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국적
맨유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낸
퍼거슨 감독 밑에서
맨유 주장을 역임하며
불꽃 카리스마와 함께 리더쉽은 물론
표본으로 활약하며
무수하게 영광을 누린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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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에
함께 중원을 이루었던
폴 스콜스에 비해
국내 팬들에겐
다소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데
수상하고
여러가지 리더쉽 등
다양한 측면으로 본다면
로이 킨이
더욱더 높게 평가되어도
마땅할 정도이다.
유명했으며
라이벌 아스날의
비에이라와 터널에 펼친 설전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있는 장면이다.
코브 램브러스에서 뛰다가
스카우터에게
눈에 띄어
노팅엄 포레스트로 이적했다.
그 때에도
성질머리는 여전했고
감독 신임아래
주전으로 확고한 활약을 펼치며
EPL 상위 구단들에게
관심을 받았고
블랙번이 그와
계약 90%까지 다다른 과정에서
등장했고
발빠른 대처로
그를 품에 안으며
로이 킨은
이 때에 가져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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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블랙번은 로이 킨과
계약하는 과정에서
그 날은 금요일 오후 시간대였고
서류 마무리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주말은 할 수 없으니
월요일에 마무리 짓자며 구두적으로
로이 킨과 이야기가 되었는데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설득했고
서류까지 주말에
일사천리로 진행해버리며
로이 킨이
맨유 유니폼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93-94 시즌
로이 킨은 맨유에 데뷔했으며
이 때에는
이미 중원에
롭슨과 폴 인스라는
전설적인 자원들이 있었기에
주전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으나
두 선수 모두
30대가 넘어섰다는 점에서
로이 킨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고
첫 해에
주전을 차지하며
더블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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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96 시즌을 기점으로
노장들이
팀을 떠나게 되면서
일명
1군에 주전급으로 뛰게 되었으며
폴 스콜스, 니키 버트,
베컴, 네빌 형제 등
어린 선수들과 함께
보다 더 경험이 많았던 로이 킨이
리더쉽을 발휘하며
팀을 이끌었고
그 해에도
로이킨 개인적으로
맨유 두 번째
더블을 달성했다.
에릭 칸토나가 팀을 떠나며
로이 킨은
맨유의 주장이 되었고
그의 리더쉽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듯 싶었지만
경기 도중,
당하게 되면서
시즌을 날리게 되었고
이 때에
그에게 태클을 했던 선수는
현재 세계적인
선수로 쑥쑥 성장 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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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즌을
통째로 날렸지만
다음 시즌에 보란듯이 복귀하며
무려 이듬해
55경기를 출전했으며
리그, FA컵과 함께
챔피언스리그까지 우승하며
주역으로 활약.
워낙 거칠어서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경고누적으로
결장해야하는 상황들이
종종 발생했으나
시즌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에
주장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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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0 시즌
맨유와 재계약을 체결했으면
이 해에
리그에서만 12골을
넣는 등
공격적인 면에서도 더 좋아지며
수상했다.
00-01 시즌
자신에게 거친 태클을 가해
시즌을 날리게 만들었던
홀란드 아빠에게
경기 도중, 복수와 같은 태클을 날려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으나
어찌되었든
그 시즌에도 좋은 활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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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감독과 킨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사이가 점점 더
멀어진다는 느낌을 주었는데
아무래도
두 사람 모두
성질이 보통이 아닌 것도 있고
자기 주장이 강해
그럴 수 밖에 없으리란 예상?
그러던 와중
두 사람 사이가 멀어지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일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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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시즌
리그 미들즈브러와 경기에서
1:4로 대패하자
로이킨은
맨유TV와의 인터뷰에서
5명의 선수를
직접 이름으로 언급하며
말 그대로 망언을 내뱉었고
외부 언론에
이 말이 노출이 되면서
퍼거슨 감독은
분노에 차올랐으며
팀 기강이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로이 킨과의
계약을 해지 시키며
싹을 잘라버렸다.
