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국적
골키퍼 포지션을 가지고 있으며
체코 국가대표는 물론
경기 도중,
심하게 머리를 다치는 부상을 당하며
그 후로
경기 때마다
헤드기어가
본인을 나타내는
하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기도 했으며
쉽게말해
헤드기어 착용 전과
착용 후로
나뉜다고 말할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달라졌다.
자국에서
유스팀을 거치며 축구선수의 꿈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갔고
본래 첫 포지션은
공격수였는데
연습에 팀 골키퍼가 나오지 않아
체흐가 임시로
골키퍼 역할을 했고
그에게 골키퍼로써의 재능이
있다는 걸 파악하고
포지션 변경을
권유하게 되면서
골키퍼로 나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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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의 나이로
프로 1군무대에 데뷔했고
좋은 활약으로
그렇게
그 곳에서 두 시즌간 활약하면서
환상적인 선방쇼를
바탕으로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었나
팀의 성적은
강등을 걱정해야할 정도로 떨어졌고
체흐의 활약으로
간신히 강등을 면했으며
체흐는 700만 파운드의 이적료와 함께
뛰었던 체흐에겐 힘든 순간들이 많았지만
오히려 하위권팀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선방능력을
보여줄 기회(?)들이 많았다는
그나마 장점들이 있었고
국대로 유로무대에서
이미 검증이 끝마친 상황이라는 점에서
당시 꽤나 높은 이적료로
첼시 유니폼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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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 첼시가 체흐를 영입한 건
쿠디치니의 백업개념으로
영입한 케이스인데
프리시즌에
쿠디치니가 부상을 당하게 되면서
체흐가 장갑을 꼈고
좋은 모습을 보이자
결국 리그 개막전에서도 체흐가
주전자리에 올랐으며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이자
사령탑에 오른
무리뉴 감독은 체흐를
지속적으로
중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려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우며
첼시의 골문을 든든하게 지켰고
그 해에 첼시는
체흐는 당당히
첼시의 주전이 되었다.
첼시는 2연속 우승했고
든든한 수비진과 함께 골문의 체흐는
넘사벽의 안정감을
보여주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06년 10월 레딩과의 경기에서
스티븐 헌터와
부딪힌 체흐는 심각한
부상을 당했고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그를 의료진의
부축을 받으며 직접 걸어나가게 만들었는데
라커룸으로 들어가
당시 체흐의
두개골 상태를 보았던 의사들은
하나같이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는
큰 부상이었다고
말할정도였으니 그가 다시 선수생활을 하는데
2007년 1월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복귀했고
그는 럭비선수들이
착용할 법한
애석하게도 은퇴전까지
헤드기어를 매일 착용하고 경기에 임했고
두개골 부상에 대한
트라우마로 공중볼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그는 넘사벽 수준의
선방능력과 빌드업까지 갖추게 되면서
골키퍼로
더욱더 나아갔다.
11-12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환상의 선방쇼를 연이어 보여주며 결국
첼시의 우승을 이끌었고
승부차기에
강하다는 걸 다시 한번
입증하는
순간이 되었으며
사실만으로도
역사적인 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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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4-15 시즌을 기점으로
ATM으로 임대를 떠나 기량이 물오른
쿠르트아가 첼시로
복귀하게 되면서
다시 돌아온
무리뉴 감독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노장보다 어린
쿠르투아를 주전으로
낙점 한듯.
주로 컵대회 등에서
출전했고 체흐의 에이전트의
여러가지 발언으로
이번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였고
결국 실제로
체흐는 이 시즌을 끝으로
첼시와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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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흐가 함께 한 마지막 시즌,
체흐는 첼시에서 총 4번의 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4번의 우승을 모두
함께했던 선수들은
유일하다.
체흐는
이미 첼시를 대표하는
떠나기 싫었던
첼시를 떠나
같은 런던을 연고지로 두고있는
아스날로 가게되었다.
당시 첼시 무리뉴 감독은 체흐를
팀에 남겨두거나
차라리 EPL이 아닌
외국리그로 보내야한다고 주장했으나
지금까지 체흐가
첼시에게 해주었던 공로를 인정해
본인이 스스로 원한
지역 라이벌
아스날 이적을 허락.
