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적
스트라이커 포지션을 가지고 있으며
수많은 팀을 옮겨갔던 스타.
단점으로
한 팀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다는
말을 할 순 있지만
반대로 어느팀에서나 탐낼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을
지녔던 선수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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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시기가 비슷했던
같은 국적의
앙리와 자주 비교가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앙리>>>아넬카
커리어가 절대적이지는 하지만
아넬카 역시
빅리그 빅클럽에서
활약하며 여러 족적을 남겼던
선수로 기억된다.
1994년
프로 1군 무대 데뷔를 했으며
스트라이커로써
득점력도 훌륭했으나
2선 혹은 3선을 가리지않고 펼치는
왕성한 활동량과
좋은 움직임의 플레이로
폭풍 성장세.
아넬카는
집안환경 자체가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고
오로지 그가
벌어오는 돈에만 관심을 두는
구성원들때문에
항상 쪼들리고 돈에 묶여사는
인생을 살았고
그러한 것들이 응어리되어
아넬카는 팀동료들과
지속적으로 불화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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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 벵거감독은
5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발생시키며
유능하다고 평가내린
아넬카를 아스날로 데려왔고
아스날 소속으로
기대에 부응.
98-99 시즌
아스날 더블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으며
역시 같은 해에
유망함을 인정 받았는데
후에
베르캄프는
앙리/아넬카를 비교하는 말에
두 선수 모두
훌륭한 선수이지만
조금 더 직선적인 움직임으로
공격루트를 가져갔던
아넬카와
호흡이 더 좋았다고
회상한 바 있다.
2230만 파운드의 거액으로
아스날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으며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팀원들과 불화가 생기면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친정팀 PSG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그 곳에서
오웬-헤스키-아넬카
삼각편대를 앞세워 좋은 호흡과 함께
아넬카 역시
팀에 적응하는 듯 싶었으나
당시 리버풀 감독은
2002 월드컵에서 반짝스타로 떠오른
세네갈 출신의
엘 하지 디우프를
거금의 이적료를 들여 데려왔고
아넬카를 주전에
배제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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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만 파운드
이적료를 다시 한 번 발생시키며
이번에는
3년간 뛰었으며
준수한 활약을 보였고
저니맨의 모습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느 팀에서 뛰어도
그는 밥값이상을 하는 선수였으며
모든 감독들이
욕심을 낼만한 재능과 득점력을
갖추고 있었다.
터키로 건너가
뛰더니
곧장 EPL로 복귀를 선언했고
그곳에서
아넬카는 다시 한 번
제대로 부활하며
팀의 공격을 이끌었고
2008년 1월,
공격수 수혈이 필요했던
첼시가 아넬카에게 관심을 표했고
결국 이적이 이루어졌다.
(또 팀을 옮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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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첼시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고
맨유와 붙었는데
아넬카는
승부차기 키커로 나와
실축하면서
준우승의 주역(?)이 된 바 있으며
이듬해에는
멘탈적으로 흔들리고있던
드록바를 대신해서
첼시의 공격을 이끌기 시작하면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했고
드록바와
공존을 할 때에는
세컨 스트라이커 혹은 윙어와도 같은
움직임을 통해
그를 제대로 보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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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본인이 가지고 있던 운동능력들이
줄어들기 시작했으나
아넬카 자체가
운동능력으로만
먹고사는 선수가 아니였기에
영리하고 오히려
더욱더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는
볼 컨트롤이나
조율적인 능력을 살려
첼시에서
꾸준하게 좋은 모습을 보이던 중,
첼시에
새롭게 부임한
결국 미련없이
그는 첼시를 떠나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되었으며
첼시를 떠나
중국 상하이 선화와 계약했으며
플레잉코치 개념으로
뛰다가
소속팀 감독이 경질됨에 따라
12경기 2골로
경기력이 매우 좋지 못한 편이었고
본인 스스로
중국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며
유럽으로 돌아가겠다는
여러가지 행보를
보여주고 있던 찰나에
EPL 웨스트햄과 계약한다는 소문이
들려오기도 했으나
뜬금없이
그가 향한 곳은
6개월 단기계약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아넬카의 활약상도 부진한 편이었으나
중국에 있던
노장의 선수를 데려온
유벤투스 보드진에 대해서
타팀팬들마져
그럴거면 왜 델 피에로랑
제계약을 하지 않았냐며 의문을
가졌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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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 시즌
EPL로 다시 한 번 복귀했고
소속팀은
그가 6번째로 뛰는
EPL 구단이었고
입단 후,
자신과 의형제와도 같은
에이전트가
죽음 맞이하게 되면서 그 슬픔으로
은퇴를 선언했다가
다시 복귀하기도 했으며
뒤에 언급하겠지만
세레모니 관련해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게 되는 등
구단과의 또 마찰로 인해
계약파기와 함께
EPL를 무대를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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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로 건너갔고
자신의 종교 이슬람 행사에
구단 몰래
참석을 했다가
발각이 되어서 마찰이 생겼고
구단은 FIFA에
제소를 한다고 할 정도로
빡이 친 상태.
