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인 가족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모부가 그 유명한
아버지는
웨스트햄의 레전드로
선수생활을 했고
웨스트햄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첼시로 이적하며
무수한 역사를 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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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을 쥐어줄만큼
램파드는 첼시의 모든 것이였고
단어의 가장 어울리는 선수였으며
골키퍼 포지션을
제외하면 연속출장경기가
필드 플레이어 중에서는
지금까지도 가장 높을 정도로
내구성도 좋았던 유형.
말 그대로
이모부 래드넙이 감독이고
웨스트햄의
풀백 레전드 아버지가 코치인 곳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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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팬들은
그런 잣대로 봐서일까?
플레이 자체가
못하는 정도는 아니였지만
까이기 일쑤였고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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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파드에겐
그 때에
이모부와 아버지가
동시에 팀에서 경질됨에 따라
램파드 역시
자연스럽게 팽(?)을 당했고
그 때에
이적한 팀이 첼시였으며
이 때의 이적은
이적이 되었다.
00-01 시즌부터
첼시 유니폼을 입고 활약했으며
03-04 시즌을
시작으로 매 시즌 두자릿 수
득점을 올리며
제대로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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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시즌에는
모든 공식경기를 포함하여
그 해에
기록하게되며
자신의 폼을 절정으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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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렐레와 첼시에서
중원을 이루었던 시절을 벗어나
점점 더 포지션을
공격적인 롤로 부여받아
더 많은 슈팅과 득점을 올리는 유형으로
변형해갔으며
05-06시즌에는
득점을 올리며
스트라이커 뺨치는
득점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첼시 유니폼을 입고
지속적으로 개인 커리어를 쌓았고
그만큼 첼시 역시
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역사는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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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시즌에는
램파드를 중심으로
발락과 에시앙이 중원을 이루는
삼각편대가 힘을 내며
정~말 막을 수 없는 중원을 꾸렸고
리그에서
(공격수니...?!)
미친듯한 득점력과 함께
이 시즌,
어시스트왕에도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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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점자로
이름을 올렸고
인터뷰를 통해
자신도 긱스처럼 한 팀에서
오랫동안
뛰고 싶다는 발언.
점점 나이가 들었음에도
램파드는
지속적으로 좋은 폼을 유지했고
자신을 지도했던
안첼로티, 무리뉴 감독의
무수한 러브콜이 계속 되었지만
새로 부임한
보아스 감독과 마찰을 겪으며
첼시는 파업파동에
이름을 올리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기도 했으며
이미 첼시의 전부와도 같은
램파드 역시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보아스와 갈등이
깊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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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보아스 경질과 함께
첼시 지휘봉을 잡았고
램파드, 존 테리 등
기존에 중심을 잡았던 첼시 선수들은
다시 한 번 힘을 내며
그 시즌,
타이틀을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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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시즌 이후,
램파드의 이적설이 난무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한 시즌 팀에 더 남았고
결국 더 뛰면서
첼시 유니폼을 입고
개인기록을 올리며
레전드급의 활약을 보였는데
그가 팀을 떠나며
새로운 곳으로 갈 때에
구단주 아브라모비치와 무리뉴는
레전드를 예우.
첼시 유니폼을 입고
그가 터트린
211골은
공격수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닌
정말 역대급이라는
단어도 모자를 활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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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르가 구단주로 있는
미국의 뉴욕FC로 이적했으며
유럽리그와 개막이
완전히 다른
MLS리그 일정에 따라
램파드는
임대소속으로 만수르의
또 하나의 작품인
다시 EPL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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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거짓말처럼
램파드는
첼시를 상대편으로 만나게 되며
이 때에 당연히
친정팀 예우로 세레모니는 하지 않았고
램파드는 이 득점으로 인해
EPL 모든 팀을
상대로 득점에 성공하게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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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위에서 말했듯이
뉴욕시티이적 -> 맨시티 임대
형태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뉴욕시티와 계약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류로 밝혀진 것.
