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적
중앙미드필더를 포지션으로 가졌고
K리그 전성기를 보냈고
좋은 활약으로
EPL까지 경험했던 선수.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며
전형적인
공격형 미드필더로
수비를 괴롭히는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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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활약 대비
국대에서 임팩트가 부족한 편이라
국내용이라는 말을
들었던 대표적인 선수이며
성남에서
말레시이시아 이적하게 되면서
소문이 뜸하더니
현재에는 은퇴 후,
전북 현대 코치로 합류하게 되면서
제 2의 인생을 사는 중.
고등학교 시절,
눈에 띄는 패싱력과 슈팅력으로
당시 수원 김호 감독의
눈에 띄어
러브콜을 받아
K리그 무대 데뷔.
2001년 루키 시절에도
15경기나 뛰며
김호 감독의 이쁨과 함께 무럭무럭
성장세를 보였고
2002년부터
팀의 절대적인 공격형 미드필더
고종수가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가 되면서
김두현은 그 자리에서
더욱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되면서
폭풍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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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FA컵 우승과
2004 시즌 리그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수원에 없어서는 안될 자원으로
평가 받았으나
2005년 차범근 감독이
새롭게 수원 사령탑에 오르면서
자신이 주로 뛰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가 아닌
수비형 미들이나
풀백으로 뛰는 경우가 생기면서
맞지않은 옷을
입은 듯 부진에 빠졌고
이 때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 구단이 있었으니
성남으로 이적하며
김학범 감독과 처음 만나게 되었고
4-2-3-1 전술의
공격 중심으로 서게 되면서
김두현은 그야말로
차범근 감독이 있는
수원 시절에는
공격만큼 수비도 커버를 해야했다면
성남에서는
김상식, 손대호 등
수비지향적 미드필더 속에서
제대로 지원 받으며
본인 스스로
실력 상승과 함께
성남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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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시즌
성남의 7번째 리그우승과 함께
최고의 전성기를 누빈 시기가 되었고
이듬해 그 활약이
더욱더 빛나게 되면서
영국을 비롯한 유럽 스카우터들에게
러브콜을 받기 시작하며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되었다.
2007년 12월
프리미어리그보다 한 단계 낮은
챔피언쉽 리그
WBA에서
러브콜을 받았고
계약을 맺으며
꿈의 유럽무대진출 성공.
비록 2부리그였으나
WBA의 성적이 좋은 편이라
승격도 기대되는
상황 속에서
김두현에게도 유럽무대를
적응할 수 있는
좋은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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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시즌에
WBA가 리그우승을 차지하게 되면서
승격에 성공했고
추가 계약을 맺으며
EPL 진출자가 되었는데
이듬해
아스날과의 개막전에서
기대이상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좋은 평점을 받았으나
그 후
리그 경기에서
안게 되었고
결국 복귀 후에도
이미 주전자리가 어려워지게 되면서
출전 자체가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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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초반 부상 전,
폼이 너무
좋았던 그였기 때문에
부상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는데
아쉬운 부분이
크게 작용되는 순간이었고
더불어 군문제도
해결되지않은 상황이라는 점에서
그는 영국생활을 접고
국내로 돌아와야했다.
비슷한 시기에
위건에 입단했던 조원희와
비교했을 때에도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는 등
가능성이 높았다는 걸
감안한다면
사실 돌아올 때
성남과 계약할 가능성이 높았으나
구단 사정이 어려워져
그를 영입할 돈이 없게되자 포기했고
수원에서 영입한 배경.
EPL까지 경험했던 선수답게
더욱더 노련하고
좋은 기량을 바탕으로 수원에서 활약하다가
2011년 군복무를 위해
그 곳에서
2년간 선수생활을 이어가며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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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제대 후
수원으로 복귀하면서 주장을 맡는 등
새로운 시작을 알렸으나
쓰러지게 되었고
결국 수원에서 주전을 내주게 되면서
자신을 아껴주었던
성남으로
다시 이적하게 되었다.
김학범 감독이 있는
성남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김두현은 좀 더 안정감을 가지게 되었고
성남 소속으로
친정팀 수원을 만나게 되어
몸을 예열하더니
대전과의 경기에서
팀의 4:1 승리를 이끌며
화려하게 부활.
조금씩
팀의 주전 공격수로 성장하고있던
황의조와 함께
좋은 호흡을 이루면서
주요 공격루트가 되었고
김두현이 뿌리면
황의조가 제대로 마무리하는 장면을
여러차례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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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16 시즌 부상으로 폼이 떨어졌고
2017 시즌에는
주장완장도 내려놓는 등
확실히 전성기보단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주전에서 멀어졌고
그럼에도 클래스를 보이며
나올 때마다
알토란 같은 활약 보여주기 시전
팀의 승격을
이루어내기위해 힘썼지만
결국 실패했고
2017 시즌을 끝으로 성남과 계약종료되면서
그는 K리그 무대를 떠나
이어가게되었다.
갑작스럽게 떠나게 되면서
성남에서 은퇴식도 제대로 치루지 못하고
가게된 케이스이며
말레이시아에서
축구선수보단 은퇴 후,
지도자로써 역량을 발휘하기위한 준비와
아이들의 영어공부 등이
주된 이유.
말레이시아에서
선수생활을 하면서
국제학교와도 계약을 맺는 등
확실히 은퇴 후를
벌써부터 준비한다는 느낌을
가득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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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서 은퇴를 하고
바로 지도자가 되지않겠냐는 예상과 달리
그는 미국 2부리그로
날아가 다시 한 번
선수로써 계약을 맺었고
프리킥으로 데뷔골을 넣는 등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다시 한 번
부상이 발목을 잡게 되면서
7경기 출전에
그치면서
자연스럽게 현역은퇴를 선언했다.
2003년 한일전을 통해
A매치 데뷔했고
K리그에서 폭풍성장과 함께
활약한 것 대비
국대에서는 비교적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국내용에 불과하단 말을 자주 들었던
선수 중 한명이다.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는
안정환이 있었고
후에 박지성 역시 그 자리에서 역할을
담당하다고보니
자연스럽게
김두현에겐 주전자리가 없었고
실력에 비해
시대나 운이 안좋았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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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부족한 기회에서도
가끔씩 대포알 슈팅을 바탕으로
득점을 올리며
존재감을 그나마
보여주었던 시기도 있었으며
특히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에서 국대가 부진하며
상대적 약팀인
몰디브와의 경기에서
득점없이
비기는 경기가 계속되던 시점에서
김두현이 알토란 같은
득점을 올리며
팀에게 승리를 안겼고 그 당시 승점 3점은
괴장히 국대에게 큰 의미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두각을 보이지 못했고
기회도 많이 얻지 못하며
조금은 쓸쓸하게
국대에서 멀어져간 케이스이다.
챔피언쉽리그 소속이었던
WBA로 이적했으나 소속팀이 그 해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EPL로 승격했고
김두현은 EPL 진출한 선수가 되었는데
결국 군대/부상 발목으로
국내로 돌아왔고
경찰청에 입단하게 되면서
유일무이한 타이틀을 따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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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발을 거의 흡사하게 잘 쓰는 선수로
본인 인터뷰에 따르면
오른발은 보다 정확하게 쓸 수 있으며
왼발은 더욱더
강력한 킥을 구사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으며
최근 손흥민이 인터뷰를 통해
비슷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발을 반대로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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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학교 대학원에 논문을 제출한 결과,
90%이상 내용이 표절로
거의 복붙 형태로 보면 될 정도였으며
이상하게 다른 논문표절에 걸린
스포츠 스타들에 비해
주목도나 비난여론이 적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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