하게 되었고

 

2011 아시안컵 예비명단에도

이름을 올렸으나

그 때에도

부상이 겹치게 되면서

엔트리 탈락.

 

그 후로

국대와는 인연이 없었고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국대와 멀어졌다.

 

A매치 13경기 4골

 

 

 

정조국에 대한 TMI

 

 

01. K리그 통산득점 역대 5위를 기록 중이다

 

392경기 121골을

K리그 통산기록으로 가지고 있으며

이 기록은

역대 5위에 해당한다.

 

확실히 그는

국대와는 인연이 없었으나

K리그에서 꾸준하고 좋은 모습을 보였으며

프랑스 진출 시기가

없었다면

더욱더 높아졌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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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비우승팀 MVP 네 번째 주인공이다

 

보통 MVP는

우승팀에서 가져가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정조국은 광주 소속으로

우승권이

아님에도 득점왕 등

좋은 활약을 보이며 MVP를 차지했으며

역대 4번째 사례.

이전에는

안정환, 김은중, 김신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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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득점왕, MVP, 신인왕을 모두 받은 세 번째 선수

 

얼만큼 K리그에서

꾸준하고 기량이 좋았는 지  

말해주는 수치로

이 기록은

신태용, 이동국이 가지고 있었는데

정조국이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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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안양FC 팬들에겐 이미지가 좋지않다

 

안양FC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던 

프랜차이즈 스타이지만 팬들은

그에게 애증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안양 -> 서울

연고지 이전이 결정되는 시기에

정조국이

집에서 서울이

가깝다는 이유로

그 의견을 적극 지지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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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최성국과 한 때 최고 유망주였다

2002 한일월드컵

유망주 선수들을 경험 시키기 위해

비엔트리이지만

데려갔던 유망주 선수들 중에는

최성국도 있었고

정조국과

청소년 대표에서도

투톱 형태로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미래로 불렸다.

 

하지만....

승부조작, 음주운전 등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넌

최성국의 현실은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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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정조국 통산성적

 

<FC서울>

K리그1 우승 2회

리그컵 2회

FA컵 1회

 

<제주유나이티드>

K리그2 우승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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