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m가 넘는 큰 키에
환상적인 스피드와 슈팅력,
그리고 탄력을 바탕으로 엄청난 공격력을
보여주었던 맥그레이디,
일명 티맥으로 불리는 그는
휴스턴 시절,
믿을 수 없는 경기를 만들어내기도 하며
한 때,
임팩트가 강했던
그는 전성기가 길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NBA 명예의전당에 이름을
올린만큼
실력을 인정받는 슈퍼스타이다.
1997년 NBA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어 토론토 유니폼을 입은
맥그레이디는
고졸 출신으로써 출전시간 자체가
길지 않으며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성장세를 보이며
벤치에서 출발해도
꾸준한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토론토는
그의 그늘에 가려진
티맥은 결국 토론토에서 3년간의
생활을 정리한 후,
새로운 팀으로 도전을 나선다.
올랜도는 새로 거듭나기위해
티맥과 함께 그랜트 힐을 영입하며
리그 최고의 원투펀치를
꿈꿨지만 그랜트 힐이 장기 부상을 당하며
티맥에게 의지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티맥은 그러한 부담감과 기대심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는데
02-03시즌,
기록하며 그 해에
득점왕 타이틀을 따내고
5할이상의 승률을 기록하며
팀을 플레이오프 무대에
진출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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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젊은나이에
환상적인 득점력을 바탕으로
NBA무대를 주름 잡았고
한 경기 62득점을 기록하는 등
파괴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권을
가진 올랜도가 드와이트 하워드를 선택하자
티맥은 강한 불만을 드러냈고
100% 팩트라고 할 순 없지만
그러한 불만을 바탕으로
트레이드까지 요구했다는 후문.
결국 맥그레이디는
드와이트 하워드는
오히려 신인시절부터
기대이상으로 너무 잘해주었으니
티맥이 올랜도에 남았다면
더 좋은 팀 성적과 커리어를
기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맥그레이디의 휴스턴 시절은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데
지금도 많은 팬들에게 회자되고있는
패색이 짙던 상황에서
티맥은 33초동안 13점을 몰아넣으며
믿을 수 없는 승리를 이끌었고
게임에서도 불가능할 것 같은
플레이를 보였는데
상대가 수비 조직력이 끈끈한
샌안토니오였다는 점에서
더욱더 놀라운 부분.
영상으로 수십 번 돌려보아도
눈으로 봐도
믿을 수 없는 그의 플레이는
지금까지도
NBA를 대표하는 하이라이트 필름으로
여기저기 나오고 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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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 시절은
맥그레이디에게는 개인적으로
아쉬운 시간,
야오밍과 함께
투맨 게임으로 재미를 보며
좋은 성적을 냈고
야오밍이 부상으로 빠진 시기에는
에이스로 팀을 이끌며
리그 22연승이라는 좋은 흐름을
이어가기도 했지만
매번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더 높은 성적을 내지 못했고
더불어 무릎부상이
겹치면서 서서히 커리어 정점에서
떨어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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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 역시
부상이 잦은 티맥에 대한
신뢰가 깨진 상황에서
계속 상황을 예의주시했고
그에게 관심을 보인
뉴욕닉스와의 협상을 통해서
그는 다시 한 번
팀을 옮기게 된다.
뉴욕닉스로 유니폼을 입은 그는
과거의 명성대로
수많은 관심을 모으며
티켓파워는 자랑했지만
떨어진 폼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못했고
간혹 폭발적인 득점력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일시적일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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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치며 그는 주전이 아닌
벤치에서 뛰는
경우가 점점 더 늘어났고
점점 더 출전시간도
줄어들었으며
NBA에서 그를 원하는 구단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NBA에서 더 이상 뛸 수 없었던
티맥은 결국
방향을 틀어 중국으로 진출하는 데
중국의 농구 인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지만
NBA에서 한가닥하던
티맥의 중국 진출은 나름의 신선한 충격과
아쉬움이 동반되었다.
12-13시즌을 중국에서 뛴 그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팀 성적은 최하위를 기록했고
설렁설렁 뛴
그에게는 큰 의미부여를
느끼기엔 중국무대는 좁았다.
중국무대에서 다시 NBA로
돌아온 그는
샌안토니오와 계약을 맺게 되는데
사실상, 카와이 레너드의 백업.
말이좋아 백업이지
거의 가비지 타임에만 코트에 모습을 보이며
팀에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고
그 시즌이 끝나게 되면서
샌안토니오가 맥그레이디가
은퇴를 선언하고
다음 시즌에서 파이널 우승을 차지했으니
우승반지를 낄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던 티맥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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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맥은 결국
NBA를 비롯하여 잠시 뛰었던
중국리그까지 포함하여
올랜도 시절,
팀 성적이 너무 나오지 않자
짜증이 가득한
티맥은 은퇴를 하겠다는 발언을 했고
팀 내 베테랑이 그만 좀
징징대라고 소리쳤을정도..
물론, 어린 시절이라
아직 성숙하지 못했던 티맥의 얘기일 수
있겠지만 커리어 전체적으로 보면
그는 꽤나 여러 번 징징대는 모습을 인터뷰를
통해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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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빈스카터가 세계에 주목을 받았던
2000년 덩크 콘테스트에
티맥도 함께 출전을 했었고
다만, 빈스카터의 덩크가
너무 임팩트가 강해
티맥이 출전을 했는 지, 어떠한 덩크를 했는 지
기억하는 이가 거의 없다는 것.
실제로 두 선수는
토론토에서 같이 뛴 적이 있으며
빈스 카터의 그늘에
가려졌던 티맥은 더욱더 많은 출전시간을 위해
이적을 감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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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던의 뒤를 따른 것일까?
티맥은 농구계에서 은퇴한 뒤
야구에 도전을 했으며
MLB의 전설적인 투수로 평가받는
로저 클레멘스의 코치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하는데
물론, 성적은 개차반에 가까웠고
해프닝 수준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맥이라는 인지도의 인기에 따라
독립리그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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