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적
한 때, EPL 위건에서 뛰며
박지성과 상대팀에서 뛴 경험도 있는
미드필더, 수비수를
포지션으로 가지고있는 선수.
K리그 수원에서
그나마 전성기를 보냈으며
은퇴 역시
그 곳에서 했지만
놀랍게도 수원FC 소속으로
재입단하게 되면서
선수생활을 다시 시작했으며
2021 시즌을 앞두고
훈훈하게 기부하며 다시 한 번
현역은퇴를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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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cm으로
비교적 큰 신장은 아니지만
피지컬이 좋고
근육량이 많아
몸싸움에 능한 스타일이었으며
기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투지 넘치는 플레이와 함께
좋은 수비력으로
준수한 활약을 보인바 있으며
1차 은퇴 후,
방송계에서도 활약했으며
은퇴한 후,
축구실력이 더 늘었다는
우스갯 소리지만
확실히 더 좋아진 축구실력을
보여주기도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이 아닌 곧장 프로무대로
뛰어든 케이스로
하지만
주전 경쟁에서 실패했고
결국 1시즌동안
1경기 출전에 그치게 되면서
그는 빠르게
터닝포인트를 만들었고
결국 상무로 가면서
포지션 변경을 이루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제대로
터닝포인트가 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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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무의 이강조 감독은
조원희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살려
그에게 공격수가 아닌
윙백으로써의
포지션 변화를 권유했고
결국 조원희는
3백의 오른쪽 윙백으로
위치하게 되면서
33경기 2골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이며
포지션 변경에 나름 성공했고
제대 후, 울산이 아닌
수원으로
이적을 하게 되면서
또 다른 행보를 나서게 되었다.
오른쪽 윙백을
주 포지션으로 가져가면서
쏠쏠하게 활약했으나
좋은 공격력에 비해서 수비가 약하다는
평가와 함께
팬들의 비난여론도 높았고
그럼에도 그 시기에
2006 독일월드컵 23인 엔트리에 포함되어
월드컵 무대를 누볐으나
주전에서 밀리며
단 1분도 그라운드를
뛰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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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조원희는
왕성한 활동량과 피지컬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고
당시, 수원 차범근 감독은
그의 장점을 토대로
다시 한 번
그에게 포지션 변경을 권유하며
새로운 도전을 야기시켰고
또 다시 도전.
그리고 포지션 변경은
다시 한 번
그에게 터닝포인트로 작용되어
당시 중원의
김남일 이적과 김진우 은퇴 등으로
구멍이 나있던
수원의 버팀목 역할을 해내며
좋은 활약을 보였고
이름을 올리게 되면서
전성기를 누비게 되었다.
조원희의 EPL 진출은
굉장히 뜬금없었고 놀라운 사건.
사실, 조원희는
AS모나코와 계약이 유력했으나
결과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였고
결국 급하게 팀을 알아보다가 계약한 곳이
바로 위건이었다.
08-09 시즌부터
합류하여 1군에 뛰기 시작했으며
프리시즌 경기에서
골대를 맞추는 등
출발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결국 자신을 영입했던
브루스 감독이
경질과 함께 팀을 떠나게 되면서
주전에서 점점 멀어졌고
부상과 함께
인종차별, 음식이 입에 맞지않는 등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계약기간 도중,
수원으로 임대를 오게 되면서
짧은 유럽생활을
일단 스톱.
결과론적이지만
훗날, 조원희는 위건생활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힘든 시간이기는 했으나
그 때 수원으로 돌아오지않고 더욱더 참고
밝힌 적이 있다.
인종차별에 참지 못했던
그가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바 있었던
친정팀 수원으로
임대, 결국 복귀했고
중앙 미드필더로 뛰면서
수원에는 당시
국대로도 선발되는 등
꾸준하게 활약을 하던 이용래가 있기에
주전 경쟁에서 밀렸고
구단에서는
울산 오장은과 1:1 트레이드를
시도했으나
결국 수원에서
자리를 더 이상 잡지 못하고
이적을 도모했고
그는 중국으로 향하게 되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위건과 6개월 계약이 남았으나
상호간 해지에 합류하며
당시 감독이었던
이장수 밑에서
함께 뛰며 우승까지 경험.
2013년,
우한 줘얼로 이적했고
당시 1년간
K리그 경남으로 임대이적을 통해서
국내로 돌아왔으며
연봉을 낮추는 조건으로
해외진출을
다시 도모할 때에
막지 않겠다는 계약을 통해
조원희는 J리그
오미야로 이적에 성공했으며
활약상이나 소식 자체가
많지 않았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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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아쉬운 행보를 보였던 조원희는
2015년 2월,
K리그 챌린지 소속의
이적하게 되면서
또다시 국내로 리턴했다.
이랜드FC에서
시즌 초에는 몸이 무거운 듯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
가지고 있는 클래스를 보여주면서
팀에 녹아들었고
골도 종종 기록하는 등,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는데
결과론적이지만
1시즌 후,
친정팀 수원으로 이적하게 되었으며
그의 이적 소식이 들리고
이랜드 팬들 중
절반 이상은
오히려 그의 이적을 반겼을 정도로
팬들의 평가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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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시즌부터
수원 유니폼을 입고
다시 한 번
뛰게 되었으며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기도 했으나
기존에 뛰었던
오른쪽 윙백으로도 뛰며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고
중앙에서 뛸 때가
경기력이 더 좋았다는 평가.
