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축구선수 등번호 7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호날두가 아닌
데이비드 베컴이
맨유 1군에 데뷔하며
한참 최고의 폼을 보여줄 때에는
내가 너무 어려서
직접 그의 플레이를 보진 못했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그 후의 레알 마드리드 시절의
모습은 충분히 즐겨보면서
그의 얼굴이
오히려 축구실력을
묻혔다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축구 실력이 뛰어난 선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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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와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이 되었고
은퇴 후에도 각종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커리어를 살펴보자 :)
맨유 유스 출신의 베컴은
각종 유스대회에서 두각을 보이며
퍼거슨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혔고
93년 5월,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맨유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며
데뷔에 기회를 노리지만
지금과도 너무나도 다른
그 시절에는
강팀이었던 맨유였기에
어린 베컴은 출전기회가 쉽지 않았고
스스로 경기에 뛰기위해
임대를 요청하는데
임대되어 경기를 뛴다.
그 때에 뛰었던 성적은
5경기 2득점으로
나쁘지 않았고 한참 열심히 뛰던 와중에
퍼거슨 감독이 베컴을
복귀시키는 데
바로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이어지며
당장 뛰어야할 선수가 필요했고
그렇게 베컴은
자신의 생각보다 조금은 빠르게
데뷔전을 치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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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전에서
이 어린선수는 전혀 주늑들지않고
대담한 플레이를 보이며
기대감을 높였고 이듬 해에 개막전부터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는 데
이 경기에서
영국 전역에 데이비드 베컴이라는
이름을 알리게 된다.
베컴은 유스 출신으로써
맨유유스의 성공작이라고 평가받는
아이들 중 한명이었는데
네빌형제, 니키 버트 등이 있으며
이 시절을 함께했던
선수로 스콜스와 긱스도 있다.
1997년 등번호 7번을 달며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던 칸토나가 돌연 은퇴를 선언하자
퍼거슨 감독은
추가적으로 슈퍼스타들을 영입하지않고
유스 중심으로 팀을
꾸리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는데
그 당시에는 많은 비난과
걱정 어린 시선을
받았지만 결국 퍼거슨 감독은
유스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새롭게 꾸려서
맨유를 거듭 강팀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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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컴은 그 중심에 있었고
결국 98-99시즌
트래블 시즌을 만들며
맨유를 유럽 최정상 클럽으로 이끌었고
베컴 역시 결승전에서도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잘생긴 축구선수가
실력도 좋다는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는 활약이었다.
맨유의 좌우라인은
환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다이내믹하고 기술이 좋았던
좌측에 긱스가 있고
킥과 크로스 능력이 남달랐던
베컴이 우측에 있어
좌우 밸런스가 너무 좋고
선수 개개인의 능력도 좋았는데
호흡도 좋은 편이라
베컴은 맨유 시절,
한창의 전성기를 누렸고
3시즌 도움왕에 오르고
발롱도르 2위를 차지하는 등,
세계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조금씩 높여가기도 했으며
원조가 되어
맨유 시절, 총 9번의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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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베컴은 큰 부상을
당하며 쓰러졌지만
극적으로 월드컵에는 뛰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그가 영원할 것 같았던
맨유를 떠나게 된
사건이 2003년에 생기게 되는데
퍼거슨 감독은
불 같은 성격을 가졌으며
하프타임 때,
라커룸으로 들어가서 마음에 들지않는
플레이를 한 선수에게
호통을 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 날, 베컴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퍼거슨 감독은 호통치며 축구화를
차버렸고 애석하게도
그 축구화가 베컴의 얼굴을 치게 되면서
베컴은 상처를 얻는다.
결국.. 여러가지
이슈들이 이유가 되었지만
이 라커룸에서 벌어진 사건이 발단이 되어
결국 베컴은 그토록 자신이
사랑했던 맨유를 떠나 이적을 결심한다.
베컴은 맨유 소속으로
384경기 출전,
맨유 전성기의 영광을 함께 하며
맨유의 역사로 남았다.
맨유 7번의 상징으로 유명한 베컴은
처음 1군에 합류했을 때에
28번을 달았고
24번을 달았다가
다시 10번으로 변경했고
결국 7번을 받으며
맨유를 떠나기 전까지 줄곧
이적을 결심한
베컴은 사실 바르셀로나와의 계약이
유력했는데, 그 당시
현지 언론들도 이미 기정사실화하여
그가 바르셀로나로 간다고
말할 정도?!
