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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용 왼발의 달인 을용타 4강신화의 주역 안정환 절친

스포츠/축구

by Gugu_K 2021. 1. 1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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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용타의 전설, 축구선수 이을용

대한민국 국적

왼발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며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미드필더.

 

2002 한일월드컵에서

1골 2어시스트

맹활약을 보여주면서

유럽 구단들의

수많은 러브콜을 받고

결국 가장 먼저

월드컵 이후,

유럽에 진출했던 선수.

 

환상적인 왼발

패스와 크로스를 뿌려주며

주요 프리키커로도

활약했으며

기술도 좋은 편인데

예상외로 피지컬은 떨어진다는 점에서

장점과 단점이

명확했던 선수로 기억되며

터키리그 진출

FC서울에서 좋은 활약 등이

주요 포인트로

남아있는 선수이다.

 

 

 

 

 

 

K리그 데뷔는 돌고돌아 부천SK

철도청 입단과 상무입대 후, K리그 진출

초등학교 때

처음 축구를 시작했으며

강릉에서 지속해서 축구선수의 꿈을 키운 뒤,

명지대 졸업 후

철도청 축구단 입단.

 

대학시절부터

철도청 시절까지 이을용은

프로에 가지못했다는 점에 대해서

의기소침한 편이었고

이 때에 

그를 다잡아준 것

바로 철도청 이현창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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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년간 철도청에 뛴 후,

상무 입대로

빠르게 군문제를 해결한 뒤

부천SK에 입단하며

K리그 데뷔.

 

당시 부천SK는

최고의 슈퍼스타 윤정환을 필두로

김기동, 윤정춘

좋은 미드필더들이 즐비했으며

이을용 역시

그 멤버에 주축으로

함께 뛰며

활약도 굉장히 좋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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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K리그 데뷔했으며

2002 한일월드컵을 통해 이을용의

주가가 굉장히 높아지며

부천SK를 떠나

유럽무대의 꿈을 안고

여러 팀들과

협상에 나서기 시작했다.

 

 

 

 

 

꿈의 유럽무대 진출, 터키로!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던 시기

2002 한일월드컵

대한민국이 4강 신화를 이루어내며

각종 유럽 스카우터들이

국내 선수들에게

관심과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고

가장 먼저 유럽행

확정 지은 선수는

다름아닌 이을용.

 

우리와

3,4위전에서 만났던

터키의 명문구단으로 불리는

트라브존스포르

계약을 맺었고

 

초반에는

빠르게 적응하며 활약도 좋았지만

현지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고

부상까지 겹치게 되면서

어려운 시간들이

계속되었고

 

무엇보다 그 당시,

부천SK와 트라브존스포르 간의

이적분쟁이 생기게 되면서

결국 이을용은

완전이적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서

다시 국내로 돌아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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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용의 활약도,

그리고 구단간의 마찰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과 터키는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그랬던 것인 지

엄청난 환호와 관심

받은 바 있으며

 

내 기억에도

그가 입단할 때에

목마를 태워주는 등 극진하게

대접해주는 장면이

뉴스에 나왔던 것 같다.

 

 

 

 

 

K리그 복귀, 안양 -> FC서울

국내 리턴 후, 꾸준하게 좋은 활약

K리그 안양LG와 

계약을 맺으며 국내 복귀했고

연고지가 FC서울로

바뀔 때에도

이을용은 여전히 팀에 남아서

중추적인 역할로

꽤나 좋은 활약을 보였는데

 

이을용은 마음 한 켠에는

지속해서

유럽 진출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2004년,

자신이 처음으로 유럽에 진출했던

트라브존스포르로

재입단

추친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결국 이적에 성공했다.