AFC와 리그를
모두 병행하고 있던 수원에게는
경험도 많고
다양한 포지션을 뛸 수 있는
조원희의 역할이
나름대로 중요한 편이었고
전성기 때의
경기력을 아니라도
어느정도 밥값은 하는 편이었는데
문제는 리그에서
교체로 나와
18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됨과 함께 해설자로
데뷔를 선언하면서
자연스럽게 현역은퇴를 선언했고
타구단에서
많은 오퍼와 왔으나
말과 함께
수원에 대한 의리를 지켰고
구단에서는
그에게 은퇴식을 치뤄주면서
훈훈한 마무리.
은퇴 후,
해설자로 활약하는 등
나름대로
활발한 행보를 보여주었고
유튜브 "슛포러브" 채널에도 등장하면서
영역을 넓히더니
다양한 포멧으로
축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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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그가
2020년 7월, 현역복귀를 선언했고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적, 복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으며
결국 복귀하는 과정도
유튜브 컨텐츠에 녹아들게 되면서
팬들의 많은 응원을 받았고
플레잉코치 개념으로
팀에 합류했으며
복귀 초반에는
풀타임 출전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폼이나 체력이
떨어진 모습을 보였으나
그대로 폼이
조금씩 올라가면서
종종 출전도 기록.
하지만, 시즌 중반부터
선두권 싸움이 치열해지면서
조원희는 선수보다
벤치에서
코치역할을 더 많이 담당했으며
결국 시즌이 끝나고
팀이 1부리그로 승격하게 되면서
그는 은퇴했고
다시 한 번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연령별 국가대표를 모두 거친
엘리트 출신으로
그 시절에는
상무에 가기 전까지
미드필더, 윙백으로 뛴 경험 자체가
아예 없던 케이스.
2005년.
이란과의 A매치 경기를 통해
데뷔전을 치뤘으며
경기 시작 1분도 되기 전,
득점을 만들며
화려하게 데뷔한 케이스.
결국 2006 독일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며 월드컵에 참여했지만
이영표, 송종국 등에
밀리며 1분도
출전을 하지 못했고
그 후에도
오범석에게 밀리는 등
국대에서 빛을 받지 못한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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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감독이
대표님 사령탑에 오르면서
조원희는 국대에
다시 발탁되기 시작했으며
오른쪽 윙백이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으로
김정우, 기성용 등과
짝을 이루며
폼이 좋아지던 찰나,
위건에서 주전경쟁에서 실패하는 등
경기력을 유지하지 못하면서
국대에서 멀어졌고
국대에서
활약을 위해 수원으로 임대가며
컨디션을 올리려했으나
결과적으로
국대 엔트리에서 탈락하게 되면서
그 후로, 국대와도
인연이 멀어졌다.
축구선수를 꿈꾸기 전,
조원희는 8년간 쇼트트랙 선수로 활약했으며
그 때에 훈련과 움직임이
체력, 근육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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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파브레가스를 좋아했으며
위건에서 뛸 때에
아스날과 상대팀으로 만나게 되면서
유니폼 교환을 시도했으나
아쉽게 실패한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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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AS모나코행을
거의 확정 지으며 합류하여
훈련도 진행했으나
팀에 있던 미국 출신의 프레디 아두가
팀에 계속 남게 되면서
외국인쿼터 자리 여유가 없자
급히 영국으로 넘어가
위건에 입단테스트를 받고
이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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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과 이어지는 내용으로
급히 영국으로 건너가 위건에서 입단테스트를 받았고
15분간 테스트를 받으며
곧장 합격을 받아냈다고 한다.
다만, 입단 후
음식이 입에 맞지않고
무엇보다 인종차별을 너무 심하게 겪으며
버티지 못한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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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활발하게 여러 분야에서 활동중인 그는
특유의 유행어
" 가야돼, 가야돼 " 를 연발했고
그래서였을까?
가야대학교에서
홍보대사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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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조의 추천을 받아
시즌을 일찍 마치고 귀국한 이승우의
스킬 트레이닝을
지도한 적이 있으며
피지컬과 신체 밸런스를
맞추는 데 집중된 훈련을 진행했고
후에 이승우가 돌아가
다시 시작된 리그에서 득점한 후
인터뷰를 통해
조원희에 대한 감사인사를
전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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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에서
"저스트풋볼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승우 역시도
이 곳을 통해서 트레이닝 받았고
조원희의 유튜브 컨텐츠에도
종종 등장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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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조원희는 어린시절부터 프로 데뷔 후
상무에 입단하기 전까지
공격수로 활약.
상무로 입대하게 되면서
이강조 감독 권유로
포지션 변경을 가져가게 되었고
오른쪽 윙백 & 수비형 미드필더로
조금씩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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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에서
주로 뛰었던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였고
감독/코치가 그에게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포지션을
변경해보라 권유했으나
그 당시,
월드컵에 가기위해서 거절한 바 있으며
아쉽게도 월드컵 엔트리에서도
탈락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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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과 유튜브 채널에서
박지성, 차범근 등 대한민국 전설들을 언급하며
조차박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며
웃음을 준 바 있으며
지금까지도 심심치않게 쓰이고 있으며
박지성 역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조차박이란 단어의 의미를 알려주자
코웃음 치며 또 한 번
웃음을 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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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굉장히 좋으며
은퇴 후에도 꾸준하게 관리하고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션, 이영표와
친분을 유지하며
함께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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