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스트라이커로
지대한 영향력을 가졌던 선수.
첼시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며
강력한 임팩트로
득점왕과 많은 우승을
이끌며
화려하게 선수생활을
보냈다.
프랑스에 거주하고있는
삼촌댁으로
말 그대로 유학을 보내달라했고
그렇게 10대 시절,
프랑스로 건너가
축구가 하고 싶었지만
삼촌은 그에게 공부하기를 권유.
하지만,
축구가 너무 하고싶었던
드로그바는
대학입학증을 따내며
삼촌에게 건냈고
그의 축구에 대한 의지를
파악한 삼촌은
축구선수로써의 길을
허락했다.
.
.
.
그렇게
프랑스 무대에서
어렵게 데뷔하게된 드로그바는
하위권팀에서
조금씩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기 시작했고
리그앙
뛰어난 득점력과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명문 마르세유의
러브콜을 받고
입단성공.
.
.
.
마르세유에서
첫 시즌,
넣어버리는 등
그 해에
모든 공식경기에서
팀을 UEFA컵 결승까지 이끌며
맹활약했고
그의 가치를 높게 본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며
전설과도 같은
첼시 이적이 이루어진다.
2004년,
첼시로 이적했고
이적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첼시 구단주
아브라모비치는
이름값있는 선수들을
과감하게 돈을 투자해 끌어모을
생각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이에 무리뉴가
드로그바를 추천하자
구단주 왈
라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무리뉴는
라고 언질을 주면서
영입이 이루어졌다는 후문.
결국 무리뉴의 선택은
.
.
.
첫 시즌
정확히 10골을 넣으며
뭐~ 나쁘지는 않구나 정도이지만
만족할만한 성적은
되지 못했고
그래서였을까?
구단주는 다시 지갑을 만지작 거리며
나중에 셰브첸코 영입.
(엄청난 먹튀의 시작...ㄷㄷ)
다음 해,
크레스포가 임대로 오며
주전경쟁이
불가피해졌지만
적응 실패한 크레스포와는 다르게
팀에 완벽 적응한
드로그바는 주전을 차지했고
리그에서만
기록하게 되면서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기 시작.
06-07 시즌을
기점으로 등번호를 11번으로
바꾸면서
이미지를 시작하는 시즌이 되었으며
이 해에 20골로
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제대로 성장.
무엇보다
첼시 입단 후,
초반에 다이빙을 너무 많이 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던 그가
완벽하게 달라지며
일명 다이빙과 같은 꼼수도 필요없이
미친듯이 득점력 발휘.
후에,
드로그바를 인터뷰를 통해
성공해야한다는
부담감에
생겼다 언급한 바 있다.
리그우승엔 실패했지만
각 대회의
결승전에서 모두 득점기록.
.
.
.
부상과 부진을
잠시 겪었던 시기를 지나
09-10 시즌,
본인 스스로도 말했던
첼시에서의
최고 전성기 시즌이 접어드는데
안첼로티 감독
부임과 함께 신뢰를 얻은
드로그바는
말 그대로 경기장에서 날아다녔고
리그에서
활약으로
그 해 득점왕 기록.
(PK골- 단 1골)
리그우승과 함께
FA컵 우승의 다시 한 번
주역으로 활약하며
드록신의 위용을 발휘한 시기.
11-12 시즌
전체적으로 폼이 떨어졌고
보아스 감독의
말을 듣지않고 행동하는
노장의 핵심으로
비난을 받은 바 있으며
여러가지로 흔들리는 시즌.
하지만,
드로그바는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바이에른 뮌헨과의
결승전에서
승부를
동점으로 만들었고
결국 승부차기 끝에 마지막 키커로
득점을 성공시키며
이끌어냈다.
연장전에서
드로그바의 실수로
PK를 내주며
다시 한 번 패색이 짙었지만
야신모드 체흐의
기막힌 선방으로
결국 승부차기까지 갈 수 있었고
여러가지로 스토리있는
우승을 맛 본 셈.
이 시즌을 끝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려는 지
드로그바는
첼시를 떠나겠다 밝혔고
결국 첼시에서의
영광의 순간을 뒤로한 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의 다음 무대는
중국.
