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참 좋아했던 선수.
모비스의 유니폼을 입고
한국에 오기 전,
유튜브 영상을 통해
믿을 수 없는
탄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덩크를
보여주며 농구팬들에게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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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에서
그의 모습은
유튜브에서 보여진 것과는
어느정도 괴리감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기량과 노력을
바탕으로
KBl에서 어느정도
발자취를 남겼다는 개인적 의견.
초등학교 시절,
가족 모두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며
그 곳에 정착한 그는
아마추어 시절에
농구로 이름을 날리며
조금씩 자신을 가치를 높이더니
신문에 기사가 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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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맞물려
이름으로 알려졌고
유튜브에 그가 농구하고 덩크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국내 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데
하이라이트
영상만으로도
임팩트가 굉장히 컸다는...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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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 대학교에서
뱅가드 대학으로 전학 후,
팀의 1옵션으로
활약하며 득점력을 인정 받았지만
기본기나 수비는
부족하다는 것이 국내 전문가들의
의견이 지배적.
결국 그는
KBL 무대를 노렸고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 참여하며
국내 데뷔를 눈 앞에 두었다.
그의 드래프트 참여를 두고
그 당시,
대한민국 최고 유망주였던
방성윤도 드래프트에
나오는 시기라
두 선수를 비교하는
언론이 굉장히 많았던 기억.
유재학 감독은
캐나다에서 넘어와 연습경기를
치른 김효범에 대해
" NBA에 도전하려는 선수라고 보기엔
미숙한 점이 많지만
그런 걸 빼고 순수하게 본다면
상당히 뛰어난 선수 "
라는 코멘트를 달았는데
결국 그는
1순위의 방성윤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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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던 여론을 토대로
그렇게 김효범의 KBL 도전기는 시작됬고
패를 까고보니
개인기량과 공격력은
수준급으로 뛰어나지만
수비력이
떨어졌고 더불어
전술적인 움직임과 이해도가
부족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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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을 먹여살리며
혼자 농구를 하다시피했던
캐나다와는 달리
팀 농구, 특히 전술적인 움직임을
중요시 여기는
유재학 감독 농구에서
그는 애를 먹은 편.
결국 초반 3시즌 동안,
모비스는 전성기를 맞아 계속해서
우승으로 나아갔지만
김효범은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김효범이 4년차가 되는 해,
자신 스스로
최전성기의 경기력을
보이는 시기가 되는 데
덩크, 돌파, 크로스오버 등의
공격력은 배가 되어
날카로워졌고
3점 능력까지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막기 어려운
선수가 되어 활약했고
고질적인 문제였던
말 그대로 용병급
선수로 나서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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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이대성을
있게 한 유재학 감독의 플랜이
먼저 발동되었던 것이
김효범이라고 봐도 무방한 정도.
양동근이 군대를
가며 생겼던 공백으로
모비스는 하위권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는데
용병과 함께 중심에
김효범이 나서며 팀을 우승권
전력으로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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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비스와의
첫 계약 마지막 시즌이였던
군대에서 돌아온
양동근을 필두로 함지훈,
그리고 용병
던스턴의 활약에 김효범이
화룡점정을 찍으며
김효범 개인으로썬
2번째 우승반지를 따내는 순간.
김효범이 모비스에 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이적했고
최상의 전력을
꾸리기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서울SK가 김효범에게
거액의 돈을 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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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범이 받은 연봉은
연봉킹이었던 김주성 다음으로
많은 2위의 연봉.
이 때에도
김효범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지만
안겨주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SK에서
김효범은 첫 시즌을 제외하면
실망스러운 시즌을
이어갔는 데
첫 시즌에는
기대를 모았던 베스트5 중,
주희정/방성윤/김민수가
모두 부상으로 이탈하게 되면서
용병을 제외하면
국내선수로는 김효범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도 높아졌고
그 롤을 잘 수행했지만
퍼지고 말았는 데,
4라운드까지
20점의 가까운 평균득점과
90%이상의 자유투 성공률, 그리고
야투 50%와
3점 40%대의 성공률로
리그 최상급 활약을 보여왔기에
더욱더 아쉬운 시즌.