하지만 예상밖에 데이비드 베컴은
입게 되었고
너무나도 유명한 갈락티코 1기의 멤버로
합류하여 현실에선 믿을 수 없는
라인업의 중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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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은 물론이고
스타성을 겸비한 베컴의
마드리드 이적은
엄청난 인기와 화제성을 몰았고
맨유와 대표님에서
부동의 7번 등번호를 달았던 그는
이미 레알의 전설
라울 곤잘레스가 그 번호를 달고 있기에
새롭게 23번의 배정을 받았는데
오히려 이 번호가
팬들이 사랑하는 번호가 되었다.
역시 베컴의 스타성은
모든 것을
바꿔놓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
멤버는 너무나도 화려했지만
오히려 공수의 밸런스가
무너지며 갈락티코 1기의 성적은
나날히 떨어져갔고
오른쪽 미드필더가 주 포지션인
베컴 역시 피구와
포지션이 겹치는 바람에
중앙 미드필더에서 뛰는 시간이 늘어나며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잦은 부상이 겹치면서
스스로 부진한 면도 있었고
레알 마드리드는
당찬 포부와는 다른 행보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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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펠로 감독이 부임하고
베컴은 더욱더
주전 라인업에서 멀어지는 듯 했지만
반니스텔루이가 영입되며
그에게 패스와 크로스를 제대로 뿌려줄
선수가 필요했고
결국 다시 주전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데이비드 베컴은 환상적인 크로스와 함께
팀을 이끌며 그 시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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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맞지않은 위치에서 뛰고
부상에 고전했지만
결국 마드리드에서 뛰는 마지막 시즌에
라리가 우승을 차지하며
베컴은 자신의 능력을
다시 한 번 입증하는 시즌이 되었고
전체적으로 보면 아쉽지만
그럼에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를 떠난
베컴의 다음 행선지는 놀랍게도
미국이였는데
미국은 서서히 프로축구에 투자하고 있었고
흥행을 위해 슈퍼스타가
필요한 시점에서
데이비드 베컴만한 카드가 없었기에
그에게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영입에 성공했고
베컴 역시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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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일부 관계자와 팬들은
베컴의 연봉이 지극히 너무 높은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인 의견들이
존재했지만 베컴의 시장가치를 생각한다면
그런 말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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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베컴은
미국에서 뛰며 비 시즌동안
AC밀란에 임대되어
뛰기도 했는데
그 곳에서도 활약은 뛰어났으며
무엇보다 챔피언스리그에서
AC밀란 소속으로
상대팀인 맨유의 홈 구구장에 방문하여
경기에 뛰며 이색적인 그림을 만들었으며
맨유의 팬들은
팀의 레전드를 반겼고
데이비드 베컴 역시 준수한 활약과 함께
놀랄말한 중거리슛을
터트리는 등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참고로 이 경기에서
박지성 역시 경기에 출전했으며
베컴과 박지성이 한 그림에 잡히는 장면들도
꽤나 여러 번 포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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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밀란에서의 활약은
세리에A 팬들에게는 즐거움이였지만
정작 자신이 본 소속팀인
LA갤럭시의 구단과 팬들은 좋아하지 않았는데
비시즌동안 휴식을 취하며
컨디션을 끌어올려야 할 선수가
쉬지않고 다른 리그에서 뛰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부상까지
달고 복귀했기 때문..
결국 데이비드 베컴은
AC밀란에서 뛴 경기가 LA갤럭시에서
뛴 경기보다 더 많은
아이러니한 장면을 만들기도 했다.
LA갤럭시와 이별한 베컴은
아스날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그가 아스날로 복귀하냐
여러가지 이슈로 떠올랐지만
그가 비시즌동안
몸을 만들기위한 단순한 여정이었고
사실 뛰어도 무방했지만
자신의 친정팀 맨유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아스날행은 맨유 팬들에게
비난받을만 한 일이었기에 거부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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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결국 프랑스리그의
신흥강호 PSG으로 팀을 옮겼고
꽤나 높은 주급을 받았는데
자신의 모든 주급을
기부하며 슈퍼스타로써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클래스있는 모습을 보이며
팀 동료, 젊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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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PSG시절에도 우승을 경험하며
커리어 기록을 남겼다.
마지막 은퇴경기에서
교체되어 나가며 울음을 터트리는
베컴의 모습은
마치 영화 한 편의 모습..
잉글랜드 국가대표에서도
데이비드 베컴은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을 이끈 바 있으며
그의 택배 크로스는
어느 팀에서도 환영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환상적인 무기였고
그는 킥 말고도 활동량도 좋았던
선수였기에 감독이라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유형.
1996년 처음으로 A매치에
데뷔했으며
1998프랑스 월드컵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국대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데
본선에서도 멋진 프리킥으로 득점했으니
그는 충분히 멋진 데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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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지금의 AT마드리드
결국 영국도 탈락했으며
베컴은 성숙하지 못했다는 의견들과 함께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는데
그러한 불명예를 뒤엎을 수 있는
활약을 2002년 한일월드컵예선에서
만들어버린다.