뉴욕시티 팬들은 흥분했고
그보다 더
흥분한 팬과 구단은
바로 푸른 심장으로 불리던
램파드의 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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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첼시를 상대하러
다시 맨시티 소속으로 구장을
방문했을 때에는
지금까지 활약해주었던
레전드에 대한 예우와 함께
믿었던 그의
배신과도 같은 행동에 대한
비난이 섞여있었다.
공식 데뷔전을 앞두고
종아리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 못하였으며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부상이 길어지며
데뷔전이 미뤄졌는데
이미 뉴욕의 팬들은
배신을 한 번 제대로 당한 후라
그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고
램파드 역시 EPL을 치르고
시즌을 가담한 형태라
경기력이 좋은 편도 아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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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라인을
기대했지만
경기력은 기대이하였고
후반기에
클래스를 보였지만
70억이 넘는 연봉을 받는 선수가
보여줄 경기력은 아니라는
비난이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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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계약이 종료된 뉴욕을 나와
새로운 팀을 알아보던 중,
현역 은퇴를
선언하게 되면서
21년간 뛰었던 그라운드와
작별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의
각각 리버풀과 첼시를
대표하는
레전드이자 최고의 미드필더이지만
국대에서 호흡을
맞추면 정말..거의 시망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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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적으로
램파드는 잉글랜드 국대의
전술과 맞지않는
스타일에 가까웠고
그의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전술이 바로 첼시.
결국 램파드는
첼시의 레전드로 불리는
리그에서의
환상적인 활약과는 대비되게
국대에서는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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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세 번째 월드컵
무대인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은퇴를 선언했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득점을 했지만
지금처럼 VAR이 없어서
득점 인정을 받지 못했고 덩달아
골대까지 한 번
맞추는 등
정말 운이 없었던 경기.
엄청난 노력파로 불려졌으며
그를 지도했던
해리 래드넙(이모부) 감독은
그보다 노력하는 선수는
그의 아버지 밖에
보지 못했다고 말했으며
첼시 프리시즌에
일본에서 머무르는 동안
선수들과 코치를 모두 데리고
훈련장-호텔까지
9KM가 되는 거리를 러닝으로
뛰어갔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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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아이큐가 높고
머리가 좋은 선수로 알려져있으며
첼시 자체적으로
진행되었던 지능검사에서
최고치가 150이었는데, 그중 단연 1위.
명문사립학교를 나왔고
시험에서 12개 과목을 통과하고
라틴어는 A.
첼시 내에서 가디건을
읽는 선수로 이미 유명했으며
멘사 회원이라고도....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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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에서
감독과 선수로 만나
찰떡궁합을 보여준 바 있는
무리뉴-램파드.
무리뉴가 인터밀란 감독을 맡으며
정말 여러 번
램파드의 이적을 요청했지만
그는 거절했고
구단에 대한 사랑의 마음과
죽기 전,
엄마의 유언때문에 남았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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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39개 구단을
상대로 득점에 성공했으며 위에서도
서술했지만
맨시티 소속으로 친정팀 첼시를 상대로도
득점을 올린 바 있다.
이것은 기록이 되었으며
2016년 기네스북에 등재 되었고
그에 앞선 2015년에는
대영제국 훈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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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레드넙은
프랭크 램파드의 이모부이고
그가 처음
프로생활을 시작했을 때,
처음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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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에
심심치 않게 받았던
이 달의 선수상.
은퇴 후,
첼시 감독 부임 이후
이 달의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동시에 두 가지
상을 모두 수상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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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첼시에서
전성기급 활약을 보일 때에는
유독 챔스에서
바르셀로나와
만날 일이 많았는데
그는 세계적인
사비, 이니에스타를 비롯하여
메시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환상적인 경기력을 통해
좋은 모습을 보였고
바르셀로나도 그것을
인정했을까?
램파드가 은퇴한다고 밝혔을 때,
그를 위한
특별 헌정 트윗을 통해
램파드의 활약을 추억하며 같이
공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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