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국농구협회 회장으로
자리하고있는
야오밍은 NBA에 진출하여
가장 커리어적으로 성공한 아시아선수로
이름을 올리며
우리나라에서도 키가 큰 친구들에게
야오밍이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로
그는 키 큰 농구선수의 대명사가 되었고
무엇보다 키만 큰 것이 아니라
농구 자체를 너무나도
잘하고 일종의 천재적인 모습과
노력하는 모습이
어우러지며 NBA에서 가장 성공한
아시아 선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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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이 잦아지면서
NBA에서 전성기가 짧기는 했지만
그 짧은 임팩트에
모든 것을 보여준 야오밍,
대해서 알아보자 :)
17살의 중국 프로무대에
진출한 야오밍은
어린시절부터 연습벌레로 알려졌으며
야오밍 이전에
중국 최고의 농구스타로 평가받는
왕즈즈와의 지속적인
대결에서 재미를 보지 못하며
그를 이기기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음을 여러 인터뷰나
야오밍 자서전을 통해
직접 밝히기도 했던 부분.
왕즈즈 역시 216cm의
큰 신장을 지니고 있었고
무엇보다 3년 먼저
야오밍보다 프로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둘은 클래스 차이가 났는데
후에 야오밍이 팀을
중국리그에서 우승을 시키며
왕즈즈를 넘어섰으며
그가 더욱더 성장하는 데
기폭제 역할을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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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오밍이 우승을 시킨
샹하이는 그 때가
처음 우승이자 지금까지도 우승경력을
쌓지 못했다고 하니
야오밍에게 감사해야할 따름.
더불어 야오밍은 2001년에 열린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MVP를 수상하는 등
환상적인 활약을 보여주며
이미 시드니 올림픽에서
백업 센터로 뛰며
미국을 상대로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야오밍에 대해서 많은 NBA 관계자들이
아~ 저 선수 NBA
곧 올 수 있겠구나 라고 여겼다고 하는데
짧은 시간임에도
그 때에 나이가 18살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유망해보였을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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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야오밍은
2002년 신인 드래프트에 참여했고
그 당시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휴스턴 로켓츠는
고민없이 그를 선택하며
야오밍은 NBA에 입성하게 되었고
최초이자 지금까지도
깨지지않는
이름을 올린 선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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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오밍의 1순위 선택은
여러 NBA 전설들의 관심사가 되었고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많았지만 생각이상으로
부정적인 평가도 많았는데
아시아 선수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고
사실, 그가 검증된 건
큰 신장 뿐이니 그에게 1순위를 주는 건
어떻게 보면 휴스턴에게는
큰 모험이었을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오밍은 자신의 실력으로
그러한 의구심을
지워버렸으며 NBA 역사에 충분히
남을 수 있는 활약을 펼쳤다.
야오밍은 시즌 초반,
적응에 애를 먹으며 부진했는데
시즌을 준비하기 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참여하며
NBA준비에 100%로
매진하지 못했던 것도 원인이 컸으며
충격적인 패배를 한국에게
당한 것도 어느정도 이유가 되었을까?ㅎㅎ
하지만, 그는 조금씩
적응했고
찰스 바클리가 우스갯 소리로
야오밍이 20점이상을
넣으면 케니 스미스 엉덩이에 키스를
하겠다는 발언까지 했는데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20점 이상을 기록하며
찰스 바클리를 벙찌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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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킬오닐은 이 날 경기에서
31득점 12리바운드를 기록하며
10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한 야오밍에게 기록에서는 앞섰지만
다른 센터들과의
경기에서 보여주었던 모습과 달리
말 그대로 신장이 큰
이 날 3번의 블록을
야오밍에게 당하기도 했으며
결국 경기에서는 야오밍의
활약에 힘입어 휴스턴이 승리하게 된다.
