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적
골키퍼 포지션을 지니고 있으며
한 명으로
높은 승률을 지니고 있으며
그의 그러한 장점이
8강 스페인전 승부차기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수원 왕좌의
중심축으로 활약했고
국대와 K리그 모두
동시대 3년 선배 김병지와
라이벌 구도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며
서로 성장한 케이스.
은퇴 후,
여러 곳에서 코치직을 맡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이다가
가장 최근에는
전북 현대 골키퍼 코치로 합류하며
제 2의 인생을 사는 중.
1996년 창단된
수원 삼성 창단 멤버로
골문을 지켰으니
그야말로 살아있는 수원의 레전드.
이 기간동안
수원은 4번간 우승을 차지했고
그 중심에는
단연 이운재가 있었다.
96,97 시즌에는
간염에 걸려 고생과 함께
주전에서 밀려
힘든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으나
1998년부터
확실하게 주전으로 도약과 함께
두 시즌 연속
수원이 리그 우승하는 데
주요 역할을 하며
전성기를 구가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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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월드컵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한 후
역시 팀에 복귀하여
컵대회 우승을 이끄는 등
여전히 좋은 기량을 보여주었고
이 해에도 결국
시즌 베스트11에 이름을 올리며
계속해서 상한가.
그렇게 변함없이
수원 유니폼을 입으며
팀의 중추적인 역할과 함께 선방쇼를
계속해서 보여주었고
커리어 하이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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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월은 속일 수 없었고
2010 시즌을
기점으로
조금씩 폼이 하락하면서
8경기 22실점으로
이운재 답지않은 스탯과 함께
주전경쟁도
불가피하게 여겨졌으며
나이 역시
37세로
은퇴를 논해야하는 시점이 오면서
개인 스스로도
현역과 은퇴 사이에서
고민을 하던 시기가 계속 되었고
구단에서는
코치직을 원했으나
본인 스스로
현역연장의 뜻을 보이며
수원과 이별했다.
2011년 1월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을 확정했고
폼을 찾기 위해서
10kg 감량한 모습으로
강한 의지를 보였고
결국
30경기 29실점이라는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면서
클래스를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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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2년 12월.
평소 자존심이 강한 그 답게
내가 물러나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여긴다면
떠나겠다는
그 말을 지키며
망설임없이
현역은퇴를 선언했다.
1994 미국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고
독일과의 경기에서
교체로 들어가게 되면서
후반전이었지만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 당시 21살로
대표팀 막내였던 이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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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염과 함께
그 당시 김병지라는 존재 때문에
이운재는 국대 주전에서
밀려났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 역시
집에서 TV로
지켜봐야되는 현실.
나름대로 암흑기였으나
이운재는
K리그에서 조금씩 다시 두각을 보이며
활약하기 시작했고
허정무 감독이
이운재를 다시 국대로 부르며
김병지의 뒤를 잇는
2인자로써
국대에서 자리잡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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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터닝포인트는
김병지가 파라과이전에서
드리블을 치며
하프라인까지 나오는
말도 안되는 기행(?)을 펼쳤고
충격을 받은
히딩크 감독은 그 후로
이운재에게 주전 자리를 선언하게 되면서
결국 그 흐름을 이어가
대회 자체에서
환상적인 선방쇼를 보이며
올리버 칸과 함께
대회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 받았다.
그 후,
2006 독일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고
프랑스 전에서
그가 보여주었던 활약은
그야말로 인생경기가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선방과 함께
결국 이 경기에서
박지성이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리며
비기게 되면서
이운재의 선방능력은
더욱더 빛을 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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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남아공 월드컵에도
합류했으나
정성룡에게 밀리게 되면서 후보가 되었고
그 대회를 끝으로
국대 커리어
끝을 맺게 되었으며
분명히 장단점을 가진 선수였으나
오랫동안 골문을 지키며
가장 안정적인
골키퍼 능력을 보여주었다는 평가와 함께
레전드로 남게 되었다.
2008년은
이운재에게 잊을 수 없는 시즌이 되었고
환상적인 선방으로
결국 유일무이 K리그 최초
골키퍼로 MVP를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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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재하면 떠오르는 건
역시나 승부차기에서 강하다는 것인데
가장 백미는
국대에서는 월드컵 스페인전
4강진출을 이끄는
호아킨의 슛을 선방한 것과
K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마지막 키커
김병지의 슈팅을 막으며
팀에게 우승을 안겼던 순간.
수치로 보면
K리그 통산 승부차기 전적은
12경기 11승 1패
무려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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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에 뛰게 되면서
국가대표와 K리그 모두에서 라이벌 구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2002 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이운재가 1옵션이 되며
국대에서 김병지를 압도한 편.
K리그에서도
그 당시 강호로 평가받는
수원, 포항의
각각 수문장을 지키며
여러 번 중요한 경기에서
상대로 만나며
2004 시즌에는
승부차기로 명장면을
만들기도 했다.
김병지 국가대표 재승선에 대한 이슈가
생기던 시점에는
서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도 많았으나
은퇴 후,
여러 방송을 통해서
훈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화해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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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아시안컵 도중
이동국, 김상식, 우성룡 그리고 이운재가
밤에 숙소무단이탈과 함께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룸쌀롱에서 술을 마셨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엄청난 논란이 되었다.
문제는 무단이탈과 함께
성매매까지
했던 것으로 밝혀지게 되면서
이동국은 서면으로 후에 사과발표를 하고
이운재와 우성룡은
기자회견으로
공개적으로 사과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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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킬러, 고기매니아로
알려진 이운재는
수원에서 15년간 활약했기 때문일까?
수원 일대의
유명한 고깃집에는
이운재 사인이
없는 곳이 없다는 설.. 아닌 사실.
어느정도 단가가 높은 곳
위주로 이운재의
사인이 고스란히 배치되어있단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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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월드컵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호아킨의 슈팅을 막아낸 후, 이운재는
카메라를 향해
제대로 윙크를 날렸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다름아닌 아내.
갑자기 아내가 생각나서 얼른
윙크를 했단다..ㅎ
추가적으로
이운재는 당시 PK 상황에서
스페인 선수들을
직접 지도하는 등
경험이 많은 히딩크 감독이
어느 방향을 찰 것 인지
일러주었다고 하는데
그 때에 이운재는
본인의 감을 믿고 싶다며 거절하고
스스로 판단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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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월드컵의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이운재는
야신상 후보에
오른 바 있으며
결국 수상은 올리버 칸이
차지하긴 했지만
이 대회에서 보여준 이운재의
활약과 임팩트는
세계를 놀라게 한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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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월드컵 활약 후,
2~3개 스페인팀에게
오퍼를 받았고
이운재 본인 스스로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해서
수원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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