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은 틀리지 않았는 게
카메룬 출신의
스트라이커로써
아프리카 출신 선수 중
누구보다 더
뛰어난 득점력,
그리고 최고의 커리어를 지녔다.
.
.
.
바르셀로나, 인터밀란
소속으로
2시즌 연속
트레블을 달성하면서
세계 유일의
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자국에서
유스생활을 시작하며
축구선수의 꿈을
키워가던 에투는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지금도 명문인
.
.
.
1군에 콜업되었지만
출전 자체가
이루어지는 것이 쉽지 않았고
결국 2부리그 혹은
타 팀으로
임대생활을 전전하며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이렇다할
활약이나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99-00 시즌,
마요르카에 임대 되면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그것을 토대로
마요르카는 구단 내에서는
꽤나 높은
이적료를 지불하고
에투 완전영입.
.
.
.
첫 시즌
완벽하게 주전경쟁에서
성공하면서
마요르카 중심이 되었고
팀을 리그 3위로
이끌며
결정적 역할까지.
어느정도
오르막 내리막의
골 결정력으로
기복이 있는 편이기는 했지만
02-03 시즌
컵 대회인
코파 델 레이
우승컵을 따내는 중추적인
역할을 해내며
.
.
.
특히,
보이며
마드리드 킬러로 불렸으며
그러한 것들이 컸을까?
라이벌
바르셀로나는
에투에게 거액의 이적료를
지불하면서
그를 캄프 누로 데려간다.
바르셀로나 시절.
매 시즌 20~30골의
가공할만 한
득점력을 바탕으로
바르셀로나 공격
중심에 있었으며
점점 더 신계로 성장하고 있던
리오넬 메시와의
호흡도 훌륭.
.
.
.
무엇보다
중요한 경기에서
더욱더 빛나는 활약을 보이며
바르셀로나가
여러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부상, 팀내 불화 등
어려운 시기가
존재했던 시즌에도
10골 이상은 꼬박꼬박 넣었으니
클래스는 역시 다른...
.
.
.
호나우지뉴와
불화가 생기면서 팀 전체적으로
흔들렸던 시기도
존재했으며
무엇보다
트레블 중심이었지만
감독
결국 에투는
자신이 전성기를 보냈던
바르셀로나를 떠나
인터밀란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
.
.
당시,
인터밀란 소속이었던
이적이었으며
에투는
바르셀로나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라리가 우승3회를
포함하여
떠나게 되었다.
데뷔전에서
바로 득점포를 올리며
클래스 시전.
시즌 초에는
서로 스왑딜로 소속팀을 옮긴
에투와 즐라탄 모두
좋은 활약을 보이며
서로가 윈윈하는 평가가 많았지만
갈수록 부진한
에투와 달리
즐라탄은 꾸준하게 득점을
올리게 되면서
평가는 달라졌다.
.
.
.
하지만,
무리뉴와 함께
각성하기 시작한 에투는
바르셀로나 때 보다
더 많은 득점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후반기에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며
부활했고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함께
그 해에
달성하게 되면서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하게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
.
.
그 후,
무리뉴 감독이
인터밀란을 떠나고 팀은
침체기에 빠졌고
그나마
에투가 꾸준한 득점으로
인터밀란의
중심을 잡아준 편.
11-12 시즌을
앞두고
에투는 예상외로 이적 팀을
새롭게 선택했고
그 팀은
그 당시
세계 최고의 연봉을 받는
축구선수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에투는
러시아 이적 후,
3시즌 동안 뛰었는데
그 시기에
법정에 올랐으며
최대 5년동안
선수생활 금지령이 내려질
위기에도 쳐했다.
.
.
.
다행히
선수생활은 이어갔고
다만,
무수하게
높은 연봉을 주며
스타플레이어들을 영입했던
돌입함에 따라
에투 역시 정리 대상자였고
2013년 8월,
자유계약으로 풀어지며
새로운 팀을
알아보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그 당시 안지 단장이였던
카를루스는
인터뷰 한 바 있다.
에투가
첼시로 오게 되면서
기대감은 높았는데
우선 인터밀란에서
함께 트레블을 이룩했던
더불어 자유계약이기에
큰 부담없이
풀어줄 것으로 기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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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에투는 전성기 때
보여주었던 스피드나 결정력을
다 보여주진 못했지만
역시 클래스있는
선수답게
중요한 경기에서 활약과 함께
득점을 올리면서
어느정도 밥값을 했다는 평가.
거의 2년만에
첼시 공격수 중에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으며
토레스, 뎀바바 등
정말 암흑과도 같았던
첼시에서
그나마 가장 잘했던
공격수가 에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
.
.
첼시에서
총 1시즌동안 뛰며
리그에서만
기록하며
준수한 스탯을 쌓았고
다시 한 번
자유계약선수가 되며
팀을 떠났다.
첼시 이후,
에버튼으로 이적하면서
뛴 바 있으며
세리에A 삼프도리아로 팀을 옮겼는데
입단 후 1주일만에
감독과 한바탕하면서
퇴단할 위기까지 있었지만
화해했는 지
정상적으로 리그 돌입.
(확실히 불 같은 성미가 있는 선수이다..)
.
.
.
다시 한 번
팀을 옮겨 터키리그로
이적했고
그 곳에서
말 그대로
팀의 보배가 되었는데
중간에
임시감독직도
수행하면서
말년에 여러가지 직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
.
.
그의 마지막 무대는
카타르였고
선언 함에 따라
선수로써 막을 내렸다.
1998 프랑스월드컵에
참가하면서
자신의 성인무대 신고식을 치뤘고
그 후,
바로 팀의 중심이 되어
메이저 대회에
카메룬 활약을 이끌며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
2000, 200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대회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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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1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월드컵에선
총 4회나 출전했지만
통산 3골 1어시스트로 다른 대회에 비해
조금은 아쉬운 성적과 함께
카메룬 역시
조별예선도 통과하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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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2014 브라질월드컵에도
출전했지만
활약은 미비했으며
이 대회를 끝으로
국대 커리어를 마무리 했다.
레알마드리드 유스를 통해
라리가에서도
뛴 경험이 있으며
후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면서
트레블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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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문의 발단은
무리뉴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시작이 되었는데
첼시 감독시절,
에투의 고군분투를 두고
그의 활약이
굉장히 눈부신 편이다.
32세인 지, 35세인 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했고
그것이 논란이 되어
에투의 나이가 실제와는 다르다는
의견들이 쏟아진 것.
실제론 노장 에투가 잘하자
무리뉴가 농담삼아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ㅎ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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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시절,
팀의 중심이었던 호나우지뉴와
싸웠던 이력이 있으며
과르디올라 감독과도 마찰을 겪으며
결국 이적하게 되었다.
후에 삼프도리아
이적 1주일만에 감독과 싸우며
바로 팀을 떠날 뻔
했던 이력도 가지고 있으며
그 외에도 여러 번
팀/구단과 다툰 이력들이 꽤나 존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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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즌 연속
트레블을 기록하였으며
각각 다른 팀 소속으로 트레블을 기록한
세계 유일의 선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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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투의 프로생활의 커리어는
굉장히 화려하며
역대급 선수로 평가받아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성적을 남겼는데
드로그바에 비해서
평가나 여러가지 관심도가 낮은 편이며
전문가들은 아무래도
인기가 많은 EPL이 주무대였던
드로그바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이지 않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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