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적
센터백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수비수로
남아공 월드컵에서
2골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원정 첫 16강 진출의
활약을 했던 선수.
K리그와 J리그를 거쳐
연봉 대박과 함께
꾸준한 활약을 바탕으로
그 곳에서
인정을 받고 금휘환향(?)한 케이스.
2002년
FC서울의 전신 안양 치타스에
유니폼을 입으며
K리그 데뷔.
본래 포지션은 공격수였는데
오히려 수비수로
더 좋은 모습을 보이며 조금씩
성장세를 보여주었다.
여담으로
이때 이정수의 포지션 전향을 권유했던
감독이 바로 조광래.
2004년
새롭게 창단된 인천으로 이적했고
팀의 준우승을 이끄는 등
주전으로 활약하며
꾸준했고
오른쪽 풀백으로 뛰던 그가 이 때 부터
센터백으로 완전히 전향하며
조금씩 포텐을
터트릴 준비를 시작한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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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의 활약은
결국 수원 구단의 마음을 움직였고
9억원을 들여
이정수를 품에 안았다.
수원의 굳건한 수비진과 함께
수비를 이끌었고
총 3년간 수원에서 활약하며
준수한 성적을 남기는 데 기여.
2007시즌
부주장을 맡아 리더쉽도 발휘했으며
2008시즌에는
수원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받으며
가장 꾸준한 활약을
보임과 동시에
3년 계약이 끝나가는 시점에
J리그 구단들이
이정수에게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고
더 좋은 조건을 받을 수 있는
이정수에게도
새로운 도전은 당연시 되었다.
FA가 되어
교토상가와 단년 계약을 맺으며
J리그에 진출했고
일본이
자랑하는 유망주 센터백
미즈모토와 조합을 이루며 J리그를 대표하는
센터백 라인으로 활약.
이 시기에는
국내선수들이 특히 J리그로
많이 진출하던 시기였고
그 중에서도
수비라인에선 이정수의 능력치가
가장 독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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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리그에서 활약으로
K리그와 J리그가 대결하는 조모컵에서
당당히 선발출전하여
득점을 올리는 등
MVP를 받으며 좋은 활약을 펼쳤고
2009년 12월에는
가시마 앤틀러스로 이적하며
J리그 생활을 이어갔다.
2010 남아공월드컵은
이정수에겐 제대로 터닝포인트가 되었고
그 해, 7월
월드컵 활약 후
주가는 더 올라갔고
카타르 알 사르 SC로 이적하게 되는데
오히려
국내무대에서 주목도가 낮았던 그가
J리그와 카타르리그에서
인정 받으며
높은 연봉과 함께
그 곳에서도
주전으로 꾸준하게 활악하며
골 넣는 수비수로써도
명성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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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을 이끌었고
마지막 해에
장기부상을 당하게 되면서
노장이 된 그에게
구단에서는 코치직을 추천하며
은퇴를 권유했으나
이정수 본인 스스로 현역연장에 대한
의지가 강해
결국 계약을 종료하고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전에 나서며
국내로 돌아오게 되었다.
메디컬 테스트를 거쳐
친정팀인 수원으로 복귀하며 K리그로 돌아왔고
40살까지 현역으로
뛰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는?
그의 복귀 시즌에
수원의 성적은 나날히 떨어졌고
이정수 역시
팬들의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주축선수였는데
이정수는 27경기 3골 등
나름대로 준수한
복귀 시즌을 치르기는 했으나
경기 외적으로
팬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등
조금은 씁쓸하게
시즌을 마감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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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과
계약을 마무리 지으며
자연스럽게 현역은퇴를 할 것이라
여겨지는 분위기였으나
2018년
대전 시티즌의
플레잉코치로 간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하겠다고 발표하며
2부리그 샬럿에서 현역으로 뛰었고
곧 다시 은퇴를 선언하며
현역에서 물러났다.
지속적으로
국대 문턱에 발을 올리는 듯 했으나
다른 선수들에게 밀리고
부상을 당하는 등
국가대표와 이래저래 인연이
닿지 않았던 그.
결국 그는
메이저 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했으며
조용형과 센터백 조합을 이루며
최고의 활약.
나이지리아 전 동점골이 발판이 되어
결국 대한민국은
원정 첫 16강의 쾌거를 이루었고
이정수의 주가 역시
가장 높아진 시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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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월드컵 이후에도
꾸준하게 국대에 이름을 올리며 활약했으나
2013년 크로아티아전에서
센터백 조합으로
호흡을 맞추었던 곽태휘와의 활약이
굉장히 부진했고
그것을 기점으로 조금씩
국대에서 멀어지며
자연스럽게 국대에서 은퇴했다.
프로무대 데뷔도 공격수로 시작했으나
안양LG 사령탑
조광래 감독이 그의 장점들을 토대로
수비수 전향을 권유했고
그것이 신의 한수가 되어 수비수로써 좋은 커리어를
가지는 첫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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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사드 SC 시절,
팀의 동료들이나 팬들이 그에게 이브라힘이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고
본인도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 지
선수 마킹 역시
이브라힘 리로 달았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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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생활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나보다.
딸의 이름을 이도하로 지었고
여기서 도하는
카타르의 수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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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그렇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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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수 출신이고
기본적으로 발재간이 좋은 유형의 수비수이다보니
골 넣는 수비수의 이미지가
강한 편인데
무엇보다 월드컵 무대에서
2골을 넣었으니
그 이미지는 사실이나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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