서울SK는
문경은 감독이 부임하고
지금도 에이스로 활약 중인
김선형이 신인으로
들어오는 등,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되었고
김효범 역시
서서히 주전에서
밀리는 시기가 오게 되었는데
슈터롤을
부여받던 그가
변기훈이라는 슈터가 등장하며
더욱 자리를 잃었고
결국 우승을 위해 장신 용병이
필요했던 SK가
KCC에서 심스를 데려오는 대신
용병과 김효범을
내주는 트레이드를 단행하면서
그는 KCC로
팀을 옮기게 된다.
오히려 SK때보다
많은 출전시간을 부여 받으며
꾸준한 득점과
이제는 자리잡은 수비력을 바탕으로
팀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롤이 밀렸고 설상가상으로
자신보다 사이즈가 좋은 장민국이
더 중용되게 되면서
다시 한 번 출전시간을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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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롤을
부여받아 활약했지만
클러치슈터로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기에는
출전시간 자체가 너무 짧아
경기감각을
끌어올리기 어려운 수준.
결국 김효범은
되어 팀을 옮기는 데
자신이 처음으로
KBL 무대에서 뛸 수 있었던
친정팀 모비스였고
그의 트레이드 대상자는
송창용이 되었다.
친정 팬들은 그를 격하게
반겨주었고
김효범 역시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플레이를
조금씩 보여주며
활약하기는 했지만
이 역시
이대성이 팀에 복귀함에 따라
롤이 제한되고
출전시간은 다시 한 번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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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에서는
1~2년 정도 선수로 더 뛰어주길
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자신의 모교인
들어옴에 따라
결국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선수로써의
커리어를 마감했다.
김효범의
하이트라이트를 보면
그의 장점을 정확히 알 수 있는데
국내선수들은
보통 구사하기힘든 각종 기술과
공격력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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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 더 볼이 부족하고
일종의 습관으로
항상 심판들에게 지적 당했던
캐링 더 볼이
단점으로 지적되기는 했지만
확실히 김효범은
자원이였다는 개인적 의견.
그는 과거 인터뷰를 통해
캐나다 7학년 시절,
한국으로 치면 중1 시절 부터
덩크를 하기 시작했다고... 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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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엔 강은
여러 예능을 통해서
농구실력을 보여준 바 있는데
고등학교 시절,
김효범과 함께 농구를 하던 사이라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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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부터
미술과 음악 쪽에도 재능이 있었고
모비스 시절,
양동근의 피아노 과외를 해주며
가르친 적도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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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도전 중이던
하승진이 미국에 머무르고 있을 때,
김효범과 인연이 닿아
함께 훈련 및 경기를 했던 기억이 있으며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방성윤보다 슛이 좋고 흑인보다 덩크를
잘하는 괴물이라고
코멘트를 했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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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도전과 함께
인터뷰를 통해 기회가 된다면
국가대표로도 활약하고
싶다고 밝혔던 그는
그 당시,
국대 감독인
김남기 감독이 김효범도 국대에
들 수 있는 실력이란
발언을 하며
그의 발탁을 중용하자,
조용히 입을 다물며
아무런 반응도 취하지 않은 것.
그 이유는
국대가 되기 위해서는
귀화를 해야하고
귀화할 경우,
군대를 가야했기 때문인데
그 후로 팬들에게
엄청 욕을 먹고있는 김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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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김효범이기에 가능한 퍼포먼스.
탄력과 운동능력은
물론 3점 능력까지 지닌 그이기에
3관왕을 달성할 수 있었고
사실, 이 덩크 컨테스트도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점프력이 많이 죽은 뒤라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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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전,
한국으로 놀러왔을 때
삼성 홈구장에 방문하여
화려한 덩크를 쏟아내며 뽐을 냈고
이것을 지켜보았던
서장훈과 주희정이 " 쟤 누구냐? " 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낙생고 선수들이
김효범 앞에서 잘난 척을 하며
여러가지 플레이를 하자,
이번에도 수려하게 날아올라 덩크를
연일 찍어댔고
낙생고 선수들은 어리둥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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