그리스와의 최종예선.
1:2로 잉글랜드는 지고 있었고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비겨야했던
잉글랜드에게는 1골이
필요한 상황 속,
후반 45분이 되었고
반칙을 얻어낸 잉글랜드의 키커는 베컴.
그리고 베컴은
극적인 2:2 무승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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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에 경기가 벌어진 곳이
맨유의 홈구장 올드트래포드 였으니
얼마나 더 극적인가??
머리를 모두 밀어버린
데이비드 베컴이 득점 후,
보여준 세레머니 역시
너무나도 간지나는 명장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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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베컴은
잉글랜드의 중심으로 활약했지만
메이저 대회에서
잉글랜드의 우승을 이끌지는 못했고
몇몇 언론에서는
베컴 중심의 국대 전술이
오히려 팀을 방해한다는 의견까지
나왔지만, 개인적으로
베컴은 잉글랜드의 중심이 될 자격이 있었고
여러가지 운이나 전술적인
부분이 아쉽지 않았나 하는 생각?!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도
출전이 충분히
가능한 폼을 가지고 있었지만
불의의 부상을 당하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
그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이었던
카펠로는 베컴의 이러한
상황을 안쓰러워하며 그를 스탭으로라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하며
베컴은 선수가 아닌 스탭으로 월드컵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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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축구협회에서는
데이비드 베컴에게
국가대표 은퇴식을 성대하게 치뤄주고 싶었지만
베컴 스스로 본인은
뛸 수 있을 때 까지 대표팀에서 뛰고 싶다며
은퇴식을 거부했고
개인적으로 이 부분도 너무 멋있다는.. :)
결국 12-13시즌을
끝으로 프로생활을 은퇴하면서
자연스럽게 국대에서도
은퇴를 선언하는 상황이 되었다.
유럽생활을 정리하고
LA갤럭시 이적을 앞둔 데이비드 베컴은
7번을 달고 싶었지만
이미 팀에는 7번을 달고있는 선수가 있었고
등번호를 고민하던 중,
아내 빅토리아 베컴이 미국시장에는
조던이 최고이니,
그의 번호를 딴 23번을 추천했고
그렇게 해서 베컴은 23번을 달고 시즌을 치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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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같은 얼굴에
환상적인 축구실력을 가졌고
걸그룹 출신의 아내까지 얻어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사기캐 베컴,
그가 유일하게 가질 수 없었던 것이
바로 목소리..!
외모와 다르게 하이톤의
목소리를 가진
베컴은 본인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진 않는 듯
했지만 언론이나 팬, 그리고
유명쇼에서도 베컴의 목소리를 두고
개그소재로 활용하며
놀리곤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예전보다는 하이톤이
많이 잡혔다는 후문.
사실, 모든 것을가진 베컴에게
어떻게든 흠집을
내려는 사람들이 다수인데, 목소리도
뭐~ 나름 매력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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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베컴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축구선수로
여러 번 지네딘 지단을
언급했으며 지금까지도 친분이 두텁다.
함께 광고를 찍기도 했다는 :)
유로 8강에서는
서로 적으로 만나
베컴은 페널티킥을 실축하고
지네딘 지단은 극적인 결승골로 팀의 승리를
이끌며 비교되었던 과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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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베컴은
거의 왠만한 모든 경기에
긴팔 유니폼을 착용하고 뛴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고
명확했는데
팔에 있는 문신들이
축구를 보는 아이들이 보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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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면 베컴과 빅토리아의
유명세는 훨씬 더 베컴이 높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사실,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할 때에
빅토리아는 영국 최고의 걸그룹 멤버 에이스였고
베컴은 맨유의 유망주 수준,
빅토리아의 뮤비를 보고 반해버린
베컴은 공식 인터뷰를 통해
빅토리아에 대한 마음을 대놓고 공개했고
빅토리아 베컴이 맨유 클럽하우스를
방문하는 것을 통해
공개연애가 시작되었다는 스토리 :)
데이비드 베컴의
잘생긴 외모를 더욱더 부각시켜 줄
패션센스는 모두
빅토리아의 손길을 거친 것이라고 하니
베컴 역시 빅토리아의
덕을 본 경우가 많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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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컴은 신이 내린 능력의 선수만이 아니다.
남들과는 다른 응용력과
엄청난 연습량을 통해 자신을 최고로 만들었다.
베컴에 DNA에는 프리킥 본능이 있다.
그는 최고의 프리키커이다.
선수들에게 리더로써 존경받는 베컴은
더 이상 증명할 필요가 없다
브라질 국대에 외국인 선수를
보유할 수 있다면 오직 베컴이었을 것이다.
그는 내가 어디에 있든 정확한 패스를 전달했고
그런 그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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