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파커의 팬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개인적으로 토니 파커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다만, NBA 선수들의 커리어를
정리하면서 던컨과 지누빌리에 대한
포스팅을 다루다보니,
샌안토니오 전성기를 함께했던 빅3의 축이였던
토니 파커를 빼놓을 수 없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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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그의 플레이 스타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던컨에 밀려 어느정도는
과소평가 되었던 선수라는 것에서는
나 역시도 동의하는 부분.
프랑스 출신으로
낮은 로터리픽임에도 불구하고
NBA를 대표할 수 있는
가드로 기록들을 남긴 토니 파커 커리어에
대해서 돌아보도록 하자 :)
아버지가 미국 대학을 경험한
농구스타였고
그러한 영향을 받아 농구를 시작했는데
그가 본격적으로
농구선수가 되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바로 농구계의 최고의 스타
마이클 조던의 플레이에 감동을 받아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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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조금씩 기량을 내보이며
미국대학들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지만
유로리그에 데뷔하여 활약하다가
2001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며 도전장을 내미는데
이 때에도 역시
NBA 구단들은 유럽 선수들에 대한
이미지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였고 그를
원하던 구단들이 많지 않던 탓에
샌안토니오는 그를 28라운드에 손쉽게(?) 지명하여
영입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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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비치 감독은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용했는데 기량은 좋았지만
역시나 큰 경기 경험 부족으로
플레이오프에서 말 그대로 죽을 쓰며
언론들은 그를 중용했던
포포비치 감독을 비난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약이 되어
토니 파커는 엄청난 연습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갔고 그것을 지켜 본
포포비치 감독도 그를 더 중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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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에는 전성기로 팀을 이끌고 있는
팀 던컨이 있었고,
역시 팀에 합류한 지노빌리도 함께하며
빅3를 결성하는 순간이 되었는데
주인공보다는 조력자 역할에 가까웠던 파커.
하지만, 조금씩 성장하며
05-06시즌,
처음으로 NBA 올스타전 무대를 누볐으며
06-07시즌에는 르브론 제임스가
버티는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파이널 우승과 함께
좋은 활약으로 파이널 MVP까지
수상하게 되는 파커.
그의 파이널MVP 수상이
더욱더 특별했던 이유는 유럽인 최초의
기록이었기 때문인데
확실한 건, 포포비치 감독이 이끄는
비미국인 선수들이
NBA에 더욱더 용감하게 도전하고
오늘 날, 큰 무대에서 뛰게 된 배경을 만들었다는 것.
지노빌리, 던컨에 비해
나이가 그나마 더 어렸던 토니 파커는
더욱더 팀의 중심이 되어
팀을 이끌었고 카와이 레너드가 유망주 시절에도
조언도 해주는 등, 팀에 기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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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2015년에는
유로바스켓에 출전하여 프랑스를 이끌고
우승을 차지하는 등, MVP를
차지하며 유럽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오르는 등,
그는 신인 때보다
기량이 확실히 발전된 선수로
저돌적인 돌파가 무기였던
토니 파커는 확실히 노장이 되면서
자신의 장점을 살리기엔 몸이 노쇠화가 되어버렸고
그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
정들었던 샌안토니오를 떠나 샬롯으로
깜짝 이적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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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짜리 계약이였지만
결국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그는 현역은퇴를 선언했고
연장계약에 선택권이 있었지만
물러날 때라고
판단을 한 듯 본인 스스로
은퇴결정을 하며 추후의 계획을 밝혔는데
현재 자신이 구단주로 있는
프랑스의 농구 팀 운영에 힘을 쓰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토니 파커는 앞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전형적으로 대기만성형으로
자신의 기량을 발전시킨 유형의 선수로
평균적이었던 스탯과 실력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늘어갔으며 결국
파이널 MVP까지 수상하고
총 4번의 우승을 함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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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가진 실력과 커리어에 비해
주목도가 낮은 편이었던
토니 파커는
국적이 프랑스라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샌안토니오의 중심은
팀 던컨이였기에
빛이 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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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그니쳐와도 같은 돌파와
클러치타임을 지배할 수 있는 강심장의 플레이는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팬들의
환호를 이끌기 충분했으며
그나마 약점으로 평가받던
슈팅도 시즌을 거듭할수록 안정적으로
좋아지며 말 그대로
특별한 약점이 없는 선수로 기억된다 :)
포포비치는 절대적으로 토니 파커를 지지하고 신뢰했지만
그가 그럴 수 있는 건, 감독 스스로가
그의 성장을 위해 물신양면으로 노력했기 때문일 듯,
신인 때 부터 그를 중용했던 포포비치 감독은
방송화면에도 여러 번 잡힐만큼
그를 혹독하게 까면서 교육과 훈련시켰고
결국 토니 파커가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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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파커는
위기의 주부들로 유명한 에바 롱고리아와
결혼했지만, 3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이혼하고야 말았는데
그 이유가 토니 파커의 바람...
그것도 동료의 아내와
바람이 났다니... 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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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적의 토니 파커는
농구만큼이나 축구를 사랑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으며
같은 국적의 최고 축구스타 중 한명인
티에리 앙리와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있다.
종종 공식석상을 비롯해
함께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으며
축구선수 중에서도 패션감각이 좋은
앙리와 역시 패션센스가 좋은 토니 파커의 만남.
(역시 끼리끼리 노는 듯..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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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토니 파커는 신인 시절에
포포비치 감독에게 엄청난 비난과 갈굼을
받으며 성장했고,
나중에는 포포비치가 가장 믿는 선수 중
한 명으로 성장하게 되었는데
그 예를 잘 볼 수 있는 부분은 경기도중,
작전타임 상황에서
포포비치 감독은 아예 뒤로 물러나있고
감독자리에 파커가 앉아서
선수들을 이끌고 전술을 짜는 장면이 연출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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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서야 듀얼가드는
다재다능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더 높게 평가되는 추세이지만
이 당시만 하더라도 전통적인 포인트가드가
사랑을 받고, 심하게 말해
득점력까지 갖춘 듀얼가드를
돌연변이로 보던 시절이다.
토니 파커가
과소평가 되었다는 부분은
그의 스타일이 득점력에 더 비중을 둔
듀얼가드 형태라는 분석도 있고
실제로 어느정도 일리있다는 의견.
또한, 그는
전성기를 비롯한 은퇴 시점까지
플로터를 너무나도
잘 활용하는 선수 중 한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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