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적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미드필더.
2002 한일월드컵에서
1골 2어시스트의
맹활약을 보여주면서
유럽 구단들의
수많은 러브콜을 받고
결국 가장 먼저
월드컵 이후,
유럽에 진출했던 선수.
환상적인 왼발로
패스와 크로스를 뿌려주며
주요 프리키커로도
활약했으며
기술도 좋은 편인데
예상외로 피지컬은 떨어진다는 점에서
장점과 단점이
명확했던 선수로 기억되며
터키리그 진출과
FC서울에서 좋은 활약 등이
주요 포인트로
남아있는 선수이다.
초등학교 때
처음 축구를 시작했으며
강릉에서 지속해서 축구선수의 꿈을 키운 뒤,
명지대 졸업 후
대학시절부터
철도청 시절까지 이을용은
프로에 가지못했다는 점에 대해서
의기소침한 편이었고
이 때에
그를 다잡아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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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년간 철도청에 뛴 후,
상무 입대로
빠르게 군문제를 해결한 뒤
K리그 데뷔.
당시 부천SK는
최고의 슈퍼스타 윤정환을 필두로
김기동, 윤정춘 등
좋은 미드필더들이 즐비했으며
이을용 역시
그 멤버에 주축으로
함께 뛰며
활약도 굉장히 좋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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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K리그 데뷔했으며
2002 한일월드컵을 통해 이을용의
주가가 굉장히 높아지며
부천SK를 떠나
유럽무대의 꿈을 안고
여러 팀들과
협상에 나서기 시작했다.
2002 한일월드컵
대한민국이 4강 신화를 이루어내며
각종 유럽 스카우터들이
국내 선수들에게
관심과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고
확정 지은 선수는
다름아닌 이을용.
우리와
3,4위전에서 만났던
터키의 명문구단으로 불리는
트라브존스포르와
계약을 맺었고
초반에는
빠르게 적응하며 활약도 좋았지만
현지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고
부상까지 겹치게 되면서
어려운 시간들이
계속되었고
무엇보다 그 당시,
부천SK와 트라브존스포르 간의
이적분쟁이 생기게 되면서
결국 이을용은
완전이적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서
다시 국내로 돌아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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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용의 활약도,
그리고 구단간의 마찰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과 터키는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그랬던 것인 지
엄청난 환호와 관심을
받은 바 있으며
내 기억에도
그가 입단할 때에
목마를 태워주는 등 극진하게
대접해주는 장면이
뉴스에 나왔던 것 같다.
K리그 안양LG와
계약을 맺으며 국내 복귀했고
연고지가 FC서울로
바뀔 때에도
이을용은 여전히 팀에 남아서
중추적인 역할로
꽤나 좋은 활약을 보였는데
이을용은 마음 한 켠에는
지속해서
유럽 진출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2004년,
자신이 처음으로 유럽에 진출했던
트라브존스포르로
재입단을
추친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결국 이적에 성공했다.
터키 트라브존스포르와
다시 계약하며
도전에 나섰고
처음에 진출했던 때 보다는
훨씬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
약 3년간 뛰었으며
이 때에
소속팀 감독으로
일본 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경력이 있는
할릴로지치 감독과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터키로 다시 가기 전,
뛰었던 FC서울로 컴백했고
2008년 팀의 준우승 때
맹활약하며
중심을 잡아주었고
귀네슈 감독 부임 후,
주장까지
역임하게 되면서
당시 유망주 기성용, 이청용 등
어린 선수들을
이끄는 역할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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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커리어가
FC서울에서 끝날거라고 예상했으나
2009년 시즌을 앞두고
자신의 고향인
강원FC가 새롭게 창단되면서
이적하게 되었으며
베테랑으로써
새로운 선수들이 즐비한 곳에서
중심을 잡아줄 것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주장을 맡으면서
강원FC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이 때 부터
개인 유소년 클럽을 여는 등
벌써부터 은퇴 후의
생활을 준비하는 듯한 모습도 보여주었으며
첫 시즌에는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부상, 부진 그리고 폼이 떨어지며
후보로 밀리는
시기도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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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FC는 성적이
그닥 좋지 못한 상황 속에서
경기력도 부진했고
그나마 그와중에 클래스를 보여주는 선수는
역시 이을용 선수.
2011 시즌
리그 3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이을용은 현역은퇴를
선언했다.
1999년
브라질과의 평가전을 통해
국대 데뷔했으며
당시 감독은 허정무.
그 후에도
꾸준하게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준주전급으로 모습을 보이더니
월드컵을 경험하며
인지도와 인기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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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에서
첫 경기 폴란드전에서
황선홍의 결승골을 환상적인 크로스로
어시스트 하더니
미국전에서
PK를 실축했지만
안정환의 헤딩 동점골에서
프리킥으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맹활약.
나아가
3,4위전에서도
환상적인 왼발 프리킥으로
직접 득점을 올리며
이 대회에서
독보적인 스탯으로
팀의 4강을 이끌었다.
그 후에도
대표팀에 계속 이름을 올렸고
2006 독일 월드컵에도
당당히 뽑히며
좋은 활약을 보인 바 있으며
나이가 점점 들면서
자연스럽게 국대에서 멀어졌다.
전형적으로 왼발을 잘차는 선수로써
소소팀, 국대를 막론하고
왼발로 차기 좋은 각도에서의 킥은 모조리
이을용이 담당했다.
다소 투박(?)한 외모와 달리
기술에 비해
피지컬은 약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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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용의 큰아들도
축구선수의 길을 서서히 밟았고
날아라 슛돌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이강인과 함께
뛴 경험도 있는데
결국 17세이하 청소년 대표에 발탁되는 등
나름대로 엘리트 코스를 거쳤고
2021시즌을 시작하며
FC서울에 새롭게 입단하게 되면서
부자가 같은 구단에
뛴 케이스로 남게 되었다.
그 역시 아빠 유전자를 가져갔는 지
왼발을 주발로 쓰고 있으며
왼쪽 풀백이 포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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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방영했던
프로축구선수가 되기위한 꿈을 가진
선수들을 발굴하는
청춘FC에 안정환의 권유로
공동감독으로
함께한 바 있으며
당시, 청주대 코치를 맡고 있기도 하며
평가전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 때에 이을용은
강한 카리스마의 안정환과는 달리
품어주는 리더쉽을
발휘하며 반전의 지도력을
보여주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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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과 절친으로
안정환은 여러 방송에서 이을용을
추천한 바 있으며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예능 찍는데 성공했다.
"위캔게임"으로
피파온라인4을 통해
컴퓨터게임을 해보는 것으로
재미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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