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국적
스트라이커 포지션을 가지고 있으며
아일랜드 역사상
클럽에서는 토트넘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말년에 미국 무대에서도
레전드다운
공격력으로 활약한 바 있다.
토트넘 시절,
베르바토프와 함께 환상의 투톱으로
최고의 듀오로
평가 받은 바 있으며
이영표와도 토트넘에서 함께 뛰며
국내 팬들에게도
이 때에 인지도가 더욱 높아진 케이스.
세레모니를 통해 많은 팬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다.
어린시절,
득점에 남다른 능력을 보여주며
EPL 구단들에게
러브콜을 받았고
가장 적극적이었던 2개 구단은
이름값은 떨어졌지만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울브스를 선택했고
그의 선택은 옮았으며
17세가 되는 해,
1군 무대 데뷔를 가지며
데뷔 무대에서 멀티골을 폭발시키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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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즌간
무려 27골을 넣는 환상적인 득점력으로
팀의 에이스가 되었고
이 때의 활약으로
6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발생시키며
당시 1부리그 팀이었던
당시, 그가 발생시키는 이적료는
10대 선수 최고 이적료를
갈아치우는 금액.
하위권 팀이라
강등을 걱정해야했던 코벤트리는
로비 킨이 합류한 후
12골을 기록하는 등
꾸준한 활약으로
코벤트리에서의 활약은
세리에A 인터밀란 구단의 관심을 이끌었고
결국 1년만에
호나우도, 레코바, 비에리, 피를로 등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존재하고있는
인터밀란에서도 7번의 등번호를
부여받을 정도로
20살의 어린
로비 킨에 대한 기대감은 컸으나
부담이 컸던걸까?
13경기 3골이라는 스탯으로
부진하기시작.
더불어,
자신을 인터밀란으로 데려왔던
로비 킨의
입지도 불안정해졌고
결국 리즈 유나이티드로 임대되면서
다시 영국으로
건너오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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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된 시즌에
가공할만한 득점력으로
다시 살아났고
리즈는 그의 활약을 반기며
완전이적 시켰으나
이듬해,
25경기 3골이라는 최악의 부진과 함께
리즈 역시도
챔스 진출에 실패하면서
재정 악화가
이루어지게 되면서
빚더미에 오르게 되었고
로비 킨은
700만 파운드라는 다소 저평가된
이적료와 함께
로비 킨은
토트넘 이적과 함께
06-07 시즌,
리그와 컵대회를 통틀어
22골을 기록하며
득점력을 드높이는 등
토트넘의 간판으로 올라서기 시작했으며
이 때의 투톱으로 만난
영혼의 듀오로 불리며
최고의 호흡을 보여주기 시작.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토트넘의 공격을 이끌었던
두 명의 공격수는
호흡이 좋았고
이 달의 선수상을
동반으로 받을 정도로
찰떡이었다.
08-09 시즌을 앞두고
어린 시절에도 오퍼를 받은 적이 있었던
1,900만 파운드의 이적료와 함께
주전으로 뛰었으나
19경기 5골로 부진에 빠졌고
점점 더 나락과 함께
주전 스쿼드에서도 제외가 되면서
그 해, 겨울이적시장에서
다시 토트넘으로 재이적하고야 말았다.
이 때 생긴 별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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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떨어진 폼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결국 돌파구를 위해서
임대를 선택했고
그 곳에서 반등하기 시작.
16경기 12골로
미친 활약을 보이며 팀을 이끌었고
시즌을 마친 후,
다시 토트넘에 합류했으나
기대했던 폼이 나오지 않아 아쉬움과 함께
웨스트햄으로 임대를 떠나
팀의 강등을
막을 수 있도록 힘을 썼으나 결국
웨스트햄은 그 시즌 강등했다.
2011년 8월,
토트넘을 떠나 LA갤럭시와 계약했다.
미국리그와 유럽리그는
개막 시기가 달라
잠시 동안
아스톤 빌라에서 임대되어 뛰었고
6경기 3골의 활약.
그리고,
유럽리그에 비해
수준을 낮다는 평가가 있기는 하지만
미국 무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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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시즌
1경기 1개 이상의
스탯과 함께
리그 MVP에 선정되는 활약.
주장을 맡아
리그 우승과 함께
컵대회에서도 연장전에서 결승골과 함께
특유의 쌍권총 세레모니까지
시전을 하며
LA갤럭시의 전성기를 만들었고
총 5시즌을 뛰며
미국 무대를 마무리 지었으며
LA갤럭시의
레전드로 손꼽힌다.
LA갤럭시 계약 종료 후,
약 10개월간의
공백기간을 가지고 복귀한 곳은
약 1년간 뛰었고
은퇴 후,
감독으로 자리하며 감독 커리어를
바로 시작하기도 했다.
1998년
17세의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기세를 몰아 10월에 데뷔골까지 기록을 하면서
아일랜드 최고의 유망주로
평가 받았다.
2006년
로이 킨이 국대 은퇴를 선언하며
그를 이어서
2002 한일월드컵에선
3경기 연속 득점을 올리는 등 활약하며
팀의 16강을 이끈 바 있다.
그 후에는
아일랜드 국대의 경쟁력 자체가 떨어져
메이저 대회와
인연이 거~의 없는 편이고
2010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티에리 앙리의 신의 손 사건이 발생하며
다잡은 월드컵 본선행도
날아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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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2016 무대를 마지막으로
메이저 대회를
마무리 했고
오만과의 평가전을 끝으로
국대에서 은퇴,
마지막 은퇴경기에서 득점을 올리고나서
특유의 쌍권총 세레모니로
유종의 미를 달랬다.
18년간의 국대 생활을 하며
무려 146경기를 뛰었고
68골을 기록하며
아일랜드 축구역사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로 기록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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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구르기, 옆구르기를 비롯해서
특유의 쌍권총 세레모니를 가지고 있는 선수로
득점 후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특별했던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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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와 함께 뛰었던 시절, 그에게 배운걸까?
안녕하세요 혹은 사랑해 등을
외치며 한국어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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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비기기만 해도 월드컵 진출이
확정되었던 아일랜드는
앙리가 일명
"신의 손 사건"으로
규칙을 어기고 득점을 기록하게 되면서
아일랜드의 월드컵 진출은
날아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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