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웨인 웨이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의 기억은
나의 농구 팀의 가드 포지션의
친구가 가장 좋아했던 선수.
그 친구의 카카오톡 프로필은
언제나 웨이드로
말 그대로 범벅이 되어있었고
키가 작았던 그 친구는
NBA 소속된 선수 치고는 키가 작았던
드웨인 웨이드가 자신보다
훨씬 큰 선수들을
즐겼던 것이 아닐까?
프로필 상으로 193cm의 불과한(?)
웨이드는 전성기 시절,
2m가 훌쩍 넘는 센터들의 위를 날아다니며
환상적인 플레이를 즐겼고
지금도 하이라이트 필름으로 자주나오는
명장면을 만들어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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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은퇴했지만
여전히 선수시절의 임팩트를
제대로 남기며
많은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드웨인 웨이드,
얘기해보려고 한다.. :)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많은 이슈를 남겼는데
지금도 NBA 최고 스타로
군림하고 있는
르브론 제임스가 클리블랜드의
1순위로 지명된 해이며
3순위의
카멜로 앤써니,
그리고 바로 5순위로
마이애미의 지명을 받으며
당당히 NBA에 입성한
4순위가 나중에 같이 빅3를
이룬 크리스 보쉬이니,
정말 이 해에는
NBA를 대표할 수 있는 스타들이
많이 등장한 시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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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의 드래프트 동기인
르브론 제임스와
카멜로 앤써니에 비해서
주목도가 떨어지는 웨이드였지만
플레이오프 등,
큰 경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으며
그가 두각을 서서히 낼 시점에
나이가 어느정도 들었지만
그의 가치와
관심도 역시 점점 더
높아지게 되었고
결국 05-06 시즌
샤킬오닐과 웨이드는 환상적인
콤비의 모습을 보이며
웨이드는 승부처였던
3~5차전에서
평균 40점에 육박하는
환상적인 득점력과 경기력을 보이며
팀 우승에 중심에 섰으며
거머쥐게 되는데
주인공 부심(?)이 있는
샤킬 오닐 조차 그의 플레이와 활약을
인정할 정도 였으니,
그 시즌의 웨이드가 보여준
임팩트는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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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 시즌에는
NBA역사에도 남을 기록을 세웠는데
한 시즌 최초로
선수가 되었고
가드이지만
엄청난 운동력과 기량을 통해
블럭 능력까지
갖춘 선수라는 걸
입증한 스탯의 시즌이 되었다.
하지만,
샤킬 오닐이 떠난 상황에서
드웨인 웨이드가
우승에 도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새로운 도전, 혹은 계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2010년 드웨인 웨이드의 마이애미는
크리스 보쉬를 영입했고
영입하게 되면서
새로운 빅3를 결성하게 되는데
이 때에 빅3는
르브론 제임스의 합류로
자연스럽게 드웨인 웨이드는
2인자 역할로 밀리게 되는데
장단점이 존재하지만
결국 우승반지 2개를 추가했으니
서로에게 좋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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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3가 결성된 첫 해에
파이널에 진출하게 되면서
바로 우승을 맛 보는 듯 했지만
노비츠키가 이끄는
댈러스에게 일격을 당하며
우승에 실패하게 되고
다시 한번 재정비에 나선
마이애미는 결국
다음 시즌인 11-12 시즌에
우승을 맛보게 된다.
그렇게 마이애미는 두 시즌 연속
파이널 우승을 차지했고
마이애미의 심장과도 같았던
웨이드는 르브론 제임스에게
1인자 자리를 내주기는 했지만
우승에 함께하며
마이애미 팬들의 사랑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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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시기에는
중요한 경기에서 웨이드의
부진이 너무 컸다는 의견도 존재하고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전성기의 폼을 잃어버렸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 스스로
다시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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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빅3는 2번의 우승을
맛본 뒤,
해체하게 되는데
우선적으로 보쉬와 웨이드는
재계약 했지만
르브론 제임스가 자신의 원 소속팀이였던
클리블랜드로 돌아갔다.
드웨인 웨이드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에도
팀의 우승을 위해
자신의 연봉을 어느정도 손해(?)를 보며
팀에서 뛰었고
결국 3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마이애미의 프랜차이즈이자
스타로 활약했지만
재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마이애미 구단은 부상과 부진이 겹쳐져
폼이 어느정도 떨어진
드웨이인 웨이드에게 제대로 된
연봉을 책정하지 않았고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입은
드웨인 웨이드는
결국 마이애미를 떠나
마이클 조던의 그림자가 가득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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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불스에는
드웨인 웨이드와 같은 존재였던
데릭 로즈가 팀을 떠나
뉴욕 닉스로 이적한 상태였고
어느정도 리빌딩이 필요한
그야말로 어지러운
상황 속, 웨이드가 합류했고
버틀러라는 또 다른
에이스와 좋은 호흡을 기대했지만
기대했던 것 만큼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지는 못했다.
리그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소소한 트러블도
발생했고 결국 웨이드는 기대했던 것만큼
활약 및 두각을 내지 못하며
다시 한번 FA로 나오게 되었으며
그가 전성기 시절,
마이애미에서 보여주던 포스있는 모습과
실력에 비하면 초라하다고
여겨질 행보였다.
시카고 불스를 떠나
친구 르브론 제임스가 있는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은 드웨인 웨이드.
하지만 빅3를 이룰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는데
여전히 엄청난 경기력을 통해
팀의 에이스이자
NBA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남아있는
르브론 제임스와는 다르게
드웨인 웨이드는
지쳐있고 체력적으로 떨어지며
함께 베스트5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2~3쿼터에 영향력을 낼 수 있는
롤을 부여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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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드웨인 웨이드의 클래스는 여전했고
예전에 보여주었던
엄청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활기 넘치는 플레이는 사라졌지만
미들레인지 점퍼와
포인트 가드가 부족했던
클리블랜드의 포인트 가드 역할을
수행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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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한계가 있었고
드웨인 웨이드의
클리블랜드의 여정 역시
그렇게 오래 가지 못하고
끝을 맺는다.
드웨인 웨이드,
자존심에 금이 가며
스스로 떠난 곳이였지만
사실, 은퇴 전
돌아오는 선수들의 경우
팀 성적을 올려주거나 에이스 역할을
해줄 목적으로 오기엔
이미 나이든 경우가 많은데
웨이드와 같은 경우,
오히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팀에 기여하고 기대이상의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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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의
리그 경기에서
말도 안되는 자세에서
3점 버저비터로 팀의 승리를 이끌고
마지막 홈경기에서
30득점을 기록했으며
자신의 마지막 NBA 경기에서는
트리블더블로 자신의 NBA 경력을
마치며 화려하게 은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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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마이애미 구단은
드웨인 웨이드가 달았던
등번호 3번을
영구결번 하기로 결정했으며
팀을 3번이나 우승시킨
- 직접 패션 브랜드 디자인 및 브랜딩에도
참여할 수준의 패션 감각
- 할머니의 영향으로 독실한 기독교인 그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문신이 아~예 없다.
- 자신의 팀 후배 기(?)를 살려주기위해
애런 고든과 차별된 점수를 준 바 있다.
- 변명으로 둘러대기는 했지만
그의 행동은 용서받기엔 너무 잘못된 행동이다.
- 댈러스와의 파이널 시리즈,
감기투혼으로 어렵게 경기를 이끌고 가던
노비츠키에 대해서 웨이드와 르브론이
험담, 조롱하는 장면이
화면에 잡혀 비난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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