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국적
스몰포워드 혹은 파워포워드 포지션을
볼 수 있는 유형의 농구선수.
카메룬 출신이지만
국적은 캐나다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자격증이 있으며
은퇴 후,
실제 약사로 활동 중이다.
KCC 유니폼을 입으며
KBL 무대에 데뷔했으며 총 3년간 뛰며
이끌어내는데
최대 주역으로 활약.
다른 용병에 비해
피지컬이나 운동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영리하고 확실한 득점력으로
팀을 이끌었으며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도하다.
미국에서
농구를 시작했고 대학 진학 후,
1학년 때부터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하며 쏠쏠한 편이었고
2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활약하기시작.
198cm의 키는
파워포워드로써는 너무나도 작은 편,
실력은 좋았으나
결국 졸업 후
NBA팀들에게 지명되지 못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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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즌간 활약하며
득점왕까지 차지한 민렌드는
한층 더 수준이 높은
그곳에서도
3시즌간 활약하며
리그 MVP, 올스타전 MVP와 함께
득점왕 2회를 기록하며
주가를 높였고
하지만, 그가 이스라엘리그를 떠나
새롭게 도전한 곳은
몇 수 수준이 낲다고 평가되는
수많은 유럽 언론들이
민렌드의 KBL로 향하는 행보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가졌으나
결국 그는
국내 트라이아웃에 참가하여
KCC와
계약을 맺게된다.
KCC 유니폼을 입으며
기대감을 높였으나
시범경기에서 극도의 부진을 보이며
실망스러운 모습.
하지만,
리그가 개막하자
1순위로 지명된 이유를 증명하며
에이스 역할을 보였고
첫 시즌부터
저력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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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철을 서울SK로 보내면서
조성원이 팀에 합류.
대전 현대 시절,
이-조-추 조합이 다시 뭉치게 되면서
민렌드와 시너지 효과를 냈고
성적이 좋아지자
KCC 구단은
우승을 위해
KBL 역사에 남을 트레이드를 감행하는데
모비스로부터
센터 바셋을 영입하는대신
기존 용병과 함께
신인드래프트 1픽을 넘긴 것.
결과적으로
바셋-민렌드 용병조합과
이-조-추의 활약으로
차지하게 되었고
반면, 모비스는
KCC에게 건내받은 1픽으로
지금은 전설로 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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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를 물리치고
극적으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KCC는 또 하나의
우승을 추가했고 그 중심에는
국내선수들의
활약도 훌륭했으나
역시 믿을맨 민렌드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부분.
이듬해에도
챔피언결정전에 오르는
위력을 보였으나
민렌드 이외에 다른 용병들이 계속해서
부진을 거듭했고
작년 우승을 내주었던
원주가 저력을 발휘하면서
아쉽게 2년 연속 우승에는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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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시즌,
민렌드의 활약은 여전히 훌륭했으나
이상민과 조성원이
점점 더
나이가 들면서
노쇠화가 급격하게 오기 시작했고
민렌드 이외에
또 다른 용병들이
계속해서 부진을 거듭하면서
팀 성적도 오르락 내리락.
민렌드는
꾸준한 활약으로
결국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고
6강에서도 승리했으나
4강에서
트레이드 대상팀이었던
모비스에게
패하면서 결국 해당시즌을 마무리 지었고
그 시리즈에서
활약도가 가장 좋았던 선수는
시즌이 끝나고
민렌드는 KCC와 계약을 종료했고
그 곳의 감독은
바로 신선우 감독.
신선우 감독이
새롭게 부임하면서 팀 자체의
스쿼드가 변했고
기존 베스트5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선수가
민렌드는 현주엽과 함께
원투펀치의 위력을 보여주면서
KCC에 가지고 있던
득점본능을 이어갔고
평균득점으로 가장 좋은 스탯으로
득점왕과 함께
팀 성적도
2위로 굉장히 좋은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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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플레이오프에서
민렌드는 다시 한 번 KBL 역사에 남을
장면을 목격하는데
상대선수의 도발에 한계를 느껴
심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져 버린 것.
그 행동으로
파스코는 즉각 퇴장과 함께
KBL 퇴출이 이루어졌고
결국 그 시리즈에서도 LG가 훨씬 유리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으나
패하게 되면서
그것을 끝으로
민렌드 역시 KBL과 작별했다.
그 후,
우크라이나 리그로
진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며
소식이 전해졌다.
찰스 민렌드는
외모에서도 느껴지겠지만
탄력이 좋고 운동능력이 뛰어난 유형의 선수는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만의 스탭과
영리한 모션,
그리고 정확한 슈팅력을 바탕으로
30점에 가까운
평균득점을 올릴 정도로
득점력이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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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했고
실제로 약사 면허증을 가지고 있는 선수이며
농구선수 은퇴 후,
실제로 약국을 개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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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렌드가
직접 껴있는 트레이드는 아니었으나
민렌드의 활약 속에
버프를 받아
우승을 노리던 KCC 구단에서
신인드래프트 1픽을
포기하고
센터 바셋을 영입하는 선택을 통해
결국 해당시즌 우승했다.
하지만.....
그 대가가
바로 양동근을 뺏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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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경제학 박사였고
어머니는 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했다고 알려졌으며
본인도 약대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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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렌드의 이름을 따서
민철수라는 별명으로 불려지곤 했으며
신선우 감독도
그에게 민철수라 부를정도.
함께 뛰었던
이상민의 말에 따르면
쉬는 날에도
다른 용병들은 이태원에 나가
놀기에 바쁜데
민렌드는 숙소에 남아
약학 서적을 읽는데 시간을 보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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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민렌드 주니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센프란시스코 대학에 들어가
농구선수로 활약했으며
포지션은 슈팅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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