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국적
공격 어느위치에서 뛸 수 있으며
본인은 처진 스트라이커
포지션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진 선수.
전성기를 보냈고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공격라인을 구축하며
월드컵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동시대에 뛰었던
호나우두에게 1인자 타이틀을 내주며
좋은 활약에도
조금 묻힌 경향이 있는 편.
왼발 스페셜리스트로
킥, 패스, 드리블까지 왼발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최고로 해내며
별명을 가지기도 했다.
많은 브라질스타들처럼
빈민가에서 자라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축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아버지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멘탈이 흔들리기도 했으나
훗날 인터뷰를 통해
오히려 그러한 부분들이 굳은 의지를
만들어냈다 밝힌 바 있다.
첫 해에
26경기 16골의 퍼포먼스를 보이더니
파우메이라스 이적 후
총 3시즌을 뛰며
97경기 60골을 터트림과 동시에
리그 2회 우승을 시키며
화려한 경기력으로
스페인 무대로 이적하게 되었다.
.
.
.
그의 성장세는
놀라웠고 스페인 무대에서도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중위권의 성적을 이루고 있던
데포르티보를 이끌며
결국 3위와 함께
유럽대항전 무대까지 진출시키는 활약.
그의 활약과 함께
빅클럽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라리가 우승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던
구단은 절대로
그를 팔지 않겠다 맘 먹었으나
그를 너무나도 원했던
바르셀로나가 그에게 바이아웃을 지불하자
결국 그를 팔아버렸다.
지금까지도
데포르티보 골수팬들은
히바우두의 이적을 가지고 " 사건 " 이라 부르며
꼽는다고 한다.
호나우도를
인터밀란으로 이적시키게 되면서
바르셀로나에게 히바우두는 안성맞춤이었고
그는 오자마자
기대에 부응하며 팀을 이끌었고
라이벌 마드리드를
따돌리고
세계적인 수준이었으며
뒤를 바치는
미드필더가
현재 맨시티의 수장 과르디올라.
리그우승과 함께
컵대회까지 따내며 더블 시즌을 만들었고
이듬해에도 리그에서 우승하며
2연속 우승.
히바우두 개인적으로는
브라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까지 이끌며
수상하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데
이 때에 역시 강력한 수상 후보자가
맨유의 트레블을 이끌었던
데이비드 베컴.
.
.
.
00-01 시즌에는
무려 36골을 넣는 미친 활약을 보였지만
더욱더 리그에서 득점력이
좋았던 라울에게
득점왕을 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해에는
바르셀로나가 리그에서 부진을 거듭하며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낼 수 있는 4위 진입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4위 수성이 가능했고
이 경기에서
히바우두는 혼자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3:2 승리와 함께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냈다.
이 경기가
더욱더 화제가 된 이유는
그가 터트린 결승골이
게임에서도 구현하기 힘든 환상적인
오버헤드 득점이었다는 것.
그 후에도
가장 꾸준하게 활약하는 선수였으나
새로 부임한
루이스 반 할 감독과
불화가 생기면서
제한적인 출전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결국 서른 줄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되었다.
이 때에 불화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 것은
바로 포지션 문제.
반 할 감독은 그의 왼발을 크로스용으로
제한을 두며 활용하려했고
반면, 히바우두는
여전히 더욱더 공격적인 롤을 맡으며
득점을 올리려 했다.
2002 한일월드컵의 활약으로
그의 주가는 여전했고
세리에A 이적 후,
자신이 건재함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다만, 개인적인 스탯은
여전히 훌륭했으나
안첼로티 감독이 이끄는 밀란 전술에
녹아들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셰브첸코, 인자기가 버티는 공격과
그 뒤를 바로 잇는
루이 코스타 등
기존 선수들의 자리가 확고한 탓에
출전시간이나 포지션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결국, 그 해에
챔스에서도 우승하며
스스로 만족할만한
경기력은 아니었고
설상가상으로 이듬해 팀에 같은 국적의
카카가 신성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주전경쟁에서 밀리고
결국 팀을 떠났다.
AC밀란을 떠나
여러 팀을 옮겨 다니며
영향력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올림피아코스에서는
전성기 부럽지 않은 활약으로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레알 마드리드, 리버풀 등을 상대로
승리하는 등
클래스가 여전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
.
.
그렇게 그 후에도
꽤나 여러 팀에서 계속적으로 뛰다가
2008년 돌연
우즈베키스탄 FC 분요드코르
유니폼을 입으며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상대팀으로
포항 스틸러스를 만나기도 했으며
팀은 패했다.
