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국적
미드필더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으며
공수 밸런스가 훌륭하고
말 그대로
중원에서 상대편이 가지고 있던 공을
컷팅하여 공을 소유한 뒤
재빠르게 동료에게
연결하여
공격을 이끌거나
본인이 직접 치고 들어가
마무리까지
할 수 있었던 만능의 자원.
.
.
.
보기보다
공격능력이 더욱더 뛰어난 선수로
2006 독일월드컵에선
26번의 패스가
끊기지 않고 티키타카로 이어져서 득점을 올렸던
바로 그 선수.
레알 마드리드 유스출신으로
1군에서도 뛰었고
조국 아르헨티나에서
처음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고
1996년이 되던 해,
친 형 니콜라스 캄비아소와 함께
스페인으로 건너가
하지만,
결국 그 곳에서 프로무대 데뷔에
실패하게되고
다시 조국으로 돌아와
프로무대 데뷔.
.
.
.
여러 팀을 거쳐
명문으로 불리는 리버 플레이트에서도
활약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폼이 성장하자
유소년 시절,
그를 키웠던 레알 마드리드가 다시 불렀고
다시 스페인으로 건너가
계약에 성공했다.
쏠쏠하게 활약했고
페레즈 회장이
세웠던 갈락티코 1기의 멤버들을 보좌하며
중원에서 묵묵히
자신이 맡은 롤을 수행하며
알토란 같은 활약.
.
.
.
03-04시즌이 끝나고
중원의 파트너 마켈렐레가 첼시로
이적하게 되면서
중원의 파트너는
엘게라, 베컴 그리고 캄비아소.
하지만, 본래
중앙 미드필더 포지션도 아니였던 베컴 등
경기력은 처참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캄비아소 역시 주전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되자,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도전에 나서게 된다.
이 시기는
레코바, 베론 등
슈퍼스타들과 함께 중원에서 활약하며
팀을 이끌었고
공격의 즐라탄이 있다면
수비에는 마이콘,
그리고 바로 중원에는 캄비아소가 중심으로
꼽히던 시절이었다.
.
.
.
2000년대 후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캄비아소를
외칠만큼 그의 폼은 절정 수준.
08-09시즌을
기점으로 그는 더욱더
수비적인 롤을 부여받아 라인을 내려
경기를 뛰었고
어느 위치에서나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그에게
시련은 없었다.
.
.
.
결국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도
최고라는 평가와 함께
전성기를 구가했고
스네이더의 합류로 공격적인 부분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짐에 따라
수비에 집중하며
최고의 영광을 누린다.
그러던 와중,
재계약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인터밀란 구단주가
바뀌게 되고
캄비아소에게 재계약 카드를 내밀며
주급삭감을 요구했고
캄비아소는
끝내 거절하고 이적을 결심.
팬들에게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순간이 되었고
곧 구단주 욕을
하게 되는데
캄비아소가 떠난 중원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며
인터밀란 암흑기의 시작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었다.
자유계약으로
어느 팀이든 자유롭게 이적이 가능했던
그의 새로운 팀은
예상밖에
1년의 단년계약을 맺었고
팀에 합류하자마자
리그, 컵대회를 가리지 않고 클래스를 보이며
꾸준하게 활약하더니,
맨유와의 리그 경기에서
멋진 동점골과 함께
그 기세를 몰아 5:3 역전승의 주역이 되는 등
.
.
.
그 해에
31경기 5골을 기록하며
여전한 클래스를 발휘하는 등 좋은 모습으로
그 해에
시즌이 끝난 후,
재계약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으나
예상밖에 캄비아소는
팀을 떠나
또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너무나도 아쉬운 건
그 다음 시즌
레스터 시티는 정말 동화도 같은 시즌을 보내며
2년 계약을 맺으며
노장으로써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추가적으로 1년
연장계약을 맺기도 했지만
2년정도를 채우고
현역은퇴를 선언하게 되면서
그라운드를 떠났고
올림피아코스 시절, 이미 코치 라이선스를
획득하면서 제 2의 인생의
준비를 마쳤다.
연령별 대표를 모두 거친
엘리트 출신으로
1997년 세계청소년월드컵에서 주축으로
활약하면서 조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 때의 멤버가
2000년에
A매치 데뷔를 했으며
클럽에서 쌓았던 커리어에 비해서는
국대 커리어가
조금은 빈약하다고 할 수 있다.
.
.
.
2006 독일월드컵에서
본선에서
터트린 골은 지금까지도 회자가 될 정도로
임팩트가 컸는데
사실 골 자체는 평범(?)했는데
그 과정에서
수비에게 한 번도 뺏기지 않고
26번의 패스가
오고가는
진정한 티키타카를 보여주었기 때문.
2011년 이후,
점점 더 국대에서 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은퇴했다.
어릴 때에는
축구를 싫어하고 농구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실제로 농구선수를 꿈꾸며
팀에 들어가 뛰었는데
오히려 팀에서
축구의 재능이 있다고 판단해 권유했고
그 후, 축구선수로
전향한 케이스.
가족들 역시 캄비아소가 농구선수로
성장하길 바랬다는 후문.
.
.
.
말이 필요없다.
골 과정을 보면 왜 그의 골이 최고인 지
알 수 있다.
.
.
.
같은 국적이고
인터밀란에서 오랜기간을 함께 뛰면서
더욱더 친해진 케이스.
이정수 월드컵 사나이 다리로 헤딩하는 선수(Feat. 이브라힘 리) (0) | 2021.03.03 |
---|---|
손흥민 케인 베일 KBS라인, 우승 트로피 정조준 가능할까? (0) | 2021.03.02 |
야프 스탐 캄펜의 바위, 오렌지 군단을 이끈 월클 수비수(Feat. 퍼거슨에게 까불다가 쫒겨났..) (0) | 2021.02.25 |
애슐리 콜 호날두의 천적, 월드클래스 레프트백(Feat. 불륜의 대명사) (0) | 2021.02.24 |
게리 네빌 잉글랜드 & 맨유 레전드, 감독은 왠만하면 하지말자 (0) | 2021.02.24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