아넬카는
본인이 아닌 형이 계약을 맘대로
진행했다고 밝혔으며
그러한
혼란이 계속 되다가
3개월 계약이었고
약 1년 뒤,
현역은퇴를 따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뭄바이FC 감독으로
취임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현역에서 물러났다.
전술 이해도가 좋고
득점력도 훌륭한 데 수비가담 등
활동량도 좋아
프랑스 국가대표 감독들이
좋아했던
유형의 선수.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티에리 앙리와
지속적으로 비교가 되었던 선수이며
실제로 두 선수는
굉장히 친한 편인데
아무래도 커리어나 실력적으로
앙리가 아넬카에 비해
훨씬 더 부각되고 주목도가 높다보니
아넬카가 국대에서는
좀 더 묻힌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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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2000 우승을 함께 했으나
그 이후로 지속적으로
소속팀을 옮기는 등
불규칙적인 활약도에 따라서
국대와도 멀어졌다가
유로2008 멤버로 함께 뛰었으며
2010 남아공월드컵을
앞둔 시점에서
당시 국대 감독이었던
감독 이외에도 일부 선수들과도
다툼이 생기면서
대표팀 내분의 중심 중
한명으로 지목.
경기 도중,
감독을 비아냥 거리는
제스처를 하는 등
프랑스 축구협회에서는
아넬카가 국가위신을 떨어트렸다고 판단해
중징계를 내렸고
아넬카는
국대 은퇴를 선언하면서
국대와 연을 끊었다.
아스날, 리버풀, 맨체스터시티, 볼튼,
첼시, 웨스트 브롬위치를
모두 거쳤으며
빅4 시절,
맨유를 제외한 3개구단에서
뛰었던 경험이 있는
선수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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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팀에서
활약했던 이력답게 그는 팀마다
다른 등번호를 달고
경기를 치뤘는데
볼튼, 첼시 시절에는 39번을 달았고
강력하게 주장했다는 후문.
어떤 이유나 의미로
39번을 원했는 지 밝혀진 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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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자신이 이름을 내건
다큐를 방영했으며
제목은
" 아넬카 문제적 저니맨 "
제목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할만큼
잘 구성했으며
프로생활을 하면서
그가 왜 저니맨 생활을 해야했는 지,
왜 수많은 논란의 중심에
있어야 했는 지
자세하게 나오는 것과 함께
당시 전성기를 누린
프랑스 국대 선수들의 인터뷰와 모습을
볼 수 있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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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튼 이적 후,
너무나도 좋은 활약을 펼쳐서였을까?
그의 인기가 높아지고
아넬카의 이름을 딴
" 아넬카버거 " 가 판매되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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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에서 마드리드로
거액의 이적료를 안기며 이적에 성공한
아넬카였지만
그곳에서 즐겁지 않았는데
경기력도
아스날에 비해서
부진하다는 평가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그를 왕따시킨 것.
지금도 회자되는
라커룸 사건은 아넬카가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마다
" 여기 내 자리야~ " 를 반복했고
20번이 넘게 이어졌으며
후에 인터뷰를 통해
그 때 이야기를 꺼내기도 싫다며
아넬카는 손사래를 쳤고
왕따 중심에는
레알의 전설과도 같은
라울, 이에로가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더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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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선수는
실제로 굉장히 친하게 지내고 있으며
뛰었던 시기가 비슷해
라이벌 혹은 비교대상으로
많이 거론되었는데
지금은 라이벌로 보기엔
커리어 차이가
너무나도 명확하다.
앙리, 아넬카는
프로무대에서
한 팀에서 뛴 적은 없지만
아스날, 유벤투스를
각각 뛰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아넬카가 아스날에서
레알로 떠나며 그를 대체하기 위해서
영입했던 선수가
바로 티에리 앙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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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시절,
램파드는 소속팀 선수 중
가장 빠른 선수를 뽑아달라는 인터뷰에
로벤과 함께
의외로 아넬카를 꼽았으며
보기와 다르게
아넬카의 스피드 및 순간속력은 굉장히
빠르다고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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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 브롬위치 시절,
데뷔골을 터트린 후 나치를 연상시키는
세레모니를 펼쳤고
이것은 유럽 전역에 퍼치며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당시, 웨스트 브롬위치 구단주가
유태인이라는 점에서
더욱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결국 계약해지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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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2 - [스포츠/축구] - 티에리 앙리 아스날과 프랑스의 전설, 킹앙리
티에리 앙리 아스날과 프랑스의 전설, 킹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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