 

 

 

 

 

터키리그 다시 진출, 더 나은 활약

굳은 의지로 다시 유럽행

터키 트라브존스포르와

다시 계약하며

도전에 나섰고

처음에 진출했던 때 보다는

훨씬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

 

약 3년간 뛰었으며

이 때에

소속팀 감독으로

일본 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경력이 있는

할릴로지치 감독과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FC서울 복귀, 귀네슈 감독과 만남 그리고 주장

주장까지 역임하게 되는 이을용

터키로 다시 가기 전,

뛰었던 FC서울로 컴백했고

2008년 팀의 준우승

맹활약하며

중심을 잡아주었고

 

귀네슈 감독 부임 후,

주장까지

역임하게 되면서

당시 유망주 기성용, 이청용 등

어린 선수들을

이끄는 역할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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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커리어가

FC서울에서 끝날거라고 예상했으나

2009년 시즌을 앞두고

자신의 고향인

강원FC가 새롭게 창단되면서

이적하게 되었으며

베테랑으로써

새로운 선수들이 즐비한 곳에서

중심을 잡아줄 것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고향팀으로 이적, 그리고 유종의 미

유종의 미는 역시 헹가레

주장을 맡으면서

강원FC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이 때 부터

개인 유소년 클럽을 여는 등

벌써부터 은퇴 후의

생활을 준비하는 듯한 모습도 보여주었으며

첫 시즌에는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부상, 부진 그리고 폼이 떨어지며

후보로 밀리는

시기도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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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FC는 성적이

그닥 좋지 못한 상황 속에서

경기력도 부진했고

그나마 그와중에 클래스를 보여주는 선수는

역시 이을용 선수.

 

2011 시즌

리그 3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이을용은 현역은퇴를

선언했다.

 

 

 

 

 

국가대표로써의 이을용

2002 한일월드컵 4강신화의 주역

1999년

브라질과의 평가전을 통해

국대 데뷔했으며

당시 감독은 허정무.

 

그 후에도

꾸준하게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준주전급으로 모습을 보이더니

2002 한일월드컵

23인 최종엔트리에 합류하여

월드컵을 경험하며

인지도와 인기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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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에서

첫 경기 폴란드전에서

황선홍의 결승골을 환상적인 크로스

어시스트 하더니

미국전에서

PK를 실축했지만

안정환의 헤딩 동점골에서

프리킥으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맹활약.

 

나아가

3,4위전에서도

환상적인 왼발 프리킥으로

직접 득점을 올리며

이 대회에서

1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독보적인 스탯으로

팀의 4강을 이끌었다.

 

그 후에도

대표팀에 계속 이름을 올렸고

2006 독일 월드컵에도

당당히 뽑히며

좋은 활약을 보인 바 있으며

나이가 점점 들면서

자연스럽게 국대에서 멀어졌다.

 

A매치 51경기 3골

 

 

 

 

 

이을용에 대한 TMI

 

 

01. 왼발 스페셜리스트이다

 

전형적으로 왼발을 잘차는 선수로써

소소팀, 국대를 막론하고

왼발로 차기 좋은 각도에서의 킥은 모조리

이을용이 담당했다.

다소 투박(?)한 외모와 달리

기술에 비해

피지컬은 약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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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이을용의 아들도 FC서울에 입단했다

이을용의 큰아들도

축구선수의 길을 서서히 밟았고

날아라 슛돌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이강인과 함께

뛴 경험도 있는데

결국 17세이하 청소년 대표에 발탁되는 등

나름대로 엘리트 코스를 거쳤고

2021시즌을 시작하며

FC서울에 새롭게 입단하게 되면서

부자가 같은 구단에

뛴 케이스로 남게 되었다.

그 역시 아빠 유전자를 가져갔는 지

왼발을 주발로 쓰고 있으며

왼쪽 풀백이 포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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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청춘FC 감독을 맡은 바 있다

KBS에서 방영했던

프로축구선수가 되기위한 꿈을 가진

선수들을 발굴하는

청춘FC에 안정환의 권유로

공동감독으로

함께한 바 있으며

당시, 청주대 코치를 맡고 있기도 하며

평가전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 때에 이을용은

강한 카리스마의 안정환과는 달리

품어주는 리더쉽을

발휘하며 반전의 지도력을

보여주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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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안정환과 "위캔게임" 출연한 적이 있다

안정환과 절친으로

안정환은 여러 방송에서 이을용을

추천한 바 있으며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예능 찍는데 성공했다.

"위캔게임"으로

피파온라인4을 통해

컴퓨터게임을 해보는 것으로

재미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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