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국적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국대와 소속팀에서
월드클래스 미드필더.
기본적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가지고 있으며
보여주며
뮌헨과 국대에서
꾸준한 활약과 함께 팀에게도
좋은 성적을 안겼다.
.
.
.
바이에른 뮌헨에서
굉장히 오랜시간을 활약하며
역대 레전드들에게도
뒤지지않는
개인적인 스탯과 우승 커리어를 가졌으며
맨유를 거쳐
마지막 미국 무대에서도
이름값을 하며
축구에 대한
열정을 제대로 보여주기도 했다.
슈바이니는
슈바인슈타이거의 애칭.
어릴 때,
뮌헨의 유스로 쑥쑥 성장하면서
축구선수의 꿈을 키웠고
위의 첫 번째
사진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는 어릴 때 부터
후에 이야기 하겠지만
결국 맨유에서
선수로써 뛰기도 했다.
.
.
.
2002년
굉장히 어린 나이에
챔피언스리그에서 교체로 나와
뮌헨 1군에 데뷔했으며
데뷔전에서
어시스트까지 기록하는 등
본인의 주 포지션이
아니였던 풀백으로 뛰었음에도
인상깊은 활약.
슈바이니는
기본적으로 센스가 좋았고
무엇보다
득점하고 수비를 흔들 수 있는
자원이었기 때문에
그는 조금씩
기회를 많이 부여받기 시작했고
그 때에는
포지션을 윙어로 뛰면서
준수하게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
.
.
슈바이니는
뮌헨의 주전으로 올라섰고
국대에도
승선하게 되면서
중요한 경기에서
시원한 중거리포로 득점을 올리는 등
큰 경기에 강했고
07-08 시즌
뮌헨이 리베리를 영입함에 따라
그는 포지션을
오른쪽 윙어로 바꾸면서
팀의 스타일에 따라
자신의 축구 스타일로 변화를 주기 시작.
그 해에 리그에서
스탯을 기록하며
활약했으나
전체적으로 기록에 비해
경기력은 좋지 못하다는 박한 평가를
받기도 했으며
리그 우승에도 실패했다.
리베리에 이어서
로벤이 팀에 새롭게 합류하면서
슈바이니는
양쪽 윙어의 주전자리를
내주게 되었고
이 때에 반 할 감독은
그의 여러가지 장점들을 고려하여
그에게
슈바이니 역시
그를 받아들였다.
.
.
.
사실,
슈바이니는 이전에도
발락 자리를 대체하여 그 자리에서
뛰었던 경험이 있으나
결과적으로
맞지 않는 옷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던 과거 전례가 있었고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으나
그는 빠른 적응세와 함께
반 봄멜과 함께
중원을 이루며
좋은 활약을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그 해에
리그 우승을 비롯하여
더블 시즌을 만들어냈으며
챔스 결승에도
진출하는 성과.
슈바이니가 윙어에서 보여주었던
테크닉적인 요소가
중원에서
장점으로 제대로 발휘되었고
그의 장기인
중거리 슈팅도
보다 더 때리기 좋았으며
초반에는
약점으로 평가 받았던
수비력까지 시즌을 거듭할수록 좋아지며
평가를 들을 수 있는 수준까지
폼을 끌어올렸다.
11-12 시즌 중,
어깨 부상을 당하게 되면서
꽤나 오랫동안
그라운드를 벗어나야 하기도 했으며
그럼에도 복귀해서
클래스 있는 모습을 보이며
다시 제자리.
챔피언스리그에서
첼시와의 승부차기 승부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실축을 하게 되면서
패하는 데 원흉이 되기도 했으며
그 때에
시상식에서
독일 대통령을 외면하는 행동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후에 서로 만나는 자리에서 함께 웃으며
다시 훈훈 모드.
.
.
.
슈바이니와 뮌헨에겐 잊을 수 없는
시즌이 되었고
결국 리그와 컵대회는 물론
챔스 결승에서도
도르트문트를 따돌리고 정상에 오르며
독일 클럽 사상 처음으로
트레블을
달성하게 되는 순간이었으며
중원에서 슈바이니는
환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우승의 주역과 함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뮌헨에 새롭게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슈바이니는 더욱더
수비적인 역할 롤을 부여 받았고
어느 위치에서든
본인의 역할을 다하며
역시나 클래스 있는 모습 시전.
나이가 들어가면서
잦은 부상에 시달리기도 했고
월드컵 우승과
맞바꾸었다고 할 수 있는
부상의 여파로
시즌 전반기를 통으로 날리기도 했다.
.
.
.
사비 알론소가
새롭게 영입이 되면서
두 선수의 조합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았으나
오히려 두 선수는
함께 그라운드에 있을 때
램파드-제라드
조합이 그러했듯이
펩 감독은
두 선수를 로테이션으로
돌리는 방향으로
바꾸어 버릴만큼
아쉬운 호흡.