어떠한 언론에서는
이 때의 경기를 기점으로 하여
야오밍의 활약이
확실히 좋아졌다고 하는데
글쎄~ 야오밍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실력적으로 그냥 우수한 선수였고
적응이 되면서 그것들이
더욱더 발휘되었을 뿐이라는 개인적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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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루키 시즌에
기록하며 신인왕 수상급의 활약을 보였지만
아쉽게 스타더마이어에게
밀리며 2위에 이름을 올렸고
그럼에도 첫 시즌,
기대했던 것 이상의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NBA에 연착륙했다.
04-05시즌을 기점으로
득점력이 뛰어난 티맥이 팀에 합류하며
혼자 하기보다는
티맥과 함께 한다는 점에서
야오밍 역시
부담감을 어느정도 내렸고
팀의 기둥으로써 활약을 시작했는데
05-06시즌,
처음으로 시즌 기록에서
더블더블을
기록하며 자신의 가치를 더욱더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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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조금씩
노쇠화가 시작된 오닐과의
매치업에서도
압도하는 모습을 간간히 보여주며
확실히 자신이 능력있는
센터라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는데
하지만 그에게는 꾸준하게
확실히 신장이
너무 큰 선수들의 내구성은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음을 야오밍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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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오밍은 시즌내내
에이스와 가까운 괴력의 모습을
보였지만 한 시즌을
풀로 뛴 시즌이 없다고 볼 정도로
부상에 신음했고
충분히 올 NBA 퍼스트팀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활약과 실력에도
그러한 부분들이 제한적인 요소였다.
08-09시즌은
사실상 야오밍 커리어에서
NBA 마지막 시즌이나 다름 없었고
한 시즌에 가장 많은
77경기를 소화하며 활약했는데
티맥이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도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고
LA레이커스와의 경기에서
코비와 무릎을 부딪히며 쓰러진 상황에서도
코치진의 만류를 거절하고
경기장에 나가
경기를 지속하는 투혼을 발휘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다시 한 번 부상으로 쓰러졌고
시리즈에서도 레이커스에서
팀이 패하는 아쉬운 시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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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시즌은 부상으로 인해
결국 통으로 시즌을 날리며 충격을 안겼고
10-11시즌 역시
5경기 출전에 그치게 되며
그는 더이상
선수생활을 이어가지 못할 것이라
스스로 판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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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여러가지로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야오밍은 너무나도 많은
부상에 신음했었고
자신의 몸을 위해서
내린 결정이니, 오히려
잘된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는 부분.
결국 야오밍은 자신의
NBA커리어에서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2916년 9월,
야오밍은 명예의전당에 이름을 올렸으며
샤킬오닐, 아이버슨과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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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계속해서 까내리며
펌하했던 찰스 바클리의 생일에 오히려
축하 메세지를 남겼고
자기와 비교되는 샤킬오닐에 대해서
" 샤크의 팔꿈치는 물렁해서 아플 것 같지 않다 "
라는 말을 하는 등, 진지해보이는
얼굴과 다르게 위트있는 인터뷰를 많이하며
말 그대로 센스있는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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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오밍은 어릴 때에 사고로 인해
왼쪽 청력을 잃었으며
경기를 할 때에 어느정도 지장이 있기는 하지만
나의 실력이 줄지 않는다는
다소 쿨한 인터뷰를 하기도 했는데
자신의 청력문제는
자서전을 통해 이미 말했던 부분이고
휴스턴 초반에 함께 뛰었던
프랜시스 역시 청력 한 쪽이 안좋은 편이라
휴스턴 팀 내에서는
수신호로 사인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았다는 후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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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에
중국의 기수를 맡았으며
은퇴한 후, 2017년 중국농구협회 회장직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야오밍이 뽑히며
지금까지 수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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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신장이 상대방을 하여금
우월하게 보이는 효과를 보였던걸까?
야오밍은 지독하게도
파올 콜을 불리하게 받는 선수였는데
얼마나 심했으면
해설진들이 야오밍이 불리한 판정을 받자
" 누가봐도 파울이잖아!! "
라는 말을 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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