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삼성 썬더스의
감독으로 자리하고있는 이상민은
별명답게 완벽한 조율과
경기력을 바탕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농구선수.
KBL 역대 최고의
포인트가드 중 한명으로 꼽히고 있으며
현재 감독으로써의
커리어가 삐걱대지만
포인트가드가
가지고 있어야할 리딩과 어시스트
능력은 물론이고
공격력과 수비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잘생긴 외모로
KBL을 대표하는 선수로
남게되었다.
홍대부고 시절,
팀 성적은 바닥을 기었지만
본인 스스로
팀을 이끌며 에이스 놀이를 했고
결국 그 실력을 바탕으로
추후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고려대 진학 가능성이
더 높았지만
고대가 구타가 심하다는
소문(?)을 듣고
연세대로 피해갔는데
구타의 대마왕(?)
최희암감독을 만나
.
.
.
연세대 시절,
그는 20승 1패의 주역이 되어
맹활약을 했고
최희암 감독은
그에게 제한된 롤을 부여하며
어느정도 자신의
기량을 다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특출한 기량을 바탕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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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연세대 시절,
인대가 끊어지는 치명적인
부상을 안게 되는데
대전 현대는
그를 영입하면서
재활을 위해서 곧장 그를
상무로 입대시켰고
프로에 데뷔하기 전,
상무에서 기량이 제대로 발휘되며
그의 인기는 벌써부터
높아지기 시작했다.
상무 제대 후,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가드 이상민은
지금도 역대 최고의 콤비 중
하나로 꼽히는
맥도웰을 만나 그야말로
현대 전성기를 이끌게 되는데
97-98시즌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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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승균, 조성원 등
추억의 스타들과 팀을 이루며
현대는 승승장구했지만
현대그룹이 흔들흔들하며
연고지가 KCC로
변경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민은 팀에 남아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KCC로 연고지가
바뀐 후에도
이상민은 팀을 이끌며
다시 한 번 우승을 차지했고
수상하는 등,
본인의 커리어를 계속 쌓아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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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하게 되는데
서장훈의 이적으로
보상선수를 삼성에 줘야했던
KCC는 3명의
보호선수를 선정할 수 있었는데
서장훈과 함께
이적을 감행한 임재현이
보호선수로 선정되며
이제 나머지 1개 카드만 쓸 수 있는 상황,
팀에는 이상민과 추승균이
존재하고 있었고
KCC 구단 측은
설마 노장 이상민은 데려가겠어?
라는 생각으로
보상선수로 추승균을 선택했고
이에 삼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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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현대 시절부터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키워 온
가드 이상민이
팀을 떠나게 되버린 것.
그리고 어떤 이유가 되었든
프랜차이즈 스타를
한 순간에 버리게 된 꼴이 되어버린
삼성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뒤,
이상민은 팀에게 두 번의 준우승을
안겼는데 물론
팀에 좋은 용병이 있었다는
전제조건이
있기는 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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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09-10 시즌을
끝으로 현역은퇴를 선언했으며
그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 지는
보면 알 수 있는데
현역시절 단 한 번도
1위를 놓친 적이 없으며
은퇴 시즌에도
부동의 1위를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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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로써는
서울에 연고지가 있음에도
인기가 별로 없었던
삼성 썬더스는
톡톡히 거두기도 했다.
스탯상으로도
수많은 기록을 남겼으며
임팩트와 경기 장악력까지 갖추었던
선수시절의 이상민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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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생활을 시작했던
현대 -> KCC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면
더욱더 보기좋은 그림이 나왔을텐데
선수나 팬들에게는
삼성으로의 이적과 그 곳에서의
은퇴가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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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 가드로써
비교적 큰 키와 좋은 웨이트를
바탕으로 폼이 좋을 땐
덩크도 곧잘 넣었던 만능형 가드.
신장은 183cm로 큰 편은 아니지만
피지컬이 좋고 운동능력도
남달리 좋은 편에 속했던 이상민은
그 당시만 하더라도
190cm가 넘는 장신가드가 없었고
그렇기에 포스트업을 통해
득점을 올리는 게 하나의 득점루트였으며
뛰어난 점프력으로
포인트가드 포지션 대비
많은 블록을 기록하기도 했다.
프로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추어 시절에는
맘만 먹으면 덩크도 뿌려대는
탄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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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가지의 이유로 나뉘는데
우선적으로 본인이
반칙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2쿼터가 되기도 전에
파울트러블에
자주 걸리는 일이 발생했으며
5반칙 퇴장도 종종 당했다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상민과 함께 팀을 이룬
2번 포지션의 선수들이 대부분 신장이
작은 선수들이다보니
이상민이 상대편 2번 혹은 3번의
수비를 하는 발생하며
반칙이 많은 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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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에서 지금까지도
이상민을 능가할 인기를 가진 선수는
등장하지않고있다.
그리고, 왠만하면
앞으로도 이상민 그 이상의 인기를
가진 선수가 나오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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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1994의 여주인공
성나정(고아라)는
연세대 농구를 즐겨보며 이상민의
열혈 팬을 연기했으며
그 당시, 경기 모습이
꽤나 여러 번
방송에도 나왔고 소재로 다양하게
활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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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현재 최고의 플라핑을
꼽으라면 KCC 이정현을 떠올릴 수 있는데
사실, 현역 때 플라핑을 그 누구보다
자주했던 선수가 이상민.
그의 플라핑은 너무 유명하고
또 너무 자주해서
플라핑을 가장 많이하는 선수를 선정할 때
항상 1위를 선점했다는..
더불어, 팬 서비스가
훌륭한 편에 속하는 선수는 아니라
팬들의 환호나 선물공세에도
인상을 찌뿌리거나
정색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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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현대 유니폼을
입던 시절부터
많은 우승을 일궈냈던
이상민은 은퇴 후,
자신이 달았던 11번이
영구결번이 되었고
사실, 서장훈과 엮인
트레이드로 인해
사이가 틀어진 상태라
이상민은 영구결번에 대해서
딱히 신경을 쓰거나 찬성/반대 등의
의견을 내지 않았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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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철과 절친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은퇴경기에
23인에 선정되어 야구구장을
방문한 이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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