그럼에도
슈바이니는 나올 때마다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레전드로써
그의 모습을 이어갔는데
이 시즌을 끝으로
슈바이니는 뮌헨을 떠나게 되었으며
자신이 어릴 적부터
팬이었던
정말 슈바이니가
뮌헨을 떠나리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그는 이적했고
그가 어릴 적
광팬이었던 맨유로 이적 했으며
뮌헨의 팬들은
레전드 선수를 이렇게
허무하게 보냈다는 사실에 대해
100% 팩트라고 할 순 없지만
슈바이니 이적에
펩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설과 함께
예전 영광의 순간을 함께 했던
반 할 감독이
현재 맨유 사령탑에
있다는 것이
주요 원인이 되었다는 분석.
.
.
.
사비 알론소에게
주전에서 밀려서 간 것이냐라는 말은
오히려 그는
부상에 의해서
출전시간과 경기수가 적었을 뿐
뛸 수 있을 때에는
무조건 주전으로 뛰었으며
스탯을 비롯하여
경기력도 매우 훌륭한 수준.
어찌되었든
그렇게 맨유 일원이 되었고
리그 개막전에서
캐릭과 교체되어 그라운드를 누비며
맨유 데뷔전을 치뤘다.
.
.
.
첫 시즌,
슈바이니의 클래스를 느낄 수 있는
여러가지 좋은 플레이와
경기력을 선사했지만
결과적으로 부상으로 인해
시즌을 빠르게
마감해야 했으며
그의 이름값을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짧게 정리하면
출전할 때마다 클래스를 시전했으나
출전 자체가 적었기에
미비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은 시즌이었다.
반 할 감독이 물러나고
무리뉴 감독이 새롭게 부임하게 되면서
슈바이니의 위치도
변화가 찾아왔는데
무리뉴 감독은
그를 철저하게 배제하기로 했으며
지속적으로 언론에서는
살생부 명단에
그를 올려 놓으며
뮌헨 컴백설까지 나돌았다.
.
.
.
무리뉴와 슈바이니가
멀어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의 부상 때
그가 행했던 행동들 때문.
재활에 몰두해야했지만
점점 더 늘어갔고
무리뉴 감독은 물론
맨유의 고참 선수들까지 언론에 직접적으로
불만을 내보일만큼
그 문제는 커져만 갔으며
결과적으로
무리뉴 감독은
그가 다시 복귀 했을 때에
그럼에도 슈바이니는
맨유에 남아
주전경쟁을 펼치겠다
선언했다.
.
.
.
개인훈련으로
몸을 만들던 슈바이니를
결국 무리뉴 감독은
다시 불러서
1군 명단에 올렸으며
컵대회와 같은 경기에 출전시키며
나올 때마다
활약도 준수했으나
맨유가 컵대회에서 탈락하게 되면서
슈바이니는
다시 주전에서 밀렸고
결국 그 해에
시즌 도중에 계약을 파기하며
맨유를 떠나
시카고에 입단했으며
시카고 관련 스포츠 구단들은
그를 레전드 대우하며
여러 행사에 초청하는 등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슈바이니 역시
경기장에서
클래스를 시전하며
하위권에 머물던 팀이
중상위권으로 올라가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대포알 같은 슈팅을 바탕으로
득점까지 책임지며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
.
.
.
결과적으로
막판 부상으로 이탈하며
결국 소속팀도
플레이오프 탈락하게 되었지만
슈바이니는
1년 더 계약을 연장하며
시카고와의 동행을 이어나갔고
그 시기와 맞물려
2018년 8월에는 바이에른 뮌헨 구단이
마련한 슈바이니
고별 경기를 치루어내며
그 날,
수많은 스타들이
자리를 빛내며 그를 축하.
2019년 시즌까지
시카고 소속으로 활약했으며
결국 그것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하게 되면서
그의 커리어도
끝을 맺게 되었다.
2004년
국가대표로 처음 데뷔했으며
유망주로 평가받으며 기회를 조금씩
부여받기 시작.
첫 월드컵이었던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팀의 3위를 이끄는 주요 활약과 함께
슛을 너무 난사한다는 비난도 있기는 했지만
분명한 건
슈바이니는 독일 국대 세대교체의
중심이 되었고
어느덧 주전으로 올라섰다는 것.
.
.
.
4년 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독일은
다시 한번 3위를 차지했고
슈바이니 역시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도맡으며
그 해에
리그에서의 성적과 함께
좋은 무브번트를 보여줌에 따라
그리고 다시 4년 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슈바이니는
부상회복이 더뎌
월드컵 출전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나 기적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으며
브라질 전
7:1 참교육을 시전하는 등
특히 결승전에서
투지가 넘치는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며
최대 주역의 활약했다.
.
.
.
필립 람이 은퇴하며
유로 2016을 끝으로
국대 은퇴를 선언하게 되었는데
슈바이니가
국대 주전으로 활약하며
독일 국대는
메이저 대회에서
최소 4강에 꾸준하게 드는 강팀으로
면모를 보여주었으며
그가 중심을 잡은
독일은 너무나도 강했다.