상하이 선화로 이적했으며
4개월동안
주급을 받지 못하면서
사실상 공짜로 뛴 셈이 되었고
드로그바 스스로도
경기를 제대로 뛰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불안전한 시기가 되면서
.
.
.
결국 드로그바는
중국을 빠져나와 터키리그로
도전을 알렸고
갈라타사라이와 계약했으며
챔스에서 뛸 수 있다는
부분에 만족.
중국은
드로그바의 발목을
끝까지 잡으려고 했지만
주급조차
제대로 주지않았던
중국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어찌되었든 터키에
입성하게 되는 드록신.
.
.
.
두 시즌 동안 활약했으며
아스날을 만나
득점포를 가동하면서
더불어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친정팀 첼시를
상대하게 되는 재밌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드로그바는
경기 전, 인터뷰를 통해
첼시를 만나게 되서 너무 기쁘다며
센스있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결국 첼시의
승리로 끝이났고
램파드, 존 테리 등
첼시의 영광의 순간을 함께했던
선수들과 포옹하며
훈훈한 장면 연출.
1년 단기계약이였고
말 그대로 백전노장의 드록신.
전성기에 비하면
폼 자체가
굉장히 많이 떨어졌지만
심심치않게
득점포를 가동하며
첼시 팬들에게 환호를 받는다.
.
.
.
주전 공격수
코스타와 레미가 부상 당하며
꽤나 오랫동안
주전으로 뛰기도 했으며
역시나 득점포는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좋은 활약.
결국 첼시와 함께
마지막을 함께한 14-15 시즌
팀이 정상에 오르며
자신의 커리어에
첼시에서의
유종의 미를 추가적으로
다시 한 번
쌓을 수 있게 되었다.
미국무대로 옮겼고
첫 팀은 몬트리올로 데뷔전에서
득점을 올리는 등,
클래스 시전.
히딩크가
첼시의 임시감독으로
오게 되면서
첼시로 다시 갈 수 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지만
결국 미국에 남았고
몬트리올에서 한 시즌을 더 뛰며
두 자리수 득점과 함께
계약 만료.
.
.
.
은퇴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는 미국 2부
팀을 챔피언십 결승까지 올리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우승엔 실패했지만
마지막까지
뛰어난 리더쉽과 클래스를 보여주며
현역은퇴했다.
코트디부아르의 핵심이자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선수로 기억되며
2006 독일월드컵
아프리카 최종예선에서
탈락위기에
있었지만 정말 너무나도 극적으로
카메룬 대신
월드컵 진출을 확정 지으며
환호했고
인터뷰를 통해
라는 발언을 했고
내전을 겪고있던 두 단체들은
그 이후,
거짓말처럼
화해의 무드가 펼쳐졌고
내전은 말그대로
.
.
.
큰 무대에서 강했고
그가
경기장에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온도 차는
굉장히 컸을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한 선수였으며
2014 브라질월드컵을
끝으로
국대 커리어를 마무리 지으며
깔끔하게 은퇴했다.
두명 모두 축구선수로 성장했으며
조디 드록바는
기록조차 남지않은 무명의 선수이고
프레디 드록바는 프랑스 디종 유스출신으로
현재까지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케이스.
.
.
.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10승 1무라는 성적을 거둘만큼
(재복귀 이전)
특히 강한 모습을 보였고
한 때,
15경기 15골의
믿을 수 없는 수치를 보인 바 있다.
특히 아스날에게
더욱더 강할 수 있었던 건
EPL 보통의
수비진과 다르게
피지컬보다 발 밑이 좋은 수비수를
주로 썼던 아스날.
피지컬의 드록바에게 신나게 털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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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같은 모습도 있는데
그것이 잘보였던 것이 바로 유니폼 사건(?)
스스로 판매량 순위를
높이기위해
사비를 들여 40벌을 구입했고
카드로 구입해서
본인이 구입한 게 들켰다는 후문...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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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그바가
아프리카인들에게 더욱더 높은 평가와
인기가 많았던 이유는
바로 경기 외적으로도
멋진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였던 것인데
특히, 아프리카
전제척으로 가장 심각한
에이즈 질환에 대한
퇴치 홍보대사를 꽤나 오랫동안 담당하며
여러가지 운동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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