그 때의 소속팀 감독은
.
.
.
2011년 단짝이자
브라질 국대 동료였던 호나우두가 은퇴하며
그 역시도 은퇴하나 싶었으나
자국리그에서
뛴다는 소식과 함께
여전한 축구 열정을 보여주었고
2014년 브라질 3부리그
소속 선수로 합류하며
결국 40살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뛰더니
현역 은퇴했다.
자국리그에서
환상적인 활약을 이어가긴 했으나
1994 미국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탈락하게 되면서
쓴 맛을 봤던 그가
그 후 부터는
국대에 승선하면서 조금씩 활약하더니
1998 프랑스 월드컵 출전과 함께
3골 2어시스트의 활약으로
팀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1999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호나우도와 함께
대회 5골로 득점왕에 오르는 등
맹활약으로
완벽하게 브라질 국대의
중심으로 거듭났고
그의 국대 커리어 하이라이트는
사실, 예선까지는
조직력 구축 자체가 되지 않았다는 평가로
브라질의 높은 성적을
기대하는 언론이 전~혀 아니었는데
막상 본선이 시작되니
각성한 모습을 보이며
결국 독일을 꺾고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득점왕을 차지한
호나우도가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는 했으나
그와 함께
최고의 활약을 보인 선수는
호나우도의 대부분의 득점 역시 그의 패스로
이루어진 것이 굉장히 많았다.
악마의 게임으로 불리는
풋볼매니저 게임에서 40대에 가까운 나이에도
피지컬, 체력을 제외한
나머지 능력치가 상당한 수준이라
그의 팬, 혹은 그를 활용하려는 팬들이 그의 나이를 의도적으로
내려서 플레이를 해보니
사기적인 스탯과 함께
엄청난 활약을 했다고 한다.
.
.
.
왼발을 그 누구보다 잘 쓰고
심지어 트래핑이나 드리블 역시 오른발 이용을
거~의 하지않고
왼발만 사용하는 데
막을 길이 없는 왼발 능력을 가졌다.
크로스, 패스, 슈팅 등
왼발로 마법과도 같은 플레이를
많이 보여주었다.
.
.
.
히바우두의 아들
히바우디뉴 역시 축구선수로 활약 중이며
아버지와 같은 케이스로
자국리그에서 뛰다가
생각보다 이르게 유럽 무대로 뛰어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아버지 히바우도가 40살이 넘어도
현역으로 뛰게 되면서
브라질 리그에서
함께 뛰었던 시절도 존재한다.
.
.
.
" 유스 시절에 1군에서 뛰는 호마리우 플레이를 보았고
1군으로 콜업되었을 때,
호나우도를 만났으며 전성기 때의
호나우지뉴와 함께 뛰었으나
나에게 있어서 최고는
히바우두였다. "
.
.
.
많은 축구스타들이
축구 실력 이외에도 술, 담배, 도박, 여자 등
관심을 두고
망가지는 케이스가 많은 반면
히바우도는 축구 이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전~~혀 두지 않았고
41살까지 팀을 수시로 옮기며
현역으로 뛸 만큼
축구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선수였다.
.
.
.
월드컵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코파 아메리카 우승, 프로리그 우승 등
이룰 수 있는 우승 커리어는
다 이뤄본 선수이다.
2021/02/19 - [스포츠/축구] - 카푸 브라질 원조 라이트백의 전설&월드클래스(Feat. 세리에A 레전드)
2021/02/19 - [스포츠/축구] - 호베르트 카를로스 역대급 레프트백 브라질 마드리드 레전드(Feat. UFO슛)
2021/02/03 - [스포츠/축구] - 아드리아누 위닝 치트키 한 때 호나우도 후계자
2020/09/11 - [스포츠/축구] - 호나우지뉴 축구하러 지구로 내려온 외계인
2020/09/02 - [스포츠/축구] - 호나우두 브라질 전설, 임팩트로 신계를 찍은 선수
에릭 아비달 인간승리의 아이콘 바르셀로나 레전드 (0) | 2021.02.24 |
---|---|
이강인 이번엔 레알 마드리드다! 천재의 재도약될까? (0) | 2021.02.24 |
카푸 브라질 원조 라이트백의 전설&월드클래스(Feat. 세리에A 레전드) (0) | 2021.02.19 |
호베르트 카를로스 역대급 레프트백 브라질 마드리드 레전드(Feat. UFO슛) (0) | 2021.02.19 |
손흥민 유벤투스 이적 찐팬 호날두와 정말 함께 뛸까? (0) | 2021.02.18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