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적,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을 가진
레알 마드리드가
갈락티코 1기로 베컴을 영입하며
결과적으로 내쳐진
선수가 바로 마켈렐레였는데
그 후로
미드필더 수비가 붕괴되며
꽤나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는 건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
그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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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신장에도
그 누구보다 그라운드에서
큰 존재감을 보였으며
꼽힐 수 있는 레전드이다.
자국 프랑스에서
프로리그 생활을 시작했으며
1부리그
94-95 시즌
리그 우승에 기여하며
프랑스에서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다만, 마르세유 이적 후
1시즌만에
프랑스를 떠나
스페인 셀타비고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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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타비고에서
약 3년간 꾸준하게 활약했고
이 때에 그의 플레이를
눈여겨 보았던
레알 수뇌부가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며
그는 갈락티코 1기의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으며
2000년 여름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었으며
적응기가 필요하겠지?
싶었지만
마켈렐레에겐
필요없는 단어가 되었고
바로 주전급으로
올라서며 활약하기 시작.
이 때를 기점으로
레알 마드리드는
기존에도 좋았던
스쿼드에 슈퍼스타들을
영입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상황에도
마켈렐레는 꾸준하게 주전으로
자리하며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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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마켈렐레가
수비에만 특화된 선수라고
알고 있지만
그는 패스는 물론 꽤나 공격력도
갖춘 선수였으며
다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으며
그는 더욱더
수비에 특화된
미드필더로 거듭.
마드리드는
폭풍 선수영입과 함께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어느정도 투자에 대한 성적을 냈고
단연 그 중심에는
슈퍼스타들이 존재했지만
묵묵히 중원에서
공수의 조율과 궂은 일을 담당하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승승장구하던
마켈렐레의 레알 영향력은
베컴이 레알로 오며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정확히 같은 포지션의
선수라고 할 순 없지만 베컴은
슈퍼스타였고
그의 영입과 함께
마켈렐레 대우가
비교적 낮아졌고
그 시기에 주급 인상을 요구했으나
페레즈 회장은
이러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 마켈렐레와 같이 평범한 패스를 하는 선수에게
고액 연봉을 절~대 줄 수 없다 "
결국 이것은
마켈렐레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고
곧장 이적을 추진하면서
로만 구단주가
폭풍영입으로 팀을 재건하고 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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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마켈렐레가 팀을 떠난 뒤,
중원 수비의
붕괴를 가져왔으며
그의 대체자를 구하기위해서
수많은 선수들이
영입되었으나
대략 6년이란 시간동안
별다른 대체자를
구하지 못하며
버스가 떠난 뒤에야
소중함을 알게 되기도 했다.
여담으로
6년 후, 마켈렐레를
대체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선수가 나타났으며
그의 이름은
03-04 시즌
첼시 유니폼을 입으며
EPL 무대에
처음으로 데뷔했으며
레알에서 그랬듯이
여전히 적응기를 거치지 않고
바로 활약하기 시작.
또 다른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램파드와
미드필더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그 해에
우승엔 실패했으나
리그 준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무리뉴 감독이
첼시로 부임하게 되면서
마켈렐레는
지금까지
감독들이 선호하지 않았던
4-3-3(4-1-2-3)
전술을 선호한 무리뉴 감독이
중원의 무게감을 더했고
그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면서
첼시의 성장세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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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도
믿을 수 없는 기록이라고
평가받고있는
리그 15실점(최소실점기록) 시즌에도
주역으로 활약했으며
에시앙이 새롭게 영입되며
첼시의 중원은
가히 역대급 중원.
첼시 2년 연속
리그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고
로만 구단주와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첼시 전성기의
기틀을 마련하는 역할을 함께하며
마켈렐레는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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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는 중원의
발락을 새롭게 영입했고
30대 중반이 된
마켈렐레는 조금씩 체력적인 한계를
보일 수 있겠다 싶었지만
그 해에도 29경기에 출전하며
여전한 기량을 보였고
이듬 해,
주전에서 조금씩 밀리더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끝으로
이적을 결정했다.
여담으로 이 경기는
존 테리의 PK 실축과 박지성 엔트레 제외 등
여러가지 이슈를 낳았던
첼시와 맨유의 경기였고
결국엔 맨유가
승리한 바 있다.
08-09 시즌부터
PSG 소속으로 뛰기 시작했으며
전성기보단 떨어지지만
여전한 영향력으로
나름 좋은 모습을 보였으며
10-11 시즌을 끝으로
현역은퇴를
선언하게 되면서
커리어에 마침표를 찍었다.
1995년 A대표에
처음 데뷔해서 경기에 뛰었으나
그 시절부터
쭈~~욱 프랑스 중원은
역대급 선수들로 자리하고 있었고
그가 자리를
잡기 어려울 정도.
2002 한일월드컵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으나
광탈 당하며
사실상 활약할 기회가 거의
없는 편이었고
그 후부터
꾸준하게 국대에 이름을 올리며
베스트11으로써
주전으로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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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독일 월드컵
준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고
이 때에
비에이라와 중원을 이루며
좋은 평가를
받으며
지금까지도
비에이라-마켈렐레
조합은 환상이라고 평가 받지만
세세히 들어다보면
유로2008을
끝으로 국대에서 은퇴했고
뒤늦게 빛을 본
케이스로
센츄리 클럽에는
가입하지 못했다.
레알 페레즈 회장이 마켈렐레에 대해서
지극히 평범한 선수라며 재계약을 이루지 않고
첼시로 이적 시켜버리자
지단은 이러한 코멘트를 남긴 적이 있다.
" 당신은 왜 벤틀리의 엔진을 버리면서
금색 페인트로 겉치장만 하려 하는가? "
여기서 벤틀리엔진은 마켈렐레,
금색 페인트는 베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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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형 미드필더의 본좌라고 불릴 수 있는 선수이며
센터백 바로 앞, 위치한 미드필더의
전형적인 롤을 수행했으며
피지컬은 약한 편에 속했으나 컷팅과 수비력,
더불어 활동량으로 그 모든걸
커버했던 유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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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제라드-램프다 조합만큼
비에이라-마켈렐레 조합 역시
개개인의 능력에 비해
현격히 어우러지지 못했던 수준이며
그나마 2006 월드컵에서
준우승 때,
호흡을 좋게 가져간 편이라
두 선수의 호흡은
원래 좋았다고
이미지를 가진 팬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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