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적
윙어, 미드필더 포지션을 가진
국가대표로 경험하며
나름대로 발자취를 남긴 선수.
K리그 데뷔는
울산현대에서 시작했으나
빚을 제대로 본 케이스로
기술이 좋고
무엇보다 킥력이 좋아서
전술적인 활용가치가 높았던 유형.
한 때
영국 한 일간지에서 발표한
세계적으로 킥력에 대해서
인정을 받았던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좋은 능력을 가졌으나
FC호스피탈 소속이라 불릴만큼
잦은 부상으로
전체적인 커리어는
아쉬운 편.
2004년
건국대학교를 중퇴한 후
울산현대
유니폼을 입으며
K리그에 데뷔했으며 그 당시에
출전 차제가
거~의 없는 편.
하지만,
이 때에 그를 눈여겨보았던 사람이
등장했으니
당시 전북의
박동혁, 박규선이라는 주전급 선수를
2명이나 내어주면서
김형범을 데리고 오는
1:2 트레이드를 감행했고 팬들은
이 당시 최강희 감독의
이같은 결정에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나
전북 유니폼을 입은
김형범은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가 되어
대활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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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범은
자신의 장기였던 킥을 바탕으로
팀 전술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고
리그는 물론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중요한 경기에서 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주전급 활약을 보이며
전북의 많은 우승을 이끌었고
국내 팬들은 물론
세계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는데
승승장구 할 것 같았던
그에게
불운이 찾아왔으니
그것도 여러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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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교통사고를 냈고 그 당시
무면허였고
염기훈까지 동승했던 상황으로써
결과적으로 피해자와
합의가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구설수에 올랐으며
그 시즌에는
그럼에도 나름 좋은 활약을 이어갔으나
2007년 김남일의 태클로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큰 부상을 당했고
2008년
폼을 끌어올리기도 전에
이번에는 장학영에게 태클을 당하며
부상 발목 크리....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2009년
부상복귀전을 치뤘고
이번에는 수원 곽희주에게 태클을 당해
곧장 부상으로 쓰러졌고
6개월 공백.
이 해에
김형범은 뛰지 못했으나
전북은 우승을 차지하며
그나마 유종의 미를
거두는 시즌이 되었고
지속적으로 재활로
복귀를 꿈꾸었으나
부상이 이어지자
이른 은퇴를 결심하며 구단에게
자신의 의견을 얘기했으나
코치진이 만류하며
자시 재활로 들어가게 되었고
2012 시즌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다.
2012 시즌을 앞두고
부활을 꿈꾸던 그가 직접 구단에게
대전 임대를 요청했고
받아들여지며
새롭게 시즌을 맞이했고
클래스를 보이며
강등권 탈출을 꿈꾸는 대전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꾸준하게 스탯도 함께 쌓아갔고
시즌 도중에
폼을 끌어올리며
반등하는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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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전시티즌 팀 자체적으로
성적이 떨어졌고
당시 유상철 감독 역시 경질과 다름없는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며
시끌시끌해졌고
김형범 역시
임대신분이라는 점에서
그 곳에 나와
다시 전북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듯 했으나
예상밖에 이적소식이 전해지면서
경남FC로 이적하면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클래스를 발휘하며
또 다시 반등하나 했으나
이번에도 그의
부상을 당하면
최소 6개월의 공백과 재활이 필요한
큰 부상들이었고
뭔가 좀 해보려고 하면
자꾸 좌절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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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복귀 후,
또 다시 부상을 당하게 되면서
경남은 물론
K리그 다른 구단들과
계약을 하기 스스로 민망할 정도로
몸이 망가졌고
이대로 은퇴하나 싶다가
진출을 선언.
이흥실 코치가
몸 상태가 좋지 않으나 따뜻한 나라에서
재활 겸 선수생활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아들여
부리람FC와 계약을 맺으며
태국으로 건너갔고
결혼을 위해
잠시 국내로 돌아왔던 시기에
소속팀이 다른
외국인 선수를 엔트리에 넣어버리면서
그는 리그에서 뛸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구단이 전반기 리그만 기다려주면
엔트리에 넣겠다는
약속을 했으나
그에겐 너무 공백이 길고
몸 상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여
계약 파기로 국내 복귀 및
자연스럽게
김형범의 A매치 기록은
불과 3경기.
사실 그가 국대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K리그에서
국내를 대표하는 골키퍼들을 상대로
프리킥을 포함하여
자신의 킥으로
그들을 울린 바 있으니
이미 검증된 킥을 바탕으로 결국
국대에 승선까지 했으나
역시 킥을 제외한
폼이 좋아도
부상이 잦다는 점에서
국대에서도 꾸준하게 발탁되기 어려웠고
결국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워낙 프리킥 능력이 탁월해서
데이비드 베컴의 이름을 따서 형컴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오히려 K리그 상대팀들에겐
부상이 너무 많아서
K리그의 하그리브스라고 불리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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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김병지가 운영하는 "꽁병지TV" 고정멤버로
계속해서 출연하고 있으며
구수한 입담과 함께
간혹 보여주는 그의 축구실력은
여전히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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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무면허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냈으며
당시 동승자가
바로 염기훈 선수였는데
운전자를 염기훈 선수로 바꿔치기 하려다가
걸리는 등 빠르게 시인하고
피해자들과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일단락 되기는 했으나 찝찝한 사건을
겪기도 했으며
염기훈이 더 큰 부상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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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통산
14개의 프리킥 득점을 만들었고
그의 프리킥 능력은
영국 일간지에서 다루어지며
세계 10대 프리키커로 선정된 바 있다.
함께 선정된 선수들의
네임벨류를 보면
굉장히 화려한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나카무라 슌스케(일본)
웨슬리 스나이더(네덜란드)
디디에 드로그바(코트디부아르)
안드레아 피를로(이탈리아)
카카(브라질)
세자르 데 레온(온두라스)
사비 에르난데스(스페인)
김형범(한국)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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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 감독은
김형범에겐 제대로 은인이라 할 수 있는데
경기조차 뛰지 못하던 시절
그를 전북으로 데려와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국대 감독 시절에도
그를 발탁하여
A매치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2009년 K리그 우승 확정과 함께
세레모니 과정에서
최강희 감독은
셔츠를 벗었고 그 속에
김형범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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