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블과 뛰어난 테크닉,
탁월한 득점감각에
공격 조율능력까지 갖추면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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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프로생활을
유벤투스에서 활약하며
팀이 2부로 강등됬을 때에도
일명 명언을 남기며
팀에 남아 1부 재승격과 함께
다시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유종의 미를 거둔 슈퍼스타이다.
칼치오 파도바
유스출신이었던 델 피에로는
프로 데뷔도
소속 성인팀에서 치뤘으며
생각보다 출전시간을
많이 가져가지 못하며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의 유능함을 알아본
유벤투스 수뇌부가 그를 20억에
영입하게 됨에 따라
여겨졌던
1994년 3월,
델 피에로는 부상 중인
유벤투스 선배들을 대신하여
리그에서
상대팀은
당시 세리에A 강팀으로
불리는 파르마.
그 경기에서
델 피에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4:0을 승리를 이끌었고
올라서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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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묘하게도
델 피에로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던 시기에
바조는 부상 등
여러가지 악재가 겹치며
부진의 나락으로
빠져가고 있는 상태였고
자연스럽게
바조의 대체자가 되며
유벤투스에서의
시작을 알렸다.
델 피에로가
유벤투스의 중심이 되면서
그야말로
유벤투스 역시
최고의 강팀으로 그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기 시작.
94-95시즌
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02-03시즌
우승까지,
그 기간동안
더불어
1995년부터 1998년까지
매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무대에 이름을 올리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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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8시즌에는
리그에서 21골을 넣었고
챔피언스리그에서
10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오르는 등
슈퍼스타의 진가.
트레제게와
영혼의 투톱을 이루며
승승장구했고
네드베드, 부폰 등 팀의 레전드와 같은
선수들과도 융합되며
자신의 가치를 드높였는데
01-02시즌 후,
리더쉽을 더욱더 발휘하기 시작했다.
06-07 시즌
팀이 승부조작사건으로
2부리그로
위에서 말했던
명언을 언론에 날리며
엄청난 의리로
팀에 남았고
승격과 함께 다시 팀을
세리에A로 복귀시키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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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격시킨 후 복귀시즌에도
21골로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이 때에 나이가
34살이었으니
노장이 되었지만
시망급으로
경기력이 부진했던
유벤투스를
말 그대로 멱살잡고 캐리했다.
11-12시즌을
앞두고 델 피에로는
유벤투스에서 뛰는 마지막 시즌이라고
미리 선언하며
팬들을 슬프게 만들었고
그 후,
의리섞인 말을 덧붙이기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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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즌,
결국 팀을 다시 한 번
리그우승으로 이끌며
9년만의
정상에 올랐으며
팀 강등이라는
악재를 이겨낸 후 따낸 우승이라
값어치는 더더욱 높았다.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득점을 올렸고
교체되어 나가는 순간에는
상대팀 선수들과
팬들까지도
그의 마지막을 응원.
마지막을
마무리지으며
시드니FC 입단식은
여느 슈퍼스타보다 더 많은 환호를
받으며 인사했고
호주에서
1경기 4골을 넣는 등
30대 후반이 되었지만
여전한 클래스 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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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인도리그에서
뛰기도 했으나 사실상
단기리그로
진행되는 곳에 이벤트성으로
뛰었다는 후문?
이탈리아 언론을 통해
현역은퇴를
선언함에 따라
그의 선수여정도 끝이났다.
유벤투스에서의
활약이 너무 좋았던걸까?
클럽과 비교되어
국대에서의 활약이 저조한 편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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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메이저대회가
유로 1996였는데
활약상이 미비했고 무득점.
1998 프랑스월드컵,
바조의 백업역할을 맡으며
이 대회에서도
사실상 평가 자체가 애매한 수준.
유로2000
결승전에서
좋은 찬스를 여러 번 놓치며
결국 팀은
프랑스에게 패했고
이 때에 부진으로
델 피에로 역시 엄청난 비난여론.
모두가 알다시피
2002 한일월드컵은 대한민국에게
참교육 당하며
16강에서 탈락했고
토티에게 등번호 10번을
내주는 등,
국대에서는 전체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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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메이저대회가 되었던
2006 독일월드컵에서
4강전 귀중한
득점을 올렸고
결승전 승부차기 키커로도 나와
득점에 성공하는 등
우승에 기여하며
결국 그토록 염원했던
타이틀을 따내며
국대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프리킥 능력이
아~주 좋은 편이었으며
성공률도 높아서
델 피에로는 프리킥=PK
우스갯 소리가
있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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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재다능한 선수였으며
본인의 득점은 물론
플레이메이킹과 패싱력을 통해 동료들까지
살릴 수 있는 유형의 선수.
잦은 부상으로
폼이 떨어지면서 전형적인 한방의
선수로 바뀐 듯 하지만
전성기 시절에는
남보다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경기를 풀어갔던 걸
생각해보면
자신의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플레이스타일을 바꿀 수 있는
천재가 맞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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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국내방송에서
월드컵 1주년을 기념하여
이탈리아로 넘어가
그 당시, 상황이나
여러가지 인터뷰를 하기위해
여러 이탈리아
선수들의 인터뷰를 시도했고
이 때에
유일하게 받아준 선수가
바로 델 피에로.
그 때, 한국이 강해서
이긴거라며
립서비스였겠지만
승부를 인정하는 대인배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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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유벤투스 역사의 그 자체이다
유벤투스 구단 역사상
최다출전, 최다득점, 최장기간 주장 등
왠만한 기록에
델 피에로 그의 이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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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이력이 있으며
2006 독일월드컵 당시,
독일과의 4강전에
그를 초대했으며 경기에 이기자
결승전에도 그 옷을
그대로
입고 와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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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순서대로
순위도 동일하다고 보면된다.
앙리
클로제
에투
델 피에로
라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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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낸 후,
구단은 그에게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 하겠다고
의사를 밝혔으나
델 피에로는
상징적인 10번을 다른 누군가
채워주는 게
더 좋다며 거절했고
꽤나 오랜시간 10번 주인이
비워져 있다가
테베즈가 물려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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