그렇게
2005년 11월 18일부로
로이 킨은
셀틱으로 이적 후,
1시즌만 뛴 바 있으며
끝이 안좋아도
결국 맨유의 레전드는 맞으니
셀틱 소속으로
맨유와 올드트래포드에서 경기를 가지며
커리어를 마무리 했다.
여담으로
맨유에서 방출되며
수많은 EPL 다른 구단들이
그에게 오퍼했지만
의리를 시전하며
셀틱으로 이적한 후
은퇴했다.
1991년
A대표로 데뷔했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도 참여하며
중추적인 역할.
아일랜드 대표 자체적으로
경쟁력이 약해
메이저 대회에서
이렇다 할 커리어는 쌓지 못했고
2002 한일월드컵
예선에서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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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당시 아일랜드 국대 감독이었던
맥카시와
충돌 및 불화가 생기며
결국 월드컵 참여도 못했다.
맥카시 감독이
경질된 후,
다시 국대에 이름을 올렸으나
2006 독일월드컵
예선에서 아일랜드가 탈락하자
커리어를 마감했다.
비에이라, 스콜스, 램파드 등
내놓아하는 EPL 전설들과 함께 뛰었던
본인도 전설인 제라드는
언급한 선수들과는 동 레벨로 자신을 평가했으나
로이킨에겐 자신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능력을 가진 선수로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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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사건을 비롯하여
경기 도중에 몸싸움을 주고 받는 등
사이가 좋지않으며
설전을 여러 번 펼쳤던 두 선수.
맨유와 아스날이라는
팀으로써의 라이벌 관계도 있었지만
중원사령관이라는
명칭답게
포지션으로도
대표적인 라이벌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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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로이 킨은 블랙번과
계약이 거의 90% 성사되었지만
서류 문제로 주말 후,
월요일에 마무리 짓기로 했으며
그것을 노렸던
퍼거슨 감독은 본인 스스로
주말에 로이 킨을
찾아가 함께 하자고 유혹했고
결국 주말에
서류작업까지 마무리 지으며
로이 킨을
맨유로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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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란드가 로이 킨에게
1년간의 재활이 필요한 심각한 부상을
야기시켰던 태클을 범하고
" 별 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
라고 외쳤다는 말은 일단 허구이다.
실제로 홀란드가 외친 말은
" 아픈 척 하지 말고 일어나라 "
그 후,
5년뒤 복수와도 같은
로이 킨의 태클이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사실과 다르게
태클 이후, 홀란드는 계속
경기를 뛰었고
후에 국가대표 경기도 소화한
말 그대로 그 태클로
부상을 입지 않았다.
두 선수가 사이가
안좋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로이 킨이
선수생명을 앓아갈 만큼 일부러 홀란드에게
절대 태클을 범한 것은
아니라는 게 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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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자선경기에서
베컴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면대면하고 있던
퍼거슨 감독과 로이 킨을 화해시키려 했으나
킨이 거절했다는 후문.
실제로 베컴과 킨은
의외로 지속적으로 사이가 좋은데
둘 모두 퍼거슨이
내쳤다는 공통분모가
존재하기 때문 아닐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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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감독도
로이 킨에게 감정이 좋을리 없기에
자신의 자서전에서
지도했던 선수 중,
5명의 월드클래스를 경험했으며
그 중 로이 킨의
이름은 거론되지않았다.
베컴, 긱스, 스콜스, 칸토나는
언급했다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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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가 안 좋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싫어한다는 표현이 맞을까?
은퇴 후,
로이 킨은 선배로써
맨유의 행적이나 상황에 대해서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유독 무리뉴 감독에게
박한 평가를 내렸으며 그가 수비적인
전술로 맨유를
망치고 있다는 등
비난적인 이야기를 여러 번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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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플레이와 폭언을
서슴치않는 로이 킨이지만
그도 아빠이고 부모인 지 아이들과 함께있는
사진들을 보면
그렇게 온화할 수가 없다.
더불어 다른 스타들과 달리
불륜스캔들
하나없이
아내와 결혼하여
5명의 자식을 두며
알콩달콩 잘 사는 중..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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