그리고,
무리뉴의 우려대로
체흐는 아스날의 주전 골키퍼가 되어
맹활약하기 시작했고
반대로 첼시는
골키퍼에서 흔들리기 시작하는 등
다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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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
아스날 팬들의 기대와 달리
잦은 실수를 통해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는 등 불안했으나
빠르게 적응하면서
다시 한 번
선방쇼를 보여주기 시작하는 등
클래스를 발휘하며
아스날의 골문을
든든하게 지키기 시작.
2015년 12월,
본머스전에서 무실점 경기를 펼치며
최다클린시트
기록을 갈아치우며
역사를 썼고
이 시즌,
골든 글러브
수상까지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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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 시즌이
아스날에서 뛰는 마지막 시즌이 되었고
유로파리그 전담 키퍼로
활약하면서
애석하게도
유로파리그 결승 무대가
은퇴경기가
될 예정이었는데
체흐는
멋진 선방을 여러 번 보였으나
팀은 1:4로 패했고
많은 언론들과 팬은
체흐가 아니였다면 스코어는
더욱더 크게
벌어졌을 것이라
얘기하기도 했다.
아스날 이후,
현역은퇴를 선언했으나 놀랍게도
20-21 시즌이
시작되면서
이름을 올리게 되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다른 포지션에 비해 귀한 골키퍼
엔트리가 부족해질 것을
우려하여
임시로 체흐를 올려둔 것.
체흐는
임시직으로
현역선수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으나
정~~말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그가 그라운드에
직접 뛸 일은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나
첼시 팬들에겐
반갑고 흥미로운 일이 될 듯 하다.
아스날로 이적 후,
첫 첼시 원정경기를 치루는 체흐는
전반전이 끝난 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첼시 라커룸쪽으로 몸을 향하다
방향을 다시 돌렸고
(습관이 몸에 베어버린 듯..)
뭔가 애잔한 마음이....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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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어는 물론
다양한 언어의 필요성을 일찌감치 느껴서
어린시절부터
영어와 독일어를 공부했다고,
더불어 선수생활을 하며
원활한 소통을 위해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를 공부했고
포루투칼어로 하는
은어섞인 욕까지 알아들을정도로
수준급(?)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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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닝 시리즈에서
체흐의 선방능력을 비롯한 능력치가
굉장히 높게 설정되어
말 그대로 사기 캐릭터로 불릴 수 있는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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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영국 아이스하키 4부리그팀에
입단하였고
포지션 역시
축구때와 같이 골키퍼였고
자신의 오랜 꿈
이었다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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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돈을 들여
영입했던 골키퍼 케파가 부진하자
체흐가 렌에서 뛰고있던
멘디를 추천해서
영입했고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으며
티모 베르너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체흐의 설득이
크게 한 몫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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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감독이
체흐 영입에 관심을 보인 바 있으며
고민하던 찰나에
결국 첼시가 체흐를 데려갔고
반 데 사르의
뒤를 이를 골키퍼가 필요했던 퍼거슨 감독은
급히 스페인에서 뛰던
데 헤아에게
꽤나 많은 돈을 들여
영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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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역대 최장시간 무실점(1025분)
2위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한시즌 역대 최다클린시트(24번) 1위,
한시즌 역대 최소실점의
기록도
페트르 체흐가
가지고 있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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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할 때의
그의 나이가 33살이었고
EPL 통산출전이
333회였기에
33번의 등번호를 달았다고 한다.
후에, 1번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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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흐는 오랫동안 뛰었던
첼시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쿠르투아의 복귀로 인해
결국 팀을
옮겨야하는 상황이 생기게 되었고
살고있던 런던의
아스날 이적을 결심,
이 때의 무리뉴 감독은 라이벌로
옮기는 체흐를 염려하여
로만 구단주에게
아예 외국으로 팔아버리라고 했으나
로만 구단주는
체흐의 지금까지 공로를 인정해
아스날 이적을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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