람, 발락과 함께
독일 축구 세대교체의 중심이었으며
람이 주장을 맡으며
슈바이니가 오랫동안 부주장 역할을 맡았으며
람이 은퇴하자,
그의 뒤를 이어
주장직을 맡아 리더쉽을 발휘했다.
.
.
.
슈바이니의 친형인
토비아스는 원래 하키선수였다가
30살의 늦은 나이에
축구선수가 된 굉장히 특이 케이스.
뮌헨은 슈바이니의
동기부여를 더욱더 높여주기위해
형 토비아스를
뮌헨 2군으로 영입했고
형제가 한 클럽에서 뛰는 상황이 벌어졌다.
(물론, 한 그라운드에서 뛴 적은 없다.)
허나, 슈바이니는
결국 맨유로 이적하게 되었고
맨유의 골수팬인
형 토비아스는 아쉽지만
그의 맨유 이적을
누구보다 반기고 추천해주었다는 후문.
.
.
.
본래 슈바이니의 최대 장점은
엄청난 폭발력과 강도를 자랑하는 슈팅.
그렇기에 소속팀과 국대에서도
곧잘 PK 전담선수로
활약한 경험도 가지고 있으나
첼시와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PK를 실축했고
이어지는
유로2016 이탈리아전에서도
6번째 키커로 나와
결국 홈런을 날려버리며
팀은 패배했다.
.
.
.
바이에른 뮌헨 농구팀의
경기를 자주 보러 갔던 것으로 유명하며
자신의 개인 SNS 계정에
지인들과 농구하는 모습을 여러 번 올리는 등
농구 사랑이 남다른 듯 하다.
.
.
.
연령별 국대를
계속해서 같이 지내게 되면서
친분을 이어왔으며
국대에 있을 때, 어딜 가든지 두 선수는
항상 함께있다.
키스 시늉을 하는 사진을 비롯해
유머짤로 쓸 수 있는
두 선수의
여러가지 행동들이 담긴
사진과 동영상이
매우 많이 존재하고있다.
.
.
.
평생을 뮌헨에서 뛰며
유로파리그를 뛸 이유가 없었던 그가
맨유로 이적하게 되면서
유로파 리그 본선을
뛰게 되었으며
그 시즌 도중, 계약 파기 후
미국으로 떠나며
그렇게 맨유와 인연이 끝나나 했으나
결국 그 해에
맨유가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고
슈바이니는 본선을 뛰었다는
이력을 가지고 있기에
유로파리그 우승 메달 수여와 함께
우승 커리어도
하나 더 추가하게 되었다.
.
.
.
2020/12/08 - [스포츠/축구] - 필립 람 독일 역사상 최고의 풀백 트로피 좀 멋있게 올려줘 형
필립 람 독일 역사상 최고의 풀백 트로피 좀 멋있게 올려줘 형
독일 국적 오른쪽 풀백을 주 포지션으로 하며 그 외에도 다양한 포지션에서 월드클래스 기량을 보여주던 축구스타. 오랫동안 독일 국대 주장으로 활약했으며 임대 시절을 제외하면 바이에른 뮌
gugu-k.tistory.com
2020/11/13 - [스포츠/축구] - 미로슬라프 클로제 독일 헤딩의 제왕(Feat. 월드컵 통산 최다골 주인공)
미로슬라프 클로제 독일 헤딩의 제왕(Feat. 월드컵 통산 최다골 주인공)
독일 출신의 스트라이커로 무엇보다 헤딩능력이 뛰어나며 공중제비 세레모니로 더욱더 유명세를 탔던 선수.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바 있으며 월드컵 역대 통산 최다골 기
gugu-k.tistory.com
2020/10/26 - [스포츠/축구] - 미하엘 발락 독일 미들라이커의 표본(Feat. 콩락이)
미하엘 발락 독일 미들라이커의 표본(Feat. 콩락이)
독일을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가 남긴 A매치 기록을 보면 98경기 42골로 여느 공격수보다 탁월한 득점력을 가졌던 선수. . . . 커리어에서 너무나 많은 2위를 기록해 국내 팬들에
gugu-k.tistory.com
정조국 K리그 빛냈던 스트라이커 최성국 파트너(Feat. 김성은 남편) (0) | 2020.12.10 |
---|---|
올리버 칸 독일의 야신 레전드 골키퍼 이동국에게 발리 매서운 맛 봤던 형 (0) | 2020.12.09 |
필립 람 독일 역사상 최고의 풀백 트로피 좀 멋있게 올려줘 형 (0) | 2020.12.08 |
해리 키웰 오즈의 마법사 호주 축구 레전드(Feat. 왼발 스폐셜리스트) (0) | 2020.12.08 |
피레스 아스날 레전드 윙어 플레이메이커 선구자(Feat. 벵거의 황태자) (1) | 2020.12.07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