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국적
중앙 미드필더 포지션을 가지고 있으며
세리에A에서
1차 전성기를 보낸 후,
당시 EPL 최고 이적료를 자랑하며
맨유 유니폼을 입었으나
기대이하의 부진으로 먹튀 소리를 들은 바 있으며
그 후, 다시 세리에A 돌아가
나름대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으며
꽤나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했던 선수.
한때
베컴, 지단, 피구와 함께
선수이기도 하다.
1993년
자국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유스생활을 시작했고
1995년 프로데뷔와 함께 2부리그였던 팀을
1부리그로 승격시키면서
자국리그 명문구단
그 곳에서
우상과도 같은 존재
마라도나와 팀을 이루어 활약하기 시작했고
17경기 3골의 스탯과 함께
유럽 스카우터들에게
관심을 받더니
바로 이듬해
유럽무대 도전에 나서게 된다.
삼프도리아에서
주전으로 두 시즌을 활약하며
주가를 높였고
1,5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발생시키며
당시 화려했던
파르마의 일원이 되어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을 모두 우승했으나
정작 리그에선
성적이 6위에 그치게 되었고
바로 이듬해
다시 한 번 이적하게 되면서 팀을 옮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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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라치오는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두터운 선수층을
보유하고 있는 구단이었고
선수 면면도 화려.
슈퍼스타들이 가득했고 베론 역시 그 곳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99-00시즌
팀의 리그 우승과 함께
본인은 리그에서 21개의 어시스트를 배달하며
최고의 미드필더로
전성기를 구가.
허나, 남미 선수들의
가짜 서류 사건이 세리에A를 강타했고
베론은 무혐의를 받았으나
깍인 이미지는
계속 까였고
신물을 느낀 베론은
마침 라치오의 재정난까지 겹치게 되면서
이적을 도모했고
맨유로 이적하게 되었다.
베론이 가장 부진했고
먹튀라는 소리를 들었던 시기.
2,800만 파운드로
맨유 유니폼을 입었고
그만큼 그에게
기대하는 바가 컸으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최악의 부진.
시즌 초에는
좋은 폼을 보여주며
주가를 높이는 듯 했으나
우선적으로 맨유에는
같은 포지션에 폴 스콜스라는 존재가 있기에
베론은 조금 더 수비적인 롤을
부여받기 시작했고
자신에게 맞지않은 옷을 입은 듯
조금씩 부진에 빠지며
베론은 서서히 폼이 떨어졌다.
팀원들과
불화설에 휩싸이는 등
여러가지로 풀리는 것이 없던 베론은
그를 데려왔던
퍼거슨 감독이 언론에 대놓고
공표까지 했으나
결국 이적을 선택하게 되면서
로만 구단주가
구단을 인수하며 슈퍼스타들을 모으고 있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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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에서는 더욱더 최악.
부상 때문에
경기 출전 자체가 거~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세리에A를 주름 잡았던
베론의 모습은
EPL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부진으로
인식이 생겨날 정도가 되었으며
EPL 구단들도
남미 선수들을 영입하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하거나 꺼려하는 구조가
생길 정도로
베론의 부진은 여러가지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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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일단 그가 원하는 중앙 미드필더나 공격형이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던 것이
가장 큰 부진의 배경으로 꼽았으며
리그 자체가
베론과 맞지 않았다는
분석도 존재했다.
첼시를 떠나
임대로 인터밀란 유니폼을 입으며
세리에A에 복귀했고
거짓말처럼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더니
주전으로 꾸준히 나서며
맹활약 시전.
매서운 중앙라인을
형성하며
리그와 컵대회에서 인터밀란의 우승을 안기며
최고의 자리에 섰고
인터밀란은
무려 7년만에 무관에서 벗어난
시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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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되자 그는 고국으로 돌아갔고
고향팀에서
리그 우승과 함께
클럽월드컵에도 출전하게 되면서
결승전에서
메시가 이끄는
바르셀로나를 상대하기도 했으며
아쉽게 패배.
제 2의 전성기와도 같은 활약으로
2008~2009년
두 시즌 연속으로
2013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허나!!
고향팀에 회장으로 임명된 후
2017 시즌을 앞두고
시즌권을 65%이상 구매하면
현역복귀를 고려하겠다 공약을 걸었고
실제로 그 일이 이루어지자
정말 현역으로 복귀했다 :)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어시스트 3개를 기록하며 주가를 높였다.
그러나 2002 한일월드컵에서
부진했고
2006 독일월드컵에선
엔트리에서 아예 제외가 되는 충격.
2010 남아공월드컵도
엔트리 제외를
모두 예상했으나 당시 인연이 있던
국대 감독이 마라도나라
그를 데려갔고
마라도나의 이해 할 수 없는 전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으나
본선 첫 경기에서
부상으로 쓰러지며 대회를 마감했다.
베론의 아버지도
선수 출신으로 마녀라는 별명이 있었고
그의 아들 베론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이러한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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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도 축구선수였는데
현역 때, 잉글랜드 셰필드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본인도
EPL에서도 뛴다면
셰필드 유나이티드에서 뛰겠다고
다짐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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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
인터밀란 시절, 그는 더 오랫동안 팀에 남아서
활약을 하려고 했으나
당시 팀에 있던
말썽쟁이 아드리아누와 불화가 있었고
결국 재계약없이
조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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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0시즌
라치오 소속으로 베론은
리그에서 2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맹활약했는데
이 기록이 더 위대한 이유는
당시 세리에A는
어시스트의 기준으로 원터치만 인정했던 것.
지금과 같은 기준이라면
30개도 넘게 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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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감독은
베론이 맨유를 떠날 때에
그를 다른 포지션에서
써보았으면 더 낫지 않았냐는
언론의 질문을 받았고
퍼거슨은 거칠게 답변했다.
" 그 놈은 원래 지 마음대로 하는 놈이라,
어디에 뛰었어도 멋대로 했을거다. "
하지만, 애정은 있는 지
베론이 부진하다가 폼을 찾고
다시 부진하는 등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며
언론에서 그를
계속 까내리자 다시 한마디 했다.
" 이 XX한 새끼들아, 베론은 위대한 선수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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